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294)
제294화
벨벳에게 알은 세계였다.
자신을 껴안아주던 이의 온기는 사랑이었고, 마나는 양분이었다.
아직 세계를 부수기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조차 정해지기도 전에.
타종족보다 월등하게 높은 지능을 가진 드래곤이기 때문일까?
‘나는 엄마랑…… 아빠가…….’
벨벳은 자신이 알이었던 순간부터 태어나기까지의 순간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명확한 기억보다는.
순간의 감정이고, 감각이며, 상황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벨벳은 그 순간에 느낀 기쁨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어떻게 잊을까?
비정상적일정도로 알의 온기가 뜨거워지자, 자신이 태어날 수 있도록 차가운 냉기를 부여해주고.
쓰다듬어주고.
마나를 나누어주고.
알에 불과했던 벨벳이지만 그 모든 순간은 기억이 되고 양분이 되며 하나하나 새롭게 벨벳을 형성시켰다.
‘정말 조아…….’
어쩌면 벨벳이 발휘하는 천재적인 재능과 성장력은 그 영향일지도 몰랐다. 드래곤인 사도닉스의 잠재력과 신유성의 재능 그리고 아델라의 천재성이 한데모여 녹아든 것이다.
둥실-
정체불명의 푸른색 액체.
벨벳은 자신을 누군가 하늘 위로 잡아당기듯. 누군가 몸을 잡아당겨 마치 끝없는 바다로 가라앉히듯.
몸이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고, 잠식 되는 감각을 느꼈다.
깜빡.
벨벳은 그 이상한 감각 속에서 잠에 들지 않기 위해 감겨오는 눈을 뜨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노력 끝에 보이는 건 네모난 유리관과 그저 온통 푸른 세상이었다.
‘이거, 어디로 가는 거지…….’
혹여 1억분의 1이라도.
벨벳을 이동하는 중 도시에서 폭주가 일어날까 우려하여, 헌터 협회의 연구원들은 유리관에 마나 냉각액을 채워 벨벳을 넣은 것이다.
그 때문에 액체에 잠긴 벨벳은 튜브가 달린 호흡기를 통해 숨을 쉬고 있었다.
‘졸려…….’
마나 냉각액 때문에 점점 몰려오는 잠속에서 벨벳은 지금의 상황과 스스로를 잊지 않으려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엄마!]벨벳은 자신이 태어난 순간을 기억해냈고.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가족들의 놀란 얼굴을 기억해냈다.
[자, 여기 있는 게 케이크의 재료! 저쪽에 있는 건 조리에 필요한 도구들이에요]정말 재미있었던 스미레와의 요리 수업. 달콤했던 케이크.
[그래. 같이 있고 싶으면. 같이 있어야지. 꼬마들은 더 그렇고.]부드럽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김은아의 손.
[벨벳은 여기 남아야 합니다.]자신을 위해 단호하게 말해준 아델라의 모습.
그리고 자신을.
“넌 내게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진짜 가족으로 인정해준 신유성의 목소리.
덜컹! 덜커덕-
비록 지금은 유리관에 담겨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고 있었지만 벨벳이 있어야 할 장소는 언제나 한곳이었다.
‘벨벳…… 집에 가고 싶어…….’
똑똑한 벨벳은 메이린과 연구원들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마음에 준비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업쓰면 아빠도, 엄마도…… 오르카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를 걱정……. 할 텐데…….’
아직 헤어지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아아-
꾸벅-
주위를 감싼 냉각제의 힘으로 점점 몰려오는 잠의 기운. 벨벳은 정신을 잃고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도 단 한 번도 모두의 모습을 잊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벨벳. 돌아가고 싶어…….’
* * *
모두가 19층을 클리어 한 파티원들은 탑에서 부실로 복귀하는 내내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3개의 파티로 쪼개져 며칠 동안 탑을 공략하는 동안 파티원들은 못 나눈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나오는 대화의 주제는 단연 벨벳.
“중간에 퀘스트가 변경되는 탓에 저희가 가장 느렸군요. 벨벳이 저희를 얼마나 기다렸을지…….”
“맞아요! 후후, 저희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얼른 돌아가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만들어주고 싶네요.”
아델라도 스미레도.
“그러게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은근히 따라오려고 하던데……. 혼자 두고 가니까 미안하더라.”
김은아도.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벨벳한테는 오르카도 있잖아요! 둘이 얼마나 잘 노는지 못 봐서 그래~”
에이미도.
“그래도 생각보다 너무 오래 벨벳을 기다리게 했어. 역시 한번 들를 껄 그랬나봐.”
