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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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청구를 기각합니다.”
헌법재판관들의 만장일치 기각 결정에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발칵 뒤집어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각 결정이었다.
심지어 김호 대통령 본인조차 기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매우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 바보스러운 표정은 클로즈업을 통해 매스컴을 탔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이거 실화임?
―응, 실화. 탄핵 청구 기각. 김호 각하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안녕하세요, 청와대 여러분? 각하께서는 이제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청와대로 복귀하게 되셨습니다. 축하드림은 개뿔, 이게 나라냐!
―나도 얼떨떨하긴 한데, 솔직히 탄핵 기각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뭐야, 아직도 여당 댓글알바가 살아 있었어? 돈줄 끊겨서 죄다 실업자 된 거 아니었냐?
―노놉. 나도 김호 싫어함. 근데 김호 탄핵 자체가 애초에 대북 투자 막힌 거 때문에 재벌들이 끌어내린 거잖아. 재벌들 대북 투자로 꿀 빠는 것보다는 차라리 김호가 남은 임기 동안 청와대에 순장돼 있는 게 나음. 난 김호보단 재벌들이 더 싫거든.
―알바 아닌 듯. 논리가 나무랄 데가 없다.
―진짜 알바가 맞다면 저런 논리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대단한 거 같다. 인정해줘야 한다.
―알바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탄핵 기각.
정작 가장 큰 수혜자인 김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오히려 황당해하는 표정은 큰 유명세를 탔다.
손재주가 좋은 크리에이터들은 기각 선고를 듣고 청와대로 복귀하는 김호 및 청와대 측근들의 표정 캡처 사진을 가지고, 온갖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기각 결정에 환하게 웃는 각하의 얼굴.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환하게 웃는 각하의 위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드시는 각하의 몸짓.
―아, 가카시여!
표정 캡처로 만든 예술작품들 과반은 과도한 찬양 수사를 통한 조롱의 목적을 담고 있지만, 30% 정도는 김호에 대한 진심 어린 열렬한 지지를 담아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김호는 그렇게 직무 정지가 풀린 채 청와대로 다시 복귀했다.
이제는 그가 칼을 빼들 차례였다.
“최 실장, 우리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청와대로 복귀하자마자 비서실장과 독대를 가진 김호는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목소리로 현재의 위기를 설명했다.
“우리를 노리는 이들을 지금 쳐야 해. 이게 마지막 기회야.”
최준우 비서실장은 김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재계는 이번에 작정하고 칼을 빼들었다. 야당을 움직여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하야시키려 했다.
하지만 헌재는 뜻밖에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마 야당이나 재계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저들이 몹시 당황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아니, 지금 칼을 빼들지 않는다면 위기감을 느낀 저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청와대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를 바로 지금 사용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예전에 기무사에 지시한 것 있지?”
“예, 각하.”
“일주일 안으로 개시할 수 있나?”
“조금 계획에 수정 보완을 해야겠지만 개시 자체야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니스 컴퍼니는 건드리면 안 돼. 유지웅 의장은 자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대놓고 나서지 않는 편이니.”
“예, 각하. 알겠습니다.”
김호는 숨을 돌리며, 집무실을 눈으로 훑었다.
정말이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다. 그대로 탄핵이 인용돼서 피구속인 신분으로 절차를 밟으며,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지루한 인생을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은 아직 자신을 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꼬박꼬박 신앙을 위해 출석한 보람이 있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
재계 기업들을 떠올리면 이가 바드득 갈린다.
그저 대북 투자의 길을 열기 위해 자신을 강제로 끌어내리려고 하다니. 어차피 몇 년만 더 지나면 임기가 종료되는데, 그 몇 년을 못 참는단 말인가?
‘애초에 나 말고 다른 대통령이 된다고 황백호 그 인간이 너희들에게 투자의 문을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정말이지 바보 같은 것들이군.’
황백호가 투자를 개방하지 않는 것은 남한의 행정부가 미워서가 아니다. 그저 남한의 기업들에게 이권을 나눠주기 싫어서, 그래야 할 이유가 없어서일 뿐이다.
북한의 가장 큰 채권자이자 대주주는 바로 유지웅이고, 그는 국내 기업들에게 호혜를 베풀어줄 생각이 없으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호는 불현듯 측근이자 전 비서실장인 박형오가 전달한 메시지를 떠올렸다. 바로 제니스 컴퍼니에서 직접 나온 메시지였다.
‘특별한 사면을 보장하겠습니다. 그것이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겁니다.’
특별한 사면이라고 해서 특사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1, 2년 정도만 감옥에서 버티면 되는구나 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제니스 컴퍼니가 준비한 배려는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훨씬 더 좋았다.
탄핵된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으로서 복귀했으니까.
또한 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또렷하게 이해했다.
“이제 내 차례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다보는 그의 입가는 어느 때보다 사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윤수로 헌법재판소장은 잠을 청하지 않았다.
벌써 자야 할 시간을 한참이나 넘겼지만 그는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내가 찾아와서 언제 잘 거냐고 걱정했지만, 그는 먼저 자라는 말로 돌려보냈다.
