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79)
00179 우리 휴가 중인데요? =========================================================================
말을 해놓고 유지웅은 깜짝 놀랐다. 반성하고 좀 조심해야지, 한 게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갑질이 자연스러운가.
남기철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어지간히 무안한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그도 안 됐다. 그냥 중간에 치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샌드백 신세일 뿐인데.
무슨 일인지 한 번 들어나 보자고 마음을 바꿨다.
“무슨 일인데요? 들어나 보죠.”
「한미 괴수방어공조체제 구축 문제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은 한국에 여러 모로 친근한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유지웅 등장 직후, 미국은 그를 회유할 수 없다면 한국을 회유한다는 방침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현재 미국은 상호 괴수방어체계를 위해 열심히 공을 들이고 있었다. 상호방위란 어느 한쪽이 괴수의 습격을 받으면 다른 한쪽이 도와주는 체계다.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레드 몹 습격을 받으면 한국이 도와주게 되는 식이 될 것이다. 옐로 몹 가지고 서로 도움을 요청할 이유는 없으니.
특히 블랙 몹 때문에 휴스턴 참사를 겪은 미국은 끈질기게 조약을 맺으려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은 얄밉게도 요리조리 빼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외교관계에서는 괴수 방어 조약을 히든카드로 제시하며 톡톡히 이득을 보고 있었다.
남기철은 그런 사정을 설명하며 말을 계속 했다.
「미국은 상호 방어 조약을 절실히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 미국 시장을 생각하면 결국 우리나라는 이 조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하긴 해야 합니다.」
“하세요, 그럼.”
누가 못하게 말렸나?
「유지웅 대장님 협조가 없이는 이 조약이 의미가 없습니다. 레이드 능력을 정부에 제공을 한다는 약속을 해주시지 않으면 정부로서는…….」
“내가 왜 내 목에 줄을 채워요? 그냥 나 빼놓고 둘이 알아서 조약 맺고 하시면 되잖아요.”
정부는 나라의 안보를 위해 레이드 능력자를 징발할 수 있다. 레드 몹의 습격이 있을시 동원 소집을 하는 게 그 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강제적 징발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유지웅을 강제로 상호 방위 조약 실행에 징발해서 써먹으려면 법을 고쳐야 한다. 근데 그게 레이드 능력자들 입장에서는 굉장한 악법이다. 나라 위험할 때 소집해서 써먹으면 됐지, 무슨 해외 장사하는 데까지 징발하려는 거냐고 욕을 먹는다.
즉 해외 파견에 써먹으려면 결국 본인의 협조가 필요하다.
“남 국장님 같으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나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국가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소집 돼서 목숨 걸고 싸운 게 몇 번인데 아직도 그 타령이에요? 우리나라 덮치는 레드 몹이랑 싸우면 됐지 왜 남의 나라 덮치는 것까지 내가 의무적으로 신경 써야 돼요? 참 이상한 논리네. 아무튼 난 그런 거 안 해요.”
반성은 개뿔. 지들이 멋대로 의심해놓고 의심 풀리자마자 간보는 것들 상대로 뭐 하러?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낫겠다.
“근데 이거 이 시간에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고, 왠지 이게 본론이 아닌 거 같은데 맞나요?”
「아, 예. 사정 설명을 한다는 게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사실은 미국이 레드 몹 섬멸을 의뢰했습니다. 이 요청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상호방위조약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는 중요한 사항이라서요.」
“전 안 가요, 아시죠?”
「미국은 유지웅 대장님을 억류한 것에 대해서 계속 사과를 하고 관련자를 경질했습니다. 언제까지 미국과 척을 지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겁니다. 이참에 화해를 하는 게 어떨까요?」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사과 받아줬어요. 그래도 미국 땅은 안 밟아요. 아무 거나 알아서 핑계 대요. 아프다고 하던가요. 하여튼 저는 미국 땅 밟을 생각 없어요.”
레드 몹을 잡아주러 갔더니, 녹서스의 돌 없어졌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잡아 가둔 국가다. 국제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나?
매정하게 전화를 끊고 나자 정혜주가 감동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형부, 멋있어요.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는 거, 저도 꼭 닮고 싶어요.”
“그거 칭찬이야?”
“그럼 칭찬이죠. 요즘 세상이 얼마나 힘들어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기어이 하고 싶으면 최대한 돌려 말해야 하고, 형부처럼 그렇게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정효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부에서 뭐래?”
