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94)
00194 땅부자가 되었어요 =========================================================================
오염된 땅은 시세 의미가 없었다. 사람이 못 살 곳으로 소문나면서 거저 줘도 안 가지는 지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우선 원한 것은 쓸모없게 된 땅을 정부가 수용해주는 것이었다. 그 다음 원한 것은 농사생계수단의 보장이었다. 그러나 예산이 빠듯한 정부는 그 넓은 땅을 온전히 수용해줄 돈이 없었다.
처음 유지웅은 평당 시세를 5,000원으로 치고 평야를 사들이려고 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땅이라는 것을 치면 시세 5,000원도 많이 쳐준 것이다. 호남평야가 약 5억 6,000만 평이니 2조 8,000억 원이 된다.
정부는 현재 대략 평당 5만 원 정도로 토지보상금을 책정하고 있었다. 이 경우 호남평야만 해도 28조 원이 소모된다. 유지웅이 매입해주면 예산의 10%는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건 28조짜리 땅을 2조 8,000억 원에 판 게 아니라, 아무 쓸모없는 땅을 2조 8,000억이나 받고 판 것으로 봐야 한다. 유지웅 입장에서는 나름 호의를 베푼 것이다.
하지만 평당 10만-20만을 웃돌던 땅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당장 올해 생계 수단마저 상실한 농민들로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입장이었다.
“땅이 그 지경이 된 게 누구 탓도 아니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돈만 받고 인내하라는 건 수십만 농가 주민들더러 그냥 굶어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당장 올해 농사는 어떻게 합니까? 농사를 못 지으면 굶어 죽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농민들이 매일 같이 그렇게 호소했다. 여론도 그들에게 동정을 표했다. 농민들의 항의는 귀족 노조의 시위와 격이 달랐다. 그들은 정말 당장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정부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결정체 산업으로 나라가 부유해졌다지만 정부 예산이라는 것은 항상 쓰이는 곳이 정해져 있기 마련. 당장 28조 원의 토지보상금 재원을 확보하는 것만 해도 정부는 숨이 가빴다.
더군다나 결정체 산업으로 살을 찌운 국내 대기업들은 나라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하고 생색내기 식으로 모금을 내고 있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일성그룹이 낸 모금이 6,000억 남짓으로 제일 많은 액수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농가, 구제해줄 돈이 모자란 정부,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발 담그지 않으려는 기업,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나라가 조용한 날이 없었다.
“불쌍하다.”
정효주가 TV를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유지웅은 그녀를 뒤에서 껴안은 채 허벅지를 토닥거렸다.
“우리가 좀 더 도와주는 게 어떨까?”
“우리가 여기서 뭘 더 도와 줘? 쓸모도 없는 땅 평당 5,000원이나 쳐줬는데?”
“블루 결정체 그냥 수집해둔 거 있잖니. 그거 몇 개만 줘도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상관없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블루 결정체 하나 얻으려면 이삼십 분이면 되잖아. 그냥 하루 자원봉사 한 셈치고 내놓는 게 어떨까?”
계좌에 쌓아둔 현금 40조 원에 손을 댈 필요도 없다. 부부 레이드를 다니면서 얻은 블루 결정체를 팔지 않고 모아둔 게 꽤 된다. 돈으로 환산하면 큰 가치지만, 둘이 들인 노력과 시간으로 보면 하루 이틀만 투자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레드 몹 한 마리 잡는데 30분도 채 안 걸리니까.
둘에게는 고작 하루 이틀이지만, 그 하루 이틀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싫어?”
정효주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가볍게 끄덕였다.
“그래. 자원봉사 한 셈치고 내놓자. 어차피 장식용으로 썩히고 있던 것들인데.”
유지웅은 곧바로 강우석을 불렀다. 농민 지원 문제로 상의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두말 않고 달려왔다. 나이도 많고 또 중견 정치인인 그를 오라 가라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돈 내놓는다는데 달려와야지 별 수 있나.
“와이프가 그러는데 농민들이 좀 안 됐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가 좀 더 돈을 내놓기로 했어요. 아, 물론 현물이에요.”
“감사합니다. 농민들도 기뻐할 겁니다. 그런데 현물이라면 설마 블루 결정체입니까?”
“네. 모아둔 거 20개를 전부 내놓을게요.”
유지웅은 이왕 내놓는 김에 갖고 있던 블루 결정체 20개 전부를 한꺼번에 내놓기로 했다. 유통마진까지 감안하면 20조 원이 넘어서는 가치였다.
단숨에 20조 원 이상의 자원이 확보된 셈. 강우석은 이렇게 크게 쓸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한참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연신 머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결정체는 전량 IACP에 매각해서 자금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IACP도 유지웅의 결정에 호응하듯, 결정체를 인도받은 즉시 유통마진까지 환산해서 미리 지불했다.
