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 단순한 목표
대흥재단 이병진 이사장은 확인하고 싶었다.
머지않아 대흥중공업에 내릴 비가 땅을 굳게 해주려는 비인지,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파괴적인 비인지 확인해야 했다. 딸 유선이 대흥중공업까지 가지고 싶다는 야욕을 드러냈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할지 가늠해야 했다.
그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엔 딸에게 대수조선을 떼어주고, 아들에게 대흥중공업을 물려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방정식이 복잡했다.
물려줄 회사의 값어치가 60조와 4조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60조짜리 회사를 맡을 아들 녀석이 시원찮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능력이야 그렇다고 쳐도 회사 내에서 들려오는 소문도 썩 좋지 않았다. 완장 찬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아들이 상무를 달고 난 이후부터는 안 좋은 얘기만 자꾸 귀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딸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씨 가문의 재산이 유씨 가문 차지가 되도록 만들 수 없었기에.
그가 사위가 될 유연성을 불러다 놓고 면접을 진행하는 이유였다.
“유선이가 대흥중공업 주인이 되겠다고 나서면, 편을 들겠다는 것이지?”
“장인어른. 대흥중공업 경영권은 처남에게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세상일이 계획대로 가는 것이 아니니 하는 소리지.”
“그런다고 한들 계획대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지만, 그걸 억제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겠죠. 유선이는 대수조선도 대단히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 큰 선물을 받았으니, 이제 더 큰 선물을 원하는 게 아니겠어? 유선이라면 그럴 것 같은데?”
“더 큰 선물을 원하지 않도록 잘 설득하겠습니다.”
“그 녀석이 설득한다고 말을 들어야 말이지.”
“유선이가 당장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니, 충분한 시간을 두고 대화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는 유연성을 강하게 압박했지만, 원하는 대답을 받아내지 못했다. 아니, 원하는 대답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자꾸 틀에 박힌 대답만 하는 것이 그래 보였다.
그렇다면 대놓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유선이가 대흥중공업에 미련이 남았다면?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장인어른께서 유선이의 황소고집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허허. 그 녀석이 보통 고집이어야지. 그렇다고 능력도 없이 고집만 부리는 게 아니니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유선이가 고집을 부린다면, 제가 어찌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기둥과도 같은 대흥중공업은 유능한 인재가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선이가 그런 인재라면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것이 남편 된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선이가 형선이랑 지분싸움이라도 벌이게 되면 유선이 편을 들겠다는 소리군. 그렇지?”
“응원은 해야겠죠.”
“응원?”
“응원 말고 할 게 더 있습니까? 유선이가 대흥중공업 차지하면 차지한 것이지, 그게 제 회사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었던가?”
“아휴, 장인어른. 저는 처가의 재산까지 탐할 정도로 탐욕 많고 게걸스러운 놈이 아닙니다.”
“허허. 말이야 포장하기 마련이지.”
“부모님께서 회사 주식 증여해주겠다는 것도 그냥 재단 만들어서 봉사 활동하며 지내시라며 마다할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포장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살짝 안심됐다. 유연성이 처가 재산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내비쳤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바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 의사를 재차 삼차 확인해야 했다.
“내가 정치를 하면서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여러 부류의 사람 중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이들이 누군지 아나?”
“글쎄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지. 잘 아는구만. 권력에 관심 없는 척,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결국 권력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걸 숱하게 봤어. 돈도 마찬가지야. 돈과 권력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걸 마다한다? 그건 거짓이라고 봐.”
“수많은 닭들 사이에 학이 한 마리 있을 수도 있죠. 돈과 권력에 초연한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마치 인생 2회차인 사람이랄까요?”
“하하하. 누가 들으면 자네가 인생 2회차인 줄 알겠네.”
사위의 대답이 말 같지도 않다고 느끼면서도 기분은 괜찮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을 위해 그리 뛰어다니는 건가? 돈도 싫다, 권력도 싫다. 삶을 지탱하는 목표가 있을 것 아닌가?”
“단순합니다. 유일조선을 세계 1위로 만드는 겁니다. 죽고 나서 위인전 타이틀로 ‘선박왕’이 붙으면 더 좋겠죠.”
“1위가 되고 나면?”
“이유선과 약속한 게 있습니다. 우리 회사를 세계 1위로 만들고 나면 남해 마을에 그림 같은 집 지어놓고 한가롭게 살자고 말이죠. 1위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로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달렸는데, 조금 일찍 은퇴한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허. 이거 전도유망한 사업가 사위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까 공상가 사위를 얻었네 그려. 그래서 유선이도 그러겠다고 해?”
