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0)
0010 / 0777 ———————————————-
3# 종족 선택, 오크(Orc)
3# 종족 선택, 오크(Orc)
그때, 노구덕이 불퉁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이보쇼. 다 좋아. 다 좋은데,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그것부터 설명해 주시오. 난 영문도 모르고 여기 끌려왔다고. 듣자하니 당신이 여기 얘들을 데리고 왔다던데, 당신이라면 알 거 아니오? 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죽다 살아난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아저씨…….”
갑작스런 노구덕의 발언을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신소율의 커다란 눈망울에 처량함이 감돌았다. 어미에게 버려진 아기 사슴이 쳐다보는 것 같아 노구덕은 살짝 마음이 흔들렸지만, 금방 정신을 바로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미안하다. 나도 너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날 봐라. 너희는 한창 때이니 날아다니겠지만 나는 조금 있으면 오십이야. 이런 몸으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아까도 죽을 뻔 했다고. 다시 돌아가면 직장이 있고, 안정된 삶이 있어. 이런 걸 다 포기할 수 있겠냐고? 난, 난 못 해…….”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어쩐지 동고동락한 녀석들을 저버리는 기분이 들어, 끝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노구덕의 내심과는 달리 다른 이들은 모두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가까이 있던 김규식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아저씨, 다 이해합니다. 나라도 그럴 것 같으니까.”
“그래, 고맙다.”
첫 대면은 영 껄렁한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본성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단순해서 그렇지. 그 외에 윤희지, 황기종, 안혜미 등도 비슷한 말을 건넸다.
“…어쩔 수 없죠. 아저씨는 자의로 오신 게 아니니까요.”
신소율은 무척이나 아쉬운 듯,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이 아가씨는 그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정말로 노구덕에게 정이 들었는지, 맞잡은 손을 쉬이 놓지 못했다. 아마 노구덕에게 목숨 빚을 진 것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그렇게 각자의 고별사를 전해 들으며 이별을 준비하는데, 옆에서 초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닙니까? 아직 돌아갈 수 있다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제가 알기로는 한번 이곳 세계로 넘어오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얄미운 목소리는 하태경이었다. 그 뒤를 이어 조금 어색한 표정의 윤희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하지만… 노구덕 씨는 처음부터 외부 인원이었잖아요?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미안한 말이지만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네.”
쿵! 심장이 내려앉은 노구덕은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 드리안을 노려봤다.
“돌아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난 대체 여기 왜 있는 건데!”
“그건 나도 알 수 없지.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서.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건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뿐이야. 임파워링, 그러니까 고유 저널번호를 받았다는 건 스퀘어에 고정되었다는 의미거든.”
“그럼 당신은 뭐야?”
쓸모없는 녀석이 버럭버럭 성질을 내는 꼴이 영 비위에 거슬렸다. 드리안은 입가를 슥 핥으며 이대로 노구덕을 버릴지 말지 고민했다. 노구덕의 저널 정보는 잘 안다. 재능도 없고, 특성도 없는, 쓰레기. 정상적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곳에 올 일이 없었을 터. 하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특수했다.
드리안은 결정했다. 좀 더 관대해지기로.
“당연한 것을 왜 묻나. 스카우터는 고유 번호가 없으니 그럴 수 있는 거지. 고유 번호를 부여받고 시스템의 관리를 받는 건 헌터뿐이야. 그리고 설령 자네가 임파워링되지 않았다고 해도 스카우터가 아닌 자의 차원이동은 나 같은 말단 스카우터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위원회(Committee)라면 모를까.”
“위원회?”
“까마득하게 높은 양반들이지.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도 없어. 만난다 해도 막대한 예산이 소모되는 차원이동을 자네 하나를 위해 쓴다고는……. 글쎄, 자네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나? 턱도 없어. 이보게, 노구덕. 정신 차리게. 자네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알지 않나. 자네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봐야 위쪽은 관심도 없다는 걸. 처지는 동정하네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군.”
“으으윽……. 끄으으으…….”
털썩 주저앉은 노구덕은 답답한 신음을 토할 뿐 더는 말이 없었다. 어쩌면 드리안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기에, 말할 기력조차 쇠한 걸지도 몰랐다. 세상의 생리란 어딜 가도 똑같은 것일까?
