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93)
Chapter 93 – 딱복에서 물복으로
스윽, 스윽. 호구의 갑혁을 닦고 있던 치나미가 날 곁눈질했다. 옆에서 묵묵히 행주를 잡은 손을 놀리고 있던 내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앗!”
짤막한 감탄사를 터뜨린 치나미가 재빨리 갑혁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실소를 지은 내가 물었다.
“왜요? 할 말이라도 있나요?”
“후, 후배님…! 혹시 갑혁에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화제를 돌리는 솜씨가 아주 서툴다. 놀리고 싶을 정도지만, 치나미는 지금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을 테니 넘어가주자.
“어제 이노오 선배와 호구를 고를 때, 여러 무늬가 그려져 있는 갑혁을 보긴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후배님이 새로 사신 갑엔 어떤 무늬가 그려져 있나요?”
“검은색입니다. 심플한 게 좋아서.”
“음음…! 아무래도 무난한 검은색이 취향을 덜 타긴 하지요…!”
“스승님의 갑혁은 어떤 디자인인가요?”
“저도 검은색으로만 두 벌 있어요. 하지만 수련용으로 사용하는 호구의 갑혁엔, 허리 부분에 모모님 그림이 그려져 있답니다. 제가 직접 커스터마이즈했죠.”
그놈의 모모님은 어딜 가도 빠지질 않는구나. 신앙심이 대단하다. 그러려니 하던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모님 그림은 아무 때나 박을 수 있나요? 갑자기 관심이 생기네요.”
그 말에 치나미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갑혁을 보관실 진열대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그녀가 대답했다.
“가능해요. 디자인하는데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요.”
쑥스러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어진지 오래. 모모님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니 금세 발랄해진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갑혁을 착용한다면 보기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으음…! 아주 좋은 것 같아요…! 간만에 우리 후배님께서 기특한 생각을 하셨군요…!”
뛸 듯이 기뻐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고 있는 게 티가 난다.
“하지만 갑혁에 먼저 그림을 박아버리면, 나중에 후회를 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모모님 스티커를 붙여드릴게요. 어떤지 봐보세요.”
이어지는 치나미의 말에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우후후… 후배님이 모모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참 좋아지네요.”
“귀엽잖아요. 스승님처럼.”
“물론 귀엽… 넷…? 뭐라구요…?”
방글방글한 표정으로 수긍을 하려던 치나미가 멈칫했다. 눈이 점점 크게 뜨이는 그녀를 바라본 내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중엔 모모님 굿즈도 함께 사러 가요.”
“…. 네… 그, 그럴게요…”
다시 부끄러운 얼굴로 돌아온 그녀. 저 도톰한 뺨을 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 닦은 호구를 올려놓고 제습기를 튼 나는, 말똥말똥 날 올려다보고 있는 치나미의 어깨, 그 아래로 사르르 흘러내려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엇…?”
치나미의 몸이 확 움츠러들면서 도복 상의가 약간 헐렁해져, 옷깃 사이로 그녀의 브라가 얼핏 보인다. 도복 안에 티셔츠를 입지 않은 건가? 사람이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역시 치나미는 하나하나 챙겨주는 게 맞아.
색깔은 치나미다운 분홍색인데, 브라끈에 모모님이 박혀있는 건 아니겠지? 모모님을 만든 회사에서 속옷 브랜드까지 런칭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가슴끈이 풀리려고 하네요?”
무릎을 굽혀 치나미와 시선을 맞춘 나는, 도복 상의가 좌우로 벌어지지 않게끔 조심하며 가슴끈을 다시 제대로 묶어주기 시작했다.
“으잇…”
꼼꼼하게 리본매듭을 묶는 날 쳐다본 치나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요상한 탄성을 터뜨리며 양팔을 일자로 쭉 내리뻗는데, 손등까지 위로 세운 모습이 마치 청순만화에 나오는 히로인 같다.