“서두가 좀 장황한데, 용건은 그거야. 미국이 레드 몹 잡아 달랬대. 그래서 거절했어.”
“미국이랑 계속 등 돌리고 있을 순 없지 않니?”
“표면적으로 불화만 없음 괜찮아. 어찌 됐든 난 미국 땅만 안 밟으면 돼. 너도 가기 싫잖아?”
“하긴.”
억류당한 기억이 새삼 떠오른 정효주의 표정도 살짝 불쾌감을 띠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맥주에 치킨을 뜯으며 셋이서 깔깔거리고 시청했다.
자매가 나란히 앉아 있으니 그림이 된다. 동생은 하의 실종의 핫팬츠 차림으로 하얗고 매끈한 다리를 자랑했고, 언니는 상의가 가슴이 깊이 파여 풍성한 가슴 계곡과 미려한 쇄골선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혜주도 미모로 치면 상당한 수준이다. 그래도 냉정히 말하면 언니한테는 안 된다. 혜주가 딸린다기보다는 언니가 너무 발군이었다.
여자가 아무리 피부가 좋아도 어느 정도는 잡티도 있고, 탄력이 조금 떨어진다거나 조그만 점 같은 게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탱커는 그런 게 일절 없다. 최상의 건강한 상태, 가장 균형 잡힌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군살도 없이 가장 완벽한 몸매를 유지한다.
대신 혜주는 그 나이대에 맞는 발랄함이라던가, 귀여움 같은 게 있어 강점을 가진다. 혜주도 탱커가 된다면 연예인 같은 걸 시켜도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토요일 밤인 까닭에 셋이서 늦게까지 놀다가 이제 그만 자기로 했다. 정혜주는 2층 자기 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2층은 전부 손님을 재우기 위한 방인데, 그 중 하나를 골라서 아예 자기 방처럼 꾸며놓은 것이다. 여기 놀러올 때마다 거기서 잔다.
“언니, 잘 자. 형부, 잘 자요.”
“잘 자.”
새벽에 고용인들을 시키기도 미안해서 대강 정리를 하고 부부도 3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닫자마자 거친 손이 뒤에서 가슴을 쥐어 왔다. 다소 우악스럽게 주물러대며, 입술로는 목을 탐닉한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셋이서 술을 마시고 노는 와중에도 중간 중간 은밀한 눈빛을 교환했으니까.
부부만이, 사랑하는 사이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애욕. 그가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 달아오른 숨소리에서 진하게 느껴졌다.
“효주야.”
침대까지 갈 여유도 없는지 입구에서 달려든다. 서로 간신히 하의만 벗은 채 순식간에 찔러 넣으며 결합했다. 뜨거워진 몸을 서로에게 비비며 한 덩어리로 엉켜들었다.
* * *
제니스 대원이라는 것을 밝힌 이후로 정효주는 대학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인맥이 필요하다. 대학은 그 치열한 세상을 사는 법을 터득하는 예비장소다. 특히 결정체학과는 전공을 살려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나중에 취업하면 업무상 정규 공격대 레이더들과 간접적으로 부딪치게 된다.
왜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이냐면, 일반 사원이 레이더와 직접적으로 부딪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정체 감정 평가 직원쯤이나 되어야 직접 부딪칠까? 어찌 되었든 레이더는 경제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주류층이니까.
“쟤가 제니스 대원이래.”
“어머, 어쩜. 어쩐지 입고 다니는 거 장난 아니더라.”
“저 귀걸이 봤어? 저게 수천만 원짜리래.”
“정말?”
조금 억울한 것도 있었다. 비싼 명품이나 귀금속이 없는 것은 아닌데, 학교에 올 때는 안 찬다. 대학생들이 흔히 찰 만한 장신구를 사용한다. 근데 자기들끼리 멋대로 몇 만 원짜리를 몇 천만 원짜리로 부풀리곤 한다.
「나 왔어. 주차장인데 어디로 올라가면 돼?」
“응, 미안해. 지금 나갈게. 지하 주차장이지?”
「어. 지하.」
정효주는 전화를 받으며 급히 뛰었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니 유지웅이 페라리에 기댄 채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그녀가 어제 밤새도록 한 과제물을 들고 있었다.
“여기.”
“고마워.”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그녀가 안도하며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춰 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많이 중요한 건가 봐?”
“응.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거든.”
그녀는 전공수업이 사흘 연속으로 몰려 있었다. 아랍에서 휴가를 보낼 때도 그녀는 수업이 있을 때면 꼬박꼬박 A3를 이용해서 한국으로 오곤 했다.
