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1
Chapter 3. 실적 압박(1)
▣ 부러진 철검
– 낮은 온도에서 제련되어 연하고 무른 철검.
무기보단 농기구에 적합한 단철로 만들어졌다. 칼몸이 부러져 무기로서의 가치는 없다.
– 복지 포인트 200점
“형님! 이걸 어디에 씁니까?”
“음……. 혹시 이걸 여러 개 사서 던질 생각이신가요?”
지은 씨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어왔다.
스릉.
허리춤에 찬 단검을 뽑아 들고 무게를 가늠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투척 연습을 하겠다며 던져버릴 것 같아 서둘러 대답했다.
“아뇨. 던지기엔 꽤 무거워요. 부러진 날도 그리 날카롭지 않고.”
“그럼 이걸 왜…….”
투박한 검이다.
갈라지고 부러진 칼날과 동물 뼈를 대강 깎아 만든 듯한 칼자루.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의 눈에도 조악해 보이는 검이지만…….
“칼자루만 뽑아서 쓰죠.”
“네?”
칼자루, 그러니까 칼날의 끝을 손으로 쥘 수 있도록 감싼 부분.
칼날 부리 새의 사체에서 칼날을 얻었다 해도, 날카로운 날을 그대로 쥐고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원래 커튼 봉이나 밀대에 날을 묶어서 쓰려고 했지만.’
멀쩡한 칼자루를 쓸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
“칼자루라면……. 아! 설마 형님, 그래서 아까 저한테……?”
“쉿.”
깨달았다며, 박수를 짝 치는 재혁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했다.
안 그래도 칼날 부리 새를 혼자 해치운 탓에 과한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첫 미션 때보다도 더.
“저 청년은 뭘 샀으려나?”
“복지 포인트, 많이 받았겠죠? 혼자 쓸어버렸으니까.”
“원래 싸움 좀 하신 건가? 아까 검 휘두르는 거 보니까 어우, 보통 솜씨가 아니던걸?”
“검 푹! 찔러 넣으니까 망할 새 새끼 피가 촤악! X나 멋있던데!”
사람들 표정에 경외심을 넘어선 두려움까지 담겨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여기서 무기까지 만든다고 난리 쳤다간…….
‘괜한 오해를 살 거야.’
“칼날 부리는 저기 뒤쪽에 숨겨뒀습니다.”
재혁이가 소리 낮춰 말하며 입구 근처 진열장을 가리켰다.
“잘했어.”
“가져올까요?”
“음, 여기선 좀 그렇고……. 일단 챙겨서 자리를 옮기자.”
“예, 형님.”
필요한 물건을 갖다 쓸 수 있고,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을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곳.
사무실로 갈까?
“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러자 지은 씨가 손을 살짝 들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디요?”
“지하 1층, 편의점이요.”
* * *
전혀 몰랐다.
지은 씨가 여태 하이힐을 신고 뛰어다녔다는 거.
“으아…….”
“누님! 이거 진짜 밴드만 붙이면 되는 거 맞습니까?”
“괜찮아! 살짝…… 읏! 따갑긴 하지만.”
뒤꿈치가 까지다 못해 살점이 떨어질락 말락 하는데.
“아프다고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한마디 덧붙이자 지은 씨가 웃는다.
“은호 씨도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언제…….”
“계단 내려올 때요.”
옥상에서 처음 내려올 때를 말하는 건가.
목석같은 다리를 잡아끌며 계단을 내려오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었지.
‘지금 몸이면 하나도 안 힘들 것 같은데.’
— 띠링!
“아, 도시락. 다 됐네요.”
미리 돌려 둔 전자레인지에서 편의점 도시락 세 개를 꺼냈다.
어제도 먹었던 맛인데 이상하게 낯설다.
아무리 닦아내도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혈향(血香) 탓일까.
“아직 전기가 끊기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치? 전화도 간간이 터지고.”
지은 씨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전화라.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가족들이 있을 텐데.’
물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걱정 어린 얼굴에 도로 말을 삼켰다.
털어놓고 싶으면 먼저 말해 주겠지 싶어서.
오랜만에 손톱을 물어뜯던 지은 씨는 곧이어 머리를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누님. 유리 벽에 갇힌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이상하네요.”
내려오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린 지금 MS 타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문도, 창문도 멀쩡히 열리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듯 가로막혔다.
칼날 부리 새 미션 때 전시관 밖으로 못 나갔던 것처럼.
‘둘 중 하나겠지.’
아직 이 건물에서의 미션이 끝나지 않았거나.
혹은 우리가 만나게 될 다른 구역의 미션이 끝나지 않았거나.
하지만 내 생각에는…….
[MS 타워 생존자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방송 나와요!”
[프로젝트 선별(選別), 다음 미션은 내일 오전 9시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모두 준비해 주세요.]“다음 미션은 내일이네요.”
“별일입니다. 쉬는 시간을 이렇게 넉넉하게 주다니.”
지금 시간은 오후 6시.
다음 미션 시작까지 열다섯 시간이 남았다.
두 사람은 여유롭다 느끼는 것 같지만…….
“식사는 다 하셨나요?”
“예, 다 먹었습니다.”
밤은 짧고, 할 일은 많다.
“푹 쉬셨으면 슬슬 시작하죠.”
“네? 저희 지금 5분도 못 쉬었는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 파앗!
