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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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반격
39# 반격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기둥과 벽면. 그러나 그곳으로 걸어가는 노구덕은 어떤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단단해 보이는 벽 앞까지 도착한 노구덕은 입꼬리를 말며 툭하니 내뱉었다.
“걸렸어, 이 자식아.”
아무 반응이 없는 벽에 대고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는 노구덕.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정신이상자로 보일 법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노구덕의 눈은 벽면의 어느 한 지점을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아까 그 트롤 녀석 목을 딸 때 말이야. 상당히 놀랐나 봐? 잘 숨어 있다가 크게 움찔하더라고.”
“…….”
여전히 벽면은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노구덕은 개의치 않고 혼자 떠들어댔다.
“이것 참, 생각지도 못했어. 레귤러에 사람이 숨어있다니… 레귤러는 헌터하우스에서 관리하고 있을 텐데. 아니, 정말 인간이 맞긴 한 건가? 혹시 모르지, 인간형 카름일지도. 정말이지 면상이 궁금하군. 어디 그 낯짝 좀 보여주지 그래?”
“…….”
“어허, 숨바꼭질은 끝났다니까. 끝까지 안 나올 거냐?”
“…….”
“꼭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면… 어쩔 수 없지.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철컥!
트롤의 피를 잔뜩 머금은 흉흉한 오우거클로를 재차 장착한 노구덕은, 정면의 벽을 크게 할퀴려는 듯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칼날이 막 벽을 쪼개려는 찰나, 밋밋하게 펼쳐져 있던 벽면이 물결치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현실적으로 일그러진 벽면 일부가 뚝 떨어져 나오며, 푸른색 망토를 걸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벽에서 떨어져 나온 사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팔을 높이 쳐든 노구덕을 향해 마구 손사래를 쳐댔다.
“아, 아이리스 오너!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엉?”
노구덕도 사내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어쨌든 물어볼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으니까. 그런데, 벽 속에서 나타난 사내의 얼굴 윤곽이 무척 낯익게 느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는 사내의 낯짝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정확히 2초 뒤,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노구덕은 아래턱을 쩌억 벌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너, 넌… 아니, 당신은… 오레돈…?”
그로부터 이름을 호명당한 사내는 중형을 앞에 둔 죄인처럼 목을 길게 늘어뜨렸다. 레귤러에 미리 잠입해 변종 트롤을 만들어내고, 아이리스 오너 노구덕의 암살을 시도한 범인. 그는 놀랍게도 딕툼 헌터하우스의 마스터 오레돈이었다.
설마하니 헌터하우스의 마스터마저 트로이카의 개가 되어있을 줄이야. 노구덕으로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이렇게 요란법석을 떨 일도 아니었다. 헌터하우스로부터 감시되고 있는 레귤러 결계를 뚫고 침입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당연히 그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자가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마스터 오레돈이라면 결계에 초과인원이 출입한 사실을 무마시킬 수 있었고, 또한 트로이카의 수장들과 오랜 세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었으니… 그가 범인이라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노구덕은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헌터하우스의 마스터다. 그런 이마저 수족으로 부릴 정도라니. 새삼 딕툼의 터줏대감인 트로이카의 저력이 놀랍기만 했다.
“…아이리스 오너…….”
“왜 그랬습니까?”
“…살려주십쇼…….”
“나한테 왜 그랬습니까?”
“…….”
마스터 오레돈은 말없이 머리를 수그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노구덕과는 처음 전입신고를 하면서 안면을 텄던 그다. 불과 엊그제만 해도, 탐사 신고를 하며 담소를 나누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이야.
“입 다물고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팔다리를 잘라내서라도 자백을 받아낼 테니까.”
“그런… 뭐, 뭐하는 겁니까?”
“뭘 하긴. 망할 놈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두려는 거지.”
그나마 해주던 공대마저 내던져버린 노구덕은 오레돈이 걸치고 있던 푸른 망토를 억지로 벗겨내고는 미리 준비해왔던 질긴 밧줄로 그의 팔다리를 꽁꽁 묶어버렸다. 한순간에 줄에 엮인 굴비신세가 되어 바닥에 내팽개쳐진 오레돈은 공허한 눈동자로 노구덕을 올려다보았다.
“날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당신 대답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
“…이대로 돌아가면 난 반드시 죽습니다.”