“이렇게 조심성 없이 다니지 마세요. 남들이 보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매듭을 완성하고 아래로 흘러내린 끈을 잘 조절한 내 부드러운 목소리에, 치나미의 머리가 위아래로 삐걱삐걱 흔들렸다.
“네엣…! 조, 조심할게요…”
누르면 퍼어엉 하고 터질 것 같을 정도로, 치나미의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져있었다. 끈이 옆가슴에 위치해있다 보니, 간접적으로조차 만지지 않았음에도 굉장한 부끄러움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제 마무리할까요?”
“네… 마리무해요…”
“마리무?”
“앗…! 마무리요… 마무리…”
말이 헛 나올 정도로 정신이 없는 건 처음 본다. 얌전한 반응을 보면 거부감을 느낀 건 아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나는 치나미를 향해 생긋 웃어주었다.
“제가 도복을 널러 가겠습니다.”
“그, 그러면 제가 호구 청소를 하면 되겠군요…?”
“호구 청소는 방금 끝났는데?”
“제가 호구라고 말했나요…? 분명히 죽도라고 했는데…”
“그래요?”
“네에… 후배님은 귀가 약간 좋지 못하신 것 같아요… 지, 진심으로 걱정이 되니 병원에 한 번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군요. 절 생각해주는 그 마음,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떡하죠? 죽도는 호구 청소를 하기 전에 전부 닦아놨는데.”
“…..”
횡설수설하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게 되어버린 치나미의 입이 꾹 다물려 댓 발 튀어나왔다. 낄낄거린 나는 그런 치나미의 등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남은 일은 별로 없으니까, 마무리는 저 혼자 할게요. 스승님은 쉬고 있으세요.”
“그럴 수는…”
“우리 스승님, 착하잖아요. 말 들어요.”
“…. 그, 그렇다면 제가 아이스크림을 사올게요…”
“아뇨. 요즘 개인연습을 통 못했으니까, 제가 마무리 짓는 동안 부활동에 참가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았죠?”
“…..”
답이 없는 그녀. 나만 일을 하는 게 마음에 걸리나보다. 마음씨는 하염없이 고와가지고… 쯔쯔…
“저만 보내는 게 싫으면, 같이 할까요?”
“네… 같이 해요… 후배님이랑 도복 널고 싶어요…”
우리 치나미… 상당히 많이 무르익었구나. 복숭아로 비유하자면, 딱복에서 물복으로 가고 있어. 과즙이 많이많이 흐르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
“그래요. 같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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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숙박 어플을 통해 호텔을 찾아보던 나는, 그다지 멀지 않은 번화가에 마사지 베드가 구비된 객실을 보고 눈을 빛냈다. 사진을 보니 분위기도 어둡게 은은하니 좋고…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기도 해서 괜찮을 듯싶다.
나는 그 객실을 일주일간 잡아놓았다. 언제 치나미와 함께 그곳에 갈지 모르니, 전화로 객실을 가만 놔두라고만 하고 때가 되면 갈 생각이었다. 러브호텔 측은 청소를 하지 않아도 좋고, 돈도 받았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겠지.
예약과 동시에 결제를 마친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막 그쳐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아 흐릿한데, 색깔이 퍽 마음에 든다.
“와악!”
그렇게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나는,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내 어깨를 짚자 웃는 낯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하냐? 유치하게.”
그러자 미유키가 의외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안 놀라네?”
“놀라겠냐?”
“마츠다 군은 이런 거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귀신의 집에서도 그랬고, 내가 새벽에 찾아왔을 때도 막 까무러치려고 했잖아.”
“발소리만 안 냈으면 네가 바라는 대로 됐겠지.”
“아, 들었어? 최대한 조용히 왔는데… 웬일로 귀가 이렇게 밝지?”
미유키와 있다 보면 그 시간이 무척 즐겁다. 테츠야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소꿉친구가 된 기분이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꿉친구 겸 남자친구.
“웬일은 무슨… 발랄해가지고…”
흐트러진 미유키의 앞머리를 정리해준 나는 조수석 문을 열고 좌석을 턱짓했다.