삐걱거리는 흔들의자에 앉아 글자를 탐닉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소리 없이 서재문이 열렸다. 분명히 아까 아내를 들여보내고 안에서 잠갔는데.
고개를 돌린 윤수로는 문 손잡이가 뒤틀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서진 것이다.
곧이어 모델처럼 늘씬한,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가 들어섰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윤수로는 당황하지 않았다.
“왔군.”
“호오, 내가 방문하리란 걸 알고 있었나?”
“모를 리가 있겠나. 아마 오늘 헌재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항의하러 왔겠지.”
“마음에 들지 않다……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준은 아닌데.”
최형식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어느덧 죽창을 꺼내 들고 있었다.
“자기와 핏줄이 죽는 한이 있어도 적폐 세력을 보호하겠다라…… 그 충성심만큼은 높이 사지. 안타깝군. 그 마음이 올곧은 정의를 향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윤수로는 물끄러미 올려다보기만 했다. 최형식은 잔잔한 표정을 보고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정?’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침입하기 전 샅샅이 저택 인근을 뒤졌지만 아무런 잠복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설령 잠복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저 죽창으로 찌르고 도주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탱커를 온전히 제압하기 위해서는 같은 탱커 셋 이상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맞서 싸웠을 때의 이야기다. 탱커가 작정하고 도주한다면 다섯 이상의 탱커가 달려들어도 막지 못한다.
그런 의아함을 지우지 못해서인지, 최형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그 전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네.”
“날 설득할 셈인가? 소용 없다. 헌법적 판단을 내려야 할 당신들이 사익을 위해 정의를 저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죽이고 나머지 여덟 명의 재판관들도 오늘 내로 찾아갈 것이다.”
“설득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고 싶은 걸세. 다 보고 나면 자네도 아마 그냥 돌아가게 될 거야.”
“…….”
“듣고 싶지 않나?”
“좋다. 들려다오.”
윤수로는 조그마한 캠코더를 꺼냈다. 최형식은 차분한 눈으로 그의 동작을 주시했다.
캠코더를 TV에 연결하자, 곧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9인의 헌법재판관, 그리고 가면을 쓴 한 명의 중년 남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윤수로 헌법재판소장님. 지금까지 우리가 합의한 사항을 녹화한 뒤 백신 공격대가 찾아왔을 때 보여주면 됩니다. 준비됐나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요, 시작합시다.
―음, 일단 이 녹화를 보게 될 최형식, 혹은 백신 공격대원에게 먼저 알립니다. 아마 당신은 지금 헌법재판관들을 죽일 생각으로 찾아왔다가 이 녹화 영상을 보게 될 겁니다.
최형식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눈이 마주치자 윤수로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에는 윤수로 헌법재판소장 외에 다른 8인의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먼저 박석후 재판관님.
―네. 박석후입니다.
―그 다음 이진영 재판관님.
―네, 이진영입니다.
그 뒤에도 나머지 재판관들의 이름이 차례차례 불리고, 그들은 분명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최형식이 오늘 이곳을 찾기 전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확인했던 얼굴 및 목소리와 분명히 일치했다.
―나는 유지웅 의장님의 오른팔입니다. 보안을 위해 내 정확한 신원을 밝히기는 곤란합니다. 먼저 오늘 나는 세 시간 넘게 이 분들과 이야기를 한 끝에, 김호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합의를 보았습니다.
“거짓말! 유지웅 의장의 오른팔이라고?”
―아마 내가 정말 의장님의 오른팔이냐고 당신은 의심할 겁니다. 믿기 어렵겠죠. 하지만 금방 들통날 만큼 허술한 거짓말을 일부러 시간 내서 이렇게 만들 만큼 저나 여기 헌법재판관분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
최형식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영상을 노려보았다.
―먼저 우리가 합의본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김호 대통령의 탄핵은 만장일치로 기각될 겁니다.
“이게 무슨!”
―물론 기각된다 해서 김호 대통령의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더 큰 세상을 위한 포석이죠.
“……포석?”
―어떤 세상인지 궁금한가요? 그럼 한 번 지켜보세요. 우리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되면 그때 가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해도 됩니다. 바로 헌법재판관들의 가슴에 죽창을 꽂는 것 말입니다.
최형식은 핏발이 선 채로 윤수로를 돌아보았고, 눈이 마주치자 그는 천천히 끄덕여 보였다.
―보안 문제도 있고, 자세히 설명하기에 시간이 촉박한 문제로 더는 말하기 곤란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죠. 바로 당신 같은 수라가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한 포석이라는 것을요.
“나 같은 수라가 필요 없는…….”
최형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비록 수라의 길을 택했지만, 그의 진정한 꿈은 자신 같은 이가 필요하지 않는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인물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언제 완성될지 그 시기는 장담할 수 없지만, 첫 포문은 길어야 올해 안에 열립니다. 어때요, 한 번 지켜보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 열 명이 오늘 어떤 세상을 바라고 탄핵을 기각하기로 합의했는지?
어느덧 영상은 끝이 났다.
뚫어져라 노려보던 최형식은 천천히 등을 돌렸고, 윤수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지켜보겠다. 당신이 그린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