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68)
Chapter 68 – 데이트 찬스를 늘리는 법
“요새도 다이어리 써?”
뒷좌석에 단 테츠야의 물음에, 미유키가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대답했다.
“응. 쓰지.”
“매일?”
“매일 쓰려고 하고 있긴 한데… 쓰는 날에 일이 바쁘면 미뤄뒀다가 다음 날에 쓰는 편이야. 최근엔 몇 번 빼먹었었어.”
“그래…? 아쉽지 않아? 학교로 따지면 개근상이 날아간 건데.”
“미뤄 쓴 적이 많은데 무슨 개근상이야.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네? 더 성실하게 쓸 걸 그랬나봐.”
두 사람의 담소를 듣던 나는 문득 미유키의 다이어리가 궁금해졌다.
치한에게서부터 구해주었던 때나, 여름축제 때나… 처음 이름으로 불렀을 때, 해수욕장에서 구해줬던 때, 그리고 첫 경험 때… 당시 미유키가 느꼈던 주관적인 생각을 알고 싶다.
언젠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아카데미에 도착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교실로 향했다. 빵녀를 비롯한 학급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나는,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자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이 형님께서 곧 복귀하신다.]타카시의 메시지인 것을 확인한 나는 인상을 구겼다. 치나미인줄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이 새끼의 문자라니. 아침부터 기분 팍 상하잖아.
그래도 서클을 탈퇴할 때 사모야마한테 쳐맞는 날 도와주려고 했었으니까… 좋게좋게 말해주자.
[어쩌라고.]**
“안녕하세요, 마츠다 후배님. 좋은 월요일이에요. 그렇죠?”
귀엽게 뒷짐을 진 치나미의 인사.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내가 대답했다.
“싫은 월요일이죠.”
“후배님의 표정이 굉장히 우울해 보이는군요. 힘내세요. 금요일은 금방 와요.”
그래, 힘내야지. 미유키와 렌카, 그리고 널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이 아카데미인데. 만약 너희들이 다른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었다면 진즉 자퇴했을 거다.
밝은 낯으로 내 등을 두드려주는 치나미를 향해, 테츠야가 입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나세 선배.”
“미우라 후배님도 안녕하셨어요? 후배님은 마츠다 후배님보다 얼굴색이 훨씬 좋아 보이시네요. 의지가 느껴져요.”
“저는 월요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검도도 열심히 배우고 싶고요.”
“그런 긍정적인 태도, 아주 보기 좋아요. 어쩌면 새로운 검도의 달인이 탄생할 수도 있겠군요…!”
“너, 너무 띄워주시는 게 아니신지…”
“빈말이 아니에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렌카와 감독님께서 개인적인 과외를 시켜주면서 실력을 빠르게 끌어올려주거든요. 물론 부활동 시간이 끝난 뒤에 짧게 봐주는 것이긴 하지만, 두 분 모두 엄청난 재능을 가진데다 가르치는 방법도 잘 알아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 말에 테츠야의 눈이 빛났다. 검도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렌카의 개인 교습을 해줄 수도 있다고 하니 귀가 쫑긋하나보군. 대련 이후 렌카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며 대놓고 동경하던데, 치나미의 말을 듣고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 모양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화이팅!”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테츠야를 격려해준 치나미는, 테츠야가 내게 인사를 하고 부실 안으로 들어가자 방긋 웃었다.
“우리 후배님은 언제쯤 이 흐물흐물한 태도가 고쳐질까요?”
저번에 만났을 때처럼 팔을 위아래로 흔드는 치나미. 나름 유연하긴 하지만 뻣뻣함이 더 부각되어서 웃기다.
소매가 흔들리며 드러나는 치나미의 하얗고 얇은 손목을 빤히 바라보던 내가 말했다.
“저는 스승님이 감독님이나 부장보다 더 잘 가르친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냥 해본 말입니다. 호구부터 체크하는 거 맞죠?”
“맞아요. 참, 토요일은 잘 들어가셨나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했어요. 감사인사도 드리고 싶었는데…”
“그랬으면 연락이라도 한 통 해주지 그랬어요.”
“아, 그게… 문자를 남기는 것보단 직접 만나서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후배님.”
장소가 검도부인 만큼 목례를 하며 인사를 하는데, 밝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야해 보인다.
우리 치나미는 예의가 발라도 너무 바르단 말이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을 번쩍 들 것 같다.
“아닙니다. 재미있었어요.”
