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69
Chapter 16. 선택(1)
돌아온 집무실 안.
정갈하게 선 승이 뜨겁게 우려낸 찻물을 따랐다.
[음- 향 좋네.]그러자 향을 한껏 음미한 하로나가 만족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려운 보고를 성공리에 끝냈기 때문일까.
새끼손가락을 치켜들곤 찻잔을 들어, 후후 불어 식힌 뒤 호록 마시는 몸짓 하나하나에 후련함이 묻어났다.
[같이 마실래?] [……괜찮습니다.]그에 반해 주전자를 든 승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신경 쓰여?]승의 표정이 굳어있음을 뒤늦게 발견한 하로나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보고가 끝나고 국장의 별도 지시를 받은 뒤부터 쭉 이 상태였다.
늦어도 한참 늦은 발견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소녀는 부하 직원의 기분까지 매 순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고, 승 또한 제 감정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으니.
[신경 쓰인다기보단……]승은 말끝을 흐렸다.
입을 떼기 전엔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려운 보고는 끝났는데.
왜 이토록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무거운 걸까.
설마…….
걱정되는 건가?
그놈이 충격받을까 봐서?
아니, 단연코 그럴 리는 없다.
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먼 지구의 대상자에게 동요한다는 건 관리자로서 적절치 못한 태도니까.
승은 도리질을 치며 늦은 대답을 내놓았다.
[조금… 마음이 불편할 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냐?] [그자가 신경 쓰여서는 아닙니다. 그저… 너무 가혹한 미션 아닙니까.]따지고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으나, 하로나는 납득했다.
국장이 직접 추가하라 지시한 ‘선택’ 미션.
그 어떤 미션보다 잔인한 미션이니까.
[‘선택’ 미션을 치른 이들은 모두 정신이 붕괴되었다 들었습니다.] [그랬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승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동기들 사이에선 하도 감정이 없어 ‘기계 같다’는 평을 듣는 그라지만, 이 미션은 과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까닭은.
[제 손으로 동료를 죽여야 한다니…….] [그것도 살릴 사람, 죽일 사람을 선택해서 말이지.]‘선택’의 대상이 방금 전까지 등을 맞대고 있던 동료 중 누굴 죽이고 살리느냐이기 때문에.
[너무…….] [너무 효율적이지 않아?] [……예?]손뼉을 짝! 치며 눈을 빛내는 하로나를 본 승이 멈칫했다.
그로선 동료들의 목숨을 놓고, 저울질하고, 선택하게끔 하는 이 미션이 끔찍하다 생각했는데.
그의 상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목표 달성 의지를 볼 수 있잖아. 누굴 살릴지 정하는 거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고.] [사람 보는 눈…… 말입니까?]이 상황에 쓸 말이 맞나 싶어 되묻자, 하로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저한테 더 이득이고 유용한 능력을 갖췄는지 계산해서 판단할 거 아냐. 그 정돈해야 회사 들어와서도 제대로 하지.]승은 뭐라 반박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사라졌다.
저 스스로도 설명 못 하는 기분 때문에 감히 상사에게 반박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대신 승은 말을 돌려 물었다.
[희생양은 누가 될까요?]‘선택’의 대상이 될 희생양.
보통 가장 친밀한 이들로 설정되기 마련이니까…….
[같이 다니는 김지은, 최재혁, 윤솔아, 김율이 가장 유력하겠네요.]승이 그동안의 관찰을 통해 합리적 판단을 내놓았다.
하지만 칼같이 반박해 오는 하로나.
[전부 다야.] [예?] [몰려다니는 애들 다라고. 희생양.] [모, 모두 말입니까?!]놀란 승이 들고 있던 티 포트를 잠깐 놓쳤다가 바로 잡아 올렸다.
모두의 목숨이 걸린다니.
기껏해야 저울의 한쪽에는 어린 대상자를, 나머지 한쪽에는 여자 몇 명을 올려 두고 선택하라 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냉철한 자라지만, 일개 인간입니다. 분명 정신이 나가고 말 겁니다!] [흐응- 그야 모르지.] [모르다니…… 그리고 하로나 님! 지난번 ‘선택’ 미션에서는 동료 서너 명만 걸고 진행했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선택의 무게는 보상의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법. 근데 이번 추가 미션은 보상이 이미 정해져 있잖아.] [아…….]보상의 크기라.
그렇다면 납득은 간다.
그야, 이번 추가 미션에 걸려 있는 건 일반적인 보상의 ‘두 배’니까.
게다가.