“학교 다니는 게 그렇게 재밌어?”
“또래 애들이랑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잖니. 그리고 요즘 대학이 대중 교육이라 너도 나도 다 대학생이니까. 나중에 애가 엄마는 왜 대학 안 갔어 하면 무안하잖아.”
유지웅은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나중에 아이가 ‘엄마는 대학 나왔는데 왜 아빠는 대학 안 나왔어?’라고 물으면 어쩌지? ‘아빠는 엄마보다 머리가 나빴어?’라고 아이가 생각하면…….
“나, 나도 그냥 여기 입학할까? 공부 많이 해야 돼?”
“그냥 기부금 내면 돼.”
“진짜? 돈이면 다 돼?”
“그건 아닌데 레이더는 특례 입학이 쉬워. 돈 내면 더 확실하고. 나는 수능 봤지만 너는 수능도 안 봐도 될 거야. 아, 온 김에 학교 구경이나 할래?”
“전에 했잖아.”
“전에는 뭐 둘러보기나 했니. 그리고 방학이었구.”
정효주는 유지웅의 패션을 점검했다. 상태 OK. 역시 남자는 옷이 날개다. 청바지에 흰 면티를 걸친 게 전부지만 그녀가 세심하게 고르고 고른 명품 브랜드. 잘 모르는 애들이 보면 평범한 대학생 차림이지만, 눈썰미 좋고 뭐 좀 아는 애들은 옷의 가치를 알아차릴 것이다.
“어, 언니? 이 분은 누구예요?”
“혹시 소문의 그 남자친구?”
단대 건물로 가는 도중 무리를 이룬 여자애들과 마주쳤다. 같은 1학년이면서 현역으로 입학한 애들이었다. 정효주는 웃으면서 다정히 팔짱을 꼈다.
“응. 내 남……친.”
“와, 이 분이 그 분이구나.”
여자애들은 꺅꺅거리며 방방 뛰었다. 박준 때문에 정효주 애인이 돈 잘 버는 제니스 대원이라는 것은 학과에 소문이 쫙 났다. 비교적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들은 많은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딱 학교에 데려올 줄이야.
“혹시 클래스가 어떻게 돼요? 아, 이런 거 물어도 돼요? 실례되는 질문 한 건 아니죠?”
“괜찮아요. 힐러예요.”
“어머, 힐러요? 와, 디게 씩씩하실 것 같은데 힐러래! 어쩜.”
“언니랑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와, 언니 너무 부러워요.”
유지웅은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다. 체격이나 얼굴은 평범하게 생겼다. 하지만 제니스 소속 능력자라는 것은 대단한 매력을 부여한다. 특히 경제력이 중요시되는 남자라면 더더욱.
정효주는 단대 건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로 캠퍼스 위주로 그를 데리고 다녔다. 저번에 왔을 때는 가지 않은 코스를 골랐다.
“학생 디게 많네.”
“당연하지. 저번에는 방학이었잖니.”
“장난 아니다.”
무엇보다 가을이 한층 깊어져서 제법 쌀쌀한데 경쟁하듯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대생들이 대단했다. 춥지도 않나? 아니면 그만큼 경쟁심리가 대단한 걸까?
“와, 이 학교 물 좋다. 여자애들 디게 이쁘네.”
“너, 입학해서 바람피우려고?”
“바람 못 피게 맨날 빼주면 되잖아.”
짓궂은 음담패설에 그녀가 눈을 흘기며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힘 조절을 해서 하나도 안 아팠다.
“그럼 온 김에 총장실이나 들를까? 총장님한테 간단히 인사나 해두게.”
“나 아직 입학 한다고는 안 했는데.”
“치. 그럼 말고.”
“그냥 해본 소리야. 가자.”
일반 대학생이 총장을 면담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정효주는 일반 대학생이 아니다. 그녀는 이 학교 학생이면서 한편으로는 큰 기부자이기도 하다.
대학본부에 들어서자 정효주가 잠시만 하고 그를 세웠다.
“나 손 좀 씻고 올게.”
“응.”
1층 로비 의자에 앉은 채 유지웅은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조그만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저, 혹시 지웅 오빠……?”
고개를 든 유지웅은 자신을 부른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살짝 놀랐다. 종이뭉치를 잔뜩 안은 박효리가 그를 보고 역시 하면서 놀라워했다.
“오빠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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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아무리 저를 유혹에 들게 해도 저는 순애를 지키겠습니다! 실탄의 ㅅ은 순애의 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