“그렇겠지. 연맹 소속 하우스의 마스터가 레귤러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도 모자라, 리그 소속 탐사대에 위해를 끼치려고 했으니까. 왜, 혀라도 깨물려고?”
“…….”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자살을 결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중요한 증인인 그가 죽어버리면 노구덕도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 그는 오레돈의 뒷덜미를 꽉 붙잡고는 협박하듯이 말했다.
“할 테면 해 봐. 바로 입 속에 재생물약을 들이 부어 줄 테니까. 뭣하면 사지를 몽땅 잘라내고 몸뚱이만 남겨놓을 수도 있어.”
혀를 깨문다고 바로 즉사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혀가 말려 기도를 틀어막지 않는 한, 죽음을 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퇴양난에 빠진 오레돈은 발각된 즉시 자결을 택하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 지금 그의 처분은 오롯이 노구덕의 손에 달려 있었다.
노구덕은 사지가 묶여 비스듬히 누운 오레돈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 그럼 즐거운 심문 시간을 가져 볼까. 말해봐. 누가 시킨 거지? 누가 감히 딕툼의 헌터하우스 마스터를 종놈처럼 부렸을까?”
“…질문에 답하면, 날 풀어줄 겁니까?”
이 와중에도 협상을 하려고 하다니, 정말 어지간히도 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노구덕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안 되지. 중죄를 범한 죄인을 사사로이 놓아준다면 내 입장도 곤란해지거든.”
“으으……!”
절망스런 침음을 흘리던 오레돈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각거리는 소리는 노구덕이 바닥에 글을 적는 소리였다. 그리고 노구덕이 바닥에 끄적여 놓은 글귀를 읽은 순간, 오레돈은 희미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문에 제대로 응하면, 당신은 도중에 놓친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범인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흔히 쓰이는 진부한 멘트였지만, 지금의 오레돈은 그것에라도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바닥에 따로 글을 쓴 거지? 아, 영상수정이 작동하고 있구나!’
그제야 레귤러 탐사에 나서는 탐사대라면 의무적으로 장비해야 하는 영상수정에 생각이 미친 오레돈이었다. 지금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빠짐없이 노구덕의 영상수정에 녹화되고 있을 터. 여기서 노구덕이 그를 놓아준다는 발언을 하면, 그것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영상수정을 폐기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노구덕이 그런 부탁에 응해줄 리 없었다. 오레돈은 사무치는 절망감에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모두 끝났구나.’
어떻게 이 자리에서 벗어나 도망친다고 해도, 저 영상수정이 남아 있는 한 그의 재기는 물거품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재기는커녕 평생 연맹의 추적에 시달리며 불안에 떨어야 하리라. 딕툼의 헌터하우스 마스터로서 영위하던 호사스런 생활이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체념을 하고, 절망에 몸부림친 이후에 그의 머리를 잠식한 것은 지독한 분노였다. 자신의 등을 떠밀어, 끝이 없는 무저갱에 빠트려버린 막심에 대한 격렬한 증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막심! 그 인간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크으으으으으!’
죽어도 혼자 죽지는 않으리라. 물귀신이 되기로 작정한 오레돈은 원한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을 들었다.
“…좋습니다. 이미 막다른 곳에 몰린 몸,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잘 생각했어. 순순히 자백을 한다면, 연맹에서도 참작을 해 줄지도 모르니까.”
참작은 개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인 이상, 남은 것은 참형뿐이었다. 오레돈은 어금니에 힘을 꽉 주며 이를 악물었다.
“아이리스 오너를 믿.고.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으음.”
노구덕은 따로 답하지 않고 바닥에 휘갈긴 글귀만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오레돈으로서는 썩은내가 풀풀 풍기는 그 동아줄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죽어도 다 같이 죽기로 결심한 이상, 더는 거리낄 게 없기도 했다.
“제게 아이리스 오너의 암살을 사주한 자는… 헌터 레인저스의 오너 막심입니다.”
“그렇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었기에, 노구덕은 별반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막심의 밑에 들어간 거지? 헌터하우스의 마스터라면 일개 클럽 오너의 지시를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텐데… 솔직히 의외로군.”
