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 승진 선물
“오우! 미스터 유!”
“오! 마이 베스트 프렌드! 미스터 비아!”
스파이더그룹의 비아 형제를 이산가족 상봉을 방불케 하듯 격하게 환영했다.
비아 형제의 이번 방문은 공식적으로는 2년 전에 발주한 84척, 그러니까 총 41억 달러어치에 달하는 슈퍼울트라 발주의 첫 결실을 환영하기 위함이었다.
내년 초부터 인도하는 일정은 올해 말로 당겨졌고, 또 한 번의 협상을 통해 올해 5월로 바짝 당겨버렸다. 돈 안 되는 잔바리들을 빨리 만들어서 내보내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에코십으로 빨리 승부를 보겠다는 스파이더그룹의 의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해운시장의 문법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배를 이리 빨리 만들어준 것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사이에 공치사가 웬 말입니까?”
“하하. 어색한 거 티 났습니까?”
“연기 지도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네요. 오늘 4척 인도를 시작으로 내후년 상반기까지 84척 전부 다 이상 없이 인도할 테니까 돈이나 마련해 두세요.”
“하하. 돈이라면 걱정 마세요. 돈이 넘쳐나서 감당이 안 될 정도입니다.”
“주식시장에서 재미 보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돈 많다고 발주 또 할 생각은 아니죠?”
“어라? 이를 어쩝니까? 우리 미스터 유, 승진했다는 소식에 선물이라고 줄까 했는데 말이죠.”
움베르토 비아의 선물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여기저기서 발주하겠다는 소리들을 어찌나 하는지 수주를 그만하고 싶을 정도다. 또 얼마나 발주를 쏟아낼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구만.
공식행사인 MR탱커 4척 인도식은 금방 끝났다. 한 달에만 대여섯 번씩 열어 재끼는 인도식 행사라, 일도 아니다. 역시나 스파이더그룹은 귀여운 벌레 이름으로 선박 이름을 짓는 것으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제 공식행사가 끝났으니 비공식행사에 들어갈 차례다.
모나코에서 카지노하기 바쁜 비아 형제가 고작 선박 인도식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다. 이제 딱 2척 남은 LNG선은 사줘야 비행기 타고 온 보람이 있을 것이다.
“허허. 스파이더그룹이 그토록 고대하던 에코십들이 대량으로 인도되기 시작했으니, 감개가 무량하겠습니다.”
티타임을 겸해서 진행된 간담회는 아버지가 호스트를 맡았다. 나를 상무에 앉힌 이후로 더욱 회사 일을 멀리하고 있지만, 회장의 의무까지 방기하진 않았다.
“에코십을 찾는 선사들이 더욱 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발한 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획기적으로 연비를 개선한 유일조선의 기술력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아 회장님께서 혜안을 가지고 우리를 선택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허허.”
“사실 우리도 큰 도박을 한 셈입니다. 흡족한 결과가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뛰어난 성능의 선박을 건조한 유일조선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말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서 더욱 기쁘게 다가옵니다.”
“하하. 애들 까까나 사먹으라고 준 돈일 뿐입니다. 빠른 인도에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대인배 비아 회장은 이번 인도식에서도 선박 인도에 감사를 표한다면서 거액의 인센티브를 뿌렸다. 척당 10만 달러씩, 총 40만 달러! 당분간 조선소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가득 찰 것이다.
하하호호 칭찬 품앗이가 한참 이어졌다.
아버지와 비아 회장이 슬슬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외교적 수사는 뱉을 만큼 뱉었으니 이제 진짜 얘기를 해 보자는 눈치일 것이다. 내가 나설 때로군.
“두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유일조선과 스파이더그룹의 우애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 이 자리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회장님께서 다른 일정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셔야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거 안타깝군요. 조선업계의 산증인인 유홍철 회장님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요.”
“회장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눈치껏 말을 받아냈다.
“허허허. 저도 참 안타깝습니다. 해운업계의 떠오르는 신성인 비아 회장님을 앞에 두고 다른 일정을 가야하는 제 마음이 말입니다. 뭐, 아무쪼록 여기 계시는 동안에 즐거움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아, 네네. 그럼 살펴 들어가세요.”
이제 갈 사람은 가고 4명만 남았다. 비아 형제와 김태우 본부장, 그리고 무슨 자리건 항상 자리를 채워야 하는 비운의 신세인 나.
“자, 저녁 먹을 시간도 다 됐으니, 다찌집 가서 대포나 한잔하러 가시죠. 회 좋아하시죠?”
“스시라면 아주 좋아하죠.”
“스시 말고 회요, 회.”