“하고 싶은 게 많은 녀석이 선뜻 그러겠다고 할 리 없죠. 근데 우리 회사라는 똥 밭에서 굴러보니 이젠 생각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자기도 목표 달성하면 그리 살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그 고집을 꺾다니, 자네도 대단하구만. 하하. 그래서 목표가 뭐라고 하던가?”
“말씀드려도 되나 싶은데요.”
“가족끼리 얘기 못 할 게 뭐 있나?”
“그러니까……, 대흥중공업 주인이 돼서 유일조선한테 빼앗긴 1위 자리를 되찾는 거랍니다.”
“허허. 그 녀석도 참. 그 고집은 안 꺾어지던가?”
“저도 그게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는 더 이상 유연성을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애매한 대답들이 미덥지 않긴 했지만, 이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지 않는다는 의사를 확인했으니,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유연성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건 분명하지만, 그 눈빛에서 돈과 권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없다고 믿었지만, 눈앞에 그런 사람이 있는 것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유연성 말대로 인생 2회차라도 되는 것일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사위가 꽤나 특이한 녀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전에 백기사를 하겠다고 호구 짓을 한 것도 이해가 됐다. 유연성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던 걸로.
이제 나눌 대화는 한결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뭐. 형선이랑 얘기는 좀 해 봤고?”
“몇 번 만나서 인사 나눈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저도 눈치가 보여서…….”
“하하. 남매 관계가 다 그렇지 뭐. 어째 나이 먹고 더 그러는지 원.”
“…….”
“불편한 모양이지? 허허. 뭐, 저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남매는 형제랑 달라서 지지고 볶고 싸우지만 선을 넘지는 않으니 그러려니 해야지. 자,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자고.”
***
아휴, 압박 면접 한번 제대로 받았네.
딱 느낌이 오더라니까. 이 이사장이 정치권에 몸담고 있을 때야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은퇴한 지금은 집안 재산을 어떻게 지켜내느냐가 최고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당연히 백년손님인 내가 재산을 뺏을 놈인지 아닌지 확인하려 들겠지. 이유선 그 녀석이 자꾸 대흥중공업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그러고 있으니.
“뭐야. 그래서 아빠가 그러는 게 내 탓이라는 거야?”
장인에게 압박면접을 받으며 팬티를 적시고 온 남편 걱정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는 이유선 여사님의 반응이 저 모양이다.
“대수조선 받은 걸로 만족했으면 내가 코로 밥 먹었을 리가 없잖아. 와우, 저녁 먹는데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아빠 반응이 어때? 내가 대권 도전하는 거 모른 척해 주겠데?”
“대권? 이제 정치권으로 영역을 넓히실 생각입니까?”
“아, 진짜. 대흥중공업 말이야. 동명이 오빠한테 말귀 어둡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오빠도 똑같네 아주.”
“전염병이 무서운 법이지. 그래서 낙타나 박쥐는 함부로 잡아먹으면 안 돼.”
“또 헛소리 시작한다. 빨리 정신 차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 이사장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내 돈을 건들지 말라는 메시지가 강렬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대흥중공업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자가 꼭 이형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 그런 의사를 내비쳤는지는 모르겠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이형선 씨는 대흥중공업을 맡을 위인이 못 된다니까. 오빠가 회사 물려받으려고 얼마나 가식을 떨었는데! 가식으로 아빠를 속였지만, 회사에서 일 시작하면 다 티 나잖아. 아빠도 아차 싶은 거겠지.”
“그러는 이 여사님은 엄청 능력이 출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야 출중하지. 하하. 솔직히 능력이랄 게 뭐 별거 없잖아. 능력 없는 걸 아는 게 능력이라 봐.”
“개소리를 하는 걸 보니까 너도 나한테 병이 옮은 모양이네.”
“개소리가 아니야. 능력이 없는데 능력 있는 줄 알고 회사를 경영하면 안 될 일 아니야? 난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는 거야. 부족한 건 부족하지 않은 사람으로 채워야지. 오빠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야. 자기가 다 하겠다고 설친다니까.”
“나?”
“오빠 말고!”
“너, 툭하면 욱하는 것도 단점인 거 잘 알고 있지?”
“그럼. 난 부족한 게 많다니까.”
