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7)
7화 – 영업의 기본 (5)
영업본부 이호균 부장을 갈굴 기회는 금방도 찾아왔다. 그야말로 조선소 깃발만 세워도 수주가 쏟아지는 대항해 시대 아니던가!
“아이고, 김 차장님.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업본부의 이호균 부장과 김진수 차장. 한 명은 시대를 잘 만나서 꿀빤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시대를 잘못…….
“아, 네. 부장님으로부터 뉴런쉬핑의 케이프 2척 입찰가 확정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결정이 나야 수주를 확정 지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 부장님은 어디 가셨길래, 차장님이 대신 와서 이러는 겁니까?”
“브로커랑 미팅하러 부산에 가셨습니다. 이건 입찰가만 결정하면 된다고 해서…….”
전생의 기억이 안 좋아서인지, 이 부장 이거 하는 짓마다 맘에 안 드네.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갈구고 싶을 정도야.
김 차장이 가져온 종이쪼가리를 보니까 진심으로 갈구고 싶어졌다. 이 가격에 수주를 하자고? 유일조선이 자선단체였던가?
선박 영업의 실무를 맡고 있는 이 부장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금융위기 오기 전까지는 말도 안 될 정도로 꿀이 넘치는 시황인데, 굳이 신조선가 덤핑 쳐가면서까지 수주를 늘리겠다고 욕심을 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잿값만 겨우 충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덤핑을 쳤다. 망하는 길에 고속도로를 깐 격이지. 그 꼴 안 보려면 일찌감치 쫓아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차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부장님 뜻대로 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까?”
이 바닥 영업은 별거 없다. 브로커가 소식 물어오면, 선주가 원하는 스펙 맞춰서 견적 뽑아서 이 가격에 콜? 끝.
이 부장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도 잘 알고 있다. 선주가 원하는 일정에 배를 인도하려면 지금 당장 계약을 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아쉬운 쪽은 선주인데, 왜 우리가 뱃값을 깎아주면서까지 받아와야 하는데?
“뭐 제 의견이 중요하겠습니까? 이미 저희 본부 차원에서 결론이 났는데,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케이프사이즈 시장가가 8천만 달러가 넘는데, 지금 7800만 달러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어요. 이거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말이죠. 회의할 때 갑론을박이 있긴 했는데, 옵션 2척도 포함된 건이라 가격을 낮춰서라도 들어가자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옵션까지 하면 4척이라 7800에 들어가도 충분히 남긴 합니다.”
회의는 무슨, 일방적인 통보였겠지. 김 차장은 이 부장의 방식을 못마땅해했지만, 상관이 하는 일에 토를 안 다는 스타일이라 잠자코 넘어갔다.
그런 우직함 때문에 능력이 감춰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부장처럼 온갖 바쁜 척 다하고 생색 팍팍 내야 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법이니.
전생에서 김 차장이 전면에 나선 것은 회사가 나락으로 떨어진 뒤였다. 이 부장이 살겠다고 잽싸게 도망가 버렸으니,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총대를 멘 이후로 선주들에게 손편지까지 보내며 회사 살리는 데 총력을 다 했다. 생산직들이 여의도 올라가서 삼보일배하고 있을 때, 비싼 직항을 어찌 타냐며 환승하는 고됨을 감수하면서 유럽 선주들의 항문을 핥고 다녔다.
안타깝게도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좋은 조건으로 수주하면 뭐하나. 은행에서 보증을 안 해줘서 계약이 계속 나가리 났는데.
한참 뒤에 김태우 본부장이 오면서 사정이 좀 나아지나 했는데, 대세를 거스르긴 역부족이었다.
전생에 내가 저 사람과 술잔 기울이며 어떻게든 회사 살려보자고 다짐한 것이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채권단에 의해서 수주 자체가 막히면서 공중분해만 기다리는 그 순간까지도 실낱같은 희망에 올인했던 당신. 모르겠지만, 나에 의해 이미 십장로에 봉해졌어.
역시나 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부장을 죽이고 김 차장을 살려야 할 것 같다. 한 손에 채찍, 한 손에 당근.
“척당 7800만 달러에 들어가도 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죠. 8100만 달러를 불러도 좋다고 계약하자고 할 판인데,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먼저 나서서 가격을 후려칩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만, 이 부장님 판단도 일리가 있-”
“일리는 무슨 일리입니까?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리 배, 중고시장에서도 가격 방어 잘 되지 않습니까? 그만큼 성능이 좋다는 뜻이죠. 이젠 가격으로 밀어붙이는 짓은 그만합시다.”
“사실 저도 부장님께 말씀드렸는데, 꼭 잡아야 하는 선주라면서…….”
