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54
Chapter 54. 먹고 사는 문제(5)
백발의 바가지머리.
아래위 흰색으로 깔 맞춤한 소복 차림.
찍어 낸 듯 똑같이 생긴 얼굴.
“……쌍둥이?”
남산 타워에서 만났던 쌍둥이 귀신들이다.
[힉!] [괴물!] [왜 여기?!] [오랜만!]제안서를 얌전히 갈취당해 준 덕분에 미션을 한결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는데.
이거, 일이 쉽게 풀리겠는걸?
“우리 귀여운 쌍둥이들, 잘 지냈나?”
마침 잘 만났다. 요 녀석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나름대로 성공해서 돌아와 밥 잘 사 주는 동네 형처럼 보이고자 의도했으나.
[힉?!] [힉?!]쌍둥이들은 흠칫 놀라며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웃어?] [무서워!] [맞아!]그러더니 내 눈치를 보며 주춤주춤 뒷걸음질까지 친다.
잘 걸렸다 생각하는 게 얼굴에 티가 났나.
뭐, 이 녀석들 입장에서야 호되게 당한 셈이니 내가 이리 나오는 게 무서울 것도 같다.
하지만.
“섭섭하네. 반가워서 그런 건데.”
[반가워?] [우리가?]“그래. 귀여운 꼬맹이들은 잘 지내나, 걱정했다고.”
순진한 꼬마들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것도 이미 한 번 약점이 잡힌 녀석들이라면 더더욱.
“너희들 이거 사러 온 거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시계를 향해 턱짓하며 묻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그거.]“흠.”
턱 끝만 까딱하는 무심한 표정.
가볍게 툭 던지는 물음.
녀석들도, 시계도 아닌 내 주머니에 든 물건을 슥 쳐다보는 쿨한 시선 처리.
무엇보다 별것 아니라고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흐름을 타고 ‘진짜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근데 LP 모으는 거 너무 힘들지 않나?”
[맞아!] [힘들어!] [완전!] [엄청!]목이 부서져라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들에게 슬쩍 포인트 모으는 방법을 묻는다던가.
“아, 너흰 LP 어떻게 얻는댔지? 우리랑 똑같나?”
시계 하나를 꺼내 살펴보는 척하며 물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얻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는 척했다.
이 귀여운 녀석들이 또 혼날까 봐 입을 닫아 버리지 않도록.
[우리?] [LP?]“그래, 너희.”
둘 중 한 놈이라도 의심하면 실패다.
그럼 평화로운 심문은 끝. 곧장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녀석들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는 사이, 다행히 대답이 들려왔다.
‘포인트를 얻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란 거네. 직종 간 차이가 있는 건가? 그건 곧 회사가 총 제공량을 통제할 수 있단 소린데.’
그렇게 몇 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는 것과는 별개로, 내 얼굴은 호수처럼 평온했다.
“그래? 어떤데?”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말이 나왔으니 물어본다는 식.
그러자.
[일!] [일하면 줘!]“일?”
[응!] [우리 일 잘해!]점점 높아지는 꼬맹이들의 목소리.
쌍둥이들의 얼굴이 뿌듯함으로 물들었다.
양손을 허리춤에 척 올리더니 턱까지 치켜들었고.
‘되게 뿌듯해하네.’
그래.
너희가 어디 가서 이런 자랑을 하겠냐.
귀신들이라 웬만한 놈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래그래. 생긴 게 아주 똘망똘망한 게 일 잘할 것 같더라.”
[맞아!] [괴물! 정확해!] [정규직!] [될 거야!]정규직이라.
옛날 생각나네.
“정규직, 될 수 있습니까?”
“되겠냐? 스카이 애들도 취업 안 돼서 인턴을 대여섯 개씩 하는 판에?”
주먹까지 꼭 쥐고선 다짐하는 쌍둥이를 흘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정규직들 보니까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더라.”
이런 편 가르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당장 경계심을 푸는 데엔 ‘같은 편’이라는 느낌을 주는 게 제일 좋으니까.
