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380)
제380화
무엇을 베어낸 걸까?
신유성이 손을 가로로 움직인 것만으로 무언가 베였다.
서걱-
거대해진 신하윤은 그저 신유성을 내려다보았다. 신유성이 무엇을 베어낸 지 몰랐다.
“……너, 무슨 짓을.”
하지만 공기를 이루던 물안개가 비가 되어 쏟아지자 신유성을 내려다보던 신하윤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아-”
여긴 현실과 꿈이 맞닿도록 만들어낸 결계 안이다. 이 공간의 규칙은 꿈과 동일하기에 신하윤이 만들어낸 환상은 당연히 실제 물질이 되어 작동한다.
그렇기에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 물안개는 물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신하윤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찢어버리거나 마나의 흐름을 잘라내는 것뿐이다.
“……너, 보이는 거야?”
거대해진 신하윤의 몸체가 신유성에게 불쑥 다가왔다. 불길해 보일 정도로 붉게 충혈된 눈은 신유성과 닿을 듯 가까웠다.
신하윤이 인간을 초월한 마녀 모르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면 신유성은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초감각(超感覺)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을 설명한다고 한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겠지.
신유성은 푸르고 붉은 실들 속에서 마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마나의, 흐름이……. 보여?”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상식을 뛰어난 힘인지는 누구보다 신하윤이 잘 알고 있었다.
“응. 거대하게 덩치를 불려도.”
묵묵히 신하윤을 바라보던 신유성은 차갑게 조소했다.
“겁쟁이의 본질이 보여.”
이젠 그 껍질을 벗겨낼 차례.
신유성은 신하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움직임은 파괴적인 주먹질이 아닌 물이 흐르는 강물처럼 부드러웠다.
“너-”
위험을 감지한 신하윤이 거대한 주먹을 내려쳤다. 바위를 떨어트린 듯 섬이 진동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지만 신유성은 깃털처럼 가뿐하게 막아냈다.
투신류 5장 파류공명(波流共鳴)
신유성의 손이 닿은 부분부터 블랙홀에 삼켜지듯 형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결국 신하윤의 몸이 풍선 인형이 터지듯 펑- 소리를 내며 터지자. 신유성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난 같은 짓은 그만둬.”
모르간의 드레스를 입은 신하윤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래도 내 놀라는 연기. 제법 그럴싸하지 않았니?”
신유성의 마나 공명을 모르는 척 놀란 표정을 보인 신하윤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신유성은 그물처럼 얼기설기 이어진 결계의 형태만 보아도 이게 자신의 마나 공명에 대비한 형태의 결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장난처럼 보여도 조금씩 네 마나를 갉아먹으면 이야기가 다를걸? 아, 미리 말하지만. 결계를 부술 순 없을 거야.”
신하윤은 친절한 설명과 함께 신유성을 복제한 분신체를 대거 만들어냈다.
쾅-!
분신체들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신유성의 자세를 따라 하며 공격을 쏟아붓는 걸 보면 복제품치곤 제법 공격이 날카로웠다.
그러나 마나로 이루어진 분신체들은 신유성이 수도(手刀)로 반월을 그리자 순식간에 안개로 변해 흩어졌다.
“3개의 분신체를 일격으로 없애다니……. 도마뱀의 마나가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겠네.”
신유성은 신하윤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을 모방한 분신체들은 끝없이 쏟아졌지만 신유성은 묵묵히 쓰러트렸다.
신하윤은 글래스하트에 담긴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이용해 싸우니 얼핏 보면 불리한 싸움이다.
‘시간은 내 편이야.’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신하윤이 리스크를 지려고 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승리는 신유성에게 가까워졌다.
신하윤이 마나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승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초감각을 이용한 신유성의 분석이 끝났을 때 신하윤에게 남은 길은 오직 패배였다.
“그렇게 도발해도 소용없어. 실은 알고 있지? 그물처럼 마나를 이어 붙여도 결국 임시변통이라는 걸.”
이제 도발을 하는 건 신유성 쪽이었다.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와 마나의 분석이 끝난다면 결계는 파괴된다. 그때쯤이면 제단에 갔던 동료들도 몰려올 것이다.
“시간은 내 편이야. 결국 동료들이 도착하면 네 패배야.”
분석을 끝낸 신유성이 대치전의 종지부를 찍자 신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네 편이라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곳의 규칙은 내가 정해. 이 공간에서 100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게 현실의 1초라고 내가 정한다면 그게 곧 법칙이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니?”
시간은 절대적인 듯 보이지만 상대적이다. 그게 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꿈의 지배자인 모르간은 현실의 1초를 100년, 아니 영원처럼 느껴지게 할 수도 있었다.
“왜 인간들이 죽음의 역병과 영원한 겨울보다 내가 가진 몽환의 힘을 두려워했을까?”
꿈의 망령이 되어 영원의 시간을 떠돈다면 과연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나약한 마음이 들더라도 설령 죽고 싶어도 모르간의 허락이 없다면 죽을 수 없다.
