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 영업본부 에이스
여전히 달려야 한다. 이젠 대수조선이란 새로운 식구까지 생겼으니 더 열심히 달려야지.
우리 회사와 대수조선은 엄연히 다른 회사이지만, 사실상 한 식구나 마찬가지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았나. 이유선이 월급이나 받아가라며 대수조선 등기이사로 올려줬으니 부지런히 일해서 투자금 회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수조선을 우량아로 키워내는 일.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김태우 영업본부장이 의욕을 불 싸지르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이고, 본부장님! 의욕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닙니까? 열기가 뜨거워서 근처도 못 가겠습니다.”
“유 상무! 어서 와. 요즘 뭐가 그리 바빠서 날마다 서울 출장이야? 얼굴 보기 참 힘들어. 하하.”
김 본부장 방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한 이는 박근홍 생산본부장이었다. 정한호 전무가 암모니아추진선 개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통에 김 본부장과 박 상무가 신혼부부라도 된 듯 날마다 붙어다니는 중이다.
“상무님은 아예 여기에 살림을 차리신 것 같습니다?”
“전무님이 일 다 떠넘기고 연구소에 짱 박혀 있으니 별수 있나. 생산기술본부에서 전무님 빠졌지, 최 상무님도 빠졌지. 내가 총대 메야지 뭐. 하여간 이놈의 회사는 날마다 일이 풍년이야. 하하.”
“누가 들으면 생산기술본부에 일하는 사람 하나도 없는 줄 알겠습니다.”
“하나도 없지! 베테랑들 다 빠지고 이제 막 이사로 올라선 핏덩이들이 뭘 알어! 본부장님, 안 그렇습니까?”
본부장 방에 들어섰을 때 이게 무슨 냄새인가 했는데, 이제 보니 꼰대냄새였다.
꼰대 냄새 펄펄 풍기며 다른 부서 일까지 확인하는 저 오지랖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건만, 김 본부장의 일성에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다.
“유 상무. 자넨 생산 쪽 쳐다보지 말고 영업이나 부지런히 하라고. 거긴 박 상무가 알아서 잘 할 테니까.”
“본부장님, 말씀드리지만 저는 영업본부가 아니라 경영지원부라니까요.”
“허허. 그거야 회장님께서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그런 거고. 어떤 회사건 영업이 최우선이야. 그러니 자네는 이 영업본부에 뼈를 묻어야 해.”
우리 회사에서 오지랖 최강자인 내가 감히 누굴 평가하겠나 싶다. 그러니 영업사원으로서 할 얘기나 하자고.
“근데 본부장님. 본부장님의 화려한 인맥은 대수조선에도 적용되는 거죠?”
“우리 회사에 대흥 출신들 가득인데, 뭘 새삼스럽게 물어보고 그래. 대수조선에 있는 애들도 다 아는 애들이지 뭐. 대수조선이 빠져나왔으니까 이제 우리랑 쿵짝을 잘 해볼 생각이야?”
“네, 맞습니다. 대수조선이랑 같이 유럽 돌아다니면서 지라시 뿌리고 다니면 영업효과가 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솔직히 우리가 중소형선 취급 안 해서 아깝게 날린 것들 많잖아요.”
“허허. 자네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예전 같지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미 다 준비돼서 결재 올릴 일만 남았는데, 이렇게 뒷북을 치니 말이네. 허허.”
내가 딴 곳에 한눈을 팔더라도 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이 아재들 정말, 일 기가 막히게들 하시는구만.
“일단 순양중공업 영업조직과 통합을 서두를 계획이야. 그러고 나야 대수조선이랑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정비만 제때 이뤄지면 재미 좀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자네는 서포트 좀 잘해주게.”
“대형선부터 중소형선까지 시장을 다 씹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 그럼. 덩치가 커지고 거느리는 식구가 많아졌으니 일감 싹 쓸어와야지. 시장 씹어먹고도 부족하면 육수까지 우려내야지. 허허.”
“잘 씹어 드실 수 있도록 잇몸 약을 준비해놔야겠군요.”
“잇몸 약뿐이겠어? 씹다가 이빨 빠질 수도 있으니까 틀니도 준비해놔야지!”
지글지글 고기 만찬이 펼쳐진 것처럼 구는 김 본부장. 저건 뭔가 있다는 표정이다. 느낌 왔으니 캐묻지 않을 수 없구만.
“본부장님, 뭐 있습니까?”
“허허. 내가 박 상무랑 십자수나 뜨려고 이러고 있겠어?”
“아니, 좀 전엔 저 보고 영업본부에 뼈를 묻으라고 해놓고, 저만 쏙 빼놓고 작당 모의를 하신 겁니까?”
“자네가 우리 본부 에이스이긴 한데, 결혼 준비한다고 바쁠 것 아니야. 그래서 일본은 나만 다녀올까 했는데, 말 나온 김에 같이 넘어가자고.”
