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89
Chapter 42. 누군가의 땅(3)
“석화.”
모가지를 축 늘어뜨린 칼날 부리 새의 부리를 벌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흘려 넣은 더위 저항 물약.
— 끼룩…….
[‘칼날 부리 새’가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은인의 얼굴을 눈깔에 새겨 넣습니다.]갓 건져 낸 미역처럼 널브러진 와중에도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는 게 고맙긴 한 모양.
그나저나.
“이 넓은 사막에서 바늘을 어떻게 찾죠?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는데.”
사막에서 바늘 찾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같은 일을 지금 이 시점에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통곡의 바늘이라는 거, 진짜 바늘일까요? 마물 이름이 바늘인 건 아니겠죠?”
“아직까지 조용한 걸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지은 씨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한숨을 폭 내쉬는 지은 씨.
“자석이라도 챙겨 올걸.”
“어쩔 수 없죠. 상식적으로 자석을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팀원들 다 같이 몇 날 며칠은 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은 씨와 재혁이가 황망한 얼굴로 고요한 사막을 두리번거렸다.
흐윽-
간간이 들려오는 흐느낌 외에는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사막을.
“또 우네요.”
“하아…… 제가 울고 싶습니다.”
재혁이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말했다.
원체 땀도 많고 더위도 많이 타서 그런지, ‘더위 저항’을 얻었음에도 열기가 홧홧한 모양.
PM 1:00.
하필 한낮이라 태양열이 장대비처럼 내리쬐는 탓일 터.
그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지은 씨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제안했다.
“구역을 나눠서 찾아볼까요?”
“오! 좋은 생각이십니다, 누님!”
하지만.
‘단서가 더 필요해.’
이럴 때일수록 무작정 시작하는 건 좋지 않다.
어차피 시간제한도 없고.
‘찾아야 하는 건 바늘. 바늘인데…….’
머리를 쥐어 짜내며 ‘찾는다.’
그리 생각한 순간.
— 띠링!
경쾌한 효과음이 들리더니.
[모래를 걷는 길잡이에게 군주의 축복이 발현됩니다.]내 귀에만 들려오는 메시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입력 완료.] [목적지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을 찾습니다.]‘……?!’
군주의 축복이라니.
‘설마 부패의 사막에서 만난…….’
기억을 되짚어 보자 한 사람…… 아니, 한 귀신이 떠오르긴 하는데.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다. 내 특별히 살려 주는 거야.’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침을 퉤 뱉으며 말하던 조복.
‘폐하! 무사하셔야 합……! 반드시 살아서…….’
‘아바…… 마! ……하지 마시고…….’
놈에게 붙들린 채, 고장 난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던 모녀.
‘……라! 안 돼…… 제발……!’
가족을 빼앗긴 사내가 정처 없이 헤매다 결국 죽어 가던, 기억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풍광.
그리고 원수를 처단해 줘서 고맙다며 내려 준 사막의 축복까지.
그래.
기억은 났는데.
그 축복이라는 게…….
[‘사막의 패스파인더’ 발동!]‘이런 거였어?’
파앗-
발밑에 푸른색 동그라미가 나타났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어 아득한 모래사막 위, 유일하고도 이질적인 표식이.
‘동그라미?’
지름 1m 정도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동그라미.
푸른 원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따라왔다.
“어? 은호 씨…….”
미묘하게 달라진 걸음걸이에 지은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발이 안 빠지네요?”
푸른 원 위에 있는 한, 모래 속에 발이 빠지지 않는다.
[사막에서 이동 속도가 떨어지지 않습니다.]그래서인가보다.
‘이동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메시지의 의미가.
그나저나 이상하네.
이동 속도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하나의 효과는 납득이 안 가는데.
[사막에서 길을 잃지 않습니다.]푸른 원은 내가 한 걸음 오른쪽으로 가도 그대로.
왼쪽으로 가도 그대로.
제자리뛰기를 해도 마냥 동그란데.
이걸로 어떻게 길을 잃지 않는다는 거지?
“형님! 어디 가십니까?”
“대장…… 따라……!”
“기다려.”
이상하다 싶어 한참을 걸어갔다.
50m는 갔을까.
그러자 그제야 뾰족한 뿔 같은 삼각형을 빼꼼 내미는 푸른 원.
이 뿔은 아마…….
‘방향을 표시해 주는 건가.’
화살표처럼.
“후.”
그러니까, 이 아래에 숨겨져 있다는 거지?
사막 바늘.
흐윽-
흐느끼는 바람.
사각거리는 모래.
숨만 쉬어도 텁텁해지는 목구멍을 느끼며 까슬한 생각을 갈무리했다.
“형님!”
그동안 저들끼리 논의를 마친 재혁이와 지은 씨가 다가와 물었다.
“팀원분들한테 메시지를 보내 보는 게 어떻습니까?”
“공용 메신저로요!”
팀원들의 도움을 빌린다라.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사막의 군주가 선물한 ‘패스파인더.’
이 원이 정말 내가 찾는 길을 알려 주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발치에 그려진 ‘패스파인더’가 둥근 모양이면 발아래.