[대상자 이은호의 원래 평가는 S+야. 이것만 해도 엄청난데, 심지어 여기에 두 배를 주려면 이 정도 판돈은 걸어야 맞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법.
승이 마지못해 수긍하자 홀로 신난 하로나가 팔짱을 척 끼더니 물었다.
[너무 궁금해! 누굴 살릴까? 네 생각엔 어떨 거 같아?] [아마 어린아이를 살리지 않을까요? 대상자 ‘김율’ 말입니다.] [흐음- 그래?]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하로나가 도발하듯 턱을 치켜들더니 말했다.
[내기할래? 난 김지은에 걸게.]하긴.
그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대상자 김지은과는 처음부터 둘만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어 보였으니까.
그리 판단한 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분위기이? 무슨 개소리야?]그러자 코웃음을 치는 하로나.
왜 제 의견에 동의했는데 개소리니, 뭐니 하는 건가 싶어 승이 당황하자.
[그딴 걸로 움직일 놈 같아, 쟤가?] [예? 그럼 왜 김지은이라고 하신 겁니까?] [아둔한 것! 당연히 김지은이 더 유용하니까!]하로나가 당연한 소릴 왜 묻냐는 듯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걔, 잠재력이 있거든. 이번에 정신력 덕도 봤으니 이은호도 확실히 느꼈을 거야.] [확실히 성장 잠재력이 높긴 합니다만…….] [꼬마 계집도 의외로 쓸모가 있긴 했지만, 숨고 피하는 건 이은호 스타일이 아냐.]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예측이 안 되는 자여서…….] [그게 그 자식 매력이지.]지금껏 한 번도 예상대로 흘러가 준 적이 없으니.
[암튼! 내기할 거야, 말 거야?] […하겠습니다.] [복지 포인트 5천 점 어때? 난 김지은, 넌 김율.] [알겠습니다, 하로나 님.]모르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그들을 놀라게 할지.
[근데 쟤, 왜 미션 수락을 안 하니?] [어…… 그러게 말입니다?]* * *
“이은호 씨! 파스타 더 드세요!”
“어…… 전 괜찮습니다. 배불러서요.”
“더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생명의 은인이시니까!”
“하하….”
오늘치 미션을 무사히 끝낸 생존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사람들이 모이고, 긴장이 풀리자 밥 생각이 난 건 당연한 수순.
주변에 그나마 남아 있는 재료를 찾아와 호텔 주방장이 손수 만든 요리를 먹기까지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저분, 은호 씨 엄청 신경 쓰네요.”
“어제 X의 편을 들었던 게 미안한가 봅니다!”
아까부터 파스타 하나 만들면 가져오고, 스테이크 하나 구우면 가져오는 통에 영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배부르다고 잘라 내길 잘했지.
더 달라고 했다간 제 그릇까지 내밀 기세였다. 분명히.
“그래서…….”
지은 씨가 입안에 든 음식을 오물오물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언제 시작하는 거예요?”
“예?”
“추가 미션이요. 곧 1시니까 시작할 때 된 거 같은데…….”
“맞습니다, 형님! 슬슬 준비할까요?”
음, 그게 그러니까.
추가 미션 선택 창이 뜨긴 떴는데.
“아직 승낙 안 했어.”
“에엑? 그래도 되는 겁니까?”
미뤄 두고 있거든.
선택 화면을 끄지도, 선택해서 넘어가지도 않고.
──────◆──────
대상자 ‘이은호’의 등급 산정을 위한 추가 미션이 안배되었습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요]──────◆──────
덕분에 눈앞에는 아까부터 시스템 창이 둥둥 떠 있는 채였다.
두 사람의 얼굴은 반투명한 창 너머로 보고 있고.
“잘하셨어요, 은호 씨. 배는 채우고 가는 게 낫죠.”
담담한 말투. 올곧은 시선.
내가 승낙할 거라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그들까지 휘말릴지도 모른다고 미리 일러뒀는데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뭐가요?”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제가 받을 보상만 받으면 돼요.”
그래서 물었다.
그러자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지은 씨.
“만족 못 하시잖아요, 그거론.”
“…….”
“저희도 이제 발목 잡지 않을 정도는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가요?”
미소 섞인 지은 씨의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반박하고 싶어 입을 뗐다가, 다시 닫았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부족하진… 않죠. 두 분 다.”
사실은 보자마자 수락하고 싶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평가 등급도 잘 받았을 거고.
거기다가 보상 2배 효과까지 받으면 엄청날 테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도 좁혀지고 있고.’