“꼭 잡아야 하니까 시장가보다 못한 선가에 수주를 하자는 말인가요? 우리 회사 직원 맞습니까?”
김 차장은 내가 대놓고 상관을 까니 난처한 표정이 됐다. 내가 난처한 표정만 읽은 것이 아니다. 감추려고 해도 그 속 시원하다는 표정 다 읽힌다고.
“부장님한테는 제가 얘기해서 그 가격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겠습니다. 선주와 관계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같은 호황기에 왜 호구 노릇을 자처하는지 모르겠네요.”
김 차장이 이번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운업계는 극도로 보수적인 곳이라, 한 번 관계 잘 맺으면 그 인연이 평생을 간다.
중국이 제아무리 싼 가격으로 유혹해도 여전히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이며, 일본 조선업이 아무리 망했다고 해도 여전히 먹고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부장의 판단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는 개뿔.
내년부터 시작해서 내후년에 화끈하게 주저앉는 대폭망의 향연에서 해운이라고 살아남을 리가 없다. 비틀즈 형님들께서 그러셨지, 컴 투게더라고. 해운과 조선은 망해도 함께 망하는 거야.
고로 지금 수주하는 것들은 최대한 비싸게 받아와야 한다. 그렇게라도 붙잡고 있어야 대폭망 시기를 어찌어찌 버티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 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네, 부장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브로커는 잘 만나셨습니까?”
“실장님! 뉴런쉬핑이요! 꼭 잡아야 하는 선주입니다! 우리한테 얼마나 잘 해주는 곳인지 아십니까? 견적 빨리 안 보내면 중국으로 넘어가요!”
예상대로 다짜고짜 항의다. 서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 몇 마디씩 주고받는 게 이 나라 전화 예의 아니던가! 내가 그 페이스에 말릴 이유가 없지.
“뭐 그리 급하십니까? 브로커 만나셨으면 식사 대접 좀 하시지 그러셨어요?”
“아이고, 실장님. 지금 한가한 얘기할 때가 아니에요. 하루라도 빨리 가격 정해서 알려줘야 하는데, 위에서 결정을 안 해 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식사하셨습니까? 식사 안 하셨으면 일단 식사하고 오세요. 결정은 진즉 됐으니까요.”
“결정됐다니, 무슨 소립니까? 그럼 7800만 달러에 들어가도 됩니까?”
여전히 개소리.
저 사람도 회사 생각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저가입찰을 해서라도 수주를 늘리는 것이 회사에 도움 된다고 생각하겠지. 그 지능 떨어진 생각이 회사를 망하는데 일조한 것을 알고나 있는지.
이래서 게으른 사람하고는 같이 일해도, 멍청한 사람을 중용해선 안 되는 법이다.
지 딴엔 뼈 빠지게 일했는데 이따구로 대접하느냐고 불평불만은 오지게 하겠지. 실제로 3년 뒤에 그렇게 깽판 치다가 나갔다. 퇴직금에 위로금까지 몽땅 받아서. 나쁜 새끼.
“8000만 달러 밑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7800만 달러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그냥 포기하세요.”
“아니, 그. 그러니까.”
“그럼 일 마무리 잘 하고 조심히 돌아오세요. 부산 가셨으니까 맛있는 것 잡수고 오세요. 부산은 뭐니 뭐니 해도 돼지국밥이죠. 하하.”
“그…….”
긴 말할 필요가 없어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제 나올 반응은 빤하다.
돼지국밥을 먹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누군가에게 냅다 일러바치겠지. 총 3억1200만 달러짜리 계약이 날아가게 생겼다면서. 그 계약이 3억2400만 달러짜리가 된다는 건 생각도 안 하겠지.
이제 궁금한 건 누구한테 일러바치느냐이다. 회장님? 내가 아들인 걸 아는데 그럴 용기가 있을까? 궁금하다, 궁금해.
“실장님. 괜찮겠습니까?”
단호박으로 내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모습에 옆에서 지켜본 김 차장이 꽤나 당황한 것 같다.
지금이야 ‘저 선무당 새끼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겠지만, 2년 뒤엔 ‘우리 실장님, 선견지명이 있으셨군요, 딸랑딸랑’으로 바뀔 것이다.
“안 괜찮을 건 또 뭡니까? 걱정 마세요. 저가 수주해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실력 좋잖아요? 영업할 땐 자신감을 가져야죠.”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재 냄새나게 명심하겠습니다는 뭐야. 내가 무슨 주말마다 산에 가자고 재촉하는 상무라도 된 것 같잖아?
이 부장이 회사 복귀해서 깽판 치기 전에 나는 무대설치 좀 하러 가야겠구만.