화살촉 같은 뿔을 내밀면 대각선 아래에 내가 찾는 게 있다는 의미니까.
“찾은 것 같거든요. 이미.”
“네?”
이정표 하나 없는 모래사막.
방향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이 땅에 ‘짐작 가는 곳’이 있다 말하면 당연히 믿을 수 없겠지만.
“지은 씨, 여기로.”
원이 뾰족해지는 지점에 지은 씨를 세우고.
“재혁이는 여기.”
재혁이와.
“1번 여기, 2번은…… 저기.”
해골 기사들까지 옮겨 세웠다.
그리고.
“소환.”
인벤토리에 넣어 둔 물을 쪼르르 뿌려, 그들 사이를 이었다.
마치 학창 시절 운동장에 흰색 가루를 뿌려 영역을 표시하듯.
그러자 그려진 거대한 사각형.
“은호 씨! 이거…….”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
웬만한 고등학교 운동장 넓이의 사각형 안에.
“너무 넓은데요?”
“……그러게요?”
* * *
“우리 과장님, 옆 팀 정 과장이랑 또 한바탕했다는데?”
“예? 이번엔 또 왜 싸우신 겁니까?”
“잡무 계속 떠넘길 거면 사람 내놓으라고 깽판 부렸대.”
“아…….”
유독 사람 욕심이 많은 리더들이 있었다.
‘일을 하려면 사람부터 뽑으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던 이들.
그땐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이제 알겠다.
리더의 전력은 본인이 아니라 팀원들의 능력에서 나온다는 걸.
큰일을 하려면 각자의 역량을 키우고,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배후조종’ 스킬 발동!] [‘사막의 축복’ 효과를 공유하시겠습니까?]“네.”
해골들과 일행들에게 축복을 공유하고.
“1번, 이리로.”
“예……!”
“받아.”
우람한 투구를 쓴 1번에게 데스웜을 잡고 얻은 두 개의 아이템 중 하나를 건넸다.
▣ 죽음의 보주(寶珠)
– 데스웜이 먹어 치운 죽음이 응고되어 만들어진 구슬.
섭취할 경우, 죽음의 힘을 얻을 수 있다.
– 단, 죽는다.
‘먹으면 죽는다’는 엄청난 제약이 걸린 구슬.
“이건…….”
“죽음의 힘을 얻을 수 있다네. 하나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이걸…… 왜 저한테…….”
1번이 손가락뼈를 달달 떨면서 물었다.
“그야…….”
마음 같아선 1번부터 10번까지 하나씩 다 먹여서 업그레이드해 주고 싶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으니, 1번에게 주는 게 맞겠다 싶어 불러낸 거다.
“소대장이잖아. 작은 대장.”
“……예?”
1번이 두개골을 달그락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덧붙인 설명.
“내가 없으면 네가 대장이니까. 나 대신 나머지 해골들 챙겨야지.”
“……!”
“그러려면 더 강해져야 하지 않겠어?”
딱!
1번의 아래턱과 위턱이 빠드득 부딪치며 떨어졌다 붙었다 했다.
“제, 제가…….”
녀석은 뭐라 말하려는 듯 운만 떼고는 멈춰 버렸고.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갖진 말라고.
지금처럼 하면 된다고 말하려는 찰나.
귓가를 파고드는 알림음.
— 띠링!
[해골 기사(1번)를 ‘부단장’으로 임명합니다!]어?
“……상태창?”
무슨 소린가 싶어 해골의 상태창을 살피자.
〔해골 기사(1번)〕
– 소속 : 해골 기사단
‘근위대’는 ‘해골 기사단’으로.
– 직급 : 소대장 훈련병→부단장
‘소대장 훈련병’은 ‘부단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급기야는.
[축하합니다!] [신입사원 이은호, ‘해골 기사단’의 ‘기사 단장’으로 등극합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기사단을 운영하세요!]기사단이라니.
기사 단장이라니!
‘뭐가 이렇게 거창해?!’
하아.
나도 모르게 내뱉으려던 한숨을 겨우 집어삼켰다.
[해골 기사단이 영광스러운 첫 임무를 기다립니다!]그래.
바보 같지만, 이게 이놈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된다면.
“가자.”
“……예?”
“해골 기사단, 첫 임무다.”
“!!”
장단 정돈 맞춰 줄 수 있지.
“사막, 다 밀어 버려.”
“……!”
* * *
학교 운동장 정도의 면적.
말이 운동장이지, 모래가 얼마나 깊이 쌓여 있느냐에 따라 노동량은 하늘과 땅 차이로 나뉘게 된다.
“형님! 진지 구축부터 해야겠지 말입니다?”
“진지 구축?”
“예! 사막은 일교차가 커서 밤엔 모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재혁이도 이런 제안을 하는 거다.
최소 며칠은 걸릴 거라 보고, 밤을 지새울 곳을 마련하려는 거겠지.
준비성 있는 건 좋다만.
“잠은 집에서 자야지.”
“예?”