[그치?] [맞아!]역시 단순한 녀석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 온다. 게다가 저들끼리 입을 삐죽대며 말하기까지.
[눈!] [재밌어!]‘눈?’
[치사해!] [부러워!]팔짱을 척 끼고는 볼을 부풀리는 쌍둥이.
‘잠깐만.’
그러니까, 이걸 해석하면.
“LP 현황.”
속삭이듯 말하자 아까 봤던 창이 다시금 눈앞을 가렸다.
〔라이프 포인트(LP) 현황〕
– 보유 : 1.8LP
– 누적 : 1.8LP
이거 말고.
▶ 상점 이동
▶ 사용 이력
▶ 팀원 현황
……
‘그래. 이거.’
[▶ 팀원 현황]을 달칵 눌렀다.그러자 ▶가 ▼로 바뀌며 아래쪽으로 텍스트가 쭉 펼쳐진다.
▼ 팀원 현황
1. 민여진(1.9LP)
2. 이은호(1.8LP)
3. 김지은(1.2LP)
4. 윤솔아(0.3LP)
……
43. 명태평(0.1LP)
이름, 숫자가 전부인 단순한 텍스트.
별거 없어 보여도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두 가지다.
첫째, 민여진이 나보다 높다.
무력이나 직급 등으로 LP를 얻는 건 아니라는 뜻.
둘째, 욕쟁이의 LP가 턱없이 낮다.
팀원 전원이 0.2 또는 0.3LP를 얻은 반면, 욕쟁이 혼자 0.1이다.
거기다 귀(鬼)들의 말까지 더하면.
[눈!] [재밌어!] [치사해!] [부러워!]LP의 원천은 ‘눈.’
그 섬뜩한 눈알을 통해 채널에 접속하는 게 조건이다.
민여진은 사원A 채널의 매니저를 맡아 왔기에 우리 중 가장 접속률이 높았을 터.
반면 욕쟁이는 남들 다 하는 관리국 OJT 때 실적 미달로 잘려, 운영국으로 처분되었다.
‘욕쟁이도 시간은 채웠다고 했으니, 후원이나 참여도가 LP 산정 기준에 포함되나 보네.’
“너희는 왜 참관을 하는 거지?”
【‘조사국 프린스’가 딱히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내 옆에 계속 떠 있던 회사의 ‘눈’이 사라질 때, 참관자들이 흘렸던 말.
【‘대외협력국 신입사원’이 어차피 봐야 할 거, 재밌는 채널을 발견해서 좋았다고 웃습니다.】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회사의 ‘눈’으로 참관하고.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로 후원하며 LP를 쌓고.
그걸로 생을 이어 나간다.
그야말로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셈.
‘대놓고 회사에 반기를 들긴 힘들겠어.’
하긴.
‘흩어진 민심을 단결하라’는 특명이 뜬 걸 보면 쉽진 않으리라 예상은 했다만.
‘……머리를 좀 써야겠네.’
어쨌든, 이 귀여운 녀석들 덕분에 실마리는 풀렸다.
그 생각에 툭, 머리를 쓰다듬듯 토닥거리곤 일어서려는 순간.
“잠깐만.”
[일하면 줘!]귀(鬼)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계약서 좀 보자.”
[?!]“너희 파견직이라며. 프로젝트 맡을 때 계약서 썼을 거 아냐?”
녀석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는 있다.
게다가 나름 노사협력팀 팀장이자 노조의 조합장으로서 녀석들의 근무 조건을 봐주자는 마음도 있었고.
비밀 유지 조항이라도 있었던 건지, 꼬맹이들은 팔짱을 척 끼며 몸을 뒤로 비틀었지만.
“그래? 전에 나한테 보여 준 제안서는 비밀 아니었나 봐?”
[히끅!] [그, 그건…….]계약서가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허?”
그렇게 빼앗은 계약서가, 한마디로…….
「본 계약은 회사(이하 갑)와 새타니(이하 을) 간 체결하는 임시 노동 계약으로, …… (중략)…… 계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
개판이었다는 것.
