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 빨아먹을 일만 남았다
국제그룹 정원희와 담판을 짓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 멀리 유럽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로 담판 결과를 전달하지 않았더니, 역시나 방심하지 않았더라. 김태우 본부장 말이다.
머스트라인이 국제해운을 얼라이언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김 본부장의 연락을 받기 무섭게 시황분석팀으로 달려갔다. 이 결과가 다른 선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인해야 하니까.
밭을 잘 갈았고, 비싼 비료도 듬뿍 뿌렸다. 국제해운에 빌려줄 메가 컨테이너선 20척을 짓기 위해 많은 돈을 때려박았으니, 이젠 투자금 회수에 나설 차례다.
국제해운한테 용선료 받아서 투자금 회수할 생각 아니었냐고? 쥐꼬리만한 할부금을 10년 동안 나눠 받아서 언제 집 사고 땅 사고 빌딩 사겠어. 투자금 이상 가는 수주로 뽑아내야지.
누구한테? 아직 메가 컨테이너선이 없는 선사들한테!
내가 시황분석팀에 달려간 건, 그걸 가늠해 보기 위해서이다. 유일조선의 국정원이자 CIA는 이미 분석과 전망을 끝냈을 것이다.
“팀장님! 국제해운의 머스트라인 얼라이언스 가입이 확정됐습니다.”
“와우!”
“그게 끝입니까?”
“하하. 그럼 메가 컨테이너선 20척 수주도 확정된 것이죠?”
“그렇죠. 뭐, 굳이 따지자면 수주야 진작 확정됐었고, 그 선박들 용선처가 결정된 것이죠.”
“이러나저러나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죠. 또 이렇게 빅딜을 성사시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무님은 손만 대면 대박을 터트리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윤두병 팀장 입에서 칭찬이 줄줄 나온다. 이거 회사 다닐 맛이 아주 달달하니 좋구만.
3초 정도 달콤함에 취해 있다가 바로 정신을 차렸다. 난 여전히 배가 고프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국제해운 말씀이시죠? 뭐, 이제 술술 풀릴 일만 남았죠. 회생의 키를 쥐고 있는 산업은행이 얼라이언스 가입이 확정되면 자금지원하기로 했으니까요.”
“다른 컨테이너선사들 말이에요.”
“네?”
“국제해운이 머스트라인과 손을 잡았으니, 다른 곳들도 가만 안 있을 것 같은데요.”
“아, 다른 얼라이언스들 행보 말씀이시죠?”
윤 팀장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우리가 잡아당긴 방아쇠로 인한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는 느낌이다.
“지금 구도는 전과 마찬가지로 4파전입니다. 새로 생긴 얼라이언스 2개, 그러니까 머스트라인이 주도하는 얼라이언스, CMM과 중국 선사들의 얼라이언스. 이렇게 있고, 기존 얼라이언스인 G6와 CKYHE, 이렇게요.”
“4파전이 유지되지는 않겠죠?”
“맞습니다. G6와 CKYHE에서 국제해운이 머스트라인에 붙었고, 중국 선사들하고 에버라인이 CMM에 붙었으니까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헤쳐모여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헤쳐모여라……. 혼동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겠죠?”
“이 빌어먹을 시장은 해운사들이 혼란스러워야 우리가 재미를 보는 구조 아니겠습니까? 하하.”
윤 팀장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행복한 웃음으로 전환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슬슬 일감 확보 걱정을 해야 할 시점에 호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수주로 2016년까지 일감이 꽉 찼지만, 수주하는 속도보다 선박을 내보내는 속도가 더 빠르다. 거기다 순양중공업이라는 초대형 공룡까지 삼켰으니 빡세게 수주활동에 나서야할 때이다.
이 때 재개된 선사들의 합종연횡은 복이 굴러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머스트라인의 도발로 시작된 1차 치킨게임은 컨테이너선 업계를 4파전 구도로 재편시켰다. 그 결과로 2만TUE급 이상 메가 컨테이너선과 1만5000TEU급 이상인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경쟁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일감부족에 시달리던 조선사들에겐 행복한 일이었다. 당연히 우리 회사가 가장 큰 재미를 봤고.
이제 2차 치킨게임이 벌어질 타이밍이다.
“기존 얼라이언스 2개가 해체될 것 같습니다. 일본 선사들 중심으로 대형 얼라이언스 하나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머스트라인, CMM+중국계, 일본계, 이렇게 3파전으로 돌아가겠죠.”
팀장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우리 윤 팀장의 시황예측력이 작두 탄 무당 수준이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 그림을 그대로 예언하고 있으니, 복채는 부장 승진으로 치러야겠다.