“타기나 해. 가방 이리 주고.”
“에스코트를 왜 이렇게 대충해?”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
“알았어. 근데 테츠야 군은?”
“화장실이 급하다고 잠깐 기다려달래. 근데 그냥 가려고.”
심드렁한 대답에 기겁을 하는 미유키. 자신의 가방을 벗어 내 손가락에 건 그녀가 설마 하는 투로 물었다.
“진짜 가려는 건 아니지…?”
“진짜 가고 싶은데.”
“생리현상은 좀 봐주지…”
“농담이야. 얼른 타.”
“응… 아, 내일은 우리 집에 들르지 말고 바로 학교로 올래? 테츠야 군이랑 둘이 오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욕심이니까… 집에서 조금 더 자다가 늦지 않게 와.”
“왜?”
“난 아침 일찍 와서 교문 지켜야 되거든. 등교하는 학생들 제복 검사하고, 지각하는 학생들한테는 벌점 줘야 돼.”
이거… 설마 예전에 생각했던 그건가? 정문을 지키는 풍기위원회 미유키?
“네가 정문을 지킨다고?”
“응. 학생회 선배랑 같이, 두 명이서. 그러니까 절대 지각하지 마. 알았지?”
놓칠 수 없는 이벤트다. 무조건 지각해야지.
“알았어.”
미유키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저 멀리서부터 테츠야가 걸어오자 미유키의 골반을 슬쩍 터치했다. 그러자 그녀가 움찔하더니 내 허리를 콕 찔렀다.
“마츠다 군,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테츠야 군 앞에서 나 곤란하게 하려고?”
잘 아네.
“어. 재미있지?”
“하나도 없거든…? 이거 놔.”
새침하게 내 손을 떼어낸 미유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픽 하는 웃음을 내뱉은 나는, 허겁지겁 달려오는 테츠야를 흘끗거렸다. 저 새끼, 손은 씻었겠지?
**
“후배님! 여기에요!”
양손을 하늘로 쭉 뻗고 좌우로 이리저리 흔드는 치나미. 덕분에 치나미가 입은 맨투맨 밑단이 살짝 올라가면서, 그녀의 허릿살이 조금 드러난다.
새하얀 살결 가운데에 자리한 일자배꼽. 크기는 미유키보다 조금 더 작은데, 치나미 자신의 발가락처럼 앙증맞아 보인다.
성큼성큼 치나미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헤실거린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포장지를 건네자 습관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게 뭐죠?”
“복숭아 크림빵이에요.”
“…..”
또 이걸 먹으라고? 이젠 진짜 그만 주면 안 되겠니?
“왜 말이 없으신가요? 혹시 저녁을 드시고 온 건가요?”
먹지 않으면 눈에서 빔이라도 쏠 기세다. 그래… 복숭아 가루보다는 낫지. 흔히는 아니지만 종종 볼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고.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은 내가 말했다.
“아뇨. 마침 배가 고픈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그런데 이 복숭아 빵은 집에서 가지고 온 건가요?”
“맞아요. 나갈 때 어머니가 챙겨주셨어요.”
“그렇군요…”
치나미의 어머니는 치나미처럼 엉뚱하고 귀여우려나? 아니면 미도리처럼 성숙하고 농염한 느낌을 풍기려나? 언제 한 번 보고 싶은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후자였으면 좋겠다. 얼굴은 닮았지만 성격은 다른 그 갭이 또 다른 꼴림 포인트니까.
“갈까요? 빨리 스승님이 골라주는 호구를 사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르네요.”
“후후…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물건으로 골라드릴 테니, 기대하셔도 좋아요. 아, 스티커도 갖고 왔어요. 후배님께서 호구를 구매하시면 제가 직접 붙여드릴 거예요.”
팔짱을 낀 채 콧대를 세우는 그녀. 의기양양하게 변한 치나미의 태도에 아빠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적한 거리를 거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