IACP가 책정한 금액은 총 26조 3,000억 원이었다. 유지웅이 이미 낸 2조 8,000억을 합치면 29조 1,000억 원의 재원이 확보된 셈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 환원.」
「개인이 근 30조를 낼 동안 우리 기업들은 뭘 했나?」
「기업의 외면, 개인의 원조.」
결정체 기부는 단숨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정부는 한 방에 토지보상금 재원을 확보했다. 이제 농민생계구제를 위한 재원 확보에 신경을 쓰면 되니, 그만큼 걱정을 덜었다.
여론은 유지웅의 행위를 고귀한 책무 이행이라고 칭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색내기 정도로 기부금을 낸 기업들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결정체 산업 활성화로 어느 때보다 경기가 좋은 기업들이 국내 농가의 위기를 나 몰라라 했다는 것이다.
근 30조 원이 투입되기는 했으나 이것으로 농가가 완전히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는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부족하나마 토지보상금은 받았지만, 아직 농민들의 생계수단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유지웅은 호남평야만 구매했다.
* * *
설을 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입생 오티가 열렸다. 특례입학으로 학교에 들어온 유지웅도 정효주의 권유로 오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헌데 관광버스를 타고 다 같이 이동한다는 말에 그는 기겁을 했다.
“난 그냥 V-23 타고 먼저 가 있을래.”
“안 돼. 버스에서부터 다 같이 친해진단 말이야. 혼자 움직일 거면 오티 의미가 없어.”
그렇게 정효주가 만류를 해서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버스에 올랐다. 갑부질도 한 이 년 했더니 관광버스를 타자마자 현기증이 났다. 어떻게 이런 걸 타고 몇 시간이나 시달려야 하는 거지? V-23을 타면 삼십 분도 걸리지 않는데?
“결정대 13학번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12학번 남희재라고 합니다!”
버스는 아직 정차해 있었다. 앞에 앉아 있던, 선배로 보이는 인물이 마이크를 잡았다. 키가 크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호남형 남자였다. 유지웅은 정효주가 같은 버스에 안 탄 게 못내 아쉬웠다. 몇 시간이라도 안 보면 영 그런 걸 보니 애처증이 단단히 생겼나 보다.
“이번 오티는 순전히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선배 눈치도, 교수님 눈치도,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신나게 보내세요! 친구도 많이 만드시고요! 아시죠? 오티 때 친구 못 만들면 학기 첫날에 밥 혼자 먹어야 됩니다.”
밥 혼자 먹는단 소리에 여기저기서 키득거렸다. 남희재는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 학생회 애들과 이야기를 했다.
“근데 아직 누가 안 왔어?”
“두 명 안 왔어요. 뭐 가져올 게 있나 봐요. 어, 저기 온다!”
“됐다. 이제 다 왔네.”
뭔가를 잔뜩 든 여자애 둘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자 버스 문이 닫히고 출발했다.
‘근데 왜 나만 혼자야?’
유지웅은 살짝 기분이 나빴다. 너도나도 옆자리에 동기와 같이 앉아 있는데 자신만 혼자였다. 혹시 아까 소집 때 스물두 살이라고 한 것 때문에 동기들이 기피하는 건가?
“이 후배님은 왜 혼자세요? 옆에 아무도 안 앉……. 어머! 지웅 오빠!”
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든 유지웅도 반색했다.
“박효리?”
“어머, 어쩜! 오빠, 우리 과 신입생이었어요? 못 됐다!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박효리는 반가워하며 얼른 옆에 앉았다. 핫팬츠에 늘씬한 스타킹을 신어 허벅지의 각선미가 훤히 보였다. 아, 이렇게 될 거였다면 비어 있던 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어떻게 된 거예요?”
“그냥 입학했어.”
“맞다. 오빠 와이프가 우리 과 다닌다고 했죠? 그럼 와이프 따라서 입학한 거예요?”
주위 눈치를 보며 박효리가 낮게 말했다.
“뭐, 그런 것도 있고.”
“궁금하다! 오빠 와이프 누구예요? 동갑이랬으니까 분명히 11학번 중에 있을 텐데 누군지 짐작이 안 가. 솔직히 11학번 중에 오빠랑 어울릴 만큼 예쁜 언니는 없거든요.”
11학번이 아니라 12학번에 있다. 정효주도 스물한 살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말 안 해 줘.”
“치. 치사해. 혹시 오빠 와이프 있다는 것도 다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있다니까?”
아는 얼굴을 만나서 유지웅도 반가웠다.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는 게 효주에게 살짝 미안하긴 하지만, 이게 다 남편을 다른 버스에 외롭게 놔둔 벌이라고 웃어넘겼다.