“저도 정말 재미있었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계산을 해야겠죠? 후배님의 몫과 제 몫인 2600엔을 드릴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탈의실에서 돈을 가져와야…”
의외로 꼼꼼한 그녀를 지나친 내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필요 없어요. 아이스크림만 사세요.”
“네에…? 그럴 수는 없는데… 어, 어디 가세요…?”
“보관실요.”
“같이 가요…! 그 전에 계산부터…!”
덜컥.
“후배님…! 후배니임…! 이리 오세요…! 빨리요…!”
부실 문을 열자 치나미의 목소리가 모기만도 못할 정도로 낮아졌다. 그런 그녀를 돌아보며 히죽 웃은 나는, 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렌카를 쓰윽 쳐다보았다.
3학년 남자부원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검도에 관한 이야기겠지? 언제 봐도 훤칠하다. 바니걸 코스프레를 시키면 어울릴 것 같아. 내 앞에서 머리 위에 양손을 올린 채 억지로 율동을 하며 인상을 구기는 그녀를 상상하니까 꼴린다.
슬슬 렌카의 이벤트도 챙겨야 되나? 검도부에서 합숙훈련을 하기 전까지, 조교를 시작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챙겨놓고 싶긴 한데… 그렇다면 기존의 이벤트와는 다른 선택지를 가져가야겠지.
아니면 합숙훈련 때까지 상단세만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다가, 그때 렌카를 확 휘어잡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날을 제대로 잡고 하루 종일 대련을 하며 굴복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 본다.
이런저런 계획을 짜보던 나는, 렌카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자 히죽 웃어보였다.
“…. 무, 뭐야…?”
오싹한 기분을 느낀 듯 몸을 부르르 떠는데, 감이 좋다.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준 나는 보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치나미가 뿔이 난 채로 들어오더니 문을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리고는 날 나무라기 시작했다.
“후배님…! 먼저 가버리시면 어떡해요…!”
호구를 살펴보는 척하고 있던 내가 대답했다.
“일해야죠.”
“계산부터 하자니까요…?”
“필요 없다니까요?”
“왜요? 왜요?”
마치 따지듯 고개를 치켜세우는데, 저 말랑한 볼살을 콕 찌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잃을 뻔한 자제력을 간신히 되돌려놓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요.”
“그건 이유가 될 수 없어요.”
“젤리 먹을래요? 복숭아 맛으로 가져왔는데.”
“어헛…? 그래요…?”
“예. 지금 줄까요?”
“그럼 실례지만… 이, 이게 아니지! 하마터면 꼼짝없이 속아 넘어갈 뻔했군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놀리면 재미있나요?”
네가 반응을 그렇게 해주니까 재밌는 거지.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치나미를 향해 한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흠칫한 그녀가 내 보폭만큼 뒤로 물러났다.
“무, 뭐하시는 건가요…?”
“…..”
“마사지는 안 받을 거예요…! 전에 했던 약속을 잊지 마세요…!”
“…..”
말없이 치나미를 구석으로 몬 나는, 뒷목을 꽉 잡고 있는 그녀에게 한손을 들어올렸다.
“으익…!”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아까 따질 때와는 반대로 고개를 뒤로 쭉 빼는 치나미. 덕분에 턱살이 두 개가 되었는데, 저 망가진 모습마저도 예쁘다. 방금 전의 앙칼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 그녀에게 이를 드러내며 웃은 나는,
스윽.
그녀의 옆머리에 묻어있는 실밥을 떼어냈다. 이후 창문 밖으로 그것을 버리며 말했다.
“먼지 묻어서 떼어내려고 한 겁니다. 제가 싫어요?”
흐릿해진 채로 내 행동을 지켜보던 치나미의 동공에 빛이 돌아왔다.
“어허…! 시, 싫다니요…! 제가 왜 마츠다 후배님을 싫어해요?”
“제가 다가가니까 자지러진 이유는 뭔데요?”
“그건…”
“너무 쌀쌀맞게 구는데… 선을 긋는 것 같아서 서운하네요.”
“쌀쌀맞은 게 아니라요… 저는 계산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후배님도 분명히 제가 값을 치른다고 했을 때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요…!”
“기억이 안 납니다.”
“네에에…? 그럴 수가…!”
입을 떡 벌리는 그녀. 치나미의 순박한 반응을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아마 이 상황을 만화로 그렸다면 치나미의 머리 위에 [디잉-!]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쓰여 있었겠지?
“그냥 제자가 스승을 위하는 마음에 샀던 거라고 받아들여주면 안 될까요? 어차피 스승님이 아이스크림도 사주잖아요. 이러면 서로 주고받고 하는 거잖아.”
