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 명명식(2)
바다 건너 경상도 방귀쟁이가 방귀로 절구통 날리는 것 같은 소리가 세계 최초의 에코십 명명식 하이라이트를 축하해 줬다.
좀 화려하고 우렁찬 폭죽을 쓰고 싶었는데, 선박 품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해서 이 정도로 그친 것이 아쉽다. 그래도 명명식장 분위기는 화개장터가 따로 없었다.
“스파이더그룹의 스파이더탱커스가 발주한 선번 E0001호는 레이디버그, 선번 E0002호는 다이빙비틀로 명명됐습니다. 이 선박들은 이제 시험운항을 거쳐 9월 15일 인도될 예정입니다. 모두 뜨거운 박수로 이 벌레 형제들의 앞날을 기원해 주세요.”
작명센스 한 번 죽이네. 파브르도 한 수 접고 갈 벌레애호가 형 비아는 마냥 좋단다. 어찌나 좋았던지 또 거금을 투척해 주셨네.
“기념촬영에 앞서 격려금 전달식이 있겠습니다. 이 격려금은 선주이신 움베르토 비아 회장님께서 인도를 예정보다 40일 앞당겨준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마련한 것입니다. 회장님께서는 10만 달러를 쾌척하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야호, 오늘 소고기 파뤼, 파뤼 투나잇.
그렇게 명명식이 끝났다. 이제 노다지를 캘 준비를 해야겠지?
스파이더그룹은 여러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대대적인 신조선 발주에 나설 것이라고 만방에 과시한 상태다. 명명식에도 기자 잘 써줄 기자들 잔뜩 불러다 놨으니, 그럴싸한 기자회견 열어줘야지.
강당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카메라 후레쉬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스파이더그룹이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일단 부르니까 찾아온 우리 기자 나리들. 조직개편으로 신설된 홍보팀이 그동안 기름칠 잘 해놨구나 싶다.
“비아 회장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금융위기 여파가 심각한데, 이 상황에서 대규모 신조선 발주계획을 발표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금융위기 할애비가 찾아와도 바다에는 늘 배가 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선박들이 운항경비조차 뽑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우리가 발주하려는 배, 다시 말해 에코십은 다릅니다. 해운업계의 새 문법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금융위기 따위는 고려치 않았습니다.”
“에코십이 기존 배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친환경, 경제성, 효율성을 모두 갖춘 배입니다. 유일조선이 다음 달에 인도할 세계 최초의 에코십이 얼마나 다를지 잘 보여줄 것입니다. 많이들 궁금하시겠지만, 몇 달만 기다려주시죠.”
“스파이더그룹이 발주할 선박들은 유일조선이 건조합니까?”
“그건 발주 주체인 스파이더탱커스와 스파이더벌커스 임원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다만, 우리가 구상한 에코십을 구현할 수 있는 조선사는 현재까지는 유일조선뿐입니다. 물론! 다른 조선사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언제든 환영하는 바입니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텐데, 자금 확보 방안이 마련돼 있습니까?”
“우리 스파이더그룹은 작년에도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흑자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옛말에 연예인 걱정과 스파이더그룹의 자금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한마디 보태자면, 사우스 코리아의 ECA, 그러니까 공적 수출 신용기관들과 많은 대화를 할 생각입니다.”
블라블라.
기자들 몇 명 골라서 질문 몇 개 던져 줬더니, 조사 몇 개 바꿔가면서 아주 잘 하고 있어.
이제 기사로 나오면 해외 언론들이 받아 쓸 것이고, 그럼 또 우리나라 언론들이 번역해서 가져오고, 그럼 또 해외 언론들이……. 무한반복. 여론 조성하기 참 쉽쥬?
“저놈 봐라. 저거 수출입은행한테 돈 달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거 아니야? 허허.”
짜인 각본대로 진행되는 기자간담회를 흐뭇하고 바라보고 있자니, 김태우 본부장이 다가와서 감상평을 내놓았다.
“뭐 중국은 지금 수주 늘린다고 선박금융을 100%까지 해 주기도 한다잖아요. 우리나라도 우리 같은 조선사들 먹고 살게 해 주려면 돈 좀 뿌려야죠.”
“그러고 보면 해운 이것들은 참 사업 쉽게 해. 그렇지? 은행에서 돈 빌려줘, 여차하면 배 팔아서 재미 봐, 얼마나 편해? 허허.”
“아이고, 그 좁은 배 속에 두어 달 갇혀 지내보셔야 그런 소리 안 하시죠. 지금 해운회사들 줄줄이 망하는 거 안 보이세요? 다 업종마다 어려움이 있겠죠.”