독을 쓰던 유리나와 괴상한 생명체를 창조해 내던 노란 머리 타투이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존자들의 능력이 점점 올라오고 있는 거다.
마물도 점점 강해지고.
‘더 빨리 강해져야 해.’
앞서 나가고 싶다.
따라잡히고 싶지 않다.
언제고 뒷덜미를 잡힐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는 싫다.
사람이건 마물이건.
그러지 않으면.
‘저 위에 있는 놈들과는 싸워 보지도 못할 테니까.’
이런 인간이다.
동료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인간.
모두와 발맞춰 안전한 길을 가기보단, 가시밭길에 피 흘리더라도 내 힘으로 모두를 지키는 쪽을 택하는 인간.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생겨 먹은 놈이라면…….
“저희도 언제까지 형님 뒤에 숨어만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은호 씨! 어떤 미션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피 흘리고.
확실히 강해져서.
확실히 지키자.
“알고 있습니다.”
“네?”
“어떤 미션 나올지 알아요.”
“?!”
대신, 적게 다치고 많이 버는 방향으로 가자.
내가 가진 모든 걸 활용해서.
「……따라서 회사의 인재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판단하기 위한 심화 미션을 아래와 같이 제안하는 바이다.」
귀(鬼)에게서 빼앗은 제안서에 떡하니 적혀 있던 ‘심화 미션.’
이게 없었다면 섣불리 승낙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사지로 내몰았을 거다.
아니면 불확실한 이득을 깨끗이 포기해 버렸을지도.
‘그놈들, 다음에 만나면 사탕이라도 하나씩 줘야겠어.’
어쨌든 마음먹은 이상, 준비를 좀 해야겠는데.
그렇다면 아군의 전력 파악이 먼저인가.
“지은 씨.”
“네!”
“염동 스킬, 레벨 몇인가요?”
“아, 방금 10 됐어요!”
스킬 레벨 10이라.
스킬을 개방시킨 이래, 지금껏 받은 보상 대부분을 때려 넣은 모양이다.
방금 인성 검사로 받은 것까지 포함해서.
“그럼 동시에 10개 물체를 조종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긴 한데…… 정확하진 않아요. 너무 무겁거나 집중이 안 되거나 하면 잘 안 되더라고요.”
정신력에서 비롯한 스킬이라 그런지, 예외가 있는 건가?
어쨌든 지은 씨라면 크게 걱정은 안 된다.
생각해 둔 것도 있고.
“재혁이는 체력, 근력 어떻게 된다고 했지?”
“18, 23입니다, 형님!”
“초재생은?”
“그…… 이제 2레벨입니다.”
반면 재혁이의 스킬 레벨은 귀여운 수준.
그럴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난 적들은 초재생 능력이 아니었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돈 아니었으니.
하지만 이젠 다를 거다. 그러니까…….
“이번에 받은 보상, 다 올려.”
“예, 형님!”
문제는, 이 두 사람만 준비시켜서 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근방에서 가장 친밀한 이들을 선정하고, 둘 중 한쪽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이를 통해 대상자의 목표 지향성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바탕으로 합리성까지 파악할 수 있다.」
시스템이 말하는 ‘가장 친밀한 이들’의 기준을 알 수 없다.
‘둘 중 한쪽’이라는 글귀를 ‘두 명 중 한 명’으로 해석한다면야 편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 둬야지.’
그리 마음먹고 일어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욕쟁이와 이예지.
“썅, 아까부터 뭐가 그리 심각해? 셋이서만 속닥속닥.”
“맞아요! 우린 왜 안 끼워 줘요?”
여기 끼는 게 지금 상황에선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텐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남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을 쏟아냈다.
“하하… 문제가 좀 있어서요.”
“갑자기 뭔 문제? 조용히 밥 잘 먹다가.”
“뭐예요, 이은호 씨? 불안하게시리!”
“서, 설마 이제 하늘에서 뭔 소리라도 들은 거야? 계시… 뭐 그런 거?!”
“꺅! 진짜요?! 뭐래요? 우리 다 죽는대요?”
……상당히 호들갑스러운 말들을.
“응? 청년! 그게 무슨 소린가? 우리가 다 죽다니!”
“아저씨! 진짜예요?!”
덕분에 순식간에 일행들에게 둘러싸여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겨우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두 분…… 아니, 모두들.”
“뭔데! 뭔데?!”
“어여 말혀! 각오는 하고 있으니께!”
“그래요! 우리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죠!”
“그러니까…….”
최대한 착하고, 선하고, 순수한 표정으로.
“돈 좀 있습니까?”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