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 미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역할 수 없는 속쓰림이 밀려왔다. 혓바닥을 빡빡 닦고 잤는데도 밀려오는 이 역한 냄새까지.
헛개나무 추출물이 쥐똥만큼 들어있는 숙취해소제 백날 마셔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하하. 미스터 유! 오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출근했더니, 스파이더그룹 비아 형제가 쌍둥이마냥 서서 내 상태를 비웃고 나섰다. 이 이태리놈들은 어제 그렇게 마시고도 멀쩡하다니. 피자의 힘이 무섭긴 무섭구나.
“새벽까지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잠을 못 자서 그렇습니다.”
“밤새 변기 붙잡고 소리 지른 건 아니길 바랍니다.”
개새끼. 예리하네. 아, 어제 너무 힘들었어.
아무리 속이 부대껴도 어제 나누던 얘기는 마무리를 지어야지.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몇억, 몇십억 달러짜리니까 더더욱.
“자, 해장도 할 겸 달달한 카푸치노 한잔하면서 담소나 나누시죠.”
“그럽시다. 미스터 유는 말로만 떠드는 건 안 좋아하잖아요? 오늘 중으로 MOU 쪼가리라도 하나 쓰고 가야지요.”
“잘 알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오늘 뭐라도 안 쓰면 여기 못 나가는 걸로 알고 계십쇼.”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된 회의는 북적북적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어제 다찌집 회동에 참여한 4인 외에도 양측에서 문서작업에 참여할 실무진들까지 참여했기에.
오늘 사인해야 할 것이 많다. LNG선 매매계약서는 물론이고, 조만간 대대적으로 발주할 선박에 대한 슬롯 예약 계약에, 셔틀탱커와 해상풍력발전기설치선 개발을 위한 MOU까지. 이게 다 얼마짜린고.
“자, 17만4000CBM급 LNG선 2척. 납기는 2012년 3월까지. 맞습니까?”
“네.”
“척당 2억1000만 달러, 총 4억2000만 달러에 매각하는 조건. 맞습니까?”
“좀 더 주면 좋구요.”
“하하. 미스터 유가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입니다.”
“미안합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시죠.”
스파이더그룹이 LNG선을 사러 왔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바로 넘어갔다. 중요한 건 선물의 크기니까.
형 비아 회장이 선물 포장을 시작했다.
“우선, 셔틀탱커와 해상풍력발전기설치선 협력에 관한 것은 양 사가 긴밀히 협력하며 시장 진출을 도모한다 정도로 하시죠?”
“에이, 왜 이러실까? 스파이더그룹이 신설할 법인이 유일조선에 해당 선박을 발주한다는 문구가 들어가야죠. 유일조선은 발주사가 요구하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는 문구도 들어가면 되겠군요.”
“하여간 미스터 유는 뭐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군요.”
“우리 회장님께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서 사업 얼렁뚱땅했다가는 기둥뿌리 뽑히는 거 순식간이라고 하셨죠. 배운 대로 할 뿐입니다.”
“뭐, 좋습니다. 어차피 우리도 유일조선을 믿고 다시 한번 도박에 나서기로 한 것이니까 한 번 끝까지 가 보죠. 대신 우리가 세울 법인에 유일조선도 참여하면 좋겠군요.”
“지분 투자? 뭐 까짓것. 콜!”
오케이. 선물 2개 포장 끝냈고. 이제 남은 건 첫 번째 선물 포장이다.
“그럼 2015년 납기로 준비하고 있다는 발주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미스터 유가 또 광분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확답할 수 있는 건 납기와 선종별 발주 척수뿐입니다. 선가는 본 협상에 들어가서야 논의될 것이며, 계약서가 아니라 슬롯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의향서이니까 언제든 파기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제가 또 언제 이런 걸로 광분했다고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당신 입에서 튀어나온 침만 몇 배럴은 될 겁니다.”
“거 참. 로열제리 세례 받았으면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하하. 그래서인지 제 피부가 좋아진 것 같습니다. 자, 의견에 동의했으니, 바로 진행하죠.”
두근두근.
이번엔 몇 척이나 쏟아낼지 기대된다. 지금까지 스파이더그룹이 우리에게 발주한 선박만 86척. 100척 채우자니 많이 아쉽다. 그럼 200척 채웠으면 좋겠군.
“우리의 주력은 벌크선과 탱커입니다. 저번엔 벌크선도 유일조선에 발주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그건 이해합니다. 그냥 중국에 발주하세요. 우린 죽어도 그 가격으로 벌크선 못 짓습니다.”