모든 기반을 잃고 늙은 몸뚱이만 새로운 야생(野生)에 내동댕이쳐진 사내의 심정을 무슨 말로 위로할 것인가. 주위의 일행은 하나같이 측은하다는 얼굴이었지만, 섣불리 나가서지는 못했다. 어떠한 말로도 지금 노구덕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그나마 친분이 있는 신소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얼른 뒷말이 생각나지 않아 몇 번 입술을 끔벅이고는 다시 꾹 다물고 말았다.
“난 괜찮다. 난 괜찮아…….”
그래도 그 마음만은 전해졌는지 노구덕은 손사래를 치며 일어났다. 슬픔인지 분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눈은 흠뻑 울고 난 것처럼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는 앞이 아른거려 잘 보이지 않는지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그 위원회란 사람들을 만나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수밖에. 시간 잡아먹어서 미안하구만. 하던 거 계속하시오.”
“흠. 건투를 비네.”
드리안은 살짝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건성이 분명한 덕담을 건넸다.
“그럼 계속할까. 어디까지 했지? 아, 재능 교환과 종족 선택이었군. 그래, 사실 이건 재능이 부족해서 드래프트 이후 지명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헌터를 위한 구제 시스템이다. 조금이나마 헌터로서의 적성을 살리기 위한 장치라 생각하면 편하지.”
“다들 자신의 저널 정보는 알고 있겠지? 재능 교환은 가장 흔한 Common등급의 재능에 한해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검술, 창술에 재능이 있는 헌터가 있다고 하자. 어차피 무기를 하나만 쓸 거라면 두 가지의 재능은 필요가 없지. 이 경우 검을 택한다면 창술을 근력이나 민첩 재능으로 교환할 수 있는 거다. 횟수는 단 한 번. 교환 가능한 재능 목록은 배부된 카탈로그(Catalog)에 있으니 보는 게 좋아.”
안 그래도 몇몇 사람들은 미리 나눠 받은 카탈로그를 열심히 훑는 중이었다.
“종족 선택은 양날의 검이야. 저널에 기록된 자네들의 성향, 재능 등을 조합해 스퀘어에 존재하는 특정 종족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니 부담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군. 전신 성형이라 생각하면 쉬울 거야.”
윤희지가 손을 들었다.
“종족을 바꾸는데 인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무슨 소리죠? 성형이라면 전신 박피 같은 건가요?”
“하하. 아직도 현대의 고정관념이 남아 있군. 전신 박피? 그런 미개한 짓은 하지 않아. 메스하나 대지 않고 말끔히 처리되니까 걱정 말게. 자네들이 차원 이동을 했을 때와 원리는 같아. 몸을 원자 단위로 분해해 재조립을 하는 거지. 단지, 조립 방식이 조금 달라질 뿐이야.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은…….”
“스퀘어에는 인간과 비슷한 유사인종이 많거든. 서로 어울리거나 다투거나 하며 살아가지. 그냥 다른 인종정도로 보면 돼. 황인, 백인, 흑인처럼 말이야. 몇몇 종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로 생식활동도 가능하니까. 그런 혼혈들이 많기도 하고. 주의할 점은, 종족 선택을 하면 다시 바꿀 수 없고, 카탈로그에서 종족을 선택하더라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시스템이 판단하면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네. 예컨대 저기 김규식이 엘프(Elf) 같은 호리호리한 종족이 될 수는 없단 소리지.”
마침 카탈로그에서 엘프 종족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던 신소율은, 무엇을 상상했는지 빵 터지고 말았다.
“푸흐흐흐……. 푸흣!”
“뭐, 뭐야? 뭐가 그리 우스워?”
“아니, 아니에요. 엘프가 된 규식 오빠를 상상하니까 너무 웃겨서 그만… 푸흐흡!”
이윽고 뒤늦게 엘프 목록을 본 다른 이들마저 신소율처럼 배를 잡고 웃어대니, 뭐라 화내기도 어려워진 김규식은 작게 씨근덕거리며 애꿎은 카탈로그만 신경질적으로 넘겨댔다.
“자, 설명은 끝났고. 재능 교환이나 종족 선택을 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 있나?”
“저요.”
“종족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드리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든 두 사람, 안혜미와 황기종은 물끄러미 서로를 마주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높이 들었던 손을 슬며시 내린 황기종은 안혜미에게 먼저 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
“고마워요.”
살짝 머리를 숙여 화답한 안혜미는 흥미로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드리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재능 교환과 종족 선택, 둘 다 하고 싶어요. 재능은…….”
