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27
Chapter 48. 도약(7)
[여진아.]운영국 직원들 앞에 서기 위해 차려입은 드레스. 한결 부드러워진 금발을 빗어 내리던 레이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은호 씨…… 괜찮겠지?]“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물론 레이라는 끝까지 믿고 갈 생각이었다.
제 아비의 마지막을 전해 준 은인이어서도 있지만, 그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 믿으니까.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상대가 상대이기 때문일 터.
[무려 국장급이잖아.]레이라의 말에 ‘아아.’하며 잠시 고민하던 민여진이 빙그르르 의자를 돌렸다.
“그 아저씨, 되게 보수적이에요.”
[응?]엉뚱한 대답에 레이라의 고개가 갸웃하자, 싱긋 웃으며 말하는 민여진.
“뭐, 가끔 급발진하긴 하는데…… 기본적으론 이길 싸움만 한다구요.”
이길 싸움이고 질 싸움이고 간에, 본인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하다시피 한 회사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반박하듯 물었다. 그러자.
“불가능하죠.”
민여진이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하며.
“이길 수밖에 없는 방법을 만들어 두는 거예요. 싸우기 전부터.”
[!!]“불안하면 시키는 대로만 해요, 일단. 몇 번 겪으면 익숙해지니까.”
레이라의 동요를 이해한다. 나도 겪어 봤다. 근데 다 지나간다-하는 듯 담담한 얼굴로.
그러고는 다시금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화면에 코를 박았다.
“아, 수업 한 시간 남았다.”
이은호가 짜 줬다는 ‘강의 시간표’를 흘끗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길 수밖에 없는 방법…….]그 뒤통수를 멍하니 쳐다보던 레이라가 입속에 한마디를 넣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래.]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 이은호가 제게 할당한 미션들을 훑으며.
[한 시간 안에 투서 다섯 개만 더 넣자.]“네. 저 지금 백 명짜리 투서 하나 완성이요.”
여론을 만들고, 투서를 넣고, 온갖 번잡스러운 일을 만들어 판을 흔든다.
그렇게 인사국의 관심을 최대한 끈다.
놈들이 전투 준비에 집중할 수 없도록. 그리하여 그들이 대의를 이룰 수 있도록.
[서명은? 지금 몇 명 받았지?]* * *
툭 치면 쓰러질 듯 가녀린 여인이 도톰한 입술을 벌린다.
물길에 휩쓸린 보랏빛 머리칼이 하늘하늘 흩날린다.
미역 같기도, 물속에 흩어지는 물감 같기도 한 머리카락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까지 다가간 뒤.
‘여기까지.’
멈췄다.
사락-
코끝을 파고드는 향긋한 내음.
여인이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 또한 귓속을 파고들었어야 마땅하지만.
“안 들리거든.”
— ……!
양쪽 귀에 야무지게 넣어 둔 솜 덕분에.
— ……! ……!
여인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내가 당황스러웠던 모양.
— 그…… 여!
— 이…… 로!
어찌나 세차게 노래하는지, 솜뭉치 너머로도 드문드문 소리가 전해져온다.
그래서.
스릉-
말 대신 검으로 상대해 줬다.
— !!
물빛을 반사하는 칼날.
휘두르는 검격에 무겁게 눌러 오는 수압이 반발한다.
그를 뚫고 나아간 검격이 인어의 비늘에 닿았을 때.
쩌걱-
인어가 하늘로 날아…… 간 게 아니고.
‘……?!’
앉아 있던 바위가 위아래로 갈라지더니, 고래의 입처럼 쩍 벌어졌다.
그러자 바위 윗부분에 앉아 있던 인어가 통째로 위로 들렸고. 덕분에 검의 궤적이 가른 건 밀려드는 바닷물과…….
‘……덫?’
바위의 탈을 쓴 덫.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촉수였다.
인어는 바위에 달라붙은 인형처럼 저 위로 뒤집히듯 넘어가 있었다.
‘……어쩐지 바위에서 한 번도 안 일어나더라니.’
그러니까, 뭔가 숨기는 게 있다 싶긴 했는데.
애초에 인어가 아닐 줄이야.
‘뭐, 그럼 싸우긴 더 쉽지만.’
주유소 인형처럼 느물거리는 인어는 무시한다.
본체는 바위의 탈을 쓰고 있던 이 덫.
파리지옥 같은 이놈이다.
푹-
검을 들고. 물속에서도 서늘하게 빛나는 강기를 내뿜고, 마물의 아가리에 쑤셔 넣는다.
그러자 갈가리 찢기듯 잘려 나가는 마물의 속살.