“에코십이 아닌 건 아쉽지만, 중국 조선사에서 제시하는 가격이 너무 섹시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향후 유일조선에 발주할 선박은 탱커만입니다. 이건 내 동생 에마누엘레가 설명하겠습니다. 아침부터 말을 많이 했더니 입이 아프군요.”
식전행사가 참 번거롭구만. 이태리놈들도 성질 급하다더니만, 이럴 때는 쿠션 오지게 먹여요.
동생 비아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얘기하는 탱커에는 원유운반선, 정유운반선은 물론이고, LNG선과 LPG선도 포함됩니다. 오해 없길 바랍니다.”
“자꾸 뜸을 들이면 오해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럼 바로 말씀드리죠. 스파이더그룹의 주력사인 스파이더탱커스는 원래 MR탱커를 전문으로 했습니다만, 최근 선박 대형화 열풍으로 LR탱커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휴우, 일단은 참자고.
“그래서 정유운반선은 주력을 MR탱커에서 LR탱커로 전환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MR탱커도 발주합니다. 다만, 유일조선이 MR탱커 같은 작은 배까지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LR탱커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저 새끼를 때려야 하나? 딱 세 번까지만 참자.
“음, 그리고. LNG선은 유일조선의 충고를 받아들여 2척으로 실전경험을 쌓을 생각입니다. LPG선은 이미 노하우가 충분하니 적극적인 발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입니다. LNG 수요증가는 자연스럽게 LPG 수요증가로 이어지니, LPG선 시장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냐. 세 번까지 참았다. 한 번 더 뜸 들이면 그땐 네놈 옷에다 토해버릴 테다.
그러나 그럴 일이 일어나지 못했다. 김태우 본부장이 결국 못 참고 마이크를 움켜쥐었기 때문에.
“비아 본부장님. 나나 유 상무나 다 알만큼 아는 사람들입니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일정을 생각하면 여유 부릴 시간이 없어요.”
“아, 그래요. 습관이 되다 보니까 말이 많아졌습니다. 뭐, 그래서 마무리를 하자면, LPG선 시장도 역시 대형화 흐름을 타고 VLGC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에 따라-”
뚜둑.
이건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인가.
다행히 형 비아가 먼저 나섰다.
“동생아. 너, 저기 가서 커피나 더 마시고 와라. 듣는 나도 지겨워 죽겠는데, 이분들은 오죽하겠냐?”
“아니, 일단 우리가 왜 발주를 하려고 하는지 상황 설명은 해야지. 아까 미스터 유가 하는 말 안 들었어? 얼렁뚱땅하다간 기둥 뿌리 뽑힌다고.”
“아유. 그런 건 벌크선 발주할 때 중국놈들 앞에서나 그렇게 하라고. 이 사람들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니깐. 누구 닮아서 저래 고집이 센지 몰라.”
비아 형제의 티격태격을 듣고 있으니, 요동쳤던 마음이 진정됐다. 이젠 형 비아가 하는 얘길 얌전히 들으면서 박수나 쳐야겠다.
“자, 그래서 우리가 발주하려고 마음먹은 것들은 LR탱커와 VLGC입니다. LR탱커는 30척! VLGC는 20척! 도합 50척! 어떻습니까? 하하.”
짝짝짝.
우리 회사를 비추는 저 뜨거운 태양처럼 아름다운 한 마디였다. 가히 앙코르를 외치고 싶을 정도다.
“워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스파이더그룹은 결코 비싼 가격에 발주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 해서 30억 달러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건조계약서를 쓰게 될 2년 뒤에는 뱃값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겠죠?”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합니다.”
30억 달러라는데, 다른 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이 사랑스러운 새끼들! 저번에 41억 달러, 이번엔 30억 달러. 진짜 알랴뷰 소마치다, 이 새끼들아.
***
독일 탠저린펀드 파산으로 날아간 계약을 메운답시고 LNG선 8척을 주인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건조한다는 미친 계획을 실행시켰다.
총사업비 1조6000억 원짜리 프로젝트. 주인 못 찾으면 난 전생에 이어 현생에서도 또 망할 운명이었다.
예상대로 일본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고, 역시나 원전도 펑하고 터져버렸다. 전 세계 LNG선들은 일본으로 달려들었고, LNG선 운임은 대지진 이전보다 무려 2배나 뛰었다.
