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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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물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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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루루루~”
이른 아침, 행정부로 향하는 널찍한 복도에서 때 아닌 콧노래가 울려 퍼진다. 발랄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늘하늘한 걸음걸이를 이어가는 여인은 다름 아닌 안세영이었다.
예전이야 표독한 성질머리와 드센 기질로 ‘행정부의 살쾡이’라 불리며 악명을 드높였던 그녀였지만, 김진솔과 살림을 차리고 나서부터는 성미가 참 많이 죽었다. 사람이 아예 변했다고 해야 할까.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책임감을 가지게 된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긴 방황을 끝내고, 헌터로서의 길을 명확히 한 것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봐야 할 터다.
기실 헌터의 재능만 따지자면, 안세영은 오히려 언니인 ‘진홍의 성녀’ 안세희를 뛰어넘는 인재였다. 재능이 사제 쪽에 집중된 언니와는 달리, 안세영은 신성, 투기, 정령, 무투의 재능을 고루 가지고 있었으니까.
과유불급(過猶不及). 안세영의 경우엔 오히려 많은 재능을 가진 것이 독이 된 케이스였다. 이것저것 가지고 있는 게 많다보니 한 길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헌터가 되어버렸다. 정체된 역량은 그 이후로도 발전하질 못했고, 안세희가 1군에서 혁혁한 활약을 보이는 반면 안세영은 2군, 3군을 오락가락하는 입장에 처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 한때는 철없는 아이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슬럼프를 극복하고 제 길을 찾은 그녀는 현 레그나토르를 대표하는 실력자 중 한 명이었다.
뭐, 최근에야 헌터로서의 본업보다는 다시 행정 사무일에 전념하고 있긴 했지만.
팔랑거리는 몸짓으로 행정부 정문에 도달한 안세영은 여느 때처럼 힘찬 인사와 함께 문을 열어젖혔다.
“이야! 좋은 아침! 오늘도 열심히 하자고…… 오…?”
빽! 하고 올라간 하이톤의 음성이 끝에 가선 급격히 잦아들며 기묘한 의문형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라면 시끌벅적하게 아침 인사를 나누고 있을 직원들이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얌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쉿! 쉬잇!”
흡사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 얼떨떨해진 안세영이 눈을 깜박이며 중얼거리자, 근처에 있던 남자 한 명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눈치를 주었다. 문석현이었다.
“세영 씨, 지금 의장님께서 와 계십니다.”
“……?”
안세영의 표정이 더욱 아리송하게 변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노구덕이 행정부엔 어쩐 일이란 말인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노구덕이 온 게 이렇게 분위기를 말아먹을 일이란 말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저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몸을 사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재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한 안세영은 발소리를 죽이며 문석현에게 다가갔다.
“…의장님이 왜요? 감사라도 나왔대요? 우린 털어도 나올 게 없을 텐데…….”
“감사라면 차라리 다행이게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땐, 거의 ‘코드 레드’ 직전입니다.”
“그, 그래요?”
깜짝 놀란 안세영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코드 레드’란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은어로, 노구덕의 심적 격노 상태를 블루 – 옐로 – 레드로 구분지어 놓은 일종의 단계였다.
그중에서도 ‘코드 레드’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떠벌리기 좋아하는 문석현의 말버릇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행정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걸 보면 가볍게 흘려들을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저길 보십시오.”
문석현이 가리킨 곳은 평시에 소피아가 거하는 행정부 수반실이었다. 맑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얼굴들을 확인한 안세영은 안면 근육을 딱딱하게 경직시킬 수밖에 없었다.
노구덕을 비롯해서 소피아, 임유진, 데모나, 신소율, 안세희, 이두식, 도일, 박승찬, 박지현, 헨더슨 등. 구 아이리스의 핵심 멤버들이 총집결해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리스 간부들만 호출하신 걸로 봐서는 레그나토르 쪽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근데 세영 씨는 호출 못 받았습니까?”
“어, 어?”
비로소 정신을 차린 안세영은 무심코 허리춤을 더듬어 작은 수정을 꺼냈다. 비상시 호출 용도로 사용되는 호출석이었다.
이윽고, 반투명한 호출석 한 가운데에 ‘긴급’을 요하는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본 안세영은 하얗게 질린 낯빛이 되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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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아침에 애 보느라고….”
“앉아라.”
“예….”
“세영아, 여기 앉아.”
풀 죽은 얼굴이 된 안세영은 작게 손짓하는 안세희의 옆에 터벅터벅 걸어가 엉덩이를 걸쳤다.
안세영이 착석한 것을 본 노구덕은 한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각생이 도착했으니 다시 한 번 말하겠다.”
“…….”
“닷새 전, 모종의 일로 거울의 숲에 파견된 패터슨 일행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사전에 보고받은 조사단 인원으로는 패터슨, 마리안, 레이나를 포함해서 대략 열다섯 정도. 전력으로는 그리 강하다고 볼 수 없지만, 전원이 블링크 스크롤을 지참했다고 한다.”
“내가 상정한 데드라인은 사흘이었다. 패터슨도 그렇게 말했고. 아무리 늦어도 나흘이면 돌아왔어야 해. 조사단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전원이 블링크 스크롤을 지니고 있었다면 적어도 한둘은 복귀해서 소식을 전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닷새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뒤늦게 합류한 안세영은 힘겹게 숨을 삼켰다. 이제야 왜 실내의 공기가 살 떨리게 무거운지 알 것 같았다. 평소라면 가볍게 한마디를 내뱉었을 임유진, 데모나 등이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도.
바닥까지 침잠한 노구덕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이어졌다.
