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63)
EP.363 뻔뻔하지만 쑥스러운 #2
해가 완전히 진 어둑한 하늘.
그 아래에서 히요리와 함께 주차장으로 간 나는 자동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탄 히요리는 시트 밑에 검은 비닐을 놔두었다.
그녀가 오늘 입은 옷가지가 들어있는 봉투였다.
“이거 불편해서 계속 위로 올려야 돼요.”
내 바지를 허리까지 끌어당긴 그녀의 투덜거림.
콧방귀를 낀 내가 말했다.
“어른한테 감사합니다는 못할망정 불평을 터뜨리냐?”
“누가 어른이에요…!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꼬우면 나보다 일찍 태어났어야지.”
“너무 권위주의적인 거 아니에요? 그리고 선배 모자 줘요.”
“왜.”
“머리 망가져서요.”
그 말마따나 히요리의 머리는 잔머리가 마구마구 튀어나와있었고, 완전한 산발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두피 마사지를 받으면서 망가진 채로 말라 생긴 일.
누가 보면 노숙이라도 한 것 같은 그녀의 머리를 보며 낄낄거린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어차피 바로 집에 들어갈 건데 괜찮지 않냐?”
“내놔요.”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모자의 챙이 뒤로 가도록, 히요리의 머리에 그것을 씌워주었다.
머리 사이즈 크기가 꽤 있어서 공간이 많이 남는다.
오늘 히요리가 많은 수난을 겪는구나.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긴 하다.
내 모자를 푸욱 눌러쓴 히요리는 안전벨트를 매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 굴곡이 브라를 찼을 때보다 훨씬 잘 드러나는데다, 티셔츠가 벨트로 인해 팽팽해지면 꼭지까지 보일 테니까 말이다.
사실 현재도 그 부분이 톡 튀어나와있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살짝,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현재 노브라인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히요리에게, 나는 구태여 벨트를 매라고 하지 않았다.
자동차 시스템이 알아서 알려줄 것이 뻔해서였다.
띵-! 띵-!
차가 출발하자마자 들려오는 안전벨트 경고음.
그 소리를 들은 내가 히요리를 돌아보니, 다급하게 벨트를 당기더니 클립에 끼우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히요리는 띠를 허리로 내리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가슴을 의식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티가 나니까 저러는 걸까?
아니,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말자.
사정을 봐주고 싶지만 안전이 중요하지.
그리 생각한 나는 룸미러를 통해 굴곡이 완전하게 나타난 히요리의 봉긋한 가슴을 흘깃거리며 차를 출발시켰다.
“집에 돌아가면 다리 잘 풀어줘. 알밸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여 동네를 빠져나가던 내 말에, 모자를 푹 눌러쓴 히요리가 속편한 소리를 했다.
“그냥 걷기만 한 건데 설마 그러겠어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괜찮아요. 아프면 양호실 가서 땡땡이치면 되니까요.”
“근육통 같은 건 양호선생님이 받아주지도 않을 걸?”
“다른 핑계로 대면 되죠.”
“애초에 땡땡이칠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정상 아니냐?”
“몰라용.”
참 대책 없이 군다.
딱 보니까 내일 으어어… 거리면서 고생할 것 같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히요리의 허벅지를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
그것을 참아낸 내가 단호히 얘기했다.
“마사지 해.”
“알았어요.”
“말로만 알겠다고 하지 말고.”
“진짜 할 건데 왜 자꾸 잔소리하려고 해요…!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줄까요?”
“어. 꼭 보내라.”
“그럴게요. 아 맞다, 저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요.”
“뭔데.”
“저번에 선배가 양호실에 왔을 때, 양호선생님이랑 친한 느낌이었잖아요?”
“그랬냐?”
“네. 양호선생님이 선배보고 요새는 잘 안 온다고도 했었는데… 1학년 때 사고 많이 쳤었어요?”
꽤 지난 일임에도 자세히 기억하고 있으니 감격스럽다고 해야 할지, 곤란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내는 게 기특하다.
전방을 주시하며 뺨을 긁적인 내가 대답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표정 보니까 많이 같은데? 지금은 착해진 거예요? 개과천선?”
툭-!
히요리가 말을 끝내는 순간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손바닥으로 히요리의 무릎을 약하게 가격한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오버를 하며 아픈 척을 하던 그녀가 말했다.
“사람이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시끄러.”
“알았엉.”
“존댓말 써라.”
“응.”
청개구리 같은 것.
저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같이 잘 날이 정말정말 기다려진다.
우여곡절 끝에 히요리의 집에 도착한 나는, 그녀가 가슴이 흔들리지 않게끔 조심조심 벨트를 푸는 걸 지켜보았다.
내릴 준비를 하고는 모자를 벗어 내게 내미는 히요리.
그것을 받아든 나는 조수석 문을 연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왜.”
“옷은 빨고 내일 모레 드릴게요.”
“왜 하필 모레야?”
“오늘 빨고 내일 말려야하니까요.”
“계획이 있긴 있었구나?”
“그 뜻밖이라는 말투는 뭐예요?”
“그렇게 들렸어?”
“진짜 짜증… 오늘 운동 재미있었어요.”
투덜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그리 말한 히요리가 손을 뻗었다.
하이파이브를 하자는 뜻.
그에 얼떨결에 손을 올리자, 손바닥을 짝! 하고 맞부딪친 그녀가 봉투를 챙기고 차에서 내렸다.
