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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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버와 최윤은 가벼운 토의 끝에 각자가 개발한 ‘결정체 기관’의 개량 방법을 찾았다. 그 가벼운 토의라는 것도 상대와 연구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스스로 찾아낸 것이지만.
당장 해결 방안을 적용할 수 없는 최윤과는 달리(무중력 공간을 활용해야 하므로), 휘버는 발전소 외에 발열기관을 적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발열기관을 터빈발전기 물 끓이는 용도 외에도 쓸 데가 많아졌군. 가정 난방이나 조리기구로도 쓸 수 있겠어. 돈 많이 벌겠구나, 휘버.”
“난방뿐만 아니라 열 발생 자체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소형화가 관건입니다. 지금은 발열기관이 너무 큽니다.”
발전소에 이용하기에는 적당한 사이즈이지만, 가정환경 등 일상생활에서 무리 없이 쓰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당분간 발전소는 내열기관으로, 자동차는 전력기관 체제로 가야겠습니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도달한 결론이었다. 기술적 한계나 효율을 고려하면 그게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지금 제니스 컴퍼니의 결정체 생산량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겁니다.”
제니스 컴퍼니에서 생산하는 결정체 물량은 지금도 빠듯하다.
결정체 배터리나 결정체 발전소를 감당하려면, 생산량으로는 전혀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지금보다 생산량을 10배 이상 늘려도 한국 내 결정체 전기자동차 정도만 겨우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한미 결정체 발전소, 그리고 미국 전역에 보급될 전기자동차까지 고려하면 어림도 없는 수준이군. 전 세계 시장을 고려하면…… 끔찍한 수준인데?”
“창고에 비축된 물량이 1경 8,700조 달러어치 정도 되지 않나요? 일단 급한 대로 그것부터 시장에 풀면 어떨까요?”
“그래봤자 전 세계 수요를 생각하면 몇 십 년을 넘기지 않고 바닥이 날 거야. 지금이야 결정체가 한정된 분야에서만 쓰이지만, 나중에는 거의 전방위적인 분야에 쓰일 테니까.”
니트로는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혹시 알아? 나중에 결정체로 만드는 섬유나 원목이 유행을 탈지?”
“결정체로 만든 옷이라니…… 상상이 잘 안 됩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지. 볼펜, 잉크, 지우개, 양념, 조미료, 향신료까지 나올 수도 있는 거야.”
“…….”
정말 그런 시대가 온다면 인류가 일 년에 소비하는 결정체 물량은 대체 얼마나 될까?
갑자기 제니스 컴퍼니가 비축하고 있는, 1경 8,700조 달러어치 결정체 물량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물량입니다.”
휘버가 주먹을 꾹 쥔 채 말했고, 최윤이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니트로는 졸지에 당황해서 버벅거렸다.
“아니, 왜 둘 다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최윤 박사, 적어도 당신은 그러면 안 되죠!”
“답은 괴수 사냥에 있습니다.”
“결정체 재배만으로는 앞으로 폭발하게 될 물량 수요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괴수는 앞으로 더욱 많이 늘어나고 출현할 겁니다. 유지웅 의장님은 최종적으로는, ‘뒷산에 올라가보니 괴수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사회’가 일상화될 거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괴수의 공존 시대가 열리는 거죠.”
“인간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결국 괴수를 꾸준히 사냥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한 거주구역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괴수 사체 물량은 정기적으로 꾸준히 쏟아져 나오게 될 겁니다. 사체를 결정체로 정제하는 기술이 중요합니다.”
둘이 번갈아가며 말을 쏟아내느라 니트로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왼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오른손으로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요. 그만들 해요. 늙은이 골 울리려고 하니까 지금.”
“정제 기술의 완성을 하루빨리 앞당겨야 합니다.”
“걱정 말아요. 내 수제자 가렌한테 모든 걸 맡길 생각이니까.”
“교수님이 직접 나서주셔야죠!”
