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56
Chapter 13. 불청객(1)
“청년! 축하혀!”
“축하드려요, 아저씨!”
“와, 그쪽은 도대체 뭘 어쨌길래 2만 점으로 시작한 거야?”
“아까 못 봤어요? 이은호 씨 협상하는 거.”
하늘에서 터진 축포와 꽃가루만큼의 관심이 쏟아졌다.
“나도 한번 시도해 볼까?”
“그랬다가 삭제돼도 책임 못 집니다.”
“하긴 그쪽이니까 봐줬지. 나였음 바로 모가지 날아갔을 거야, X발.”
순수한 축하. 단순한 호기심. 굳이 숨기지 않는 부러움.
“알긴 아네요.”
“뭐?!”
하지만 견제나 위협은 없었다.
오히려 이예지와 욕쟁이처럼 서로 투닥거리면 투닥거렸지.
“이은호 씨 아니었으면 말을 끝까지 들어 주지도 않았을걸요?”
“근데 마지막에 좀 아슬아슬했어요.”
“맞아, 맞아. 하마터면 역전당하는 줄 알았잖아요!”
“그래도 아저씨가 1등 할 줄 알았어요.”
다들 ‘그럴 만하다’라는 반응이랄까.
과하게 욕심부리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썅, 이러다 나중엔 관리자랑 싸워도 이기는 거 아냐?”
“에이 설마요!”
“아냐. 저 아저씨는 그러고도 남을 거 같아.”
……너무 띄워 주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탁! 탁!
머리에 엉겨 붙은 꽃가루를 털어 내고 있자니, 지은 씨가 다가왔다.
무려 로맨스 맛집의 여자 주인공이자, PD이자, 편집자인 지은 씨가.
“저…… 축하드려요, 은호 씨!”
“덕분입니다.”
평소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낯설다.
귓불이 빨개진 걸로 보아 부끄러워하는 것도 같고.
하긴, 아무리 잠시 잠깐 연기라지만, 직장 동료와 연인인 척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
더군다나 온갖 편집 효과에 느끼한 bgm까지 집어넣어야 했으니.
“그나저나 시스템에 편집 기능이 있었습니까?”
“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되길레…… 어?”
흠칫!
지은 씨가 상기된 얼굴로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어어어?!”
그것도 모자라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그걸 은호 씨가 어떻게 알아요……?”
화들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차. 실수했네.
“그러니까 제 말은…….”
붙잡힌 토끼처럼 커다란 눈을 굴리는 지은 씨에게 되물었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호스팅…… 이었나요? 방송 종료되고 참관자들이 몰려들었던 거요.”
그러자 지은 씨가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오므려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듯 진정시키는 모양새다.
“괜찮으십니까? 불편해 보이는데.”
“그럴 리가요! 아, 아니…… 그러니까…… 당연히 괜찮죠! 제가 갑자기 은호 씨를 불편해할 이유가 없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편해요, 지금!”
이런.
아무리 미션을 위한 연출이었다지만, 지은 씨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절대 들키면 안 되겠어.’
영원한 비밀로 가져가자. 괜히 어색해지지 않게.
그리 마음먹고 말을 돌리려는 순간.
“형님!”
재혁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입을 열었다.
“아까 제 채널에…… 헙!”
탁!
“읍읍! 읍읍읍!”
“은호 씨! 왜 그러세요?”
한 손으로 재혁이의 입을 틀어막은 채로 말했다.
진지하게.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큰일이라니…… 것보다 방금 재혁이가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읍읍! 읍읍?!”
“상황이 좋지 않아요.”
“네?”
지은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아주 진지하게.
“아까 스크린 보셨죠?”
“수여식이요? 당연히 봤죠, 은호 씨 얼굴이 그렇게 크게 나오는데!”
“그게 문젭니다. 제 얼굴은 물론이고 뒷배경까지 나갔더군요.”
“아!”
“읍!”
영 없는 말은 아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현재 위치, 얼굴, 거기다 후원금 현황에 내내 올라가 있던 이름까지.
내 신상과 위치가 용산구의 생존자 모두에게 공개되었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파리떼가 꼬일지도 모릅니다.”
“아! 지난번 사냥 미션 때처럼요?”
타깃을 사냥해 일당을 채워야 했던 사냥 미션.
그때도 온갖 시정잡배들이 내 현상금을 노리고 달려들었지.
비슷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때랑은 조금 다를 겁니다.”
“네?”
미션은 어떻게든 비틀어 해결하면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해진 룰이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 욕심에는 규칙이 없으니까.”
“……!”
순간 지은 씨가 입을 작게 벌렸다.
재혁이는 손을 치웠음에도 오히려 입을 닫았고.
그렇게 짧지만 묵직한 침묵이 지나간 뒤.
