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96)
00196 땅부자가 되었어요 =========================================================================
“대답해! 대답해! 대답해!”
신입생들은 정효주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줄 모른다. 언뜻 그런 말이 나온 것 같긴 했지만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그들에게는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을 했고, 이제 여자가 대답을 할 차례라는 것뿐이었다. 이만한 볼거리를 어찌 놓치랴.
정효주는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 인간은 대체 이게 뭐 하자는 거야! 지금 바로 남편이 보고 있는데!
과 사람들은 그녀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알고 있다. 사실 그녀는 결혼을 했다고 말한 적이 없을 뿐이지, 자기가 처녀라고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민감한 프라이버시를 일부러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요즘 어디 있겠는가?
반지를 끼고 다님에도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해온 남자 선배들이 더러 있기는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남자가 있어요.’라고 거절을 했다. 프라이버시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신랑이 보고 있는데.’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신랑 앞에서 ‘와이프의 정조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줘야지.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캠프파이어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확성기를 건네받기 위해 남희재에게 손을 내밀었다.
순간 남희재가 그녀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시의 기습, 아니 미친 짓이었다. 뜻밖의 습격에 그녀는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설마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탱커가 괜히 탱커인가? 몸이 굳는 바람에 반응이 늦었지만, 그녀는 재빨리 손을 들어 입술을 가렸다. 덕분에 남희재는 그녀의 손등만 덮쳤다.
“우우! 우우우!”
야유 비슷한 안타까운 함성이 터졌다. 정신을 차리고 정효주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하마터면 남희재의 뺨을 칠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은 탱커다. 화가 난 상태로 뺨을 잘못 쳤다가는 일반인은 목이 돌아가 죽을 수도 있다. 그녀는 서너 걸음 떨어진 채로 입술을 막았던 손을 내렸다. 그의 입술이 닿았던 손등이 불결하게 느껴졌다. 손을 씻고 싶었다.
“선배님,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해요? 이런 건 추행이라고요!”
남희재의 얼굴은 창피함, 흥분 등 복잡한 감정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남자친구가 있는 걸 알면서도 분위기를 빌려 크게 마음 먹고 고백을 했다. 기습 키스까지 시도했는데 꼴이 우습게 되었다.
순간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후회가 치밀어 올랐다.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그때였다.
“저도 할 말 있는데 마이크 주시죠.”
돈 잘 쓰고, 돈 잘 번다는 농담으로 사람을 웃겼던 신입생이었다.
* * *
“와, 저 선배 우리 과 탑이라더니 장난 아니네. 남자 있다는데 대놓고 공개 고백까지 받고.”
“그러게. 저 남자 선배도 똑똑해 보였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하네.”
“근데 저 누나 정도라면 그럴 만도 하지 않냐? 되든 안 되든 질러보고 싶겠다.”
남희재가 정효주한테 기습 키스를 시도했을 때 유지웅은 이미 눈이 뒤집혔다. 몇 몇의 수군거림에는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화가 아예 머릿가죽을 뚫고 나갔다.
세상 어느 남자가, 자기 와이프한테 딴 놈이 공개 고백을 하는데 화가 안 날까? 그것도 수백 명이 몰린 이런 자리에서 키스까지 시도하려고 했는데?
‘나 화 내도 되는 거지?’
얼머나 어처구니가 없었으면 그는 스스로에게 자문하기까지 했다.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진다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그는 안슐에게 문자를 보냈다. 액정을 누르는 손이 다 부들부들 떨렸다.
「신입생 오티 왔는데 웬 남자가 사람들 다 보는 데서 효주한테 공개 고백하고 키스까지 시도했어요. 실패했지만요. 저 어디까지 화내도 되나요?」
공개 고백 할 때만 해도 다 뒤집으려고 했다. 근데 키스하다가 실패하니까 너무 화가 나서 분노가 오히려 식었다. 다 뒤집어버리기 전에 안슐에게 이 분노를 알리고 싶었다.
「절대 참지 말게.」
용기가 생긴 유지웅은 성큼 나섰다. 또 한 명의 남학생이 앞으로 나서자 수백 명의 눈빛이 더욱 반짝였다. 쟤는 또 뭐지? 하고.
“저도 할 말 있는데 마이크 주시죠.”
“……뭐, 뭐?”
“저도 할 말 있다고요.”
남희재가 굳은 채 움직이지 못하자 유지웅은 더 말 않고 그의 손에서 마이크를 뺏었다. 정효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미안해 죽으려고 했다.
물론 와이프 잘못이 아닌 걸 안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그게 문제인 거지.
“이 고백! 절대로 허용 못합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또 다른 경쟁자가 출현한 거라 생각했는지 신입생들은 박수를 치고 좋아하며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던 것이다.
남희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니, 저게 뭔데 내 마음을 함부로 허용한다 못한다 해? 큰 마음 먹고 남친 있는 여자한테 고백하는 건 뭐 쉬운 일인 줄 알았나?
“왜냐하면 효주는 제 여자기 때문입니다!”
“우와아아!”
뭔지도 모르고 신입생들은 그저 폭탄 선언 나왔다며 박수 치고 좋아했다. 반면 남희재의 얼굴이 급속히 창백해졌다. 저게 무슨 말이지? 효주가 자기 여자라니? 설마……?
