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142)
— —
아사드 정권은 결국 붕괴했다.
티라노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군 병력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했다. 보병은 말할 것도 없고 무장 헬기와 전차, 장갑차는 티라노 앞에서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티라노가 입에서 뿜어내는 불꽃 숨결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고온의 불꽃이 아니었다. 열에너지 이외에 물리 에너지를 겸비한 파괴의 숨결이었다.
티라노가 짧은 시간 안에 그 넓은 면적을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불꽃 숨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사드 대통령은 결국 일가와 수뇌부 일체를 이끌고 해외로 망명을 시도했다.
이미 많은 기반을 잃었다. 이제 와서 괴수를 물리치거나 괴수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해도, 더 이상 시리아에 거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의 균형이 뒤집힌 지금, 자유시리아군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사수해야 할 거점이랄 만한 게 빈약했던 점이 오히려 자유시리아군에는 장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티라노의 난동에도 불구하고 숨을 죽인 채 지켜보며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했다.
아사드 대통령 수뇌부는 인근 중동 국가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그 시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이 탄 항공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중 폭발을 일으켜 탑승원 전원이 사망하고 만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비밀스러운 개입을 의심했으나 미국은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공중 폭발은 엔진 정비 불량으로 인한 연료 점화 추정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이미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 아사드 대통령의 사망 원인을 끈덕지게 밝혀내야 할 만한 동기를 가진 국가도, 세력도 없었으니.
그렇게 시리아에 강제된 평화와 자유가 찾아왔다.
아사드가 물러난 자리를 차지한 자유시리아정권은 미국의 중재를 통해 국제공격대연합에 레이드를 요청했다. 이에 유지웅은 흔쾌히 수락해서 나섰다.
온 세상이 숨죽여 지켜보는 레이드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 숫자만 해도 다섯 자리가 넘어갔다.
티라노가 한 달 동안 시리아를 마구 헤집고 다녔기에, 목숨을 걸고 몰려든 취재진이 바글바글했다.
“좋아, 우리를 위한 무대가 훌륭하게 만들어졌어.”
“송출은 참 잘 되겠네. 아침에 미용실이라도 갔다 올 걸 그랬었나 봐. 아, 오늘따라 화장이 왜 이렇게 안 먹었지.”
정효주는 화장이 잘 안 돼서 속상한 듯이 연신 거울을 들여다보며 투덜거렸고, 황백호는 현장까지 데리고 온 수행원들한테 쉼 없이 보고를 들으면서 국정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취재를 허가받은 미국, 영국 기자들은 그런 여유로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리아 주요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많은 정부군을 짓밟은 무시무시한 괴수를 상대하러 간다는 긴장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있으니.
오직 한 명만이 달랐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프라임 공격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미 공군 출신 레이크만이 혼란과 패닉에 빠져 있었다.
다행히 표정이 잔뜩 굳어 있어, 그것은 마치 중대한 전투를 앞둔 백전용사가 결의를 다지는 모습처럼 보였다.
미국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 미국 기자들은 정신없이 레이크의 사진을 찍어 보도했고, 미국 여론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베테랑 기자가 인터뷰에 나섰다.
“괴수 티라노의 힘이 정말 놀랍습니다. 단 한 달 만에 국가 하나를 완전히 전복시켜버렸는데요, 티라노는 지금까지 나타났던 다른 괴수들에 비하면 어느 정도의 위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지웅은 수십 개의 마이크에 둘러싸인 채 의연하게 대답했다.
“괴수 간의 우열을 다루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괴수는 현대병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주변의 전투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죠.”
유지웅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생중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기자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민감하게 귀를 기울였다.
그의 음성 외에는 오로지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이 백색 소음처럼 울리고 있었다.
“총성 한 발만으로도 얼마든지 괴수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괴수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그 출현을 예보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당장 지금 시리아에 나타난 티라노만 봐도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출현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최초로 목격된 장소만 알려져 있을 따름이죠.”
열심히 듣던 기자들은 불현듯 레이드와 다소 벗어난 주제를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티라노의 난동이 이렇게까지 커지게 된 진짜 원인은 시리아가 내전 중이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 소리가 티라노를 자극해서 끌어들이고 만 것이죠. 여러분, 이불 밖, 아니 전쟁이 이렇게나 위험한 겁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제2, 제3의 시리아가 언제 또 나타날지 알 수 없어요. 명심하세요. 평화는 피스. 피스는 러브. 인류화합, 평화박애. 아시겠어요?”
“…….”
“…….”
“자자, 인터뷰 끝났습니다. 이제 일하러 갈 겁니다.”
유지웅은 멍해 있는 기자들을 좌우로 물리고는 성큼성큼 앞장을 섰다.
“화려하게, 아름답게, 박력 넘치게, 그게 이번 레이드의 핵심입니다.”
“알겠어요.”
황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의를 다졌다.
이미 지룡이 레이드를 여러 차례 겪은 그에게 있어 티라노는 대수롭지 않은 괴수였다. 티라노가 뿜어내는 불꽃 숨결 영상을 수십 번도 넘게 봤지만, 그 정도면 자신에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보호막은 일단 안 걸어드리겠습니다. 보호막만 맹신하다 보면 이게 훈련이 안 되거든요. 언제나 항상 저와 함께 레이드를 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도 없으니까요.”
“슈퍼히어로 랜딩은 안 해? 그거 저번에 인스타에서 반응이 꽤 좋았는데.”