이후 끈을 묶었음에도 자꾸 내려가는 바지가 불편한 듯, 바지허리를 잡고 허리춤까지 끌어올리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몇 시간 같이 안 있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고 느껴질 만큼, 히요리와의 시간은 톡톡 튀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손발을 씻고 누운 나는, 히요리가 보내온 한 장의 사진을 받았다.
[다음에 또 운동해요!]저런 메시지와 함께, 새하얀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주무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보내라고 진짜 보낸 건 둘째치고서라도, 바지는 왜 안 입은 거야?
보수적으로 굴어도 이렇게나 과감한데, 그냥 놔두면 어디까지 나갈지 모르겠다.
길게 쭈욱 뻗은 다리가 굉장히 섹시하다고 생각한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고 눈을 감았다.
**
다음날 아침.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좀 제대로 걸어봐…! 어제 뭐했는데 올 때부터 지금까지 이래?”
“흐어어…”
미호의 부축을 받으며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옮기는 히요리를 발견했다.
실내화를 질질 끌며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는 그녀.
딱 봐도 다리에 근육통이 온 것 같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어제 저럴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줄이야…
마사지를 제대로 안 했구나 싶다.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건 잘하는 주제에 저러다니… 혹시 히요리는 몸치가 아닐까?
같이 잘 때도 뻣뻣하게 굴려나? 그건 의외로 꼴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상을 할수록 히요리와의 관계에 기대감이 커진다.
어떤 웃기는 상황이 도사리고 있을지, 그녀의 반응은 어떨지, 그리고 저 뽀얀 나신을 보면 무슨 기분이 들지 알고 싶어서 몸이 절로 달아오르고는 한다.
헤롱거리는 히요리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나는, 오늘 왠지 그녀가 양호실에 살림을 차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건물을 나왔다.
이후 미유키가 깜박하고 차 안에 놔둔 파일철을 가지고, 매점에서 젤리를 몇 개 산 뒤에 교실로 돌아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와 테츠야가 보인다.
이야기를 하는 건 상관없는데, 문제는 테츠야가 내 자리에 앉아있다는 거다.
의자에 똥을 뿌리는 놈을 보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솟구치는 짜증을 억누른 나는 미유키의 자리에 파일철을 올려놓고, 테츠야에게 옆을 턱짓했다.
“나와.”
“그래.”
예전이었다면 당황해하면서 머뭇머뭇 일어났을 텐데, 지금은 태연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놈이 몸집이 불어날수록, 그에 비례하여 자신감 또한 붙고 있는 것 같다.
요새 검도부에서도 렌카에게 많은 칭찬을 듣던데, 복싱 체육관에서도 놈에게 사탕발린 말을 해줬나보지?
날 보는 눈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숙적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 아주 같잖다.
“요새 테츠야 군이 밝아진 것 같아.”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댄 날 향한 미유키의 말.
고개만 약간 돌려 그녀를 쳐다본 내가 물었다.
“그래서 좋냐?”
“나는 마츠다 군이 제일 좋지.”
음음… 우문에 현답으로 대답하는 미유키가 사랑스럽다.
특히 ‘제일’이라는 부사를 붙인 게 좋아.
“심부름 해줬다고 칭찬해주네.”
“내가 간다고 했는데 마츠다 군이 직접 가겠다고, 여기 있으라고 했잖아.”
“그렇긴 하지.”
“고마워.”
감사를 전한 미유키가 의자 등받이와 좌판 사이에 있는 공간으로 손을 뻗어, 내 등허리를 토닥였다.
최근 히요리와의 공방전 이후 애정을 표현하는 빈도가 는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든 건가?
아니면 그저 내 착각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마냥 좋다.
등허리를 두드리던 미유키의 손길이 바뀌었다.
시계방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내게 자극을 주는 그녀의 손.
간지럼이 느껴져 가슴을 바깥으로 빼며 등 근육을 수축시킨 나는 테츠야를 곁눈질했다.
안 보려고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게 티가 난다.
아직까지 미련을 못 버렸구나.
하긴,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소꿉친구가 자신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과 만나고 있는데 그럴 만도 하다.
왜 저놈의 반응을 보는 게 즐거울까.
날 향한 적의가 여전히 남아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면 괜찮을 텐데, 놈은 그러지 않을 테지.
미유키 공략의 완성은 그녀가 스스로 테츠야를 밀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도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왔다보니 그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놈의 음흉한 마음을 미유키가 알아챌 기회가 있을 거다.
톡, 톡.
이번엔 자신의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건반 두드리듯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미유키를 보며 헛웃음을 친 내가 말했다.
“재밌냐?”
“응.”
“그럼 됐어.”
“배고프다… 오면서 편의점 들를 걸 그랬나봐.”
“매점 갔다 올래?”
“수업시간 5분 남았는데?”
“빨리 사고 수업시간에 먹으면 되지.”
“그러면 안 돼.”
단호한 미유키의 대답에 그러려니 한 나는, 오늘 4교시가 체육이었다는 걸 상기했다.
오늘 성욕이 평소보다 훨씬 강해진 느낌이다.
가볍게나마 운동을 해서 그런가? 수업이 끝나면 미유키를 도와 체육관을 정리하고 창고에서 한 번 해야겠다.
부활동 시간엔 렌카, 그리고 치나미와 야한 짓을 하면서 사랑을 쏙쏙 키워나가야지.
물론 히요리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