“3파전으로 진행되면, 메가 컨테이너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그렇죠. 역시 상무님의 분석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오늘 따라 아첨이 극에 달하네요. 이번 정기인사 때 부장으로 승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하하.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랑 순양중공업 영업조직을 통합할 계획인데, 시황분석팀도 당연히 함께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모름지기 조직개편엔 콩고물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직장생활에서 승진하는 기쁨만큼 황홀한 경험이 또 있을까 싶다. 높아진 지위에 비례해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지겠지만, 두둑한 연봉과 임원으로 올라설 수 있는 희망이 모든 걸 다 치유하리라.
그런데 지금 이런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기대에 부응하게 해 줄 테니까, 컨테이너선 업계가 어찌 돌아갈지 마저 얘기해 주세요.”
“아, 네. 하던 얘기마저 하자면요. 3파전이라고 가정했을 때, 머스트라인 얼라이언스는 국제해운까지 전부 메가 컨테이너선 확보했죠. CMM 얼라이언스는 CMM만 확보했으니까 중국 선사들이 곧 발주할 겁니다. 그런데 거기야 자기네 조선소에 발주할 테니까, 우리랑 상관없죠.”
“그럼 우리의 타깃은 일본놈들이 만들 얼라이언스가 되겠군요.”
“맞습니다. 일본 3사, 독일 하팍로이드, 싱가포르 APL, 대만 양명해운. 이렇게 뭉치지 않을까 싶은데, 걔네들 중에 메가 컨테이너선 가진 곳이 하나도 없잖아요. 머스트라인이랑 CMM 쪽은 이미 2만TEU 넘는 걸로 40척 넘게 확보한 상황이니까, 맞짱 뜨려면 발주하겠죠.”
“그 물량 대부분은 우리한테 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
윤 팀장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2차 치킨게임이 시작되니 당연히 2차 발주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메가 컨테이너선의 위력은 애저녁에 확인됐고, 그걸 가진 선사들끼리 얼라이언스까지 맺었다. 끽해야 1만6000TEU급이 최대인 일본계 얼라이언스는 죽지 않기 위해 메가 컨테이너선을 발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올 물량 대부분은 우리한테 올 것이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 배를 처음 개발했고, 가장 많이 건조한 경험까지 갖추고 있으니까. 거기에 순양중공업 인수로 고질적인 캐파 부족 문제도 해결했다.
돈만 싸들고 와라. 다 만들어줄 테니까.
“우리 상무님,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선사들이 돈 싸들고 오는 상상은 언제해도 좋죠. 순양중공업 인수하겠다고 해양플랜트 수주 중단시켜놨잖아요? 그거 때문에 순양중공업 내부에서 불만이 좀 있었어요.”
“일감 줄어들면 구조조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죠.”
“맞습니다. 구조조정 안 한다고 백날 얘기해도 안 믿으면 도리가 없어요. 이럴 땐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메가 컨테이너선 수주해서 일감 채워주면 환장하고 좋아할 겁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일감 채워가다 보면, 상무님께서 원하는 세계 1위도 멀지 않을 겁니다.”
“팀장님의 아첨소리가 어색한데, 귀가 간질간질한 게 나쁘진 않네요. 오늘 컨셉 아주 맘에 듭니다.”
“하하. 분골쇄신 멸사봉공하겠습니다.”
달콤한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말만 듣고 있을 수는 없지. 달콤한 말보다 달콤한 상황이 더 달달한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세계 1위를 위한 다음 행보에 나서야 한다. 달콤한 상황을 계속 만들어놔야 내 귀에 캔디.
덴마크에서 귀국을 준비하고 있는 김태우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아주 고생이 많으십니다.”
-허허. 고생은 무슨. 해외여행 온 것 같이 아주 좋아.
“아, 그렇습니까? 그럼 며칠 더 계셔도 되겠군요?”
-아이쿠. 이거 아차 싶구만. 허허. 이 노구를 얼마나 더 부려먹어야 성에 차겠나?
“해외여행 가신 김에 좀 더 즐기고 오시라는 배려로 생각해 주세요. 이번엔 독일 어떻습니까? 햄버거의 원조! 함부르크!”
-함부르크? 혹시 함부르크수드 다녀오라는 소린가?
“하팍로이드에 명함 좀 돌리고 왔으면 싶어서 말씀 드린 건데요. 함부르크수드도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한다고 합니까?”
-아, 하팍로이드? 그렇지. 거기 가서 눈도장 진하게 찍고 와야지. 내가 깜빡할 뻔했는데, 얘기 잘 했구만. 나이 먹으면 이래 깜빡깜빡한다니까. 허허.
“아, 네. 거기가 일본 선사들이랑 붙어서 새로운 얼라이언스 만들 가능성이 높거든요. 무조건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할 겁니다.”
