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84
Chapter 41. 통곡의 숲(5)
“엄마! 우린 왜 맨날 이사 다녀?”
“어…… 어?”
어릴 때부터 이사가 잦았다.
아파트며 빌라며, 적응할라치면 옮겨 가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동네 친구들도 없었고.
“나 이사 가기 싫은데…… 안 가면 안 돼?”
“……미안. 엄마가 미안해.”
다 커서야 알았다.
그게 ‘내 집’이 없어서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적당한 조건의 집을 구하면서도 전학만은 막기 위해 부모님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그 때문일까.
물건 욕심은 없어도 집 욕심은 늘 있었다.
욕심이라기보단 욕망에 가깝다 해야 맞으려나.
그래서.
파아아앗-
[베네핏으로 건축물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시설을 선택해 나만의 사무실을 꾸며보세요!]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스크린.
반투명한 바탕 위, 빼곡히 늘어선 알록달록한 카드에 그려진 다양한 건축물들.
‘!!’
보자마자 심장이 뛰었다.
나만의 사무실.
그 말에 어린애처럼 설레 버려서.
“아, 아, 아저씨! 이게 다 뭐예요?”
“미친! 한두 개가 아닌데?”
“이거 다 지을 수 있는 거예요?”
나만큼이나 신이 난 민여진과 욕쟁이의 호들갑에 서둘러 카드들을 살폈다.
“어! 통나무집이다!”
첫 번째 카드는 공터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통나무집이었다.
통나무를 정직하게 다듬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집.
동화 속 사냥꾼이나 숲 지기가 곧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자그마한 집이었지만.
“엥? 너무 멀쩡한데?”
“진짜로요!”
현실의 통나무집보단 훨씬 나았다.
지금은 있으나 마나 한 벽과 다 쓰러져 가는 지붕 탓에 집 안이 바깥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흉가니까.
“음…… 이거 근데 카드 색깔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은 씨의 말대로 집, 벽, 탑 등 다양한 모습을 한 그림 카드의 바탕색이 다양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흰색 카드는 통나무집 하나에, 망루부터 이어진 나머지 카드들은 여러 색을 띠고 있었다.
“흰색, 갈색, 은색, 금색이네요.”
“뭐야? 브론즈, 실버, 골드야?”
욕쟁이의 도움이 아니어도 대강 짐작이 간다.
그림 아래에 쓰인 설명을 살펴보면.
“가격이 다르네요.”
“가격?”
“업그레이드 비용이요.”
예를 들어 [통나무집(Lv.1)] 카드는 흰색.
▣ 통나무집(Lv.1→Lv.2)
[1] 비를 피할 수 있다. [2] 외벽의 효과로 외부 충격의 영향이 소폭 감소한다.방이 하나 늘어난다(1개→2개).
[+] 업그레이드 비용 : 100p▣ 망루(Lv.1→Lv.2)
[1] 멀리 있는 적을 발견할 수 있다. [2] 반경 1km를 관찰하는 망원경이 추가된다.은신한 적을 발견할 확률이 소폭 증가.
[+] 업그레이드 비용 : 150p그 외에도 [밭(미보유)], [성벽(미보유)] 같은 카드들도 있었다.
▣ 성벽(미보유)
[1] 확인 불가 [+] 확인 불가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더 비싸고, 더 좋겠지.’
우선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그리 생각하고 입을 뗐다.
“망루 업그레이드.”
[망루(Lv.1)를 망루(Lv.2)로 업그레이드합니다!]그러자.
핑그르르-
스크린 속에서 핑그르르 도는 카드.
덜컹! 덜커덩!
망루를 지탱하는 네 개의 나무다리가 흔들린다.
저러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자.
팟-!
카드 속에서 다갈색 빛이 터져 나온다. 이어서 붉은 기를 머금은 나무색 빛이 망루를 감싼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앗-
바닥서부터 차츰차츰 타고 올라가는 광택.
어설프게 잘라 두께도, 길이도 제각각이었던 나무 기둥이 기계로 뽑아낸 듯 미끈한 다리가 되고.
못을 박고, 끈을 묶어 이었던 경계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사라지고.
누더기 같은 지붕이 번듯한 나무판자로 탈바꿈하더니.
철컥! 철커덩-!
천체관측소에서나 볼 법한 망원경이 지붕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그리하여.
[업그레이드 완료!]순식간에 환골탈태한 망루.
‘돈 쓴 보람이 있네.’
“와…….”
“……대박.”
눈 깜짝할 새 일어난 변화에 일행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거기에다 하나 더.
“통나무집 업그레이드.”
우리 보금자리도 만들어야지.
추울 때 추운 데서 자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잘 순 없으니까.
[통나무집(Lv.1)을 통나무집(Lv.2)로 업그레이드합니다!]“!!”