“하지만…….”
지은 씨가 입을 뗐다.
“인벤토리에 넣어 두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훔쳐 가지도 못하잖아요.”
“음…….”
대체 뭐라 말해야 할까.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도둑질인 사람에게.
평소처럼 그냥 넘어갈까. 굳이 이런 얘기까지 할 필욘 없지 않나.
……그리 생각하다가, 결국.
“거기 욕쟁이 씨.”
욕쟁이를 불러 세웠다.
“욕쟁이 씨가 뭐야? 멀쩡한 이름 놔두…….”
“터널에서 죽은 놈.”
멈칫!
“아이템, 어떻게 가져온 겁니까?”
“!!”
메이스를 뺏긴 채 터널 안에서 홀로 죽어 갔을 놈.
그때 분명 욕쟁이가 놈이 남긴 무기며 방어구를 한 보따리 가져왔었다.
“털어 왔어.”
하지만, 어떻게?
정신을 잃은 사람이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걸 친절하게 꺼내 놓고 갔을 리 없고.
‘솔아와 여진이도 죽은 놈들이 남긴 무기를 챙겼었지.’
그러니까, 인벤토리에 보관해 둔 아이템은…….
‘죽으면 튀어나온다.’
전부 다 나오는 건지 일부만인지, 일부라면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그, 그럼…… 아이템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지.”
“그런…….”
벙찐 재혁이의 말을 내가 대신 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표정.
가능성만으로도 놀란다면.
‘그런 사람, 이미 많다는 걸 알게 되면 까무러치겠네.’
지은 씨가 한기가 도는 듯 양팔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
“저희 그럼…… 다른 데로 이동이라도 할까요? 혹시 누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이동해도 마찬가집니다. 이미 얼굴이 다 팔렸으니까요.”
“아아…….”
“그럼 제가 형님 옆에 계속 붙어 있겠습니다! 24시간이요!”
그러자 재혁이가 주먹을 콰득 쥐더니, 당당하게 선언했다.
24시간이라…….
그것도 방법이긴 하다.
다른 이들의 뒤에 숨는 것.
하지만, 언젠간 벌어질 일이라면.
“부탁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예상 가능할 때.
그리고 별것 아닌 정보의 우위라도 가진 지금 마주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만약 낯선 사람들이 찾아오면…….”
대비하고, 또 대비하자.
* * *
왔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사, 사람 살려!”
“으아아아아악!”
뒤꽁무니에 집채만 한 마물까지 달고.
─ 크와아아아아앙!
“마물이 어떻게……!”
“보호막이 없어졌으니까요.”
아아.
이제 남산타워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타워를 감싸고 있던 반투명한 보호막은 귀(鬼)들과 함께 사라졌으니까.
덕분에 마물들이 여기까지 쫓아 온 거고.
[‘굶주린 불곰’을 처치하세요!]불곰은 고작 한 마리.
나서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지은 씨가 먼저 선수를 쳤다.
“은호 씨는 가만 계세요. 저희가 알아서…….”
“아뇨, 누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응? 혼자서?”
“예!”
그리고 그런 지은 씨를 다시 재혁이가 막고 나섰고.
“안 돼 재혁아, 너무 위험…….”
“갔다 와.”
“은호 씨!”
“……괜찮을 겁니다.”
그러자 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뛰쳐나갔다.
─ 타앗!
무언가를 각오한 눈빛. 일(一)자로 굳게 다문 입술.
확실히 변했다.
“하아아아앗!”
……우스꽝스러운 기합은 그대로지만.
어쨌든.
─ 퍼억!
메이스만 잘 휘두르면 됐지, 뭐.
“받아라! 으아아아앗!”
재혁이의 메이스가 불곰의 다리를 가격했다.
그러자 건물을 부수는 포크레인처럼 비집고 들어가는 둔기.
─ 크와아아아앙!
불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휘청!
순간, 놈이 중심을 잃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다시 몸을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내려치는 앞발.
“재혁아! 조심해!”
퍽!
하지만 재혁이는 여느 때와 다르게 허겁지겁 피하지 않고, 그걸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흐아아아아앗!”
맞서 휘둘렀다.
저보다 훨씬 크고, 강하고, 흉포하지만, 다치면 돌이킬 수 없는 마물을 향해.
─ 퍼억! 퍽! 퍼억-!
하나하나가 묵직한 일격을 주고받는 공방.
재혁이의 발밑에는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치유…… 되고 있는 거예요?”
“초재생. 좋은 능력이네요.”
마치 시간을 거스르듯 새살이 돋는 재혁의 몸.
쿵─!
반면 메이스로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불곰은 그대 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후우…….”
그렇게 마무리 짓고 돌아왔다.
“재혁아……!”
“수고했어.”
