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42
Chapter 10. 모의 전투(1)
회사에서 실시하는 ‘적성 검사’는 총 세 가지 항목을 평가한다.
첫 번째가 무력.
어둠길 미션에서 시야를 차단해 타고난 반사 신경과 고유 능력을 평가했…… 아니, 하려고 했다.
‘나 때문에 실패했지만.’
그리고 두 번째가 지력이다.
정확히는 전략ㆍ전술 능력.
그렇다고 시험을 봐서 성적으로 자른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고.
「모의 전투」
– 각자 동일한 병력을 운용해 모의 전투를 치른다.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고 깃발을 탈취하면 승리.
동일한 ‘병력’, 그러니까 병사들을 전략적으로 움직여, 다른 이들의 깃발을 탈취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 미션에 비해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전투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수십 장의 제안서를 밤새 읽고, 또 읽었다.
달달 외우고, 각각의 장단점을 정리하고, 내 상황에서 가장 유리한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래서.
“이거 장난…… 은 아니겠죠?”
“생매장이라니…….”
“혹시 심리 테스트 아닐까요?”
눈앞에 나타난 문항을 본 순간.
┌────────────┐
Q. 산 채로 매장당할 위기에 처한 당신!
다음 중 생매장 장소로 가장 선호하는 곳은?
1. 도시
2. 산
3. 바다
└────────────┘
“굳이 고르자면 전 ㅅ…….”
“도시!”
소리쳤다.
확신을 담아.
“으, 은호 씨?”
“도시입니다. 다들 도시를 고르세요.”
“네에?”
그러자 지은 씨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고는 전혀 납득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그, 그쵸? 역시 생매장도 도시에서 다 같이 당해야…….”
……그니까, 그게 아니라.
“모의 전투, 그러니까 다음 미션을 수행할 장소인 것 같습니다.”
“네?”
“여긴 전투를 치르기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 인원도 흩어 버릴 겸 격전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거 아닐까요?”
내 추측을 가장한 확언에 지은 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생매장이니 뭐니 한 걸까요? 미션 장소를 고르라고 하면 될 텐데.”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제안서에 분명히 적혀 있었다.
모의 전투가 시작되면, 각 대상자들은 선택한 유형에 따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치된다’고.
그 말인즉슨.
“산이나 바다를 고르면, 다들 어디로 흩어질지 모릅니다.”
미션 장소가 100퍼센트 랜덤이라는 뜻.
이런 상황에서 엉뚱한 선택지를 골라, 굳이 불확실성을 높일 필요가 없다.
“그럼 도시를 고르면 이 근처에서 싸우게 되는 겁니까, 형님?”
“그럴 확률이 높지.”
“음…… 근데 시가전이 제일 인명 피해가 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략 세우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재혁이가 우려 섞인 의견을 내놓았다.
역시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그러려니 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피해 입을 인명이 없어.”
“아…….”
서울은 이미 유령 도시가 된 지 오래다.
남은 건 몇 안 되는 생존자들뿐.
인명 피해고 뭐고, 지키고 보호해야 할 사람 따윈 없는 거다.
“여차하면 숨을 곳도 많으니까.”
게다가 율이를 쳐다보며 한마디 덧붙이자, 재혁이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가까이 있으면 협력도 가능할 거야.”
“아! 그렇군요!”
그러니까.
“율아, 혹시 혼자 있게 되면 능력 써서 숨어 있어. 알았지?”
“녜!”
다섯 살배기 어린애도 빗겨 갈 수 없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진정한 첫 홀로서기다.
“솔아야! 우리 괜찮겠지……?”
“당연하지. 죽지만 마, 알았지?”
동갑내기 친구가 서로의 손을 꽉 잡는 순간, 선택의 끝을 알리며.
[선택 종료까지 30초 남았습니다.]안내창의 테두리가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깜빡이기 시작했다.
깜빡!
29초, 28초, 27초…….