“…. 하, 하지만… 후배님은 절 위해서 차까지 몰고 백화점까지 와주셨는데…”
“같이 재미있게 놀았으면 된 거 아닌가요? 혹시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예요?”
“아, 아니에요…! 저도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씀을 드렸었잖아요…! 그래도…”
계속 망설이고 있는데, 이때 만날 기회도 늘릴 겸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자.
“정 불편하면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좋은 방법? 뭔가요?”
“제게 아이스크림을 한 번 더 사주는 겁니다. 그러면 금액대도 얼추 맞을 듯한데… 어때요?”
“므으으음…”
기이한 소리를 낸 치나미가 생각에 잠겼다. 인생 최대의 근심거리를 안은 것 같은 표정이어서 오래 고민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의외로 결정을 빨리 내렸다.
“좋아요… 이번만큼은 저희 둘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후배님의 고집에 져드리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원만한 관계라… 깊은 뜻이 담긴 오묘한 말인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잘 생각했습니다. 그럼 아이스크림 두 번 사주기. 맞죠?”
“네, 맞아요.”
“스승님의 입으로 다시, 직접 말해볼까요?”
치나미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어감이 조금 이상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말투가 NTL물에 나오는 금태양, 돼지 최면남, 오크와 비슷하긴 했지. ‘누구의 자지가 더 좋은지 직접 말해볼까?’ 같은.
“으음… 저는 마츠다 켄 후배님에게… 요거트 피치 트리플 팝을 두 번 사줄 거예요.”
“트리플 팝이 뭐죠?”
“세 가지 맛을 고를 수 있는 큰 사이즈 컵이에요.”
“그럼 스승님은 거기에 복숭아 맛만…”
“요거트 피치에요.”
“…. 예. 요거트 피치 맛만 골라 담아서 먹나요?”
“물론이에요. 안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이건 뭐… 복숭아에 한해서만큼은 모태신앙 급이네. 백화점에서도 생각했었지만… 대단하다.
근데 넌 물복을 좋아하니, 딱복을 좋아하니. 아마 높은 확률로 둘 다 좋아할 것 같구나.
“합의된 겁니다? 더 이상 다른 말하기 없기?”
“손가락을 걸겠어요.”
당당하게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그녀. 자그맣고 깜찍한 그곳에 손가락을 건 내가 물었다.
“날짜는 제가 잡아도 될까요?”
“네, 좋아요.”
**
미우라 테츠야라고 불리는 귀찮은 짐덩어리를 내려준 나는, 미유키의 집으로 향하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너희 언니가 뭐래?”
“뭐가?”
“토요일에 있었던 사건.”
“아… 그거…”
얼굴이 새빨개진 미유키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 일부러 피해 다녔는데… 일요일에 한 마디도 안 했어…”
“뭐가 무서운 건데?”
“무서운 게 아니라…”
“말하기가 창피해?”
“…. 응.”
계속 생각해왔던 거지만, 미유키는 걱정이 너무 많다. 쭉 피하고만 다니면서 불안함에 끙끙 앓는 것보단 터놓고 말하는 게 더 좋을 텐데…
가족 간의 사생활까지 건드리는 건 참견이 너무 심하니까 더 이상 이 얘기는 언급하지 말자. 미유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거다.
“학생회 일은 할 만해?”
“응. 재미있어. 회장님부터 다른 사람들까지 다 좋은 분들이셔서…”
“아직도 복사나 서류 정리 같은 것들만 하고 있냐? 중요한 임무 좀 맡기라고 찾아가서 따져줄까?”
“그랬다간 나는 학생회에서 쫓겨나고 말 거야.”
“인심이 박하네. 노조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마츠다 군은 요주의인물이라서, 뭘 하려고 하면 바로 퇴학일 걸?”
시답잖은 농담을 곁들여가며 킥킥거리다보니 어느새 미유키의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미유키를 내려주려고 하는데, 안전벨트를 푼 그녀가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츠다 군. 잠깐만 골목길에서 기다려줄 수 있어?”
“왜? 어디 놀러가게? 저녁 먹고 들어갈까?”
“아니… 어제 새벽에 그랬잖아. 옷가지 챙겨서 가져다놓으라구… 오늘 몇 개 옮겨놓을래.”
“천천히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급해?”
“그냥 미적대기 싫어서…”
옷만 가져다놓는 거라면 나한테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데… 기다리라고까지 하는 걸 보니,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갈 생각인가보다. 어제 해준 마사지 때문에 흥분한 상태인가?
“알았어. 그럼 골목에 대둔다?”
“응. 금방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