“그게 그거 아닙니까?”
“회는 회고, 스시는 스시입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뭐든 일단 갑시다.”
우리한테는 중요하다. 일본이랑 경기하면 무조건 이겨야 하고, 우리 음식을 일본말로 부르면 혈압 오른다고. 그러니 회를 스시 따위로 퉁치지 마. 그런데 다찌집은 그냥 다찌집이야.
통영의 풍부한 해산물을 만끽하게 해주겠다는 의지로 다찌집에 가자마자 바로 폭탄주를 말았다.
“일단 이걸로 입가심하고 시작하시죠.”
“하하. 우릴 술로 죽일 셈입니까? 어디 누가 이기나 함 달려봅시다.”
폭탄주가 두 잔씩 돌았을 때, 동생 비아가 슬슬 입질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LNG선 다 팔아버리면 우리는 뭘 먹으라고 하는 겁니까?”
“다 팔기는요. 무려 2척이나 남아있는데요. 우리 비아 브라더한테 팔려고 아껴둔 겁니다.”
“무려 2척이라뇨. 고작 2척이지. 우리가 LNG운송시장 진출하려는 걸 알면서도 그런 겁니까?”
이 자식이. 술이 약한가? 폭탄주 고작 2잔 마셔놓고 이리 아쉬운 소리를 한단 말이야? 안 봐도 LNG선 가격 깎아보려는 술수일 것이다. 귀여운 놈 같으니.
“본부장님. 스파이더그룹이 LPG를 넘어 LNG시장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한답니다. 조언 좀 해 주시죠.”
“허허. 뭐 조언까지야. 스파이더그룹의 지금까지 행보를 지켜본 결과, LNG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봅니다.”
김 본부장의 점잖은 말에도 동생 비아는 컨셉을 바꾸지 않았다.
“당연히 두각을 드러내야죠. 그래서 이번에 LNG선 잔뜩 인수해서 화끈하게 시작해볼 생각이었는데……. 유일조선, 실망입니다.”
“허허. LNG운송시장은 아시다시피 개발 프로젝트와 연계돼 있어 장기운송계약이 대부분입니다. 또 다루기가 쉽지 않아서 아무한테나 장기계약을 맺질 않아요. 그래서 스팟시장에서 몇 년 구르면서 노하우를 익혀야 합니다. 스팟시장에서 굴리기로는 2척이면 충분합니다.”
“2척이면 충분하다니요. 못해도 4척은 인수하려고 돈도 넉넉하게 준비했는데요.”
“그럼 2척을 좀 비싸게 사주시면 되겠군요. 허허허.”
“…….”
귀여운 놈. 폭탄주나 마저 마셔라.
“자자, 우리 에마누엘레 비아 형제께서 우리 LNG선을 비싸게 사주시겠답니다. 기쁜 마음으로 건배하시죠!”
“아, 진짜.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뭘 또 그렇게 몰아갑니까?”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협상해 보겠습니까?”
형 비아가 동생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이놈 새끼야. 너는 아직도 유일조선을 모르냐? 그렇게 악착같이 빼먹으려고 해봐야 당할 사람들이 아니라니까. 유일조선을 상대할 때는 늘 대인배의 자세로. 오케바리?”
“아, 진짜. 그런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해도 되잖아.”
“하, 이 답답한 놈 좀 보소. 이렇게 얘기하면서 내가 대인배라는 걸 은근슬쩍 알리는 거라고. 이런 기본도 안 돼 있는 놈이 무슨 사업을 하겠다고. 쯧쯧.”
“우리 비아 형님이 대인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동생 그만 갈구고 LNG선 얘기나 합시다.”
세 번째 안주가 나왔을 때가 돼서야 LNG선 매각에 대한 얘기가 시작됐다. 일단 지르자.
“척당 2억2000만 달러. 2척이니까 4억4000만 달러.”
“하하. 우리 사이에 뻥카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냥 솔직하게 진짜 가격을 얘기해 보세요. 최대한 맞춰드릴게.”
좀 비싸게 불렀더니 대번에 태클이 걸렸다. 여우 같지만 곰인 동생 비아보다 곰처럼 보여도 막상 여우인 형 비아가 더 상대하기 어렵다니깐.
“그럼 2억1500만 달러에 가져가세요. 다른 곳에도 다 이 가격에 팔았습니다. 네고 금지.”
“그렇다면 우린 2억1000만 달러를 불러야겠군요.”
“네고 금지라니까 기어코 네고 치는 건 무슨 심보입니까?”
“하하. 우리가 선물을 준비했다는 걸 잊지 않으셨죠?”