***
“그래서 아테네에 영업 지사를 세우자고?”
그 숱한 잡일 폭격 속에서도 ‘영업력 제고와 영업망 구축 계획(안)’이라는 공무원 냄새가 펄펄 나는 보고서를 만들어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기껏 만들었는데 종이 대충 펄럭이고 말다니! 역시 보고는 글자보다 말로 하는 법이구나.
“네, 그렇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 호황이 천년만년 지속될 리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유럽에 네트워크를 깔아야 합니다. 일단 아테네부터 시작하시죠.”
“돈은?”
역시 모든 건 돈이 문제다. 내가 돈 기똥차게 벌어올 자신 있는데!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고 보자고.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브로커에 의존하는 지금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업 지사가 당장 성과는 안 나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냐 이 말이지. 너, 내년에 야드 확장 들어가는 거 알지?”
아, 그것도 손 봐야 하는데. 할 일 참 많네. 이 부장 너 이 자식아! 나 바쁘니까 빨리 나가라고!
“당연히 알고 있죠. 야드 확장하면 컨테이너선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텐데, 그럴수록 영업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해외 지사는 지금 설립해도 늦습니다.”
이렇게 한 세 번 같은 얘기가 반복됐나?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설득당할 때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얘기하면 된다. 아, 입 아퍼.
“그래, 그렇게 한다고 치자. 솔직히 그깟 해외 지사가 뭐 중요하냐. 결국, 일하는 건 사람이야. 사람도 없는데 해외 지사 수백 개 세워서 뭘 하겠냐 이 말이야.”
“그것도 당연히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결과를 내놔야지.”
그거 다 보고서에 적어놨어요. 보고서 읽지도 않고 이러면, 내가 공들인 게 너무 아깝잖습니까!
내 선택은 이 부장이었다. 그놈은 안 갈 것이다. 안 가면 어쩌겠어? 발령 내면 그만인데. 역시 회사 조직은 까라면 까는 법이지. 후후.
“이호균 부장이 적임자입니다. 그리스도 여러 번 다녀왔기도 했지만, 우리 회사 영업을 책임지는 분인 만큼 필드에서 역량을 키울 필요도, 회사가 키워줄 필요도 있죠.”
“이호균이? 뭐 그래. 그놈도 좀 크긴 해야지. 열심히 하긴 하는데, 늘 아쉽긴 해.”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아직도 이 부장이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노마는 완성형이에요. 초딩 때 커버려서 그 뒤로 안 큰다니까요. 앞으로도 쭈욱 똑같아요.
브로커들한테 뒷돈 얼마나 챙겨 먹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에에속 뱃값 후려쳐서 받아올 겁니다. 계약도 얼마나 대충 하는지 선주들 원하는 거 다 들어주고……. 아윽, 내 혈압.
“이 부장을 보내면, 여기는 누구한테 맡기라는 것이냐? 김진수 금마? 걘 아직 멀었어. 국내 영업이나 겨우 하는 놈이 뭘 안다고.”
이거 진짜 이 부장 아테네로 보내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난 이 부장 당신 믿어. 고생길이 훤한 거기를 가겠다는 구국의 결단 따윈 하지 않을 거지?
나와 아버지가 생각하는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무조건 이 부장을 보낼 것이다.
그 빈자리? 당연히 더 육중한 사람을 앉혀야지. 김 차장, 당신은 몇 년만 더 고생해. 내가 십장로의 공덕은 잊지 않을 테니까.
“한국선박투자 김태우 사장님은 어떠십니까? 예전에 정 상무님 통해서 오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태우?”
아,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며칠 전 정 상무랑 얘기했을 때랑 똑같은 반응이네.
“금마 괜찮지. 금마가 영업도 한 따가리 하고, 금융 쪽도 힘 좀 쓰지. 그렇지, 그렇지. 김태우 그놈이 있었어.”
“저의 제안이 흡족하십니까?”
돈 있냐는 공격 빼고는 다 완벽하게 막아냈다. 돈? 그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죠. 내가 아주 떼돈을 벌어올 테니까.
아버지 얼굴에서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엿보인다. 이건 오케이라는 신호로 봐도 되는 거지?
“아들.”
“네, 회장님.”
“회장 자리엔 내가 앉아 있는데, 어째 회장 노릇은 네가 하는 것 같다? 허허.”
회장님께서 웃으시었다! 이제 죽어도 발할라에서 부활하겠구나! Witnessed!
“제가 회사 주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증스러운 멘트 정도는 기꺼이 날려줘야지.
이제 구덩이 파놓고 이 부장의 반격만 기다리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