상점을 열어 다시 한번 물건을 꼼꼼히 살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부러진 철검’ 1개를 구매하시겠습니까?]“네.”
띠링!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형체가 서서히 선명해진다.
양손으로 쥘 수 있을 만큼 긴 손잡이, 손바닥만 한 길이만 남기고 부러진 칼날.
“될까요?”
“네. 여기 이 검, 칼자루…… 그러니까 손잡이에 칼날을 꽂아서 만든 겁니다.”
맨들맨들한 손잡이를 더듬자 미세하지만 틈이 느껴진다.
일단 새 칼날을 꽂으려면 원래 있던 놈을 빼내야 하는데.
“재혁아. 이거 뽑을 수 있겠어?”
편의점 구석에 걸려 있는 목장갑을 찾아와 건네자, 재혁이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해 보겠습니다.”
“계속 부탁해서 미안해.”
“미안하긴요! 이런 거라도 해야죠.”
그리고 한참 동안 이어진 윽! 으으으윽! 하는 소리.
씩씩하게 대답한 것치고는 힘든 일이었는지, 남은 미션 보상을 근력에 쏟아붓기까지 했다.
좀 도와줄까 싶어 물어보려는 찰나.
— 깡!
몸체에서 빠져나온 토막 난 칼날이 땅에 떨어졌다.
“그럼 다음은…….”
“앗! 혀, 형님!”
“응? 왜?”
칼날 부리를 집어 드는 나를 재혁이가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이, 이, 이거……. 부리가 손잡이에 안 들어갈 것 같습니다!”
부러진 날이 꽂혀 있던 손잡이의 구멍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칼날 부리를 통째로 꽂으려고 하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날을 깎을 거야. 양초 심지처럼.”
“예? 어떻게 말입니까?”
재혁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지은 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편의점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칼 가는 도구가 있나요?”
있긴 있다. 도구.
“미션 보상.”
[미션 보상을 선택하세요.]“스킬 보상 3포인트로 석화(石化) 스킬 강화.”
그게 내 손가락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석화(Lv.2) 스킬을 석화(Lv.5)로 강화합니다.] [추가 발현 범위를 선택하세요. 오른손 중지, 약지, 소지, 왼손 엄지, 검…….]“오른손 중지, 약지, 소지.”
오른쪽 손가락을 모두 강화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스킬 강화 완료.]“으, 은호 씨, 설마 맨손으로 이걸 다 다듬으려는 건 아니죠?”
“맞는데요?”
“가능한 거예요, 그거……?”
“벽도 뚫는 손가락인데요. 뭐. 새 부리 다듬는 것쯤이야.”
애초에 맨손이라기보단 돌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대신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두 분께서는 그동안 나가서 생필품을 수집해 주세요.”
우리가 위치한 지하 1층에는 편의점 말고도 상점들이 꽤 들어와 있다.
대부분 식당이긴 하지만, 뒤져 보면 쓸 만한 게 많을 거다.
“식량 말입니까?”
“식량이랑 물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일단은 가방부터 구해야 할 거야. 최대한 큰 걸로.”
“아, 오면서 백팩 하나 본 것 같습니다!”
“비상약도 챙길게요. 코너 돌면 약국 있으니까.”
아마 이게 게임이라면 이 건물은 초심자용 스타트 포인트가 아닐까.
지하 1층엔 편의점이며 식당이 가득하고, 중간에는 회사 식당도 있는 데다가, 옥상엔 각종 베이커리가 가득한 카페테리아도 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건물에서만 미션이 진행될 리는 없다.
그러니 준비해야지.
“근데 은호 씨,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을 겁니다. 스킬도 있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무슨 일 생기면 소리 지르세요.”
지은 씨의 걱정 섞인 말을 뒤로하고 곧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석화.”
[스킬을 사용합니다.]굳어 가는 시멘트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것처럼 뻣뻣한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올라온다.
마디마디를 유연하게 움직이긴 힘들지만, 대신에.
— 사각.
손가락으로 칼날 부리 끝을 쥐고 스윽 문지르자 연필 깎는 소리와 함께 고운 가루가 묻어 나온다.
‘버려진 산맥의 금강석(金剛石).’
버려진 산맥이 어딘지, 그곳의 금강석이 어떤 돌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길가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돌덩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럼 가속 스킬까지 써서…….’
석화로 부리를 갈되, 가속 스킬로 1초를 10초로 늘려 효율을 높인다.
그게 내 계획이었다.
“가속.”
—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다녀올게요! 힘들면 좀 쉬고 계세요!”
“형님! 여기 음료수 하나씩 드시고요!”
—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은호 씨! 저희 왔어요!”
“어라? 형님! 아직도……?”
—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러니까…….
“허억…….”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지.
“은호 씨, 땀이…….”
“으어억, 형님!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까 드릴까요?!”
팔, 특히 어깨가 불타는 것처럼 뻐근하다.
그렇다고 힘없이 문지르기만 하면 제대로 깎이지 않고.
“으, 은호 씨,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드리겠습니다! 장갑 끼고 문질러 볼게요!”
“돼, 됐어…….”
그렇게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날 때마다 석화와 가속을 반복하며 칼을 갈아 대던 와중.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최초 업적, ‘맨몸으로 무기 갈기’를 달성하였습니다!] [‘인간 숫돌’ 칭호를 획득합니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