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392)
EP.392 똥겜다운 이벤트에도 호감도는 핀다
“나 한 입만.”
자그마한 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미유키를 향한 내 말에, 그녀가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입이 콘 위의 아이스크림을 삼켜가고…
“흐아앗…?”
깜짝 놀란 탄성을 터뜨리며 콘만 남겨진 아이스크림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미유키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날 쏘아보았다.
“뭐해…!”
“맛있다.”
“그새 삼켰어…? 머리 안 아파?”
“안 아픈데.”
“단순하긴…”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미유키의 손이 내 입가에 묻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닦아냈다.
음음… 아주 평화롭고도 달달한 러브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물론 식상하긴 하나, 이런 틀에 박힌 클리셰도 좀 있어야 도키아카라는 똥겜이 살지.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는 미유키의 어깨에 팔을 두른 나는, 그렇게 그녀와 함께 바다의 짠내를 은은하게 풍기는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후 적당한 시간에 호텔로 복귀했다.
미유키는 다리가 조금 아픈 듯, 로비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종아리를 주물러댔다.
그런 미유키의 옆에 앉아 무릎 위에 그녀의 다리를 올린 나는, 대신 마사지를 해주며 입을 열었다.
“오늘 뭐 학생회 일 같은 거 해야 돼?”
“아니? 오늘은 안 해도 돼.”
“그럼 바다 가서 바람 쐬다가 점심 먹을래?”
“응, 좋아.”
“미츠시마랑 아사히나도 데리고 간다?”
“갑자기 두 사람은 왜?”
“같이 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래…?”
말끝을 흐린 미유키의 눈이 게슴츠레 뜨였다.
내 진의를 파악해보려는 것 같은 시선.
그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유키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자, 그녀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알았어 그럼.”
히요리와 견제를 하던 미유키치고는 굉장히 흔쾌히 승낙을 했다.
왜일까? 오늘 아침에 테츠야와 비교되었던 내 태도 때문에?
아니면 히요리가 종종 감사인사를 해서 그녀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건가?
뭐가 됐든 미유키의 저러한 심경 변화는 무척이나 반길만한 일이었다.
극명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히요리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던 저번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물론 미유키에게 다른 속내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면 돗자리를 조금 큰 걸로 가져가야하나?”
이어지는 미유키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그냥 두 개 이어붙이면 되지. 모래에 앉아도 되고.”
“그러면 속옷에 모래 들어가는데?”
“내가 씻겨줄게.”
“아 뭐래…!”
갑작스럽게 성적인 농담을 들은 미유키가 내 팔을 밀었다.
어감을 들어보니까 조금 기대하는 눈치인 것 같은데, 오늘 밤은 애무를 중점적으로 해주면 굉장히 만족할 것 같다.
그리 생각한 나는 미유키와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돌아가면서, 히요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어디냐?] [바다. 친구들이랑 노는 중.] [우리 한 20분 뒤에 나갈 건데, 파라솔 빌리고 자리 말해줄 테니까 다 놀면 그쪽으로 와.] [그러면 맞춰서 갈게요.] [다 놀면 오라고. 네 친구들한테 미안해지잖아.] [다 놀았어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요? 진짜 다 놀았는데 어쩌라고!] [왜 화를 내니.] [미안해요♥]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구는 그녀가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친구들과 덜 논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본인 입으로 다 놀았다고 하니까 괜찮겠지.
히요리의 친구들, 특히 남자들이 아쉬워하겠지만 상관없다.
도태된 사람들마저 챙겨줄 생각 따윈 전혀 없다.
그리고 오늘 테츠야가 보여준 행동으로 인해 그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
“자리 되게 괜찮네? 이런 곳은 다 나갔을 줄 알았어.”
빌린 파라솔에서 바다를 바라본 미유키의 감상.
그늘진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사온 주전부리를 늘어놓은 내가 대답했다.
“운 좋게 남았더라. 저번에 신사에서 새전을 했던 게 효과가 좋았나봐.”
“신앙심이 엄청 깊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애들은 언제 온대?”
“곧 올 때 됐어. 과자 먹을래?”
“지금은 안 먹을래. 저기 온다.”
미유키가 가리킨 방향에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두 여자.
금발과 밝은 갈색 머리의 조화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둘 다 평범한 흰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는데, 물기가 별로 없다.
그냥 대화만 하면서 놀고 있던 건가?
미호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히요리는 분명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겠지.
벌써부터 히요리의 티셔츠 안쪽이 훤히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안녕하세요, 하나자와 선배님.”
오자마자 허리를 꾸벅 숙이며 예의를 갖추는 미호가 마음에 들었을까?
미유키가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
미호를 높게 평가하는 미유키답게, 반응이 밝다.
미호까지 꼬셔서 포썸을 하는 건 어떨까?
나와 그녀가 미유키와 히요리의 사이에 오작교가 되어준다면 굉장히 꼴리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해본 나는 히요리에게 인사를 하라며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히요리가 고개를 까딱하더니 말했다.
“안녕하세용.”
“그래. 너도 안녕.”
히요리에게도 나름 조곤조곤하게 대답을 해주고 있구나.
화기애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첫 날의 날이 선 분위기와는 차이가 크다.
장하다, 미유키.
“와서 앉아.”
심드렁하게 돗자리를 두드린 내 말에, 미호와 히요리가 나란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녀들을 보며 보드게임 판을 꺼내자, 히요리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건 뭐예요?”
“보드게임.”
“갑자기 보드게임은 왜요?”
“이거 해봤어?”