지친 기색이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예! 형님!”
세상 환하게 웃으며.
* * *
재혁이가 불곰을 쓰러트리고 얻은 건 자신감만은 아니었다.
그의 뒤를 전리품처럼 따라온 상처투성이 방문객들.
‘스크린에서 본 사람이 꽤 있네.’
다는 아니지만 그중 몇몇은 기억이 난다.
하나같이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만.
“가, 감사합니다! 목숨의 은인이세요!”
“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전에 뵀었죠?!”
숨을 헐떡이는 사람들 틈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남산에서 만나 ‘사냥’과 ‘어둠길’ 미션을 함께 했던 직장인.
“입사 시험이라니!”
“또 사람을 얼마나 줄이려고…….”
하로나에게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목을 잃을 뻔했던 남자다.
“맞습니다! 삭제하면 되…… 뭐, 뭐라고?”
그땐 분명 일행이 있었는데. 혼자 남은 건가.
“다시 오셨군요.”
“예! 마물에 쫓기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음?
“마물…… 때문에 오셨다는 거죠? 저 불곰한테 쫓겨서?”
“맞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끼린 싸울 능력이 안 돼서…….”
흐음.
그렇단 얘기지.
“여기 이분들은…….”
“아, 이태원 쪽 생존자분들입니다. 오다가 만났어요.”
방문객은 총 열셋.
‘사냥’ 미션에서 합을 맞췄던 이들이 다섯, 이태원에서 왔다는 낯선 이들이 여덟이다.
“여긴 그나마 낫네! 산 아래는 마물이 득실득실합니다!”
“보호막이 사라져서 걱정했는데…… 진짜 위험했어.”
“여기 부상자들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약이나 붕대를 조금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와 마주한 탓에 불안해하는 사람과 안도하는 사람이 공존했다.
“그래도 아는 얼굴들이 있어서 안심되네요.”
하지만.
“글쎄요.”
“네?”
“불곰 말입니다.”
“불곰이요?”
저들이 피해서 여기까지 도망쳐왔다는 굶주린 불곰.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남산 밖에서 본 적 있습니까?”
“음…… 없는 것 같은데…… 왜요?”
내 말에 지은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
“지금껏 불곰은 산속에서만 나타났어요. 산 아래는 하늘범의 서식지고.”
“그랬…… 죠? 그게 왜요?”
“쫓아 온 마물이 하늘범이 아니라 불곰이라면, 마물에게 쫓기기 전부터 산속에 들어와 있었단 얘깁니다.”
“네?”
“게다가 보호막도 없어졌는데, 저들은 왜 굳이 여기로 온 걸까요?”
흠칫!
지은 씨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설마……?”
모르는 일이다.
보호막이 사라졌지만, 익숙한 곳이라 밤을 보내기 위해 왔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자의 존재를.
그러니.
“방심하면 안 됩니다.”
참관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학살을 서슴지 않았던 과감함과 잔인함.
1위 보상을 확인한 순간, 눈빛에 서린 탐욕스러움.
거기다 곧바로 총을 바꿔 들곤 밖으로 뛰쳐나가던 행동력까지.
직감이 들었다.
저 중에 있다. X는.
분명 스크린 속 남산 타워를 본 순간, 곧바로 달려왔을 거다.
‘누가 날 먼저 죽이기라도 하면 아이템의 행방이 묘연해지니까.’
어쩌면 곰에 습격당한 것까지 놈의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그랬을 터.
문제는…….
‘누구지?’
“오빠…… 우리 이제 안전한 거지?”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지켜 줄게.”
서로를 꼭 붙들고 있는 저 커플인가?
“내 다리! 다리가……!”
아니면 불곰에게 다친 다리를 부여잡고 절규하는 남자?
‘세상 무해해 보이지만…….’
누구든 될 수 있다.
복면 속에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순진무구한 대학생이건 환자건 경계해야 마땅한 건 매한가지.
그렇게 면면들을 유심히 뜯어 보는 사이, 갑자기 솔아가 먼저 나서더니.
“이리 오세요.”
부상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아……!”
“고마워, 학생! 진짜 고마워!”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
익숙한 푸른 광명이 퍼져 나갈수록 사람들의 상처가 씻은 듯 사라졌다.
“후…….”
그리고 다친 이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수록 솔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늘어갔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이를 돌봐서일까.
털썩!
솔아가 지친 얼굴로 정자에 주저앉았다.
‘이럴 때 보면 참 착하단 말야.’
차가워 보이는 인상에 낯도 가리면서. 역시 천성은 천성이란 건가.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 하나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 저…… 힘들지?”
“……괜찮아요.”
“학생도 그렇고, 아까 구해 주신 분도 그렇고…… 너무 받기만 했네요.”
그 어떤 의도도 없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