니트로는 괴수의 신체가 결정 에너지로 이뤄져 있음을 증명해냈다. 45억 달러를 실험 비용으로 써서 괴수 사체를 결정체로 정제해보임으로써.
그러나 기초 원리가 증명된 것이지, 실용화 기술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시작조차 안했다.
“교수님이 발을 빼시면 어떡합니까. 하루하루가 인류에게는 막대한 손실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최윤이 모처럼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이후 연구원이 한 명 들어섰다. 셋의 시선이 동시에 쏠리자 연구원은 멋쩍어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어, 박사님들. 아무래도 지금 방송을 켜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죠, 박돈식 연구원?”
“유지웅 의장님이 기획재정부 차관 불러다가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진지 모드 방송입니다.”
유지웅 채널의 열혈 시청자들은 유지웅이 평소의 가벼운 일상 잡담 분위기가 아닌, 사회에 진중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때는 ‘진지 모드 방송’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유명 인사나 정부 고위직을 초대해서 토론회 식으로 진행하는 방송을 말한다.
“진지 모드 방송?”
“지금 막 시작했는데, 대화 주제가 결정체 산업 육성에 대한 제니스 컴퍼니의 거시적 계획이랍니다. 세 분도 들으셔야 할 것 같아서…….”
“내 태블릿이 어디 갔지?”
“노트북, 노트북!”
“전 그냥 폰으로 보겠습니다.”
휘버는 허둥지둥 태블릿을 찾았고, 니트로는 가방에서 급히 노트북을 꺼냈으며, 최윤은 에어팟을 귀에 꽂고 아이폰 시청앱을 켰다.
채널에 들어가니 아직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화려한 꽃무늬가 들어간 셔츠를 입은 유지웅이 카메라를 보고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잔뜩 긴장한 중년 남자가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 동생들. 미리 예고한 대로 실시간 시청자 수가 5,000만을 넘으면 본편 시작할게요. 지금 4,200만 명 살짝 넘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네.」
―평소에는 시청자 수 상관없이 바로 본편 들어가시면서 오늘은 왜 이러는 거죠, 지웅 형님?
―바보냐. 오늘은 진지 모드 방송이시잖아. 당연히 한 명이라도 더 많을 때 시작하시겠다는 거지.
「자자, 동생들. 우리 차관님 서울에서 이 먼 제니스 타운까지 수고로운 발걸음 하셨는데, 다들 긴장 좀 풀어줘. 그래야 본편 시작할 때 안 떨고 침착하게 하실 거 아냐.」
―차관님, 결혼하셨어요? 자녀분은 몇인가요?
―기재부 차관이면 연봉 얼마 받아요?
―접대 골프 같은 것도 많이 받아보셨나요?
―머리숱이 왜 그래요? 설마 차관 연봉으로는 탈모치료제 못 사나요?
―공부 얼마나 잘하셨나요?
―혹시 나오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오신 건가요?
―왠지 제비뽑기에서 잘못 뽑은 듯. 얼굴 표정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시청자들은 잔뜩 얼어 있는 기재부 차관을 향해 이런저런 드립을 치며 놀려댔다.
유지웅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자, 이제 5,000만 명 넘었으니까 본편 시작합니다. 자, 금석준 차관님. 공무 중에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이 먼 전남 제니스 타운까지 손수 내려오신 이유가 뭐죠?」
금석준 차관은 여전히 잔뜩 얼어 있는 눈으로 유지웅을 쳐다보기만 할 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아직도 긴장을 덜어내지 못한 그에게 시청자들이 우스갯소리를 쏟아냈다.
―지웅이 형님이 불러서 온 거 아닙니까? 형님이 불러놓으시고는 왜 내려왔냐고 물어보시면 어떡합니까.
―진지 모드 방송이시잖아. 저렇게 대본에 맞춰서 진행 시작하고 그러는 거지, 뭐 그런 걸 따지고 그래.