“팀장님! 통나무집도 2레벨 만드시게요?!”
“첫날부터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아뇨.”
잠자리는 최대한 편하게 하라고,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거든.
“레벨 3으로.”
핑그르르-
카드가 돌고.
덜컹! 덜커덩-!
다 쓰러져 가던 통나무 하나하나가 주판처럼 흔들리더니.
파아아아앗-
울컥 토하듯 쏟아 내는 새하얀 빛.
“!!”
“가실까요?”
우리 집으로.
* * *
집.
추위나 비바람 따위를 막아 줄 거대한 방패막이.
망루와 통나무집을 업그레이드한 건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디까지나 ‘훗날, 언제고 닥칠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
근데…….
“X발, 한밤중에 이게 뭐야?!”
“설마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거예요?!”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됩니다!]벌써부터 쓸모가 생길 줄이야.
그것도 하룻밤도 채 지나기 전에!
[충격에 대비하세요!]삐─────익!
천장이고 벽면이고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폭풍.
불 난 것처럼 붉어진 창문 밖 풍경.
거기다 사이렌처럼 울리는 경고음까지.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쿠와아아아아아앙-!
머릿속이 아득해질 정도의 음파가 파도친다.
[‘숲의 통곡’이 시작됩니다.] [길 잃은 저주가 숲 전역을 덮칩니다.]귀가 먹먹해진다.
보이지 않는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라 영혼을 잠식당하는 기분.
하지만.
[‘통나무집(Lv.3)’이 소음을 일부 차단합니다.] [저주의 영향이 소폭 감소합니다.]업그레이드한 통나무집 효과로 겨우 살았다.
그러자 갑작스레 닥친 재난의 공포와 어리둥절함에 허둥지둥하는 사람들.
“티, 팀장님 혹시 예언 스킬이라도 있는 건……?”
“아뇨!”
누군가의 물음에 다급히 선을 긋고는 소리쳤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
그 생각 하나로 입을 뗀 순간.
“소환! 활성화!”
[‘올해의 사원’ 사택 출입증 활성화!] [‘문’이 개방되었습니다.]“다들 대피하세요! 전 우선 바깥 상황부터 확……!”
쿠와아아아아앙-!
갑자기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어금니를 까득 깨물며 귀를 막았다.
“꺄아아───!”
그렇게 누군가의 비명마저 집어삼킨 굉음이 지나가고.
쿠웅-!
“……X발, 이름 한 번 정직하네.”
통곡의 숲에서 맞이한 두 번째 ‘통곡’이 쉬어가는 시점.
쿵! 하고 날아와 창문에 부딪히는 새 한 마리가 있었다.
쨍그랑!
“새?!”
“돌인데?”
돌로 만든 새 조각이다.
부리에 자그마한 쪽지를 물고 온 돌멩이 새.
불침번을 서느라 망루에 서 있던 이들이다.
타투이스트 노란 머리와 놈의 여자 친구.
“쪽지가 있는데?”
“읽어 봐요!”
“죽진 않음. 땅이 바다 같음. 벌레가 많음……?”
가져간 돌을 조각해 숨을 불어넣은 뒤 날려 보낸 건가.
“땅이 바다 같다는 게 무슨 소리야?!”
“벌레는 또 뭐고!”
“제가 나가 볼게요! 염동 스킬로 데려오면 될 거예요!”
사람 좋은 지은 씨가 결연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허둥지둥 대피하다 말고 걸음을 멈춘 팀원들.
“우, 우리도 일단 나가보는 거 어때요?”
“평범한 벌레가 아닌 것 같은데…….”
“싸우면 되죠! 새 검도 생겼으니까!”
마흔 명의 얼굴에 각기 다른 감정들이 떠올랐다.
불안. 걱정. 초조함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에서부터.
기대. 약간의 긴장. 호승심과 같은 호기로운 감정까지.
다만 그 다양한 얼굴들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싸워도 되겠습니까?”
“팀장님!”
내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 아니에요! 저 혼자 나가서 스킬로 데려와도 괜찮아요!”
그때 말을 꺼낸 지은 씨가 책임감을 느끼는지 손사래를 쳤다.
마저 대피하라며 까만 보석 같은 문을 활짝 열어 보이기까지 했고.
하지만.
“피할 사람 피하고, 싸울 사람은 나가 보죠.”
원하는 대로 해야지.
후회도, 원망도 없도록.
“전 나가겠습니다.”
“은호 씨……!”
드르르르르륵-
아까부터 주머니에서 드르륵거리는 나침반도 신경 쓰이고.
망루에 올라가서 살피면 뭔가 나오겠지.
“같이 가요!”
그리 판단하고 살핀 창밖 풍경은.
푸화아아아앗-!
쿠웅! 쿠웅! 쿠우우웅!