질문을 받은 오레돈의 얼굴이 개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와락 일그러졌다. 노구덕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지시를 받은 게 아니라, 일종의 거래였습니다. 말하자면… 임기 때문이지요. 아아리스 오너도 알다시피, 헌터하우스 마스터의 실적평가는 해당 헌터하우스가 상주하고 있는 도시 오너들 지지도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뒷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계속해서 마스터를 연임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실적이 필요하니, 오레돈을 계속 지지해주는 대가로 이번 일을 요구한 것이리라. 말이 거래지, 실상은 머슴처럼 부려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막심이라… 정확히 그가 무슨 요구를 하던가?”
“아이리스 오너를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탐사 도중의 사고…로 위장해서요.”
“블랙 랩터 때처럼?”
“그, 그건…….”
예기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오레돈은 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며 당황해했다. 그러나 이내 곧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지요. 당시 블랙 랩터 오너가 너무 사리분별 없이 날뛰는 바람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내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어떻게 카름을 조종했으며, 강화시켰느냐는 거야.”
오레돈은 이번에도 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노구덕이 무섭게 치켜뜬 눈을 부라리자 쩔쩔매며 입을 열었다.
“…카름을 조종한 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유혹한 거지요.”
“유혹을 했다고?”
“예. 카르믹스톤(Karmic stone)이라고… 카름들이 환장하는 돌이 있습니다. 그걸 놈들이 먹게 되면, 핵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폭주를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카르마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돌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레인저스 오너에게 듣기로는 우연한 기회에 얻은 물질이라고 하더군요.”
“카르믹스톤……?”
“예에… 우리끼리 부르는 명칭이지요. 아직까지 연맹이나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물질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그 물질을 두면, 알아서 카름들이 이끌려 오게 됩니다.”
오레돈의 설명을 들은 노구덕은 비로소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발동시점은 어떻게 조정했지?”
“원격으로 발동 가능한 충격파 폭탄입니다. 체내에 들어간 카르믹스톤은 서서히 놈들의 핵에 융화되는데, 가벼운 충격을 주면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게 되지요.”
“그건 어떻게 알았나? 카르믹스톤이 더 있는 건가?”
“레인저스 오너가 알려줬습니다. 돌이 더 있는지 그건 저도 잘……. 그의 말로는 이번이 마지막 남은 카르믹스톤이라 하던데… 진위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워낙 위험한 물건이라 그도 빨리 써버리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이후로도 오레돈은 노구덕의 질문에 고분고분 빠짐없이 대답했다. 그가 레귤러에 우글거리는 카름들의 눈을 속이고 심처에 매복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두르고 있던 푸른색 망토, 일명 ‘투명망토’라 불리는 장비 덕분이었다. 그런 장비를 노구덕이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투명망토를 그에게 강탈당한 오레돈은 노구덕의 손에 넘어간 망토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망토를 잃은 걸 정말로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귀한 장비라며, 마치 스스로 장비를 바친 것처럼 어필하기는 했지만. 그의 태도가 변한 이유는 뻔했다. 투명망토를 주고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라는 계산이 섰을 테니까.
그러나 노구덕으로서는 당연한 전리품을 챙긴 것일 뿐이었다.
‘웃기는 수작을 부리는군. 투명망토는 시작일 뿐이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토해내게 해주지.’
노구덕은 그러한 속내를 철저히 숨긴 채, 한결 너그러워진 낯빛으로 오레돈을 대했다. 그것을 자비를 베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그는 더욱 필사적이 되어 묻지도 않은 것까지 술술 불어댔다.
덕분에 대부분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던 노구덕이었지만, 여전히 미진한 점은 있었다.
막심은 어떻게 카르믹스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카르믹스톤이란 미지의 물질은 어떤 경위로 출현하게 된 것일까? 막심이 정말로 두어 개의 카르믹스톤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사용방법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점들은 그대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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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날이 무척 덥네요. 힘든 하루 보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카론느 / 매편마다 떡밥을 투척하면 작가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립니다 ㅠ
은신설야 / 옙 좋은 하루 되시길!
Spriggan / 역시 히어로보다는 악당에 어울리는 주인공이군요..
hohokoya1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ㅎㅎ 다음편 드렸습니다!
가식적썩소 / 항상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누구셧더람 / 코멘트 감사합니다!
레츠고고 / 잘봐주셔서 ㄳㄳ
북치네 /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수[神手] / 그렇습니다… 벽에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콜마 / 작품내 공지가 많네요. 참고하겠습니다
엠파이어3 / 작품내 공지로 올렸다가 폭파하는 식으로 해야될것 같습니다
에보커 / 수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