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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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물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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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걱정이군.”
“뭐가?”
“팔콘쪽 말이야. 어째 돌아가는 판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도 팔자군. 우리 리베르타에, 이레시온에, 솔라리스까지 구원군을 보냈는데 뭐가 걱정인가? 금방 잠잠해 질 거야.”
동료에게 면박을 당한 사내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혀를 찼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분이 계시지 않으니 가슴이 답답하군.”
“검왕께서 폐관하시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잖나.”
“그야 그렇지. 무도에 매진하시는 걸 탓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바깥에 얼굴이라도 비춰주셨으면 좋겠어. 한번 폐관에 들었다하면 너무 감감무소식이니…….”
“하긴. 주기적으로 물자가 보내지니까 안에 계시는가보다, 하는 거지. 특히 요 근래에는… 이크!”
소소하게 잡담을 나누던 두 병사는 서둘러 자세를 바로 했다. 저 멀리서, 차분하고 지적인 인상의 젊은 청년이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리베르타의 행정부 수반인 하태경이었다.
정보부 정문을 지키는 두 병사의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아득한 지위를 지닌 인물이다.
하태경이 십여 미터 가까이 다가오자, 두 병사는 우렁찬 보고와 함께 깍듯한 군례를 취했다.
“행정총감님을 뵙습니다!”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수고하십니다. 정보부장님은 안에 계십니까?”
“예. 뭐라고 전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가지요. 기밀을 요하는 일이라서요.”
“그러시다면야…….”
두 병사가 지체 없이 길을 열자, 하태경은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곤 정보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하태경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두 병사의 눈빛엔 한없는 존경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저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검왕께서 그토록 무(武)에만 매진하진 못하셨을 거야.”
“동감하네. 대단하신 분이지.”
리베르타의 모든 내정을 총괄하는 하태경의 존재는 무척 특별했다. 감찰부, 행정부, 군무부의 장들은 공통적으로 –장이라는 말이 붙지만, 예외적으로 하태경은 ‘행정총감’, 혹은 ‘총감’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간략히 말하자면, 한 나라의 재상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헌터로서의 무력을 포기한 대신, 아예 정치와 처세, 경영 쪽으로 분야를 집중한 하태경의 능력은 수많은 인재들이 모인 리베르타 내에서도 돋보였다. 십 년 간 김정인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리베르타를 일궈낸 그의 능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성격이 차분하고 겸손하여 아랫사람을 대하는 데에도 예의가 있으니, 그 밑에서 일하는 이들 중 하태경을 존경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정보부 정문을 통과한 하태경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위로 올라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해왔다. 그들 모두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 하태경은 어느 커다란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 총감님! 어서 오십시오!”
노크를 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그를 반갑게 맞이한 중년인은 리베르타의 정보부, ‘아르고스(Argos)’의 총책임자인 박철한이었다.
본래 동부의 대형 클럽이었던 ‘클로버(Clover)’의 단장 겸 수석 스카우터 직을 수행했던 그는, 하태경과 마찬가지로 헌터로서의 능력보다 전문 분야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이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를테면, 정보계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아래에서 기별은 받았습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긴한 일이라 들었는데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별로 긴급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전방의 일이 궁금해서 말이지요. 현재 전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글쎄요. 좀 전에 전장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뒤로는 별다른 게 없군요. 이건 보고를 받으셨겠지요?”
“예. 실은 그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꽤나 충격이었거든요. 설마하니 도왕이 이끄는 이레시온 군이 플랑기스의 군대에게 당했을 줄은…….”
박철한의 고개가 동의하듯 끄덕여졌다.
“전쟁이란 게 원래 그렇잖습니까? 섣불리 승패를 예측할 순 없지요. 그래도… 이번 건은 좀 더 면밀히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한 전술과 전력의 차이가 아닌, 초월적인 무언가가 작용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결과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초월적인 무언가… 말입니까?”
하태경이 그의 말을 곱씹듯이 되뇌자, 박철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하. 그저 제 직감일 뿐입니다. 투르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수단을 사용했다든가, 플랑기스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강했을 수도 있겠지요. 뭐, 자세한 건, 전방에서 상세 보고가 올라오면 알게 되겠지만요.”
“그 건 말인데, 저보다 감찰 참모에게 먼저 보고를 하셨더군요.”
“예?”
되묻긴 했지만,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박철한의 목이 비뚜름하게 기울었다. 마치, 하태경의 의중을 가늠하기라도 하려는 듯.
갑자기 분위기가 싸하게 내려앉았다. 마주 앉은 채 고개를 돌린 하태경은 그가 아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살에 노출된 그의 얼굴이 유독 핏기 없이 희게 느껴졌다.
이내, 하태경의 무표정에서 아무런 소득도 건져 올리지 못한 박철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규정대로라면, 정보부로 흘러들어온 주요 정보들은 곧장 행정부를 거쳐 대의회에 보고되어야 정상이다. 여기에 그와 상관없는 감찰부가 끼어든 것은 명백한 월권. 박철한이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음부터라. 첩보계에 몸담고 계신 분답지 않은 말씀이군요. 감찰 참모에게 선보고를 하고 있었던 것, 꽤나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박철한의 이마에 솔방울 같은 땀이 맺힌다. 설마하니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던 하태경이 이토록 직접적으로 일을 거론하며 그를 몰아세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현 리베르타를 양분하고 있는 계파 싸움. 박철한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앞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윤희지 쪽의 사람이었다.
“…그, 그게… 아마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부우웅!