“용기는 짧지만 절망은 영원해. 객기가 후회로 바뀌는 순간. 그 뒤엔 벗어날 수 없는 나락뿐이야.”
자신의 편만 된다면 신유성은 유능한 체스말이었다. 신하윤은 그 가능성을 믿었기에 신유성을 놔두었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이 끊긴 지금 신유성을 멀쩡히 놔둘 이유는 없었다.
“유성아. 아까 내가 겁에 질렸다고 했지”
공포는 약속이다.
생물의 종의 보존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뼛속 깊이 새겨진 낙인이며 나약한 인간의 마음으론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이다.
공포에 질린 인간은 생존만을 생각한다. 어떤 숭고한 목적도 방향을 잃고, 그 어떤 눈부신 신념도 빛을 잃는다.
“후훗…….”
그러나 그건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마녀에게 그런 본능이 남아 있을까?
“처음 100년 정도는 느꼈던 거 같아. 살고 싶다는 욕망. 나보다 강한 존재에게 느끼는 두려움. 가진 걸 포기해서라도 살고 싶다는 본능…….”
신하윤은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아우로라를 통해 스며드는 모르간의 마나는 마녀의 기억에 잠든 감정들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하지만 500년이 지나면 전부 잊고 말아. 뭘 무서워했는지,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
지금 느끼는 감정의 파도에 비하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목표란 지푸라기에 불과했다.
“그때 남은 감정은 뭘까? 삶에 대한 불꽃같은 열의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어. 남은 건 이미 잿더미뿐이지.”
모르간의 기억과 동화되기 시작한 신하윤의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 100년, 500년, 그리고 셀 수 없는 시간들이 동면에서 깨어나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럼 그 뒤에 1000년을 더 살게 되면 어떨까? 여러 시간 축에 갇혀 지루한 시간을 끝없이 반복한다면 어떨까?”
그러나 모르간은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 모르간의 고통의 시간을 버티며 평안한 죽음보다 강렬하게 원한 게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난 궁금했어. 왜 내 몸에 깃든 모르간의 기억은 그토록 힘을 갈망할까?”
파편에 불과했던 기억들이 온전한 모습을 찾아갔다. 잊었던 해답을 떠올린 순간 신하윤은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정답은 간단했어.”
신하윤은 모르간의 기억을 음미하며 천천히 떠올렸다. 자신이 마녀가 된 순간을, 같은 선택지를 반복하며 미쳐가던 나날을, 주변의 사람이 하나둘 사라져간 외로움을.
“모르간은……. 인류에게 똑같은 경험을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만약 자신이 인류를 지배하게 된다면 절대 죽음을 선물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똑같은 절망을 영원토록 선사할 생각이었다.
“그래.”
신하윤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게 모르간의 기억을 되찾은 신하윤의 드레스엔 아름다운 장식이 수 놓였다.
해신의 저주.
벨벳의 마나.
모르간의 목걸이 아우로라와 하늘섬의 여섯 제단에 이르기까지 신하윤이 준비한 모든 안배는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콰아앙-
대지가 균열되고 결계의 안쪽에서 마나가 뒤틀리며 분열하기 시작했다. 보랏빛 달이 하늘을 가렸고 잔재들이 뒤엉키며 현실과 꿈의 경계가 뒤바뀌었다.
“이번에는 너희 차례야.”
진정한 몽환이 도래했다.
* * *
너무 큰 고통은 인간의 정신을 잃게 만든다. 그러나 이혁은 작열통보다 끔찍하고 물에 빠져 폐가 호흡하지 못하는 것보다 괴로운 고통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신이 알 수 있는 건 그런 고통은 인간의 정신으론 버틸 수 없다는 정답 뿐.
‘그런데…….’
이혁은 눈앞의 잇신을 보았다.
땅에 박아 넣은 검을 부여잡은 채 정신을 잃었지만 무릎은 끝까지 땅에 닿지 않았다. 베리얼의 마기를 정통으로 맞고 정신을 잃는 쇼크가 온 상황에서도 맹세를 지켜냈다.
이미 정신을 잃은 잇신이 들을리 없지만 이혁은 입을 열었다.
“……넌 정신을 잃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네 패배라고 억지를 부릴 수도 있다.”
이혁은 제단에서 빼낸 글래스하트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건 배신이 아니라고, 신하윤이 확보한 마나는 이미 충분하고 흩어진 조각에 남은 건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툭-
이혁은 글래스하트를 잇신의 옆에 던져두었다. 신하윤을 위하는 마음이 아무리 각별하여도 이런 긍지 높은 헌터를 짓밟는 악인은 될 순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네 투지를 지켜본 이상.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실력이 상대보다 뛰어났을지언정, 전투에서 승리했을지언정, 이혁은 잇신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이건 명백한.
“잇신. 너의 승리다.”
잇신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