「겨, 결정체 발열기관과 전력기관의 국내 상용화에 관한 의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게 전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전력기관이야 특허가 우리 제니스 컴퍼니에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발열기관은 미국 연구소가 특허를 갖고 있는데요?」
「하, 하지만 유지웅 의장님이라면 얼마든지 국내에 도입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째서죠? 결정체는 괴수를 잡아서 사체를 정제해도 나옵니다. 더 이상 저만의 독점 품목이 아니에요. 미국은 독자적으로 발열기관을 이용해 전력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형님, 맞는 말씀이지만 형님은 미국하고 엄청 친하시잖아요. 그냥 말 한 마디만 하면 기술 도입은 금방일 듯.
―근데 지금 사체 정제 기술은 아직 개발 안 되지 않았나? 니트로 교수가 45억 달러 들여서 증명만 한 상태잖아.
―안정적으로 대량 정제하는 기술은 아직 전혀 개발 안 됐지.
―그럼 미국은 발열기관 개발했어도 어차피 원료 공급은 우리나라에 의존해야 하는 거 아님?
―맞아. 그래서 기재부 차관이 여기까지 내려와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제대로 말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얼어 있던 기재부 차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굳은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발음도 분명해지고 음성의 떨림도 가라앉았다.
「현재 국회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시장에서 점진적으로 퇴출하는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통과 시점을 기준으로 2년 후부터는 내연기관을 탑재한 신차 자동차의 생산, 수입이 금지되고 재고품만 판매할 수 있습니다.」
―국회가 웬일로 쎄게 나가네?
―내연기관에만 몰빵하고 전기자동차 준비 안 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다 죽겠군. 그래봐야 몇 개 안 되지만.
「또한 4년 후부터는 판매까지도 완전히 금지되며, 8년 후에는 모든 내연기관 자동차 국내 운행 자체가 금지됩니다.」
「한 마디로 최장 8년의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자동차를 8년 밑으로 타고 폐차할 사람이 아니라면 법안 통과 순간부터 차를 안 사고 대기타겠네요. 아니, 지금 법안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금부터 차 안 사고 존버하겠네요. 그렇죠?」
「아마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와…… 이건 너무 쎈데. 국회에서 작정하고 내연기관 자동차 중지하려나 보다.
―미세먼지하고 환경오염도 심한데 내연기관 차량은 하루빨리 퇴출시키는 게 낫지.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올해 안으로 전부 시장에서 퇴출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 최소 전기자동차 오너. 안 그러면 저런 생각을 품을 수가 없다.
―근데 미세먼지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는 중국 공장 탓이 훨씬 크지 않나…….
니트로, 휘버, 최윤, 세 과학자는 각자 디바이스를 쥔 채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대담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차관은 좀 더 자신감이 붙어서 말했다.
「결정체 전기자동차의 원활한 보급을 위해서는 결정체 배터리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유일한 결정체 생산자인 제니스 컴퍼니와 사전 협의를 위해서 이렇게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자, 시청자 여러분. 사실은 그 법안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기재부를 호출한 겁니다. 제 의견 없이 그런 중대한 정책을 통과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아마 지웅이 형님이 부를 것을 알고 국회에서 먼저 제스처를 보낸 걸 겁니다. 그 정도 눈치는 있는 분들이잖아요. 여의도 영감님들.
―무슨 소리. 임시국회의사당이 지금 광주에 있는데 언젯적 여의도 타령이야?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잖아?
「아무튼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해 제가 한국, 아니 전 세계에 공지할 내용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거니까 지금 방송 시청하시는 국가 원수 여러분들도 잘 들으세요. 오역 같은 거 안 나게 통역가들도 단단히 주의 하시고요.」
유지웅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장난꾸러기 악동이라는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진중한 기색만이 가득했다.
「현재 창고에 비축된 결정체는 어디까지나 유사시를 대비한 물량입니다. 전혀 시중에 공급할 생각이 없습니다. 지금 공장에서 재배, 아니 생산하는 물량만으로 커버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