[심해의 오색빛깔 유혹, ‘디오나’를 처치하였습니다!]그때, 손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
‘음?’
파천검이 조금 무겁다.
검의 겉면을 감싸고 있는 강기 또한 옅어지는 듯했다.
빛나는 쇠처럼 단단하던 강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거리는 느낌.
[심력 소모가 큽니다.] [즉시 기운 방출을 멈추고 휴식하세요!]‘아.’
아까의 검사 공격으로 진이 빠진 기분이긴 했는데.
‘좀 무리했나.’
그 커다란 마물들을 한 방에 해치우려다 보니, 드넓은 면적을 뒤덮어야만 했다.
뽑아낸 모든 가닥에 기운을 불어넣고, 또 그걸 유지하는 게 쉽진 않았지.
온몸의 생기가 빠져나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오……!”
“뒤를…… 맡겨 주십시오!”
내 뒤를 맡겠다며 등뼈를 갖다 대는 동료들도 있겠다.
〔수업 목표(이은호)〕
1. 날개 달린 적 처치 (100/100)
2. 달라붙는 적 처치 (50/50)
3. 노래하는 적 처치 (1/10)
목표 지점이 코앞인데 멈출 수 있을 리가.
[축하합니다!] [신입사원 최초로 식생지(植生地)의 한계를 넘어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전리품을 확인하세요!]경쾌한 안내 방송이 알 수 없는 활력을 돋우기도 했고.
‘전리품은 나중에 확인하고.’
빠르게 끝낸다.
그리 판단하고는 미끄러지듯 몸을 움직였다.
카르르르르르-!
옆에 있던 인어, 아니 디오나는 이미 제 본모습을 드러낸 뒤.
도망도, 은신도 할 수 없는 덩치의 파리지옥은 아가리 속에 숨어 있던 촉수들을 꺼냈다.
3. 노래하는 적 처치 (2/10)
두 번의 검격에 십(十)자로 잘려 조각나고 말았지만.
“저희도…… 가겠습니다!”
“흐아아아아앗……!”
이미 정체가 드러난 순간, 거리낄 건 없었다.
그렇게 해골 기사들까지 합세해 순식간에 베어 넘긴 열 마리의 덫.
3. 노래하는 적 처치 (3/10)
3. 노래하는 적 처치 (4/10)
……
3. 노래하는 적 처치 (10/10)
‘……후.’
심장께부터 머리까지를 슬그머니 채우는 열감이 느껴진다.
파천검을 단단하게 받쳐 주던 강기가 깜빡거린다.
그 속에서 고급 검술 수업의 마지막 목표까지를 깔끔하게 채운 순간.
[수업 종료!] [팀장 ‘이은호.’ 수업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마침내 들려온 반가운 소식.
‘됐다.’
시스템이 열어 준 과외가 끝났다.
예상보다 쉽고, 예상보다 빠르게.
[검술의 길을 쾌속 주파할 자격을 증명하였습니다.] [‘중급 검술(Lv.3)’이 ‘중급 검술(Lv.9)’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숙련된 검사’ 칭호가 ‘걸출한 검사’로 진화합니다.] [도검류 장착에 따른 공격력이 50% 상승하며, 검술 계열 스킬을 50% 더 빠르게 습득합니다.]그리고 이어진 안내 방송.
[신기록 달성!] [‘맞춤형 고급 검술’ 수업을 최단 시간에 공략했습니다.] [추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이거다.
내게 필요한 마지막 퍼즐.
그걸 찾았다.
그리하여.
‘해 볼 만하겠…….’
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삐────익!
두개골을 비집고 들어온 경고음.
[주의!] [단기간에 과도한 심력을 소모했습니다!]“!!”
“다, 단장님!”
“왜…….”
왜 이러냐 물으려는 순간 깨달았다.
다리가 휘청거리다 못해 고꾸라지고 있음을.
[상태 이상, ‘과로’에 빠집니다.]이런.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쉬지 않고 무리해서일까.
휴식이니 뭐니 해도, 수업까진 마쳤으니 됐다 생각했는데.
“단장님?!”
“적이 더 있는 건……!”
“……아냐.”
해골들의 걱정스런 얼굴 뼈들이 시야를 가리나 싶더니.
“그냥 좀 쉬면…….”
까무룩 눈이 감겼다.
[‘맞춤형 고급 검술’ 강의실 효과 발동!] [기력 회복 절차에 돌입…….]터널 속에서 멀어지는 전파처럼.
스러져 가는 먼지처럼.
잠들기 직전 흩어지고, 얽히고, 뒤섞이는 기억의 파편처럼.