“아아. 그건 나중에 듣도록 하지. 공개된 자리서 할 얘기가 아니니까. 원하는 종족을 말해보게.”
드리안이 아니었다면 자칫 자신의 정보를 그대로 술술 불 뻔했다. 안혜미는 아차 싶어 자책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크엘프(Dark elf)로 바꾸길 원해요.”
“어디 보자. 적성은 훌륭해. 좋아. 단, 다크엘프는 정령과 관련된 물건이나 힘에 대해 페널티를 받아. 그밖에도…….”
“대신 밤에도 훤히 볼 수 있고 몸놀림은 더욱 민첩해지죠. 숲에서는 추가 보정이 붙고요. 카탈로그의 설명은 다 읽었어요. 양날의 검이라는 말뜻도 이해했고요. 다크엘프로 해주세요.”
안혜미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듯 똑 부러지게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불운한 케이스였다. 시야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던 백골탑은 궁수에게는 최악의 시험조건이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안혜미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다크엘프 종족의 특성 중 하나인 야간시야(Night vison)는 이번 시험에서 부딪쳤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가 될 테니까.
“흠. 각오가 그렇다면야. 그럼 자네는?”
“저는 우드엘프(Wood elf)로 하고 싶습니다.”
황기종이 선택한 종족은 숲의 마법에 특화된 우드엘프였다. 그는 마법에 재능이 있긴 하지만 특출하다 보긴 어려웠다. 이번 드래프트에서도 꼴찌. 충전된 주문을 꼴랑 한 번 쓰고는 탈진했고, 마지막 결전에서 겨우 힘을 쥐어 짜 한 번 더 주문을 썼다. 윤희지나 최나연에 비하면 재능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
그래서 그는 특화를 선택했다. 우드엘프는 단점도 많지만 장점도 뚜렷한 종족. 황기종은 종족 보정을 받는 숲의 마법을 파고들어 단점을 보완할 생각이었다. 우드엘프의 비전에 치유, 생명 관련 주문이 많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우드엘프라. 적성은 나쁘진 않은 정도군. 자네도 가능하네. 다음은 없나?”
이후로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종족을 바꾼 황기종과 안혜미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선택 자체에 후회는 없지만 어쨌든 인간의 탈을 벗게 되는 것이니까. 드리안은 별로 걱정할 게 없다고 했지만 실제 당사자의 마음은 또 다른 것이었다.
“없나 보군. 그럼 잠시 쉬고 있도록 하게. 지금 한창 여러 클럽들이 자네들의 성적을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테니까.”
“잠깐만! 나! 나도 할 거요. 그거, 종족 선택.”
노구덕이었다. 막 자리를 떠나려던 드리안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반쯤 돌아간 몸을 원래대로 위치시켰다.
“말해 보게.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자네는 엘프(Elf)를 고를 수 없어.”
“오크(Orc), 오크로 할 테니 그리 알고 바꿔 주쇼.”
오크? 드리안은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한 번 후비고 되물었다.
“뭐라고?”
“아, 오크로 한다니까.”
노구덕의 폭탄발언에 귀를 의심한 것은 드리안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카탈로그를 뒤적이거나 헛웃음을 삼켰다.
“에엑? 아저씨! 무슨 소리예요! 오크가 뭔지 알아요?”
“그럼. 카탈로그를 보고 결정한 건데 안 봤겠냐?”
“그거 완전 괴물이라구요, 괴물! 반지의 제왕도 안 봤어요? 얼굴이 완전히 짜부라진 것들인데, 평생 그런 꼴을 하고 살 거예요?”
빽빽 대는 소리가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이 계집애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영화는 나도 봤어. 내가 미쳤냐? 그런 죽상을 하고 살게. 카탈로그 좀 봐. 그건 영화고, 여긴 달라.”
노구덕이 들이민 카탈로그를 본 신소율은 여전히 마뜩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이상하잖아요. 송곳니도 너무 길고, 피부도 초록색이고. 무섭게 생겼어요.”
“설명을 잘 읽어봐. 평소에 송곳니가 그렇게 툭 튀어나와 있으면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 감정 상태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잖아. 남자답고 듬직해 보이기만 하는데 뭘. 내가 지금 못 생기고 잘 생기고 따질 처지야? 일단 살아남아야 위원회든 뭐든 만나러 가지.”
“…그건 그렇죠.”