“일본이요?”
싱글벙글.
그렇다. 컨테이너선 업계의 2차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치킨게임은 메가 컨테이너선이 필수 아이템이 됐다. 당연히 1차 때 발주하지 못한 선사들이 이번엔 발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컨테이너선사 3인방과 대만 2인방.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업계를 호령할 정도로 잘 나갔던 곳들이지만, 유럽과 중국 선사들에 밀려 중위권으로 떨어졌고, 이제는 호령은커녕 기침도 못 하게 생겼으니, 돈 지랄로 살아있음을 증명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어디서 연락이 온 겁니까?”
“그 전에 아쉬운 얘기부터 하자고.”
그럼 그렇지. 이 아재가 한방에 속 시원하게 얘기할 리가 없지.
“하나도 안 아쉬워할 테니까 얼른 얘기해 주세요.”
“독일 하팍로이드 말이네. 거기도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내가 봤을 땐 아닌 것 같아.”
“아닌 것 같다니요?”
“아무래도 거긴 오래 못 버틸 거 같어. 지금 있는 돈 없는 돈 쥐어짜서 발주하겠다는 건데……. 망할지도 모를 회사한테 주문 함부로 받았다가 우리가 똥 뒤집어 쓸 것 같겠다 싶더라고.”
“흐음. 하팍 거기가 최근에 급격히 안 좋아지긴 했죠. 구제금융을 그렇게 받고도 상태가 그 모양이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봐야겠죠.”
“국제해운이 갑자기 확 살아나 버리니까 물길이 하팍로이드로 가버린 셈이지. 가랑비에 옷 젖는데 뭐 방법이 있겠나 싶어. 아무튼 그래서 거긴 안 들어갈 생각이야. 거기 말고도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하겠다는 곳 많잖아?”
이것도 나비효과이려나 싶다. 아니면 부도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지도. 세계 8위인 국제해운이 안 망하고 버티니 6위가 흔들리는 상황. 뭐가 됐건 내 전용 밥상이 안 망했으면 그만이지 뭐.
그래서 연락 온 곳이 대체 어딥니까!
“제이라인.”
“일본 제이라인이요?”
“그래. 우리 보고 일정 맞출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 왜 물어보겠어? 우리한테 발주할 생각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 허허. 우리 스케줄 체크 좀 하려고 박 상무랑 이러고 있었지.”
“궁금해 죽겠으니까 나머지 것도 다 말씀해 주시죠.”
“일단 선형은 현존하는 최대 크기로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LNG추진선으로 발주하면 좋겠는데, 그거야 차차 협의하면 될 거고……. 일단 확정 6척에 옵션 6척을 생각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건 만나서 얼굴도장 찍고 나서 얘기해 봐야지.”
“최대 크기면…… 2만4000TEU급일 테고, 그럼 척당 2억2000만에서 2억3000만 달러 정도 되겠네요?”
“대략 27억 불짜리 일감이지.”
“이거 당장 틀니 준비해놔야겠네요!”
간만에 터진 대형 발주 소식이다. 건치를 자랑하며 환하게 웃고 있자니, 김 본부장이 토를 달았다.
“근데 말이야…….”
“하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면 재미가 없겠죠. 그래서 걸림돌이 뭡니까?”
“허허. 하여간 눈치는 귀신같이 빨라요. 그러니까 일본놈들은 자기 배를 안 끌고 다니잖아. 선주한테 빌리는 걸 좋아한단 말이야.”
“뭐, 그게 걔네들 비즈니스 방식이니까요. 그래서 선주사는 어디로 하겠답니까?”
“제이라인 쪽 얘기가 이 프로젝트를 맡아줄 선주사도 물색해 주면 좋겠다는 거야. 근데 알다시피 우리가 일본 쪽 라인이 약하잖아. 그건 순양 애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누구랑 짝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긴 해.”
“아이고, 본부장님. 걱정할 일도 아닌데 걱정하고 계십니까?”
“뭐 괜찮은 선주사가 있어?”
“도시상선 뒀다가 어디다 쓰려고 그러십니까! 거기가 메인은 오퍼레이터이지만, 선주 일도 하잖아요.”
“도시상선! 그렇지. 내가 왜 거길 생각 안 했나 몰라. 허허.”
김 본부장이 다시 환하게 웃는다. 이제 우리 회사에서 생기는 걱정거리라고 해봐야 유통기한이 하루도 안 될 정도다. 이게 잘 나가는 회사의 위엄이랄까.
“좋다, 좋아. 제이라인은 그렇게 잘 꼬드겨 보자고. 제이라인이 메가 컨테이너선 확보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나머지 두 곳도 뛰어들겠지. 그 물량들이 중국으로 안 넘어가게 잘 챙겨와야 해. 어때?”
“뭐가요?”