“오늘 안에 끝내고 돌아간다.”
“어…… 하지만…….”
내 말에 듣고 있던 지은 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소 이틀은 걸리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형님! 얼마나 깊을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 깊지 않을 겁니다.”
“네?”
“통곡의 숲은 원래 하나였습니다. 벽으로 구분돼 있지만.”
“그…… 렇겠죠?”
1,000×1,000의 통곡의 숲.
벽을 넘어오는 순간, 숨어 있던 구역 또한 지도상에 표시된 걸로 보아, 원래 하나였던 건 확실하다.
그 벽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세운 건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이 모래도 벽 건너편에 쌓여 있던 눈 정도 깊이가 아닐까 싶어요.”
“아……!”
즉.
우리가 눈을 치웠듯, 여기 이 모래도 금방 치울 수 있을 거다, 그 말이지.
‘눈 치울 때처럼 버프는 못 받겠지만.’
우리에겐 버프가 하나 더 있으니까.
“집중 근무 시간 발동.”
파앗-
머리 위에 떠 오른 네모 칸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집중 근무 중』
■■■■■▣
“형님! 그럼 삽 열두 개를 사면 되겠습니까?”
“아니.”
“예? 그럼 모래를 어떻게 치웁니까?”
“삽보다 좋은 게 있어.”
“예에? 설마……!”
삽보다 효율적인 아이템.
예를 들어.
“넉가래 말씀이십니까, 형님?”
굴착기 끝에 달린 대형 삽처럼 넓고 커다란 거.
“상점에서 그런 걸 팔진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안 팔면 만들어야지.”
“……예?”
마침 괜찮은 아이템이 떠올랐거든.
“소환.”
“이, 이건…….”
타락한 숲의 파수꾼에게서 얻은 단단한 나무.
▣ 단단한 나무
– 오랜 세월 뜨거운 햇살에 마르고 찬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단단한 나무.
숲의 정기가 깃들어 경도를 더 높였다.
힘을 줘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 방어력 : 20
“아……! 이거, 방패 만드시고 남은 부분 아닙니까?”
“어. 통나무 끝부분은 휘어 있어서 못 썼잖아.”
버리긴 아까워서 남겨 뒀었는데.
휘어 있는 모양이 아주 딱이더라고.
“눈 치울 때처럼 해. 검기 실어서.”
“!!”
턱을 떡 벌린 해골들을 뒤로하고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넓은 면적에 검기를 싣는 건 나도 처음이다만.
“검기(劍氣).”
파앗-
손끝에서 검푸른 연기가 몽글몽글 맺힌다.
실처럼, 물감처럼, 연기처럼 뿜어져 나가는 푸른 빛깔.
나뭇결의 거칠하고 단단한 감촉 위로 나를 담은 기운을 얹었다.
한 겹.
두 겹.
세 겹.
검날을 감쌀 때보다 옅은 푸른 빛깔.
적을 베고 내장을 터뜨릴 정도는 못 되지만, 무겁고 단단한 모래를 솜사탕처럼 퍼내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강도를 확인하고.
“일렬로!”
“예……!”
뜨거운 모래사막 위.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주자들처럼 섰다.
“검기 불어넣고!”
“예……!”
팟! 팟! 팟! 팟! 팟…….
해골들이 뿜어내는 보랏빛 강기가 열 개의 그림자 같은 불꽃을 피웠다.
홧홧한 열기 사이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전해져 온다.
“퍼낸다. 실시!”
“실시……!”
스걱!
검기를 덧씌운 나무판자를 모래 속에 박아 넣고.
푸욱-
모래 더미를 한껏 들어 올려서.
푸홧-!
등 뒤로 던졌다.
■■■■▣□
박아넣고, 들어 올리고, 던진다.
사막은 처음이라 몰랐는데.
나름대로 굳어 있던 눈보다 훨씬 까탈스러운 종자들이었다. 모래는.
방금 퍼냈음에도 양옆에서 쏟아지는 모래알들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더 넓게!”
“예……!”
주변 모래가 쏟아진다면 더 넓게 파면 될 일이니까.
■■■▣□□
가슴팍 언저리까지 파 내려왔다.
“퍼낸 모래는 이쪽으로! 쓰러지면 골치 아프니까 모아 둬!”
“예……!”
퍼낸 흙더미 또한 가슴팍까지 쌓였다.
■■▣□□□
원래 서 있던 지면이 까치발을 들어야 할 정도로 올라갔다.
여섯은 계속 파고, 다섯은 지상에서 퍼낸 모래를 옮겼다.
흐트러져 있던 모래 알갱이들이 검기로 다져져 언덕이 되었다.
■▣□□□□
그렇게 모래가 나인지, 내가 모래인지 모를 정도로 몸이 까끌해지고.
퍼낸 모래가 산처럼 쌓였을 무렵.
탕!
단단한 나무에 부딪힌 무언가.
“어?”
[축하합니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 성공!]지금 부딪힌 게 바늘이라고?
실 꿰는 바늘이 한 줌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형님! 바늘이…….”
“……그 바늘이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