– 계약 기간 : 1년
* 기간 만료 시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되나, 갑의 요청이 있거나 을이 해당 연도 실적에 미달할 시 무통보 해지될 수 있다.
갑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실적을 못 채우면 즉각 해지될 수 있다거나.
– 보수 : 9조(프로젝트 유형별 기본 보수)를 기본으로 하되, 갑의 사정에 따라 변경 가능하다.
게다가 갑님의 사정만 사정인 고무줄 임금에다가.
* 시간당 수당, 연장 근무 수당, 휴일 수당 등은 일체 지급하지 않는다.
수당 따위 없는 개똥 같은 포괄임금제.
* 을은 갑의 요구에 성실하게 응해야 하며, 추후 갑의 판단에 의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약 없는 정규직 전환 문구까지.
“……이거 완전 노예계약이잖아?”
독소 조항에도 정도가 있지…… 십 년 전 우리나라 계약서도 이딴 식은 아니었다.
[노예?!] [아냐!] [너무해!] [나쁜 괴물!]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순진한 쌍둥이들은 노발대발했다.
하아. 그러니까.
“처음엔 열심히 하면 정규직 전환 시켜 준다고 했지?”
[맞…….]“그런데 일 잘하면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일 못 하면 네가 못해서 안 된다지?”
[!!] [!!] [어떻게 알아?] [괴물! 천재야?]어떻게 알긴.
내가 겪었으니까 알지.
“그게 노예야. 이 바보들아.”
[괴물!] [나빠!] [노예!] [나쁜 말!]흐음.
나쁜 말이고 뭐고 간에.
“니들, 내 밑에서 일 안 할래?”
* * *
운영국장 무아(無我)는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태어나 일평생을 살았으니 당연한 바였다.
원하는 것은 눈앞에 있었고, 원하지 않는 것도 늘 눈앞에 있었다.
바닥없는 바다와도 같은 부귀.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손을 뻗으면 황홀하게 붙잡고.
그의 옷깃 한 번이라도 스칠까 기웃거리고.
그가 오길 기다리며 매일 밤을 지새우는 여인들로 운영국은 불야성을 이룰 정도.
하지만.
[여기서 인력을 어떻게 더 축소합니까? 지금도 3교대에 주 80시간은 일하는데!] [네놈이 뭣 때문에 월급을 받아 처먹고 있다 생각하는 거냐? 쓸모없는 운영비를 좀 줄이란 말이다.] [적당히 하세요!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허! 멍청한…… 누가 네놈한테 아랫것들 챙기라더냐? 낙하산으로 앉아 놓고 진짜 수장이라도 된 줄 아는 게야?]의미 없는 권력.
그 모든 부귀(富貴)와 영화(榮華) 또한, 그저 손에 쥔 모래.
손 한 번 펼치면 다 떨궈 버릴 모래에 불과했기에.
[무아 님-!] [무아- 이리 와요!]그는 점점 더 침잠했다.
스스로 만든 왕국에 갇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분 매초, 쾌락과 권태 속을 오갈 때.
— 저는 살인자입니다.
그놈이 나타났다.
— 도둑이고, 강도이며, 도박꾼입니다.
이은호.
— 저는 누구보다 약해서. 그렇기에 간절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틀렸다.
누구보다 약하다면, 누구보다 낮게 납작 엎드려야 마땅하다.
그게 이 세계의 질서.
세계를 이루는 근간인데.
— 우리가 할 일은 순수하고 고결한 축제가 아닙니다.
놈은 멍청하고, 한 치 앞을 못 볼 정도로 어리석었으며, 그러나 당당했다.
— 피 튀기는 전쟁이고, 찬탈이며, 혁명입니다.
굳건한 신념에서 비롯된 선언.
스스로를 믿기에 할 수 있는 확언.
[쟤 바보 아냐? 혁명이라니?] [얼굴이 아까워.]그 얼굴이, 목소리가, 눈짓이…….
더러웠다.