“아뇨…?”
“재미있을 거야.”
“아니… 무슨 바다까지 와서 이걸 해요? 보드게임은 호텔 로비에서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거긴 운치가 없잖아.”
“할아버지 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보인 나는 박스를 열었다.
꽁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히요리와는 달리, 미호는 보드게임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건전한 놀이를 좋아하는 건가? 굉장히 잘할지도 모르겠다.
냅다 물놀이를 하러 갔다간 히요리와 미유키에게 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고의가 아닌 척 물을 강하게 뿌리거나 하면서 말이다.
조금씩이나마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급하게 굴 필요는 없지.
확실히 히요리의 말마따나 바닷바람이 부는 해변에서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놀이지만, 그래도 하다 보면 즐길 수 있을 거다.
“내가 수영을 못해서 그래.”
내 다리에 손을 올려놓은 미유키의 말.
그에 히요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수영을 못한다구요? 원래 못하는 거예요?”
“그건 아닌데, 예전에 바다에서 큰일이 날 뻔한 적이 있거든. 그래서 그 이후로 바다는 꺼려져서 잘 안 들어가. 들어간다고 해도 얕은 곳까지만 가고.”
“그래요…? 그건 몰랐네요.”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한 히요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보드게임 설명서로 눈을 내리깔았다.
다소 내키지 않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양보를 해줘서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명치 꾹꾹이로 상을 주어야겠다.
**
“아 왜 제 카지노에만 주사위를 올려놔요! 일부러 그러는 거죠!? 저 거지 만들려고!”
빼애액 화를 내는 히요리.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본 미유키가 말했다.
“이건 합리적인 선택인데?”
“이길 생각을 해야지 절 견제하려고만 하면 어떡해요!?”
“이길 생각으로 하는 거야. 라운드 다 끝나면 내가 돈이 제일 많을 걸?”
“그래요?”
“응.”
“이거 해본 적 있죠?”
“없어. 나도 처음이야.”
“거짓말 같은데요?”
“미츠시마도 처음인데 잘하잖아.”
“저더러 무식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야. 왜 이상한 데서 의미를 부여해?”
입을 삐죽 내민 히요리가 빨리 시작하라는 듯 날 재촉했다.
시큰둥하게 굴었던 아까와는 달리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기껍긴 한데, 내가 바라던 것과는 달리 상황이 미유키가 히요리를 견제해야만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러면 히요리가 계속 씩씩댈 것 같다.
조금만 더 머리를 굴려보면 될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라는 생각을 하던 나는,
“어…?”
라운드가 끝나고 모두의 돈을 확인해보았을 때, 내 몫이 가장 적자 입을 살짝 벌렸다.
왜 이렇게 됐지? 마지막에 미유키가 스리슬쩍 날 견제했던 게 컸나?
“뭐야? 제가 더 많은데요?”
근소한 차이로 꼴찌를 면한 히요리의 비웃음이 가득 담겨있는 목소리.
뒷머리를 긁적인 나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머리를 굴려야했던 건 히요리가 아니라 나였나보다.
“벌칙은 마츠다 군이 받아야겠네?”
동정심이 서려있는 미유키의 말에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모두에게 금방 오겠다고 한 뒤 벌칙이었던 음료를 사기 위해 해변가 위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나 없이 셋만 놔두자니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게임을 할 때 보니 히요리와 미유키가 은근히 잘 어울렸다.
장난도 치는 것 같았고 말이다.
문제는 그 장난이 서로를 긁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구원투수인 미호가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요구한 음료를 사고 해변으로 돌아온 나는, 우리 자리가 꽤나 소란스러운 것을 발견했다.
“싫다고 했는데 왜 자꾸 질척거려요…!”
히요리가 돗자리로 다가온 남자 무리들에게 질색을 하고 있다.
헌팅을 당하고 있는 건가? 예쁜 여자 세 명이 남자도 없이 있는데다, 자리도 주목을 받기 좋은 곳이라서 눈이 돌아간 놈들이 몰릴 만은 하다.
헌데 히요리의 반응이 조금 그랬다.
“아 저도 싫고, 제 친구도 싫어하고, 선배도 싫다잖아요. 빨리 가라구요.”
“그러지 말고 저희도 세 명인데, 같이…”
“헌팅하려면 밤에 다른 사람들한테나 해요.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웃통을 깐 남정네들에게 대놓고 비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태도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떨거지들을 떨어뜨리는 데엔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
하지만 지금 그녀들에게 다가온 무리처럼, 모여 있으면 센 척을 하는 허세 가득한 사람들에게 저랬다간 자칫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미유키도 싫다고는 했을 텐데 히요리처럼 강하게 말을 하지 않아서 저런 상황이 온 모양이다.
일단 내 눈에는 히요리가 미호와 미유키를 보호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둘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워질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벤트가 너무 똥겜다웠다.
어제 히요리의 친구도 그렇고, 오늘의 테츠야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만 일어날까?
남자가 관련되지 않은 건전한… 그런 이벤트를 기대할 수는 없는 걸까?
저런 올드한 헌팅 클리셰가 아니라, 중간쯤 오는 수심에서 다리에 쥐가 나 허둥지둥하는 히요리를, 미유키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구해주거나 하는 것이었다면 그림이 훨씬 좋았을 텐데…
우리 바보 같은 신님께서는 다양한 미연시를 플레이해보지 않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셨을 테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주도록 하자.
또한 이 고행이 끝나면 따뜻하고도 달콤한, 그런 이벤트를 떡하니 주실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