[제한 시간 안에 선택하지 않을 경우 문항이 랜덤으로 선택되니 주의하세요!]“은호 씨……!”
떨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지은 씨와.
“괜찮아, 괜찮아.”
여진이의 손을 꼭 잡은 솔아와.
“우리 율이, 제발…….”
율이를 품에 안아 든 한울 씨와 눈을 맞췄다.
[설문 조사 응답까지 10초 남았습니다.]끄덕.
말하지 않았지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러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도시.”
[‘도시’를 선택하시겠습니까?]같이 가 보자고.
생매장이든 모의 전투든.
“네.”
[선택 완료!] [‘모의 전투’ 미션을 시작합니다!]그렇게 모두의 선택이 끝났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 파앗!
도저히 버티지 못할 정도로 강한 빛이 쏟아졌다.
눈꺼풀을 뚫고도 쏟아지는 광량(光量)에 모두가 신음을 내뱉는 사이.
[교전 장소로 이동합니다.] [충격에 주의하세요!]일행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해야겠다 싶어 입을 떼자.
“아 참, 그리고 위험하면…….”
깜빡!
“제가 …… 을 …… 테니까…….”
세상이 눈을 감았다.
빛도, 소리도, 말도 없이.
* * *
시각보다 먼저 되찾은 청각.
‘이동’되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처음으로 한 생각은.
‘……뭐가 이렇게 무거워?’
전신을 빼곡하게 짓누르는 눅눅한 압박감.
숨 쉴 틈도 없이 산소 대신 들이치는 까슬한 입자들.
그리고.
슷, 스읏.
미세한 무언가가 몸 위를 기어가는 듯 소름 끼치는 느낌.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자, 슬며시 열린 입속으로 텁텁한 흙이 들이쳤다.
스윽!
있는 힘껏 팔을 들어 올리자, 퍼석퍼석한 모래가 몸을 쓸고 지나갔고.
이거, 진짜로…….
‘생매장을 시킨 거야?’
……미친 시스템 같으니.
【‘관리국 까마귀’가 그새 죽어서 파묻힌 거냐고 묻습니다.】
【‘조사국 프린스’가 오랜만에 재밌는 구경 좀 하려나 했더니 아쉽다고 말합니다.】
‘눈’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 참관자들의 소리만 귓가에 들려왔다.
우선, 헛소리는 무시하고.
스윽!
누운 자세 그대로 무릎을 산처럼 세워 올렸다.
흙더미를 밀어내며 빼꼼 땅 위로 솟아오른 무릎.
다행히 위에 쌓인 흙이 그리 깊진 않은 모양이다.
스으으으윽!
그렇게 팔이며 다리를 겨우 휘저어가며 몸을 일으켰다.
“푸확!”
몇 번이고 흙을 뱉어 내고, 머리며 옷 속에 파고든 생매장의 잔재를 털어 내면서.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흙길, 드넓은 잔디밭, 아름드리나무, 거대한 연못.
평화로운 공원의 풍경.
‘용산구에서 이 정도 규모의 공원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서울의 노른자 땅, 용산 가족공원.
순식간에 마주한 탁 트인 하늘과 푸르른 녹음에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넓은 잔디밭.
경사 없는 평지가 펼쳐져 있어 시야는 확보된 상황이다.
아군도, 적군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공격이 들어오지 않은 걸로 보아 매복은 없고.
‘대략 거리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주변 지형지물과 상황을 계산하고 있자니.
진짜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푸욱!
저 멀리 잔디밭 한가운데 건물 1층 높이의 기둥이 전봇대처럼 꽂히고.
스스스스스슷-!
시꺼먼 연기가 홀로 꽂혀 있는 깃대를 타고 오르더니.
펄럭!
뭉치고 뭉쳐 마침내 칙칙한 회색 깃발이 되었고.
그러고도 모자라 울컥거리며 뭉치듯 피어오른 연기가 섬광처럼 퍼져 나갔다.
파앗-!