“결혼식 뷔페 먹기 전에 일본 가서 입가심으로 한 그릇 하고 오자고.”
“경영지원부 소속인 제가 꼭 가야 하는 게 맞죠?”
“아이, 그럼! 자네는 우리 영업본부 에이스라니까!”
그렇게 일본 출장이 바로 잡혔다.
M&A하겠다고 꼼지락거릴 때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도 안 하다가, 일 마무리됐다 싶으면 귀신같이 찾아와서 캐리어부터 안겨주는 저 못된 심보. 다들 내가 언제 한가해지나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일에 치여 살아도 피곤한 줄 모르겠는 튼튼한 몸뚱아리가 원망스럽다가도, 이렇게 일할 수 있고, 일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도 하다.
딱히 일도 없었고, 일한다고 해서 절망적인 상황이 바뀔 가능성조차 없었던 전생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
이제 세계 1위 등극,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것을 달성하고 나면 파락호처럼 살 테야.
***
“일본놈들이 웬일이라더냐? 곧 죽어도 지네 야드에 발주하는 것들이. 허허허.”
일본 출장을 보고하기 위해 찾아간 회장실. 아버지는 감격에 겨운 듯 웃음을 쏟아냈다.
일본놈들. 정말 지독할 정도로 끼리끼리 해 먹는 것들이었다. 일본 선주는 일본 은행에서 돈을 빌려 일본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고, 그 선박은 일본 선사가 운영하고, 일본 하주들은 일본 선사에게만 짐을 맡기고.
물론 도시상선은 우리나라 조선사에 꾸준히 발주를 하긴 했지만, 그거야 회장이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도시상선 같은 예외적인 케이스를 빼고는 일본 업계는 철저하게 뭉쳐 다녔다. 뚫을래야 뚫을 수 없는 견고한 갈라파고스랄까.
그런 곳이 우리 회사에게 선박 발주해도 되냐고 물어볼 정도로 균열을 내고 있으니, 이 바닥 흥망성쇠를 꿰고 있는 아버지가 감격에 겨울 수밖에.
“이게 다 저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허허. 그래, 다 네 덕이다.”
“그렇게 바로 수긍해 버리시면 제가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은 얘기 다 해라. 어차피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놈도 아니고.”
그건 맞는 말이네.
일본 해사업계의 강력한 카르텔이 균열을 보이는 건 진짜로 나라는 나비의 날갯짓이 가져온 결과이다. 내가 메가 컨테이너선을 이 세상에 들고 왔고, 대형 LNG선의 호황도 열심히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일본 조선사들은 메가 컨테이너선을 만들 시설이 안 되고, 대형 LNG선도 못 만든다. 두 선박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나라로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거 길어야 1~2년이야.”
“1~2년이라니요?”
“일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 비싼 배를 우리나라에 계속 발주하겠어? 거기 조선사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설 거야.”
“지금 투자를 결정한다고 해서 2년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그동안 받아먹을 거 다 받아내란 말씀이시죠?”
“그렇지. 일본놈들도 메가 컨테이너선 지을 수 있다는 얘기 나오기 전까지 빨아먹을 거 빨리 빨아먹고 빠져야 한다 이 말이야.”
“그럼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일본 가서 제대로 빨아먹고 오겠습니다.”
늘 걱정 일색이었던 아버지가 오늘은 흐뭇 컨셉을 계속 이어갔다.
“이거 회사가 갑자기 확 커져서 어떻게 감당하나 걱정했어. 순양중공업 인수야 잘 했고, 기분 좋을 일이지만, 그렇게 큰 회사를 어떻게 끌고 가나, 잠이 안 오더라고.”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주 잘 주무셨다고-”
“거참. 아무튼! 이렇게 일감이 절로 찾아와 주면 걱정할 게 없겠어. 일이 잘 풀릴라니까 일본놈들도 배 지어달라고 찾아올 정도네. 허허허.”
“뭐든 저지르고 나면 먹고 살길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순양중공업 인수로 회사가 20위권 대기업으로 훌쩍 커버렸다. 5000만 원 내고 전경련 가입하라는 우편물을 받았을 정도니, 통영의 하꼬방 신세를 확실히 벗어나긴 했다.
혜성처럼 등장. 폭풍 성장.
화려하게 데뷔했다가 쫄딱 망한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 회사의 성장에는 그렇게 망한 칠산그룹과 WBT그룹의 피, 땀, 눈물이 담겨 있기도 하다.
당연히 우리 회사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일부 언론들은 칠산그룹과 WBT그룹이 망하고, 새로운 조선 대기업이 탄생했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는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광고 안 한다고 그 지랄들을 하더라니까.
사람들이 우려한다고 우려대로 되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지. 대기업으로 성장한 우리 회사가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일감만 준다면 도시상선 손혁 회장 만나서 갈치조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가자, 일본으로. 방사능아, 썩 물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