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93)
EP.393 똥겜다운 이벤트에도 호감도는 핀다 #2
“무슨 일이야?”
세 남자의 표정이 일변하는 게 보인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 덩치까지 차이가 상당한 남자가 다가오니 살짝 주눅 든 모양이다.
그럼에도 티는 잘 안 났는데, 모여 있으니 없던 용기가 생긴 듯한 모습이었다.
“마츠켄!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막 꼬리쳤어요…!”
미유키와 미호를 데리고 냅다 내 뒤에 숨는 히요리.
남자들을 가리키며 마구 성을 내는데, 깜찍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위험하다.
“아니,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한 남자가 오만상을 다 쓰며 히요리에게 성큼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우뚝 서있는 날 보더니 멈칫하며,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다.
“넌 뭐야? 보호자냐?”
아아… 이 유치한 감각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작년 학기 초에 있었던 서클 탈퇴 사건이 생각난다.
조금만 자극하면 주먹이 날아올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빡 하고 온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가시는 게 어떨까요?”
나는 일단 좋게좋게 남자들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미유키가 이런 상황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걸어온 사람들에게 반격하는 건 허용범위 내였다.
이번학기 초에 유도부와 싸웠을 때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도 저들이 먼저 주먹을 들이대고, 내가 맞서면 괜찮을 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력충돌은 웬만하면 피하는 게 맞았다.
미유키가 직접 그 장면을 보는 게 싫기도 하고.
하지만 이러한 내 태도가 남자들의 기를 살려준 듯했다.
“병신 같은 게…”
무리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남자의 입에서 험한 욕설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내가 겁을 집어먹었다고 착각이라도 한 듯했다.
“뭐 이 미친놈아!? 이거 완전 쓰레기 아니야?”
문제는 저 욕을 듣는 입장인 나는 괜찮은데, 히요리가 그렇지 않다는 점.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노발대발하며 삿대질을 해대는데, 목소리가 너무 카랑카랑해서 내 정신이 약간 멍해질 정도였다.
“뚫린 입이라고 어디서 말을 함부로 해! 진짜 더럽게 못생긴 게!”
음음. 객관적으로 보면 못생긴 건 아니고 잘생긴 축에 속하는데, 앞에 부사를 곁들이니 정말 못생긴 것처럼 들린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겠구나 싶다.
“이게 뒤질라고…”
히요리의 인신공격을 들은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용히 말했다면 모르겠으나, 주위에 다 들릴 정도로 목청이 커서 쪽팔림이 더해졌나보다.
슬슬 위험한 상황까지 온 게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자가 한 팔을 들어올렸다.
“으익…!”
굵직한 손이 다가오자 무서워졌는지, 히요리가 몸을 뺐다.
허나 남자의 손이 더 빨랐다. 무슨 복싱이라도 배운 듯, 기가 막히게 빠른 속도로 히요리의 손목을 낚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보다도 빠른 게 내 손이었다.
재빨리 남자의 팔을 잡아챈 나는, 마치 악력을 측정하기라도 하듯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며 그의 팔을 눌렀다.
“아…!”
그러자 놈의 입에서부터 고통에 찬 탄성이 토해져 나오더니,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이내 고통으로 가득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의지에 반하여 굽어지는 팔, 절로 꿇리는 무릎, 그리고 그라데이션으로 높아지는 비명…
추하기도 하지만 왠지 웃기다. 테츠야한테 써먹으면 딱 좋을지도 모르겠다.
내 팔을 떼어내려는 시도조차 못한 채로 으악을 지르고 있는 남자를 지그시 내려다본 나는, 주춤하는 놈의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가라고.”
“아니… 일단 놓아줘야…”
아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순한 양이 되어버린 저들을 보자니 혀가 차진다.
역시 사람은 머리보단 몸이 좋아야한다.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왜소했다면 싸움판이 벌어졌을 텐데, 상황이 나름 평화롭게 흘러가잖아.
압도적인 힘이 최고야.
툭.
앞으로 더더욱 무력을 수련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젠 끙끙대며 아파하고 있는 남자의 팔을 뒤로 밀면서 놓아주었다.
“허으윽…!”
천박하게 모래를 구른 남자가 자신의 팔을 살폈다.
압력에 의해 피가 통하지 않아 새하얘진 손바닥과는 달리 시뻘건 팔목.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그 부위를 본 그가 이를 뿌드득 갈더니 몸을 돌렸다.
그래도 쪽팔린 건 알아서 조용히 물러나는구나.
테츠야였다면 고소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싶다.
“마츠다 군, 괜찮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던 미유키의 물음.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날 본 그녀가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교사, 혹은 경찰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아… 심장 떨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미유키가, 내가 사온 생과일주스를 쪼오옥 빨아먹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어지간히 긴장했었나보다.
바다로 가서 바닷물에 대충 손을 씻은 나는, 자그마한 점이 될 만큼 멀어진 남자들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히요리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 막 싸울 것처럼 굴었어?”
“그냥 게임 다시 할 준비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와서 같이 놀자고 그랬어요. 하나자와 선배가 싫다고 하니까 튕기는 줄 알고 더러운 엉덩이를 돗자리에 비비려고 해서, 제가 막 화를 내니까 더 능글맞게 굴었구요.”
“그래?”
“네. 미호랑 하나자와 선배가 앉지 말라고 강하게 말하긴 했는데 듣질 않았어요. 선배가 오면 주려고 한 과일까지 먹으려고 했다니까요. 하나자와 선배가 학생회만 아니었으면 고간을 차줬을 거예요.”