“우리는 은행 가서 돈 한 번 빌리려면 아주 굽실굽실해야 하는데, 저것들은 은행들이 귀한 손님 대접해 주니까 배알이 꼬여서 그렇지. 허허.”
해운과 조선은 금융의 막대한 힘이 뒷받침돼야 버티는 업종이다. 그중에서 ECA라고 하는 공적 수출 신용기관의 힘이 절대적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내년에 무역보험공사로 이름이 바뀔 수출보험공사.
조선업은 이들 ECA가 선주들을 얼마나 잘 유혹하느냐에 성패가 달린다. 제 아무리 배를 잘 짓는 조선사라도 그 나라 ECA가 쩐주 역할을 못 하면 수주가 힘들어진다.
반대로 배가 좀 허접해도 ECA가 돈을 퍼주면 선주들이 달려오기도 한다. 지금 중국이 딱 이렇다.
금융위기로 중국 연안에 자리한 그 많은 조선사들이 뒈지기 직전인 상황에 몰리니까 중국 은행들은 돈빨로 해외 선주들을 유혹하고 있다.
조선사 뒈지면 자기도 힘들어지니까 안 죽으려면 돈지랄 해야 한다는 대국적 마인드.
욕이 절로 나온다. 얼마나 욕 나오게 하냐면, 선박금융은 부동산담보대출 같은 거라서 60~70%? 많아야 80%밖에 안 해준다. 중국은? 일단 100%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110~120%까지 돈을 빌려준다.
하오하오, 우리네 조선사에만 발주해주면 돈 잔뜩 빌려주겠다, 이자도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빌려준다, 메이꽌시, 메이꽌시.
한편으로는 더럽게 부럽다. 중국은 조선업 살리겠다고 저렇게 난리를 치는데, 우리나라는 뭐 하고 있는지……. 내후년부터 쏟아질 실업자들 생각하니까 또 뭔가가 욱하고 올라오네.
이 의지를 담아 지금 신나게 떠들고 있는 저 비아 형제를 구워삶아야 해. 저것들도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선박도 대대적으로 발주하고, 재미도 보겠다는 심산이잖아? 우리도 그래.
“쟤네들이 우리나라 돈으로 장사하겠다는 것이긴 해도, 그 돈으로 우리가 먹고살고,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고……. 좋은 일 아닙니까?”
“뭐 그렇긴 하지. 허튼 곳에 돈 쓰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낫지. 근데 수은이나 산은이 돈을 제대로 빌려줄지 모르겠어.”
“해양플랜트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해양플랜트가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죄다 헤비테일이잖아? 달랑 10% 받고 배 만들어야 하는 판이라, 수은도 돈 댄다고 힘들어하더라고.”
“대기업들만 빌려주는 그 짓거리 못 하게 해야죠. 스파이더그룹이 협상 잘 안된다고 하면, 저라도 은행 달려가서 지랄 한 번 할 생각입니다.”
“허허. 우리 살길은 우리 스스로 마련하겠다? 유 이사 있으니까 확실히 든든해. 허허.”
금융위기 터지고 고작 1년이 지났지만,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선박 발주 자체가 거의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 그나마 나오는 물량도 헤비테일이라는 기형적인 결제 조건을 달고 나왔다.
그 전에는 1억 달러짜리 배라면 총 5번에 걸쳐서 20%씩 돈을 받았다. 계약식, 강재절단식, 용골거치식, 진수식, 인도식 이렇게.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말이 안 돼. 그 비싼 배를 만드는데, 계약금 10%만 받고 땡인 것이 말이 돼? 인건비며, 자재비며 한두 푼이 아닌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나머지 90%는 배 다 만들고 나서 받으라는 건데……. 빚내서 배 다 만들었는데, 난데없이 계약 취소되거나 선주가 망해버리면……. 어휴, 생각도 하기 싫네요.”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을 자꾸 받아주니까 그러는 거야. 이 깡깡이 새끼들 진짜.”
전생에선 이 악독한 결제 조건 때문에 쓰러지는 조선사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금융위기 이후 2~3년 뒤부터 조선사들이 본격적으로 망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해.
“그래서 내가 좀 걱정이긴 한데 말이야. 저 스파이더 애들, 짱짱한 회사인 건 확실하지? 배 잔뜩 발주했다가 인수 못 할까 봐 걱정이야.”
“제가 그 많은 해운사들 다 놔두고 머스트랑 스파이더만 주구장창 파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또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자자, 기자회견 끝났으니까 이제 우리 일하러 가자고.”