그리하여…….
파슷-
마른 모래가 입안으로 들이닥친다.
‘……모래?’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몽롱한 기분.
태양 가까이에 서기라도 한 듯 홧홧한 열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내가 눈을 떴던가, 안 떴던가. 잘 모르겠지만…….
[보여 줄게. 진짜 살아 있다는 게 뭔지.] [약속해, 그럼!]눈앞에 그려진다.
밤색 고수머리 아이. 흰 가운을 입고 뒹구는 여인. 덩치 큰 사내. 그리고…….
[───?]* * *
“……장님은?”
“……다.”
철썩-
파도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음…….’
바람에서 짠맛이 나는 걸로 보아 아직 바닷가.
등에서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지면은 아마 해변이 아닌가 싶은데.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확인차 조심스레 눈을 뜨자 보인 건 해골바가지들.
“여긴?”
“바다 위…… 입니다……!”
아아.
쓰러진 나를 이고 뭍으로 올라온 게 이놈들인가보다.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했네.”
“아닙니다……! 단장님, 갑자기 쓰러지셔서 놀랐습니다……!”
“다음엔 저희가 더…….”
1번부터 10번까지의 해골들이 서로 말하겠다며 턱뼈를 달그락거렸다.
저들끼리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우습다. 검을 들었을 땐 누구보다 매서운 놈들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있자니, 뒤쪽 해변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 나왔다.
[정신이 들었군.]이러니저러니 해도 29년 평생 가장 많이 봤을 내 얼굴을 한 조교가.
“마침 왔네. 할 말 있었는데.”
[그거 영광이군. 뭐지?]조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우선 당장 급한 질문부터 던졌다.
“얼마나 지났지?”
[이곳 시간으로 24시간 정도 되었다.]“24시간?!”
나도 모르게 놀라 되물었다.
만 하루를 꼬박 누워 있었다니.
‘신기록 알림을 들었으니 수업은 무사히 끝났나 본데.’
어쨌든 그 덕분일까.
땀을 쭉 뺀 듯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순간 들려온 알림.
띠링-
[스킬 개방을 위한 데이터를 측정 중입니다.]음?
[맞춤형 강의실 효과로 측정 속도가 증가합니다.] [……98%, 99%.]갑자기 스킬 데이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내가 한 거라곤 쓰러져서 잔 것밖에 없는데.
“뭘 개방한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묻자, 예상했다는 표정을 한 조교가 입을 뗐다.
[말하지 않았나.]“무슨 말?”
[적당한 휴식.]적당한…… 아아.
그래. 말하긴 했다.
[이렇게 바로?]“시간 아껴야지.”
[적당한 휴식도 훈련의 일환이다만.]적당한 휴식도 훈련의 일환이라고.
그땐 아무나 뱉을 수 있는 보편적인 충고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네.
“강의실에서 휴식하면 얻는 게 있는 건가?”
[하나 있지.]내 물음에 조교가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리며 답했다.
[꽤 유용할 거다.]그리고 잠시 후, 녀석의 말은 증명되었다.
‘!!’
기다리던 안내 방송과, 그 순간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듯한 생경한 감각으로.
[축하합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소생의 기억, 기(氣)의 흐름을 지배하는 정신력, 갖춰진 환경의 도움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운기조식’ 능력 개방 완료!]“운기조식?”
「운기조식(Lv.1) : 기공을 통해 호흡함으로써 소모한 심력을 초당 (1)만큼 회복한다.」
「대기의 기운을 신체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릇을 연마한다.」
‘허. 이거…….’
중급 검술, 그것도 무려 단번에 레벨 9까지 올라간 검술 스킬.
‘걸출한 검사’ 칭호로 높아진 공격력.
신기록 달성으로 받은 검술 계열 스킬 트리의 2단계 능력들.
게다가 엄청난 체력 스탯과 치명타 능력을 선사한 ‘용암 설인의 정수’며, 인어의 탈을 쓴 파리지옥을 잡고 아직 까지 않은 전리품도 남아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회복 능력까지 얻다니.
‘이것까진 생각 못 했네.’
이렇게 되면 생각할 게 많아지는데?
[다음 과정, 바로 갈 건가?]남은 일주일을 시간 단위로 쪼개고, 또 쪼개서 쓰기 위해 철저히 계산했었다.
하지만.
‘변수가 많아.’
내 예상을 ‘긍정적으로’ 뛰어넘은 변수들이.
그렇다면…….
“아니.”
계산을 다시 해야지.
쉬는 거 말고.
“이번 수업은 여기까지다.”
[……갑자기? 어째서?]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생각났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