공중에서 떨어뜨린 물풍선이 지면에 부딪혀 터지듯 삽시간에.
그렇게 원형으로 퍼진 시꺼먼 연기가 온 바닥에 깔렸다.
【‘조사국 프린스’가 드디어 시작하는 거냐고 팔짱을 낍니다.】
【‘관리국 까마귀’가 진정한 사나이라면 전술도 짤 줄 알아야 한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수의 참관자가 강력한 병사를 원합니다!】
순식간이었다.
스륵-!
눈앞의 흙바닥이 검은 기운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움찔!
다짜고짜 꿈틀거리기까지.
그리고.
“!!”
마치 겨우내 땅속에 숨어 있던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한참을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던 흙바닥이.
퍼석! 퍼서석!
괴상한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더니.
빠드득!
뽀얀…….
“……?!”
해골이 되었다.
[해골 병사(Lv.1)를 획득하였습니다!] [남은 병력 : 100]“해골 병사?!”
【‘관리국 뱃사공’이 이런 마물도 있었냐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흙더미 속에서 새싹처럼 머리를 들고, 삐거덕대는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하나둘 일어서는 뽀얀 해골들…….
그야말로 백골(白骨) 사체.
“으어…….”
“팔…… 어디…….”
— 달그락!
“내…… 다리……!”
“그어어억…….”
생매장…… 아니, 파묻혀 있던 뼈 무덤이 머릿밑에 목을, 어깨 옆에 팔을 달고 제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낡아빠진 갑옷이며 이 빠진 검도 하나씩 챙겨 들고.
하나도 아닌 백 구가, 동시에.
“병력 현황?”
중얼거리듯 말하자 눈앞에서 달그락거리는 해골 병사의 얼굴 옆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72, 4, 25…….
‘해골 병사’라는 이름 옆에 넘버링까지 붙어서.
〔해골 병사(72번)〕
– 소속 : 이은호(임시) 근위대
– 직급 : 훈련병
– 스탯 : 체력(3), 근력(0), 지력(2), 판단력(1), 민첩(1), 인내(8)
– 특성 : 사자(死者)
– 스킬 : [달그락거리기(Lv.99)], [탈골(Lv.1)], [뼈 폭탄(Lv.1)]
친절한 설명과 함께.
– 삼도천을 운 좋게 다시 건넜지만, 생전의 감각은 무뎌진 지 오래. 무력은 형편없지만, 방패막이 정도로는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모두 다소 떨어진다. 덕분에 고통과 소멸의 공포에 둔감한 편.
‘하…….’
도심 속 푸르른 공원을 가득 메운 게 사람도, 강아지도, 자전거도 아닌 해골 무리라니.
—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현재 충성도 : 50%] [남은 병력 : 100]콰득!
병사들의 상태창을 살피는 사이, 나무토막 부딪히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팔다리를 어찌할 줄 모르고 휘적거리던 놈들이 서로 부딪힌 거다.
그 충격에 한 놈이 제 머리를 떨구자.
달그락!
아무렇지 않게 그걸 집어 든 놈이 목 위에 머리를 다시 얹더니.
빠드득!
끼워 넣었다.
그래도 웬만해선 죽지 않겠네.
아니, 이미 죽은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생각의 늪에서 그만 빠져나오라는 듯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제한 시간은 3시간.] [미션 종료 시점에 ‘깃발’을 차지하지 못한 대상자는 삭제되며, 미션 보상은 살아남은 병사의 수만큼 정산됩니다.]저 멀리 꽂혀 있는 ‘깃발’을 차지하라는 지침이.
그리고 하나의 깃발을 두고 나와 경쟁할 상대는…….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시끄럽다 못해 우렁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잔디 광장을 빼곡히 채운 적군.
해골 병사들이다.
하아.
‘저쪽도 해골이야?’
다만 이쪽은 뽀얀 뼈를 자랑하는데, 저들은 단체로 물감이라도 칠한 듯 새까만 흑골(黑骨)이라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맨 앞에서 무리를 이끄는 지휘관이…….