기자회견 끝나고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비아 형제에게 달려갔다. 명명식 행사와 기자회견까지 끝낸 이후라 지칠 법도 한데, 이 형제들은 여전히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 이렇게 기자회견까지 성대하게 열 수 있도록 지원해 줘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자, 이제 우리 얘기를 해 볼까요? 총 40억 달러짜리 발주 프로젝트. 아주 먹음직스럽습니다.”
밥상은 차려졌고, 이걸 누가 먹느냐 결정할 일만 남았다. 밥상 차려준 사람과 먹겠다고 숟가락 드는 사람의 만남. 우리 달달한 만찬을 즐겨 보자고.
스파이더그룹이 계획한 발주, 무려 40억 달러어치다. 그래서 몇 척? 놀라지 마라. 무려 84척이다!
우리가 다 먹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뭐 다 먹으면 좋지. 캐파도 넉넉하게 남는데.
다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ECA가 뒷받침을 얼마나 해 주느냐에 달렸다. 내가 이렇게 핥고 빨고 말려주면서까지 판을 제대로 깔아놨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 진짜 가만 안 있어. 정 전무 데리고 서울 올라가서 삭발할 거라고.
일단 진정하고 할 얘기나 잘 끝내자고. 우리 해야 할 얘기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이제야 우리가 얘기할 시간이 생겼군요.”
난 지쳤으니까 바로 본론이다. 결정구는 직구지.
“몇 척 주실 겁니까?”
“하하. 그거야 유일조선 하기 나름 아닙니까?”
“여기까지 와서 구성지게 꺾겠다?”
“유일조선하기 나름이라니까요.”
형 비아도 가만 보면 참 닳고 닳은 꾼이란 말이지. 입으로는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 줄 것처럼 하면서, 막상 결정의 순간에선 손해 볼 생각을 하나도 안 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볼 생각도 전혀 없지. 서로 손해 안 보는 짓, 그게 상생이야.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원하는 에코십을 유일하게 건조한 곳이고, 슬롯도 넉넉하게 비워놨습니다. 뱃값은 양보하지 않는 것이 우리 기조이지만, 스파이더그룹이라면 특별히 에누리해줄 생각도 가지고 있구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유일조선이야 아주 잘 해 주고 있지요. 다만, ECA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원. 이럴 바에는 중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 진짜 또 중국 타령입니까? 중국 코인 빨았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우리가 잘 해준다고 할 때 우리 품에 안기라니까요. 진짜 잘 해 줄게.”
“뱃값 차이 나는 것이야 다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찾아왔죠.”
“그럼 계약서 씁시다.”
“하하. 중요한 것이 해결돼야죠. 우리는 은행에서 돈 안 빌려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중국은 지금도 돈 걱정 말라고 그러니, 혹하지 않겠습니까?”
“내일 서울 올라가서 수출입은행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 거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엄살이 그리 심하십니까?”
“하하. 대화가 잘 풀리면 좋겠지만, 안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수은이랑 선박금융 상담만 잘 되면 둘 다 웃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하하. 당연하고 말구요. 우리가 사리사욕만 탐하는 모리배는 아니니까요.”
직구를 계속 커트하는 비아 형제의 요구사항은 분명했다.
수출입은행이 돈을 얼마나 빌려주느냐에 달렸으니, 알아서 잘 하란 뜻. 수은 찾아가서 왜 돈 안 빌려주느냐고 멱살 잡고 싸워야 할 판이구만. 혹시 모르니까 바리캉 준비 좀 해놔야겠어.
금융위기 여파가 휘몰아치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발가락도 기꺼이 핥아줘야 한다. 스파이더그룹이 쏟아낼 물량이 보통 물량이 아니거든.
5만 톤짜리 MR탱커가 40척, 7만 톤짜리 LR탱커가 12척, 18만 톤짜리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이 12척, 7만5000톤짜리 파나막스 벌크선이 20척! 84척이나 뿌리는데, 발가락 정도야 뭐.
“좋습니다. 우리도 여러 채널을 통해서 수은이 선박금융 넉넉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긴 한데, 유일조선이 도와주겠다고 하니 아주 든든하군요. 우리와 유일조선 간에 할 얘기는 선박금융 결과가 나온 뒤에 하도록 합시다.”
어딜 도망가려고. 각서라도 한 장 쓰고 가야지!
천하의 움베르토 비아 브라더 혓바닥이 왜 이리 길까? 여기까지 왔는데 말잔치만 하고는 못 보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