“사실 주민들 반응이 괜찮았어요. 한 번 더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공대장?”
유지웅은 혀를 차며 손을 휘휘 저었다.
“무슨 말씀을. 여기는 시리아입니다. 미국의 예법을 여기서 펼칠 수는 없지요.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더 뜨겁게! 여기는 덥고 뜨거운 중동 지역이니까 그렇게 갑시다!”
티라노는 아직도 파괴 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쉬지도 않은 모양이다.
황백호가 혀를 찼다.
“참,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는 건지……. 아주 그냥 힘이 넘치는군요.”
괴수답게 큰 체격을 자랑하긴 하지만 지룡이에 비하면 가소로울 정도로 작은 몸집이다. 황백호는 크게 어렵지 않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섰다.
“가겠습니다! 엄호를!”
“가세요! 고! 고!”
황백호는 자세를 잡은 채,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힘껏 포효를 뽑아냈다.
맹수를 닮은 듯한 그 포효 소리는 사람이 냈다기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고 무거웠다.
―캬오오!
한창 불꽃 숨결을 뿜어내고 있던 티라노는 황백호의 포효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자세를 살짝 낮춘 황백호는 눈을 부릅뜬 채 티라노를 노려보며 외쳤다.
“덤벼라! 나는 여기 있다!”
―캬오오!
티라노는 큰 몸집을 빠르게 휙 돌렸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앞으로 밀고, 꼬리를 뒤로 뻗어 균형을 잡은 채, 두 뒷발을 성큼성큼 움직이며 달려왔다.
황백호도 지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괴수와 인간은 이제 잠시 후면 서로 충돌할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유지웅은 활을, 정효주는 라이플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레이크가 다급하게 외쳤다.
“빅브라더! 저는 무슨 무기를 쓸까요?”
“아무거나 마음 가는 것부터! 닥치는 대로! 어차피 동생한테 어떤 무기가 실전에서 가장 적합한지는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거야!”
“네! 그럼 활부터 가겠습니다!”
레이크의 뒤에는 육중한 장갑차가 있었다. 타이어가 아니라 전차처럼 무한궤도를 이동 수단으로 장착한 특수 장갑차였다.
장갑차의 뒤쪽은 활짝 열려 있었는데, 안에는 활, 권총, 라이플, 로켓탄 등 다양한 무기들이 적재돼 있었다. 레이크의 훈련을 돕기 위해 미군이 특별히 제공한 무기운반차량이었다.
레이크는 일단 활과 화살을 손에 잡고 꺼냈다.
‘나도 빅브라더처럼 훌륭한 궁수가 되겠어!’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으며, 그는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보였다. 황백호가 괴수의 품안으로 달려들으며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역동적이고 멋진 그 모습에 그는 벅찬 가슴을 추스르지 못했다.
나도 이제 저 사람과 같은 지위에서 같은 자격을 가지고 싸울 수 있다!
바로 그때 괴수의 발톱이 번개처럼 날아 움직이며 황백호를 후려 쳤다. 황백호는 괴수의 몸에 칼질 한 번 가하지도 못하고 수십 미터가 나가떨어지며 나뒹굴었다.
“이야, 그놈 한 번 겁나게 빠르네. 우리 메인 탱커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았어.”
“비, 빅브라더! 메인 탱커가 지금 괜찮은 겁니까? 엄청 멀리 나가떨어진 것 같은데요.”
“공중에서 맞았으니 당연히 저 정도 떨어져 나가는 게 정상이지. 하지만 괜찮아. 저런 충격도 견디는 게 바로 탱커란 존재니까. 이제 금방 벌떡 일어나서…….”
“……지웅아, 메인 탱커가 안 일어나는데?”
정효주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유지웅은 황당하고 의아해서 시력에 집중해서 황백호의 상태를 살폈다.
황백호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채 사지를 부들부들 떨면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에 흰자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안구가 돌아간 것 같다.
“뭐야? 왜 저래?”
“뭔가 이상해. 이럴 리가 없는데…….”
유지웅과 정효주가 당황해하자 레이크도 덩달아 긴장감을 느끼고 불안해졌다.
티라노는 멀리 나가떨어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황백호를 보고 흡족한지, 머리를 하늘 높이 쳐들고 크게 포효하고 있었다. 포효가 섞인 불꽃이 높이 솟구치며 퍼지는 모습이, 마치 불꽃 폭죽이 크게 터지는 것처럼 보였다.
“탱커가 한 방에……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방어장비도 없이 제대로 맞았다 해도 겨우 옐로 몹 따위한테 탱커가 저렇게 될 이유가 없…… 잠깐만?”
“옐로 몹?”
유지웅과 정효주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게임을 너무 오래 하다 보면, 이미 당연한 듯이 거쳐 왔던 저레벨 존의 몬스터 특징이나 공략 포인트를 까맣게 잊고 지내는 경험 말이다.
그런 걸 오랜만에 맞닥뜨리면 처음에는 잠시 좀 멍해 있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생각나는, 그런 경험이 둘에게도 찾아왔다.
“……쟤 레드 몹이었구나.”
“아, 어쩐지.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부수고 다니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이렇게 벌써 나오면 어떡해. 우린 아직 힐러도 한 명 안 나왔는데.”
레이크는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실시간 무선 통역이 잘못된 건 아닌데, 맥락을 전혀 짚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겠다. 저 괴수가 지금까지 나타났던 다른 괴수들에 비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