신유성도 모두 벨벳을 보고 싶어했다. 덕분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질 지경.
띠리릭-
그러나 부실의 문이 열리고.
“벨벳~! 어디 있나요?”
“벨벳?”
스미레와 아델라의 부름에도 부실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뭐야, 밖에서 돌 줍고 있나?”
너무나 조용한 반응에 김은아가 의아한 얼굴로 부실을 둘러보자. 거실에 엎드린 오르카가 복귀한 일행들을 확인하고 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마님…… 자, 작은 주인님이…….”
* * *
도심과 한참이나 떨어진 산 속 깊은 곳. 그러나 잘 깔린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자.
엄청난 높이의 장벽에 사각지대 없이 카메라가 설치된 삼엄한 경비의 건물이 나왔다.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입구에 설치된 보안 설비의 안내에 따라 정체불명의 아이디카드를 제시하는 메이린.
[Check-in…….] [코드 넘버를 확인 중입니다.]띠릭-
[확인 완료.]메이린의 신분이 확인되자 마치 요새 같았던 입구의 철문이 양옆으로 이동하며 차량의 진입을 허락했다.
“……이 건물은 언제 봐도 요새 같군요.”
메이린은 차량을 운전하는 주힘찬의 말에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메이린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옳은 선택을 했음에도 좀처럼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아…….”
결국 메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자 스스로를 안정시키려 했다.
‘……이번 수송은 협회장님도 허락하신 일이야. 어쩔 수 없었어.’
메이린이 지금 후회를 하고 있는 선택은 단 한가지였다. 벨벳이 드래곤 중에서도 이렇게 강대한 마나를 가지고 태어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학생들이 드래곤을 관리하도록 두어선 안됐다.
아무리 신유성이 알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도 이건 살아있는 폭탄을 도시에서 기르도록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너무 정을 붙일 시간을 주었어. 그 시간 때문에 드래곤도 학생들도 더욱 힘들어 하겠지…….’
후우-
이마를 짚은 메이린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들의 반발이 걱정 되셔서 그러십니까? 그래도 이번 건은 협회장님의 선택이신데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주힘찬의 위로에도 메이린은 암흑으로 된 터널을 통과하는 내내 아무런 말도 없었다.
타악-
그렇게 터널을 통과하고 줄을 맞춘 듯 일렬로 지어진 새하얗고 네모난 건물들이 보이자. 메이린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냥…… 나쁜 역할은 익숙하지 않아서요.”
둘에게 찾아온 어색한 침묵.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분의 정적 속에서 주힘찬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꼬마 드래곤의 마나 수치가 정말 1,300만이었습니까?”
1,300만.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이제 갓 태어난 해츨링의 마나라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수치.
“네. 거기다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메이린은 아직 그게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처음 저 드래곤의 마나 수치를 체크했을 때는 저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저 드래곤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너무나 위험합니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그렇기에 메이린은 벨벳을 연구소에서 보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여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해합니다. 탑의 기록에 따르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건 헌터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니까요.”
주힘찬의 위로가 도움이 된 걸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뱉어내던 메이린은 어느새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래요. 저 드래곤에게는 미안하지만 많은 이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 * *
흰색 타일이 깔린 바닥.
정체불명의 기계가 대기 중 마나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감지 레이저를 뿜어내는 건물에서 벨벳은 눈을 떴다.
“이렇게만 보니 그냥 평범한 인간 아이랑 다름이 없어 보이네요.”
“그래도 방금 측정해 본 결과. 메이린 지부장님의 말이 맞았어요. 평범한 꼬마처럼 보여도 마나 수치가 1300만을 넘어갑니다.”
“저런 꼬마가…….”
웅성거리는 소음 속에서는 벨벳을 보며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겁에 질린 얼굴로 피하려는 사람도 있었으며 가뜩이나 바쁜 업무에 일감이 추가되자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도 있었다.
“제대로 힘을 다루지도 못하는데 저 정도 마나를 가지고 있다니…… 이거 겁이 나서 연구소에서 지낼 수나 있을지…….”
“그래도 목에 마나 고리를 채워 억제해두었으니 당분간은 안전할 겁니다.”
그러나 이곳의 그 누구도 벨벳을 가족으로 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부실과 달리 이곳에서 벨벳은 그저 관리해야할 대상이자 실험체 중 하나.
‘캬앙……. 엄마, 아빠…….’
벨벳은 갑작스러운 이별과 모두를 향한 그리움에 고개를 숙였다.
‘보고 싶어…….’
여긴 벨벳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