“저번 정모 이후로 자꾸 사람들 연락이 와요. 툭하면 뭐 사준다고 만나자고 하고. 정모 괜히 나간 거 같아요.”
“오크 전사인 줄 알았는데 엘프 사제가 나오니까 반전이 더해서 그렇지. 여자인 거 알면 그래도 유리하지 않아? 게임하면서 이것저것 신경 써주잖아.”
“연애하려고 게임하나요? 전 그냥 게임을 즐기고 싶은 거니까 그렇죠. 그런 과한 관심은 부담스러워요.”
수다를 떨고 있는데 남희재라는 선배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버스는 어느덧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자! 이쯤에서 자기소개 한 번 다시 제대로 해봅시다! 아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못했죠? 시간은 많고 갈 길은 머니까 한 명씩 차분하게, 천천히 호구 조사 해볼까요? 여기 이 잘생긴 친구부터!”
“아, 안녕하세요? 저는…….”
어느 앳된 남학생이 더듬거리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소개가 줄을 잇더니 유지웅에게도 마이크가 넘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지웅이라고 하고요. 스물 두 살입니다. 어쩌다 보니 조금 늦게 입학을 했지만 동기들과 친구처럼 친하게 잘 지내고 싶습니다. 나이 한두 살 많다고 동기들이 잘 안 놀아줄까 봐 걱정돼요. 하마터면 혼자 앉아 갈 뻔했어요.”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자 동기들이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들 처음인지라 조금씩은 긴장했는데 그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오, 이 분 아주 물건인데요? 근데 스물 두 살이면 나랑 동갑이네요. 걱정 마요, 어차피 남자는 군대 갔다 오면 학번보다 나이 우선이래요. 나도 빨리 다녀와야 하는데. 우리 씩씩한 후배님은 취미가 뭐죠?”
“돈 잘 씁니다.”
오, 하는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박효리는 자기만이 안다는 듯이 몰래 눈웃음을 보냈다. 농담으로 생각한 남희재가 웃음을 띠우고 다시 물었다.
“그럼 특기는요?”
“돈 잘 법니다.”
또 다시 오, 하고 가벼운 야유가 터졌다. 조롱보다는 반 장난으로 하는 야유였다. 다들 그가 쇼맨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 특기가 돈 버는 거? 돈 아주 잘 버나 봐요? 특기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거 보면?”
“그냥 오우 아이템 현질 할 정도? 아이템 경매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에이, 그 정도는 나도 벌겠다!”
남희재가 꾸짖듯이 농담을 던졌다. 동기들도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서먹했던 공기가 상당히 누그러졌다.
자기소개를 방자한 호구조사를 마친 뒤로는 마피아 게임도 하고, 가볍게 노래자랑도 하고, 그렇게 옥신각신 떠들었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잘 다듬어진 숲에 위치한 대형 콘도가 나타났다. 버스가 줄줄이 서고 신입생들이 내렸다. 다들 버스 안에서 나름 친해졌는지 재잘거리는 게 병아리떼 같았다.
그때 유지웅은 저 멀리 정효주를 발견했다. 반가워서 다가가려는데 정효주는 선배들과 함께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오빠, 뭐해요? 들어가야죠. 추워요.”
와이프가 만지고 싶은데! 왜 보고도 만지질 못하니! 유지웅은 속으로 안타까워하며 돌아섰다.
박효리와 남희재는 유지웅이 속한 조 담당이었다. 2박 3일 동안 30명이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3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넓은 방을 쓴다고 한다. 가능한 많이 몰아넣어둬야지 쉽게 친해진다나?
남자 반, 여자 반이 섞여 있으니 버스 안에서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유지웅 옆에 있던 남학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형, 이 시계 파텍필립 레플리카죠? 이 모델 레플리카는 저도 첨 보는데.”
“아, 이거요? 레플리카가 뭐죠? 나 선물 받은 거라 잘 모르는데.”
“진품은 아니고 그대로 똑같이 만든 거 말하는 건데요. 짝퉁이랑은 좀 다르구요. 레플리카 맞을 거예요. 이거 진품은 어떤 아랍 왕자가 경매에서 84억 원에 낙찰 받은 걸로 알아요. 그래도 이거 레플리카면 백만 원 넘을 텐데.”
“아, 그렇구나.”
남학생은 유지웅의 감탄을 ‘이게 그렇게 비싼 물건 레플리카구나.’라고 깨달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유지웅은 ‘안슐이 경매로 샀구나.’라는 의미로 감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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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 때 하나 터트려야 하는데…
터트릴 건 한두 개가 아니네요. 뭐부터 터트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