“얼마나 비싼 선물이기에 뱃값을 그리 후려칩니까?”
“우리와 유일조선이 백년해로할 수 있는 선물이라면 척당 500만 달러씩 깎는 것 정도는 익스큐즈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궁금해 죽겠으니까, 그만 뜸 들이고 말씀해 보세요.”
선물이라고 해서 추가 발주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기대감에 폭탄주를 원샷 때렸다. 크으, 시발. 누가 소주를 이리 많이 부었을꼬.
형 비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선물보따리를 풀어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총 3가지입니다.”
“아따, 많이도 준비하셨네.”
“우리가 발주한 84척은 2014년 상반기면 다 인도됩니다. 우리가 고작 그걸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죠. LR탱커와 VLGC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선대 확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2015년 납기를 생각하고 있으니 아직 여유가 꽤 있죠.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렇지. 스파이더그룹이라면 미친 발주를 보여줘야 정상이지. 오케이, 그건 접수했고. 다음 선물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선물은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선물도 미래의 일 아닙니까?”
“1~2년이 아니라 5년 정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라는 뜻이죠. 이번에 일본 원전 폭발로 전 세계가 다 난리가 났습니다. 원전과 계속 함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LNG 수요가 폭증하고 있죠.”
“그렇죠. 나 움베르토 비아는 앞으로 두 흐름의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는 해상 유전과 가스전 개발이요, 또 다른 하나는 신재생에너지 확산입니다.”
잘 보긴 했다만, 해상유전 개발은 못 들은 걸로 하겠어.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었다가는 뒈질 것이 뻔하니까.
“우리는 해양플랜트에 관심이 없습니다.”
“해양에너지개발에 해양플랜트만 필요한 것이 아니죠. 해양플랜트지원선, 셔틀탱커 등등 필요한 선박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스파이더그룹이 그쪽으로 진출해 보겠다는 겁니까?”
“3년 내지 4년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일조선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당연히 발주를 하도록 하죠. 유일조선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3~4년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게 두 번째 선물입니다.”
살짝 솔깃하네. 해양플랜트지원선은 유럽이 꽉 쥐고 있으니 관심 없지만, 셔틀탱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셔틀탱커라…….”
“해양플랜트지원선은 언급도 안 하는 걸 보니 셔틀탱커에 관심이 있나 봅니다? 셔틀탱커가 해상에서 원유 받아서 옮기는 것이니까 기술개발 좀 하셔야 할 겁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세 번째 선물은 신재생에너지랑 관련 있으니까, 풍력?”
“빙고! 역시 미스터 유입니다. 하하.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유망하다 싶은 게 해상풍력발전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풍력발전설치선 같은 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 시장 한번 만들어봅시다.”
이 새끼 봐라. 귀가 마구 펄럭거리게 만드네.
재작년, 그러니까 금융위기의 잔불로 후끈거렸던 그때, 우진조선이 세계 최초로 해상풍력발전기설치선을 수주했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한 적이 있다. 작년엔 순양중공업도 수주에 성공하면서 해상풍력발전기설치선이 미래 먹거리니 뭐니 시끄러웠었지.
호들갑과 달리 그 뒤로 더는 발주가 나오지 않았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좋은 명분이라도 돈이 안 되면 메이드가 안 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에서 원전이 폭발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으니, 신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풍력 그거 괜찮을 것 같단 말이지. 비아 이놈, 역시 예사로운 놈이 아니야. 그래도 덤덤한 척, 잊지 말자고.
“뭐, 나쁘지 않은 제안입니다. 셔틀탱커가 됐건, 해상풍력발전기설치선이 됐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건 즐거운 일이죠. 다만, 그걸 개발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알고 있죠?”
“그럼요. 우리도 당장 진출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이제 막 에코십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거 본전 뽑으려면 한참 달려야 합니다. 우리의 제안은 말 그대로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장기 프로젝트를 우리랑 함께 할 테니까, LNG선을 싸게 달라?”
“하하. 역시 미스터 유는 척하면 척이에요. 서로서로 좋게좋게 갑시다. 폭탄주 한 잔 더 말아드려?”
“폭탄주 받고! 첫 번째 선물 얘기를 더 해 봅시다. 그래서 84척 다 받고 나면 또 얼마나 발주할 생각입니까? 당연히 우리한테 발주할 생각이죠?”
“싸게만 만들어준다면 100척이라도 못 발주하겠습니까? 하하.”
“그럼 이거 원샷. 콜?”
“콜!”
그제도 아재들한테 끌려가 과음했는데, 오늘도 과음이구만. 100척 발주하겠다는데 어찌 안 마시리오. 간아,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