하긴, 능력 없는 사장이 능력자인 줄 알고 설쳐대는 회사만큼 끔찍한 회사도 없지. 미국물 먹으며 배운 사람이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신선하긴 하다. 재벌이면서 재벌답지 않아서 참 사랑스러워.
“뭐라고? 사랑한다고? 갑자기?”
“응?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독심술이 있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고.
뭐가 됐건, 이유선은 대흥중공업 왕좌에 오르겠다는 욕망을 더 강하게 드러내게 됐다. 현 주인인 이 이사장이 도전할 수 있으면 도전하라고 했으니, 당연히 도전할 것이다.
문제는 이유선 삼촌들처럼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싸울 일이 없어요. 선거나 마찬가지잖아. 내가 표를 더 받으면 내가 이기는 거지. 결과에 승복하면 그만 아니야?”
“너야 그렇지만, 처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 아니야?”
“솔직히 오빠가 나보다 더 욕심 많거든? 그래도 선은 넘지 않을 거라고 봐. 아빠한테 지겹도록 들은 게 삼촌들처럼 볼썽사나운 꼴 만들지 말라는 거였는데, 그걸 어긴다? 그랬다간 파문이지.”
“그런데 이길 자신은 있고?”
“당연하지! 나한테는 사랑하는 우리 자기가 있잖아. 대수조선은 결혼선물이니까, 대흥중공업은……, 음, 우리 애를 위한 선물로 할까?”
2세가 될 씨앗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2세 계획을 세우고 있다니…….
“아무튼 안 되더라도 시도는 해 보자고. 성공이든 실패든 해 봐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아. 오빠는 외동이라 내 심정을 모를 거야.”
이유선이 오빠에게 가진 경쟁의식이 왜 생겼는지 따져봐야 무의미할 것 같다. 이미 생겼는데 어쩌겠어. 그걸 풀어주는 것에 집중하자고. 그러면서 내 꿈도 실현하고.
그런데 한 가지가 걸린다.
“왜? 오빠 뭐 걸리는 게 있어?”
“아무 말 안 했는데, 그게 보여? 귀신이야?”
“내가 전생에 궁예였나 봐. 그래서 뭐가 걸리는데?”
“내 목표가 우리 회사 1등 만드는 거고, 그거 달성하면 너랑 일찌감치 은퇴해서 팔자 좋게 사는 거라고 했거든. 근데 네가 대흥중공업 차지하면 그러지 못할 거 아니야.”
“난 또. 뭐 별것도 아닌 걸로 걱정을 하시네. 아빠한테 내 목표가 뭔지 얘기 안 했어?”
“했지. 대흥중공업 이끌면서 다시 1위 되찾는 거라고.”
“그럼 됐네.”
“응?”
“오빠는 나한테 1위 뺏긴 거니까 다시 1위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 내가 또다시 1위 되찾을 거고. 무한 반복이지 뭐. 아빠한테 구라친 건 아니잖아.”
“흐음. 그럼 난 언제 팔자 좋게 살 수 있는 거지?”
“그러게…….”
이거 심각한 문제네.
더도 말고 10년만 빡세게 살면서 우리 회사 1위 찍고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를 외칠 생각이었는데!
냉혹한 현실에 우울함이 가득해지고 있는데, 이유선이 실실 쪼갠다. 지금 웃음이 나와? 한량이 되겠다는 꿈이 무산되게 생겼는데!
“하하. 하여간 진짜.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 안 나?”
“몰라. 아무것도 기억 안 나.”
“난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아주 잘 안다니까.”
“그래, 너 잘났어.”
“내가 대흥중공업 차지한다고 해서 함부로 요리할 생각 없어. 경영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맡아야지. 오너는 인재를 사장 자리에 잘 앉히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흐음. 뭔가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데?”
“이사회가 날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열리면 회사 잘 돌아가는지 체크만 잘 해주면 되지 않을까? 난 얼마든지 팔자 좋게 살 준비가 돼 있다 이거지. 오빠만 그러겠다는 마음먹으면 돼. 솔직히 영원한 1등이 어디 있어? 한번 1등 찍었으면 된 거 아니야?”
그렇군. 당장 남해 마을에 집 지을 땅부터 알아봐야겠다. 아니다. 이왕 한량 되겠다고 맘먹었으니 크루즈 타고 세계 일주나 할까? 생각만으로도 황토방에 누운 것처럼 노골노골하니 좋네.
“아저씨.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정신줄 놓을 때가 아닙니다요.”
그렇지. 2~3년만 더 빡세게 달려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