“내 상식선에서 가정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다. 첫째, 패터슨 일행이 블링크를 무효화할 수 있는 강력한 역장 속에 들어갔을 경우. 이 경우는 그리 확률이 높지 않지. 그런 마력 역장이 있다면 들어가기 전에 감지하지 못했을 리 없으니까.”
“둘째, 치명적인 기습을 받아 단시간에 모두 전멸했을 경우다. 이것도 가능성은 낮아. 한둘도 아니고, 열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스크롤을 찢기도 전에 모두 전멸했다고 생각하긴 힘들다. 레이나나 마리안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녀석들도 아니고.”
“셋째.”
별안간, 노구덕의 어조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마력동결을 당했을 경우다. 십존급… 마력을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강자라면, 단시간에 녀석들의 발을 묶어둘 수 있을 테니까. …가능하겠지?”
노구덕의 형형한 눈길을 받은 임유진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협소한 지역의 블링크 제한 정도라면… 가능해요. 거리의 제한도 있고, 그리 길게는 하지 못할 테지만요.”
마력의 컨트롤에 있어 경지에 다다른 임유진의 확답이다. 머리를 주억인 노구덕은 다시 좌중을 쓸어보았다.
“다들 들었겠지. 물론, 십존급의 강자가 어디 길가의 돌멩이들도 아니고, 말처럼 쉽게 맞부딪칠 수 있는 이들은 아니다. 산중 조사를 나섰는데 뜬금없이 십존급의 강자와 조우한다? 지독히도 운이 없는 경우일 거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뒈지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케이스지. 하지만…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 왜냐하면, 우리는 최근 남부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두 명을 알고 있으니까.”
호출 받은 이들의 낯빛에 긴장감이 역력해진다. 이들 모두는 티렐과 소냐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해도, 남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이다. 자연히, 이어질 노구덕의 뒷말이 예상될 수밖에.
“하유라와 라키오라. 그 연놈들이 거울의 숲에 숨어 있다면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진다.”
노구덕의 음성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분노를 담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의 안일한 대처에 매우 격노한 상태였다.
대체 왜 예상하지 못했단 말인가? 라키오라와 하유라가 군대를 이끌고 사라졌다. 그리고 때마침 이어진 거울의 숲에서의 실종 사건. 왜 그 두 사건을 연관 지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다수의 병력이 숨어들기엔 거울의 숲처럼 적당한 장소도 없을 것인데.
아니… 보통이라면, 그 두 사건이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과민반응일 터다. 그 많은 수의 군대가 단 시간에 동부로 이동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겨우 사람 서너 명 실종된 것 가지고 하유라와 라키오라의 존재를 상기하는 것도…….
‘허울 좋은 변명일 뿐이지. 그런 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만약 패터슨과 레이나, 마리안이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혹시 이미 목숨을 잃었다면…….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노구덕은 끓어오르는 심화를 가라앉혔다. ‘부작용’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인지, 삐죽하게 자라난 송곳니가 여느 때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참자. 지금은 참아야 한다. 감정에 휘둘려선 안 돼. 그러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 보인다. 당장이라도 아무데나 주먹을 휘둘러 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화를 풀 대상은 따로 있지 않던가?
“…조사단을 꾸리겠다. 최악의 경우, 십존 둘… 혹은 그 이상의 전력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니, 인선은 가능한 한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최정예들을 중심으로 할 생각이다.”
“직접 가실 건가요?”
“당연한 소리. 그 녀석들은 가족이야. 멜릭의 얼굴을 봐서라도,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어.”
“그럼 저도 가겠어요.”
“나도 갈 거야. 멍청한 계집애… 이참에 다시는 내 제자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도록 혼쭐을 내주겠어.”
“저도 가겠습니다.”
“나도요.”
임유진, 데모나에 이어 도일, 신소율, 이두식, 안세희 등이 줄지어 거수하며 참가 의사를 밝혔다. 그 면면만 보자면 하유라, 라키오라를 상대하더라도 전혀 꿀릴 게 없는 막강한 전력이다.
마음 같아선 이들 모두를 데리고 가서 거울의 숲을 초토화시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힘들었다. 현 대륙의 정세가 워낙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마음은 고맙게 받겠다. 하지만, 이중 최소한 절반은 여기 남아야 해. 동부가 워낙 시끄러우니, 그 영향이 언제 서부에 미칠지 모른다. 최근 도미니온의 낌새도 심상치 않고… 방심은 금물이야.”
이미 팔콘과 투르 간의 전쟁에 리베르타, 이레시온, 솔라리스가 구원군을 파견하면서 그 불씨가 크기를 더해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서부에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유진이는 소피아를 도와서 이곳에 남아줘.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유진이까지 없으면 소피아의 부담이 커질 테니까.”
“하지만… 알았어요.”
동부에서의 연락이 끊긴 이후부터, 누구보다 패터슨 일행의 안위를 염려하던 임유진이다. 노구덕의 말이 달갑게 다가올 리 없었지만,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강력한 전력을 제외시킨 노구덕은 다시금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 사안은 극비다. 가뜩이나 정세가 예민한 지금, 우리쪽 정예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세력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어. 따라서, 대외 활동이 잦은 사람은 명단에서 제외하도록 하겠다.”
좌중에게 현실적인 제약을 주지시킨 노구덕은 찬찬히 심호흡을 하며 생각해 둔 명단을 정리했다. 잠시 후, 심화를 억누른 노구덕은 몇몇 멤버들과 눈을 맞추며 거울의 숲으로 향할 이름들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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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드디어 구더기가 출격하는군요!
이번 화 올리고, 12시 전후.. 늦어지면 새벽쯤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p.s / 지도, 아가레스트 저널 등은 하루이틀 내로 추가토록 하겠습니다!
p.s / 다른 세력 강함 정도는.. 차후 진행되는 전쟁을 보시면 알 수 있을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