허공에 힘껏 발길질을 하는 히요리를 보며 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못할 거면서 허세부리긴.”
“인정.”
“근데 고간을 차는 거랑 미유키가 학생회인 거랑 무슨 상관인데?”
“벌점 받으면 안 되잖아요. 어제도 2점이나 받았는데.”
히요리는 미유키와만 닮은 게 아니라, 나와도 닮았다.
다른 사람의 신체부위를 더럽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하면 화를 내는 것도 그렇고…
신경이 예민한 치와와처럼 겉으로 화를 표출한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성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미유키도 유도리 있게 굴긴 하는데… 네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까 기특하네. 그리고 너 내가 말 예쁘게 하랬지?”
본론으로 들어가 히요리를 나무라기 시작하자, 그녀가 눈을 약간 아래로 내리깔았다.
처음엔 반성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었다.
“넹.”
방금 나름 조리 있게 상황을 설명한 것과는 달리, 아주 수상쩍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대답도 건성이고.
“내 말 듣고 있긴 해?”
“넹.”
“너 바보냐?”
“넹.”
“바보였어?”
“넹.”
“멍청이야?”
“넹.”
평소였다면 아니라며 떽떽댔을 텐데, 그러려니 하고 있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음에도 여전히 흐리멍덩하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것 같다.
뭔가 싶어 히요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내 팔이 보였다.
살짝 몽롱한 눈빛 안에 노골적인 기색이 서려있는데, 남자의 팔을 누를 때 핏대가 잔뜩 섰던 전완근이 마음에 들었나?
이쪽으로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진다.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툭.
히요리의 바보털을 가볍게 건드리자, 그제야 머리를 부르르 떨며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날 올려다보았다.
“왜요? 잔소리하려구요?”
“방금 했는데 못 들었냐?”
“뭐라고 했는데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잘 아네.”
“선배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끼워 맞추지 마라. 원래부터 그랬잖아.”
“아 계속 질척대는데 그럼 어떡해요…!”
억울한 듯 한쪽 발을 모래에 푹 담구는 히요리가 왜 이렇게 깜찍해 보일까.
허접한 몬스터가 공격이 통하질 않자 콧김을 내뿜으며 푸념하는 것 같다.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조절을 잘 하라는 거야. 방금 너 걔네한테 맞을 뻔한 거, 알긴 아냐?”
“맞을 뻔한 게 아니라 잡힐 뻔한 건뎅.”
“그게 그거지.”
“선배가 막아줬잖아요.”
“내가 없을 땐 어쩌려고 그랬는데? 애초에 그런 일이 없게끔 해야 맞는 거 아니냐? 주변에 라이프가드를 부르거나, 아니면 선생님한테 바로 전화를 하거나.”
“팔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말 돌리지 말고.”
“만지게 해주면 안 돌리고 대답할게요.”
“안 돼.”
“지금은 좀 그런가? 하나자와 선배 없을 때 만질게요 그럼.”
당돌한 소리를 하고 앉아있다.
미호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유키를 슬쩍 곁눈질한 나는, 히요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아주 약하게 밀었다.
“어쨌든 말 예쁘게 해라.”
“승낙한 거예요?”
“안 했어.”
“쑥스러워서 그렇구나? 알았어요.”
“그래… 그건 너 알아서 생각하고, 말…”
“예쁘게 할게요. 근데 오늘은 진짜 내 잘못 아닌뎅. 그런 애들한테는 세게 말해줘야 들어요.”
“방금도 말했지만, 네가 잘못했다고 하는 게 아니야. 냅다 들이받지 말라는 거지.”
“알았어요.”
“맨날 알겠다고만 하지 말고.”
“그러면 싫다고 해요? 그러는 것보단 알겠다고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아무튼 약속한 거다?”
“네.”
그렇게 간단한 훈육을 끝낸 나는,
“아사히나!”
미유키가 히요리를 부르며 손짓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의 입에선 수박을 먹으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들이대는 남자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온 히요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가보다.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미유키가 내민 수박을 받아든 히요리.
자그마한 입을 앙 벌리며 수박 끄트머리를 문 그녀는, 달달한 맛이 입 안을 채우는 게 기분이 좋았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먹으면서 들어. 방금 일 말인데… 너무 말을 강하게 했어. 너를 나무라려는 게 아니라, 무턱대고 들이받으면 안 된다는 거야. 마츠다 군이 없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잖아. 선생님께서도 어제 방 키 나눠줄 때 누가 막 같이 놀자고 하면 자기한테 연락하라고 전달하셨는데 못 들었어? 애초에 바로 뒤가 호텔이어서 전화만 하면…”
미유키의 조곤조곤한 잔소리를 듣기 시작한 순간, 그녀의 입이 살짝 벌어지면서 눈동자가 돗자리에 앉아 미호와 함께 과일을 먹고 있는 나에게로 향했다.
나와 거의 똑같은 말을 하는 미유키에게 기가 찬 듯한 모습이었다.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면서 히요리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미유키와, 질렸다는 얼굴로 듣는 척을 하는 히요리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잘 잘린 복숭아를 포크에 찍어 미호에게 내밀었다.
“고생했다. 먹어.”
“고생이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럼 그냥 먹어.”
“아, 네. 감사합니다…”
여전히 담백한 인사를 하며 내민 포크를 두 손으로 받는 미호도 귀엽고…
무엇보다 히요리를 대하는 미유키의 태도에 묻어있는 경계심이 평소보다 낮아진 것 같아서 기쁘다.
역시 사람은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야 친해진다.
알찬 하루가 될 것 같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