스르르르르르- 푸홧-!
진흙탕이었다.
교육원에서 만난 슈퍼 밀웜 수백, 수천 마리를 가둬 놓고 키우면 만들어질 것 같은 지옥.
“벌레?!”
“무슨 벌레가 저렇게 커!”
슈퍼 밀웜들과 그 크기도, 생김새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덩치가 크고 무거워서 빠른 속도를 내긴 힘들어 보이네요. 방어력이 강한 껍질을 피해, 마디 사이를 공략하면 될 겁니다. 좌우 두 명씩 네 명이 한 마리씩 상대해 보죠.”
“네? 그새 그걸 다 파악하신 거예요?”
“설마요.”
내 말에 지은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담담하게 내어놓은 대답.
“싸워 본 적 있습니다.”
“네?”
그리고, 나 말고 또 다른 경력자도 알고 있고.
“소환.”
“은호 씨! 그건…….”
“활성화.”
얼굴…… 아니, 두개골 좀 볼까.
오랜만에.
* * *
첫 만남을 기억한다.
【PROCESSING…… 】
【두개골 – 확인】
【늑골 – 확인】
【상완골 – 미확인】
【요골 – 미확인】
【척골 – 미확인】
……
뿌연 정신으로 흙바닥에 처박혀 잃어버린 팔이나 찾아 헤매던 그때.
“1번부터 10번! 앞으로!”
“앞으로……!”
[지휘관 ‘이은호’가 해골 병사(1번)를 ‘소대장 훈련병’으로 임명합니다!]아무것도 모르던 저들을 믿고 직책을 내려 주던 분.
“병사들을 갈아 넣어서 이기는 건 어린애도 할 수 있는 일이지. 피해를 최소화하고 승리하는 게 지휘관의 일이다.”
상상할 수 없어 바라지도 못했던 지휘관의 이상을 보여 주신 분.
그리고 무엇보다.
“말했잖아. 부하들 죽여 가면서 이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분.
그래서.
“소대장…… 훈련병, 교관님께 인사…… 올립니다!”
대장님의 지시대로 새로운 교관을 맞이했다.
최초의 가르침을 안겨 준 대장님을 텅 빈 가슴뼈 속에 품고, 차가운 두개골에 교관님을 담았다.
[너희 주인의 고향에서 자료를 가져왔다.]“대장의…… 고향……!”
대장님을 위해서.
교관의 가르침대로.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아나?]“일만……?”
[무슨 일이건 1만 시간을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더군. 우선 1만 번씩이라도 해 보자고.]그래서 했다.
휘두르기 1만 번.
찌르기 1만 번.
베기 1만 번…….
뼈마디가 삭고.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금이 가고.
휘두르는 바람에 무릎뼈가 시려오더라도 쉬지 않았다.
그리하여.
— 띠링!
[축하합니다!] [최초 업적, ‘1만 시간 연속으로 검술 훈련하기’를 달성하였습니다!]“……!”
“업…… 적……!”
죽은 뒤 처음으로 업적이라는 걸 얻었다.
그 후, 갈비뼈가 부풀어 오르는 걸 느끼며 기다린 끝에 들려온 소식.
[‘미련한 검사’ 칭호 획득!]“미, 미련……?”
[‘검술’ 관련 지능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검과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모르는 검술도 연습으로 체화할 수 있습니다.] [검술 스킬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이, 이게……!”
“인정…… 받은 건가?”
“우리가…… 드디어……!”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해골 병사 전원이 달그락거리는 턱뼈를 덜덜 떨었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그때.
터질 듯한 가슴뼈를 쭉 펴고 환호하려는 바로 그 순간.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명의 산 사람.
[……마침 왔군.]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들의 대장.
더없이 반가운 대장이 돌아왔다.
심지어.
“수업 끝났으면 도와줬으면 하는데.”
도와달라 말한다.
쿠와아아아앙-!
“꺄아아아악!”
“예지 씨! 손 잡아요!”
“여기! 제가 처리했습니다!”
강의실 벽,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아비규환의 풍경.
그곳을 향해 턱짓하며.
“너희가 필요해.”
“!!”
저릿-
두개골부터 발가락뼈까지가 꿈틀, 했다.
보이지 않는 전기가 뼛속을 통과한 기분.
쿠와아아아아앙-!
문의 틈새로 전해지는 진동에 온몸의 뼈가 웅웅 울린다.
그 떨림을 온전히 느끼며.
“간다아아아아아……!”
달그라아아아아악-!
달렸다.
뛰쳐나갔다.
파아아아아앗-!
이 빠진 검날을 휘감고 하늘까지 치솟는 검은 연기.
용솟음치는 기운.
죽음 뒤에 피어난 검무(劍舞).
지옥에서 돌아온 검과 함께.
“대장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