일단 LNG선부터 확보하자는 투기성 발주가 꿈틀거리는 지금, 무려 1년이나 빨리 새 선박을 받을 수 있다는 유일조선으로 돈 많은 해운업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얼마나 황홀한 광경인가!
미친놈 소리를 들으며 진행시킨 LNG선 8척은 그 자체로 2000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안겨줬고, 곁다리로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선물 폭탄을 투하하며 하얗게 불타올랐다.
“하하하.”
“허허허.”
“하하하.”
아버지 호출에 달려간 회장실에서 우리 세 가족은 그저 웃기만 했다.
“넌 제정신이 아니야.”
“하하하.”
“아주 아들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허허허.”
“그 어떤 말도 칭찬으로 밖에 안 들립니다.”
“하하하.”
머지않아 통영 벽방산의 유씨 일가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르겠다.
“아들. 이 모든 걸 다 예상했던 거야?”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예상하겠습니까? 우직하게 밀어붙인 걸 하늘이 도왔다고 봐야죠.”
“아무리 그래도 LNG선 사겠다고 그 몇 배나 달하는 돈을 주고 발주를 해? 넌 이게 이해가 되니?”
“우리의 자랑거리인 에코십의 위력을 맛보고 싶은 해운사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 잘 했어. 우리 아들 최고야!”
내 말이라면 메주로 콩을 쑨대도 믿을 어머니의 한 마디가 결론이다. 내가 잘 한 결과다. 후후.
솔직히 이 결과가 믿기지 않았다. 모든 초대손님이 떠나고 나서 변기에 앉아 골똘히 생각해본 결과, 결론은 하나였다.
“그래서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 이거야?”
“맞습니다. 에코십의 위력, 그 위력을 알면서도 우리 캐파가 꽉 차서 발주하지 못하는 초조함, 거기에 정상발주보다 1년 빠르게 인수할 수 있는 LNG선의 존재. 이게 딱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대흥중공업도 에코십 건조하잖아?”
“그것도 우리 기술 아닙니까? 맛집의 옆집도 장사가 잘 되지만, 결국 사람들은 맛집으로 몰리기 마련이죠. 아! 그러보니 대흥중공업의 덕도 좀 봤네요. 대흥중공업이 에코십의 성능을 널리 알려줬으니까요. 그럼 사박자네요.”
“허허허. 살다살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런 경우를 두고 대박이 났다거나, 로또가 터졌다고 하는 것이죠.”
“허허. 그래서 다 해서 어떻게 되는 거냐?”
“LNG선 8척은 총 17억1000만 달러에 팔았습니다. 아무리 박하게 잡아도 10% 이상은 남습니다.”
“허허. 미쳤구나 미쳤어. 그리고 또?”
“크게 놀라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또 쓸데없는 소리!”
네 업체로부터 무지막지하게 뜯어냈다.
말이야 뜯어냈다고 하지만, 억지로 발주하라고 한 적 없다. 오로지 그들이 선의로 엄청나게 발주했을 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LNG선 운임이 뛰어오르고 있느니, 그들도 절대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선종별로 말씀드리자면, LNG선 7척을 더 받았고, 2만1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 둘 다 LNG추진선으로 건조합니다.”
“에코십 디자인 적용되는 거지?”
“그럼요. 우리 선박은 모두 다 에코십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자동차운반선 2척, VLCC 4척, VLGC 26척, LR탱커 30척, 마지막으로 머스트라인의 중소형 컨테이너선 교체 프로젝트, 이건 대략 70척 정도 예상합니다. 그럼 다 해서 159척입니다.”
“돈으로는?”
“이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니까 그저 추정치입니다. 대략 131억 달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가는 협상과정에서 최대한 방어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하하하.”
또다시 회장실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넌 제정신이 아니다. 허허.”
“아, 거 참. 칭찬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니까.”
“아니, 당신은 이 결과가 맨정신으로 받아들여져?”
“말 한마디를 해도 품위와 체통을 지켜야지. 어째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그러나 몰라. 그래 가지고 사돈이랑 제대로 얘기라도 하겠어?”
“응? 사돈이라니?”
“연성이 얘. 이 의원 딸이랑 잘 지내고 있다잖수. 좀 아들 일에 관심을 가져. 허구한 날 골프나 치고 있으니 애가 뭐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아, 그래? 이놈 자식이 벌써 그리 된 거야? 이 의원 딸이랑 만나는 건 알았는데, 거기까지 얘기가 됐는지는 몰랐네. 허허허.”
할 말은 많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왜 대화가 그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홧김에 결혼해 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