마치 발등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개미처럼.
— 제 얘기가 여러분의 머리를, 그리고 마음을 울렸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회사의 겉조차 제대로 핥지 못한 주제에.
— 세상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불쾌감이 치밀어 오른다.
회사의 녹(祿)을 먹고.
회사의 힘으로 강해지고.
회사의 테두리 안에서 먹고 자는 개새끼 주제에.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새끼는 짓밟아 줘야 한다.
영감이 나서지 못한다면 직접 하리라.
……그리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찌푸린 미간을 풀었다.
그때.
삐───익!
[꺅!] [깜짝이야!]【Warning!】
【Warning!】
【Warning!】
[국장님! 이건……!]혹시 몰라 설치해 둔 감지 센서가 요란한 경고음을 울렸다.
【사규 보호 프로토콜 발동】
【위치 – ‘통곡의 성’】
[……직접 가지.] [예?! 직접 말입니까?!] [조용히 대기해.]조용히 대기하라.
그 말인즉슨, 국장이 완전한 주도권을 쥘 때까지 이 사태에 대해 함구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내는 닫으라는 입을 더 크게 벌렸다.
[회장님께 보고 드리는 편이…….] [너 말이야.]다급한 사내의 말허리가 뚝 끊겼다.
[영감이랑 꽤 친하더라?] [?!] [내 능력도 안 먹히던데. 영감이 신경 좀 써 줬나 봐?]사내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잠시.
[국장님 제대로 모시려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상한 말씀 마시고 빨리 보고를…….] [첩자 짓하는 거 알아.]흠칫!
여인들의 웃음소리로 늘 요란하던 침실을 짓누르는 적막.
[잘리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 […….]그 방에 서늘한 눈으로 일어서는 국장을 막을 이는 하나도 없었다.
* * *
팟-!
동그란 탁상시계 두 개가 투명도를 더해 간다.
그리고.
[후웁!] [후웁!]붕어처럼 입술만 쭉 내민 꼬맹이들의 입에 청소기 속에 빨려 들어가듯 들어가 버렸다.
“신기하네.”
[괴물도!] [해 봐!]그렇다고 딱히 경험해 보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손을 내젓고는 뒤돌았다.
“볼일은 그게 끝?”
[응!] [끝!]“가자. 그럼.”
[괴물 집!] [놀러 가자!]내 밑에서 일하란 소릴 제대로 이해한 건지 뭔지, 방방 뛰며 기뻐하는 쌍둥이 귀신들을 데리고 시계방을 빠져나갔다.
달칵-
문을 열자 까만 바닥이 나온다.
원형 바닥 테두리에 패인 홈마다 맞물리는 시곗바늘들이 각기 갈 길을 간다.
[통곡 숲은 숲이야?] [커?] [넓어?] [방 많아?]조잘대는 쌍둥이들의 뒤로 분침과 초침이 서로 교차하고는 다시금 멀어지는 순간.
사락-.
도포 자락처럼 스쳐 가는 실바람.
‘!!’
향긋한 꽃내음이 콧속을 파고들고.
저릿-
팔다리에 약한 전기가 통하는 듯하더니, 이내 힘이 쭉 빠져나간다.
마치 바닷속 해파리가 된 마냥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고 해요. 꼭 마약 같은 걸 한 것처럼?]비서실장의 말대로다.
“쌍둥이들.”
마치 솜사탕을 얇게 풀어 둘러 둔 듯한 시야.
꽃가루 같기도, 안개 같기도 한 옅은 색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응?] [왜 괴물?]“통곡의 숲 중앙에 성 하나 있으니까, 거기 가 있어. 따라갈게.”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뜬 쌍둥이가 부웅 떠올라 내 주위를 맴돈다.
[괴물은?] [어디가?] [같이 안 가?] [같이 가자!]“아쉽게도…….”
뒤집힌 바가지머리가 눈앞에서 흔들리기에, 잡아서 땅으로 내리며 말했다.
“손님이 와서.”
사락-
“여기 대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