-그렇지, 그렇지. 거기도 이제 자금사정 나아졌다고 하니까 발주할 때가 됐지. 내가 거기랑 연락해서 차 한 잔 마시고 오겠네.
세계 6위 컨테이너선사인 독일 하팍로이드.
국제해운과 누가 먼저 망하는지 경쟁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컨테이너선사가 어려워지면 누가 나타난다? 그렇다. 나랏님이 구제하게 된다.
역시나 독일정부가 달달한 세금 부어가면서 일단 살려냈고, 지금은 그동안 굶었던 것을 보상 받으려는 듯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다 배가 터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우리 레이더에 걸렸으니, 당연히 우리 고객이 돼야 한다.
“하팍로이드는 무조건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할 것이고, 무조건 우리가 수주해야 합니다. 함부르크에 있는 곽 부장님께 얘기해 놓을 테니까, 만디젤 팔아가면서 눈도장 제대로 찍으셔야 합니다.”
-허허. 우리가 가만있어도 우리에게 발주하겠다고 올 애들이니 걱정 말게. 그나저나 아까 함부르크수드 얘기한 건 안 궁금하나?
망해가는 12위 선사는 안 궁금하지만, 궁금한 척해주는 것이 예의일지리다.
“함부르크수드에 무슨 일 있습니까?”
-내가 봤을 땐 거기가 지각변동의 출발점이 될 걸세.
“혹시 M&A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허. 자네는 참 용하기도 해. 뭐 좀 감이 오나?
회귀한 놈이 감이 안 오면 안 되지.
전생에선 2차 치킨게임이 국제해운 파산으로 존버가 승리한다는 결과를 만들어내며 마무리됐다. 국제해운 파산이 주는 임팩트가 어찌나 컸던지, 3차 치킨게임은 색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얼라이언스를 넘어 선사 자체를 키워버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죽여서 줄이자’에서 ‘먹어서 줄이자’로 바뀐 것이다.
중국 3개 선사와 홍콩 선사가 통합하며 4위로 올라섰고, 일본 3개 선사도 하나로 뭉치며 6위 선사로 커졌다. 독일 하팍로이드도 중동 UAMC와 캐나다, 남미 선사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이 바닥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는 20개 선사가 10개로 줄어버렸으니, 엄청난 변화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함부르크수드는 왜? 인수해줄 후보를 찾으러 다니다 머스트라인 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위 머스트라인이 M&A로 덩치를 키우기로 했으니, 후발주자들이 가만있지 않은 건 당연지사. 그렇게 3차 치킨게임이 시작됐었다.
결과는 모르겠다. 그걸 알기 전에 이번 생으로 넘어왔으니까.
선사가 줄어들고 기존 선사들의 파워가 커지는 것은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이겨내고 꿀을 빨아먹는 게 묘미일 것이란 승부욕도 생긴다.
승부욕 불태우기 전에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살펴보자고.
“혹시 머스트라인이 함부르크수드를 인수하려고 하는 겁니까?”
-허허허.
“왜요? 바로 맞춰 버려서 김이 샙니까?”
-하여간 재미없는 사람이야. 허허.
김 본부장은 김 샌 것을 보상 받으려는 듯이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컨테이너선 업계의 변화상을 예측해 달라는 머스트라인 라스 울리히 사장의 요청에 M&A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고, 그것이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는 기나긴 설명.
“울 사장 그 양반은 툭하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니까요.”
-허허. 뭐, 그래도 서로 신뢰관계를 두둑하게 쌓을 수 있었으니 잘 됐다고 봐야지.
“그래서 함부르크수드 찾아가서 머스트라인에 얌전히 먹히라고 얘기하고 오실 생각입니까?”
-중매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겠더라고. 함부르크수드가 머스트랑 하팍로이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야. 내 덕에 머스트가 함부르크수드 먹으면 우리한테 좋은 일 아니겠나? 허허.
“하팍로이드 가서는 배를 팔고, 함부르크수드 가서는 자신을 팔게 하실 셈이군요. 아무쪼록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으니 영업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컨테이너선사들의 2차 치킨게임에서 제대로 뽑아내야 하고, 3차 치킨게임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 와중에 선박은 하자 없이, 쉼 없이 뽑아내야 하고.
거기다 오지랖은 또 얼마나 넓은지. 컨테이너선사들이 M&A로 덩치를 키우겠다는데, 가만있을 수 없다. 국제해운이 또 안 죽게 챙겨줘야 한다. 못해도 대흥상선 정도는 인수할 수 있게 판을 깔아줘야 한단 말이지.
결국 앞으로도 계속 바빠질 예정이겠다. 이놈의 박복한 팔자는 언제쯤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춤추며 놀 수 있으려나…….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불현듯 대수조선이 생각났다. 그래, 그거 인수하는 것도 시작해야지.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