그때, 그의 테이블 위에 놓인 수정구가 요란하게 진동하며 빛을 발했다. 전방지역과 연결된 핫라인이었다.
우우우웅!
두 번째 울림. 잠깐 하태경의 눈치를 살핀 박철한은 조심스럽게 귀에 전송장치를 가져다 댄 뒤, 핫라인을 수신했다.
“…나다. 뭐, 뭐라고?”
급보를 접한 박철한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덕분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던 서류며 자료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어질러졌지만, 핫라인을 쥐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봐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아, 알았다. 마침 여기 행정총감께서 와 계시기도 하니… 그래, 건투를 빈다.”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덧붙인 박철한은 황급히 핫라인을 내려놓았다. 시선을 돌려 하태경을 쳐다보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곤란한 입장을 타개할 수 있는 구실을 잡긴 잡았는데, 그 구실의 크기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났다.
그래도 어쨌든 보고는 해야 한다. 박철한은 긴박하게 말문을 열었다.
“해, 행정총감님! 전방에서 급전입니다!”
“그렇습니까? 흠… 슬슬 때가 되긴 했지요.”
“예, 예?”
“전방에서 뭐라던가요? 솔라리스와 맞붙기라도 했답니까?”
흠칫, 박철한의 표정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졌다.
“그걸 어떻게…?”
“아, 보급은 잘 이루어졌습니까?”
또다시 뜬금없는 화제를 꺼내는 하태경. 그런 그를 앞에 둔 박철한은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땀방울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지독한 오한이었다.
침착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침착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저 말투. 수십 년 간 이 분야에 종사해 온 전문가의 본능이 쉴 새 없이 경종을 울려대고 있었다.
꿀꺽.
박철한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책상에 올려져 있던 그의 손은 어느새 슬금슬금 아래로 미끄러지는 중이었다. 하태경의 기묘한 태도와 말투에서, 위험하고 꺼림칙한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검왕에게 보내는 보급품의 담당자가 바뀐 일이 있었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금시초문이군요….”
꾸욱. 목표 지점까지 도달한 손가락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손자병법을 좋아합니다.”
다시 한 번 꾸욱. 그러나 역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을 아십니까?”
“알긴 압니다만….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지….”
박철한은 필사적으로 안면의 잔떨림을 감추며 평정을 가장했다. 그 와중에 다시 세 번, 네 번을 눌러도 비상 스위치는 반응이 없었다.
하태경은 아직도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박철한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넋두리 같은 말을 이어갔다.
“자화자찬 같지만, 저는 나름대로 이 리베르타를 일구는데 힘을 보탰다고 생각합니다. 십 년 간 아무 말 없이 꾸준히 검왕의 뒷바라지를 해 왔지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 그거야 저도 잘 알고 있지요. 행정총감님의 공헌이 아니었다면 리베르타는 결코….”
“하지만 바깥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오로지 검왕의 이름뿐이더군요. 제 이름을 말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서운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음, 정보부장께 하나 묻겠습니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저들이 진정 리베르타의 국민입니까? 아니면 검왕을 맹신하는 광신도들입니까?”
하태경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덜덜 떨리는 박철한의 눈이 그와 마주친 찰나, 하태경의 소매에서 푸르스름한 섬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수정구를 움켜쥐려던 박철한의 팔목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우아악!”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십시오. 명을 재촉할 뿐입니다.”
박철한은 핏방울조차 새어나오지 않게 깔끔히 잘려나간 팔뚝을 망연히 응시했다. 하태경이 어떻게 이런 솜씨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은 잠시였다. 현실을 자각한 그는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우며 하태경을 노려보았다.
“이 배신자 놈! 리베르타를 팔아넘긴… 크륵!”
독기를 내뿜던 박철한의 눈자위가 허옇게 뒤집어졌다. 힘이 풀려버린 다리가 꺾이며, 혼이 달아난 그의 몸뚱이가 의자에 살포시 묻혔다.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박철한을 끝장낸 하태경은 작게 한숨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체가 되어버린 박철한은 여전히 맞은편 의자에 곱게 앉아 있는 채다. 팔도, 목도… 예리한 날붙이가 베고 지나간 환부에는 여전히 작은 출혈조차 없었다.
“리베르타를 팔아넘긴 게 아니라, 리베르타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검왕 개인에게 좌지우지되는 독재국가도, 사이비 종교집단도 아닙니다.”
박철한의 시체를 방치한 하태경은 천천히 창가 가까이 다가갔다. 이것으로, 당분간 전방에서의 정보는 차단될 터. 어차피 다른 경로로도 보고가 올라오고 있는 이상 완전한 차단은 힘들겠지만, 현재로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팔콘은 미끼. 그가 불러들인 늑대가 진정으로 노리는 먹잇감은 따로 있었다.
“…김정인, 어쭙잖은 신선놀음은 여기까지다.”
어둡게 일렁이는 그의 동공은 드넓게 펼쳐진 도시의 전경을 담고 있었다. 외곽 지역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리베르타의 심장부, 라스바덴의 전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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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이구! 12시 전에 올리려고 했는데 늦고 말았군요 ㅠㅠ
간만에 2연참 기록하나 했는데.. 아쉽습니다.
내일 다시 도전해 보도록 하지요.
슬슬 이놈저놈 본색을 드러내는 마당이니 쓰는 재미가 있는 것 같네요. 하태경이 준비한 수가 뭔지 추리해보시는 것도 소소한 재미일거라 생각합니다. 떡밥은 던져놨으니까요.
즐거운 밤 되세요!
p.s 575화에서 하태경이 행정 참모라 불리는 오류가 있었는데, 총감으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