일행 중 노구덕의 재능과 특성이 공란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자리에서 노구덕만큼 절박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 또한 충분히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신소율은 그의 처지도 고려치 않고 쓸데없는 참견을 한 것 같아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은 있었다.
노구덕은 그런 그녀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열심히 오크 선택의 당위성에 대해서 어필하는 중이었다.
“봐봐. 오크가 생긴 게 좀 그래서 그렇지, 영 나쁜 선택은 아니야. 오크는 정신 공격에 취약하긴 해도 피부가 질기고 단단하대. 그리고 기본적으로 근력 재능이 있다더라.”
“아저씨.”
“또…… 응?”
“아저씨 선택은 존중해요. 근데 이거 한 번 선택하면 바꾸지 못한대요. 나중에 그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
정곡을 찔렸다. 침을 튀기며 설명하던 노구덕은 말을 뚝 그친 채 엄한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오크가 그려진 카탈로그를 봤다가, 신소율의 담담한 얼굴을 봤다가. 그는 지금 심한 내적갈등 중이었다.
오크로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 것이냐, 죽을 가능성은 높아도 인간으로서 살 것인가. 고민은 짧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니까. 이런 거죽이라도 뒤집어써야지.”
“휴우……. 마음대로 하세요.”
가뜩이나 심란한데 옆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신소율이 무척 얄미웠다. 거기다 설레설레 고개를 젓기까지. 복장이 터진 결국 노구덕은 참지 못하고 버럭 성을 냈다.
“아니 근데 이 계집애가! 네가 내 마누라냐! 마누라야? 왜 이렇게 옆에서 살살 긁어대!”
천둥과도 같은 호통에 깜짝 놀랐는지, 한동안 멍해 있던 신소율의 얼굴이 금세 울먹울먹 변했다. 툭 건들면 와앙 울음보가 터질 것 같은 절절한 모습에, 화를 내고도 미안해진 노구덕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태가 이리되자 옆에서 재밌게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무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무언의 압력에 못 이긴 윤희지가 떠밀리듯 앞으로 나섰다.
“소율이도 노구덕 씨를 생각해서 한 말인데, 왜 화를 내세요?”
“커흠, 커흐흐흠. 그게…….”
노구덕은 딱히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말끝을 흐렸다. 대체 딸뻘인 애하고 말싸움이나 하고.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됐어요, 언니.”
“소율아, 너도……. 응?”
신소율을 달래던 윤희지는 무라도 자를 듯, 바짝 날이 선 목소리에 움찔했다. 윤희지의 품에서 벗어난 신소율은 물기가 가시지 않은 눈동자를 시퍼렇게 뜨고는, 요리조리 딴청을 부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노구덕을 노려봤다.
“아저씨.”
“그, 그…… 미안하다. 근데 너도 잘못…….”
“저한테 계집애라고 하지 마세요.”
“…응, 알았다.”
“욕도 하지 마시구요.”
“그, 그래.”
꼬리를 말고 푹 수그린 노구덕을 성난 살쾡이처럼 쏘아보던 신소율은 이내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회장 밖으로 나갔다. 더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때서야 노구덕은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 그리고 묘한 눈길로 쳐다보는 일행들보고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이 나이 먹고 딸뻘인 애하고 무슨 짓인지, 나 원.”
“소율이가 정이 많아서 그래요. 어쩌면 노구덕 씨를 아버지처럼 여겨서 기대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죠.”
“지명이라도 받으면 다 떨어질 텐데 무슨…….”
퉁명스럽게 대꾸하긴 했지만, 노구덕도 딱히 화난 기색은 아니었다.
‘이 녀석들도 다 사정이 있겠지. 멀쩡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곳에 들어와?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여기 왜 들어왔지?’
잠깐 윤희지에 대한 의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됐으니 오크로 해주쇼.”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어쨌든 접수했네. 적성도 괜찮고. 자, 이제 볼일 끝났으면 다들 쉬게나. 아마 오늘 내로 오퍼 목록이 올라올 테니까. 그래도 드래프트 동기인데 서로 못 다한 말이 있으면 오늘 하는 게 좋을 거야.”
드리안은 문을 닫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내일이면 이제 못 볼지도 모르니까.”
===============================
코멘트 남겨주신 분들
woomee9 님 선작 감사드립니다 부디 삭제되지 않기를
聖魔 님 아직까진 재미있다니 더 재미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티렌 님 잘 보시고 또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양산형마법사 님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슈퍼테크닉 님 더 괜찮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