“죽음의 배반자들을 심판하라!!!”
산 사람이 아닌 해골이라는 점도.
그것도 머리에는 마물의 뼈로 만든 뿔 달린 투구를 쓰고, 안광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흉흉한 인상의.
“배반자……!”
“처단… 하라……!”
게다가…….
‘깃발, 이미 뺏겼는데?’
깃발이 생성된 건 놈들의 진영.
잔디 광장 한가운데였다.
저기 시커먼 놈들이 흙바닥을 열고 나타난 바로 그곳.
[접경지대에 ‘깃발’이 생성됩니다.]【‘관리국 뱃사공’이 저게 어딜 봐서 접경지대냐고 흥분합니다!】
【소수의 참관자가 불리한 조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다수의 참관자가 대상자 ‘이은호’의 책략을 기대합니다!】
망할 놈들.
대놓고 불리하게 시작하라는 시스템의 의지가 엿보인 탓에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와중.
“전군 대형 유지!!”
놈들의 수장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양옆에 거대한 뿔이 달린 투구 때문인지 한껏 위압감을 선사하는 우람한 풍채.
무리를 이끄는 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위풍당당한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진영을 짠다고?’
스스로 판단해 방어 진영을 구축해나가는 적군의 수장이었다.
저놈, 평범한 마물이 아닌 걸까.
“죽음을 걸고 막아라!”
어느 대국의 장수라고 해도 믿었을 만큼 패기 넘치는 모습이다.
글자 그대로 ‘뼈만 남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다가오면…… 터뜨린다!”
“우어어어어어-!”
“그아아아아아악!”
놈의 기묘한 카리스마에 뒤따르는 흑골들이 뼈마디를 흔들며 화답했다.
저마다 뼛조각을 하나씩 손에 쥐고서.
‘지금 협박하는 거지?’
저들에게도 있을 ‘뼈 폭탄’ 스킬을 쓰겠다는 협박.
그러니까, 제 뼈를 터뜨려 자폭하겠다고.
‘생각 없이 달려들었다간 위험하겠어.’
섣불리 갔다간 연쇄 폭발에 휘말리고 말 테니까.
“으그그극……?”
“무, 무섭…….”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비록 이 와중에 기죽은 우리 쪽 백골들은 죄 없는 제 머리뼈만 긁어 대고 있지만.
[해골 병사 무리가 적의 패기에 압도당했습니다.] [아군의 사기가 떨어집니다.]사기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지만!
[낮은 사기로 인해 공격력이 소폭 하락합니다.] [쉽게 지칩니다.]이미 갖춰진 적군의 방어 진영.
활용할 기물이 전무한 넓은 풀밭.
거기다 낮은 사기로 인한 디버프까지.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일 정도로 불리한 스타트다.
그러나.
“병력 현황.”
[대상자 ‘이은호’에게 귀속된 병력 현황을 확인합니다.] [남은 병력 : 100]〔해골 병사(2번)〕
〔해골 병사(11번)〕
〔해골 병사(65번)〕
……
내 눈엔 보였다.
이 전장에서, 오직 나만 만들어 낼 수 있는 ‘틈’.
저 해골들은 도로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 할 방법이.
“소환.”
파앗-!
왼팔과 오른손에 각각의 기물을 장착했다.
욕쟁이가 선물한 둥근 방패와 손에 착 달라붙는 흑검.
그 균형 잡힌 묵직한 감각을 느끼며 재차 입술을 뗐다.
그리고.
흡-!
숨을 들이쉬고는 힘껏 내지르는 호명(號名).
“1번부터 10번! 앞으로!”
“앞으로……!”
— 달그락!
멀뚱멀뚱하게 서 있던 해골 병사들 사이에서 몇몇이 삐그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나, 둘, 셋…… 정확히 열.
자, 그러면.
‘파고들어 보자고.’
적진(敵陣)도, 이 망할 시스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