“효주야! 이리 와!”
확성기를 내려놓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머뭇거리던 정효주는 천천히, 하지만 침착하게 신랑에게 다가갔다.
그가 손을 뻗었다. 천천히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신입생 무리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입술과 입술이 닿는 순간 우렁한 박수가 울렸다.
“와아아아! 뭐야?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꺅! 몰라! 아무튼 재밌어!”
몇 초의 짧은 키스를 끝내고 유지웅은 얼굴을 뗐다. 그리고 효주의 손을 번쩍 잡고는 외쳤다.
“왜 이 고백 허용 못한다는 건지 아시겠죠? 저희 이미 사랑하고 있어요!”
“꺄아아악! 몰라! 재밌어! 멋져! 아, 몰라!”
“뭐야? 둘이 이미 커플이었어? 이야, 이거 상황 웃긴다!”
“그럼 저 선배는 어떻게 되는 거야?”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뒤집어졌다. 남학생들은 부러워서, 여학생들은 그저 상황이 재미있어서 꺅꺅거렸다. 남희재만 바보가 된 기분으로 비참하게 서 있었을 뿐이다.
유지웅은 남희재를 노려봤다. 지금까지는 좋은 선배로 생각했지만 감히 내 여자한테 키스를 하려고 했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건 화를 안 내는 게 병신이다. 마음 같아서는 속이 풀릴 때까지 패고 싶었다. 선배만 아니었으면, 아니 신입생 전체가 모인 자리만 아니었으면 벌써 주먹이 나갔을 것이다.
“남 선배, 저한테 사과해요.”
“……!”
“저한테 어서 사과하라고요. 왜 남의 귀한 와이프한테 함부로 키스하려고 해요? 저 남편으로서 사과받아야겠어요.”
뚝.
한순간에 소란이 끊겼다.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정효주는 차라리 그가 밝히고 나니까 마음이 시원해졌다. 미안했던 죄책감이 조금 덜어졌달까.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내가 잘못한 걸까?’
감수성 풍부한 대학 신입생, 그것도 여자에게 결혼 유무는 중요한 프라이버시다. 그녀는 단지 ‘남편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누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면 ‘남자가 있다.’라고 분명하게 거절을 해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아예 남편이 있다고 밝혀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남자가 있다고 거절하면 됐지 남편이 있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알릴 의무는 없지 않은가? 남자가 있는 걸 알면서도 공개 고백을 한 쪽이 명백히 잘못 아닌가?
“뭐라고 했어?”
“와이프라고 하지 않았어? 뭐야? 그럼 설마 둘이 부부?”
“잠깐, 저 신입생 이름이 유지웅이라고 했어요! 효주가 제니스 대원이었죠? 제니스 공대장 이름이 뭐였죠?”
학생회 부회장 황주현은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정효주는 제니스 소속이다. 유지웅은 그녀의 남편이다. 그리고 제니스 공격대장의 이름과 같다.
우연이 두 개, 세 개가 되면 필연이고 사실이 된다. 제니스 공격대장이 동료 대원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언뜻 들은 것 같다. 신부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게 정효주였나?
“……세상에.”
황주현은 진심으로 남희재에게 애도를 표했다. 맙소사,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의 아내를 탐냈어.
신입생들은 숨을 죽인 채 유지웅과 남희재를 응시했다.
“남 선배. 선배가 뭘 잘못했는지 아시죠?”
엉거주춤 서 있던 남희재는 날이 선 목소리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다리가 떨려서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그도 결정체학 3학년이다. 제니스 공격대장이 결정체 산업시장에서 얼마나 막강한 파워를 갖는지 알고 있다. 국제금융계의 로스차일드 주인 같은 인물 아닌가?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크다고 봐야 하리라.
그런 인물의 아내에게 공개 고백을 했다. 그것도 분위기에 취했다지만 기습 키스를 시도했다.
‘끝났다…….’
그의 말 한 마디면 자신은 이 바닥에서 매장이었다. 어느 결정체 관련 기업에도 취직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결정체 연구업에도 종사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 왜 그랬을까? 할 수만 있다면 10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미, 미안해요……. 내가 미쳐서 그만…….”
“강제로 키스하려고 한 거, 성추행인 거 아시죠?”
“아, 알아요……. 미안해요.”
유지웅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정효주한테 키스를 시도한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다.
힘은 차고 넘친다. 말 한 마디만 하면 남희재를 이 바닥에서 매장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학교에서는 철저한 왕따를 당할 것이고 교수들도 그를 멀리할 것이다. 어떤 결정체 산업 관련 기업도 그를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학교, 다른 과에서 새로이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인맥을 동원하면 끝까지 닥달하고 괴롭혀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가? 그렇게 하면 속은 시원해지겠지만 남들은 이 일을 어떻게 볼까?
정효주를 덮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고백으로 민폐를 끼쳤을 뿐이다. 기습 키스 시도라는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어쨌든 실패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 패죽이고 싶을 만큼 큰일이지만, 남들 눈에는 사람 인생 하나 작살낼 정도는 아닌 것이다.
아마도 쉬쉬하면서도 뒤에서 수군거릴 것이다. 와이프한테 실수 좀 했다고 멀쩡한 젊은이 인생을 작살냈다고. 자신은 상관없지만 효주가 그런 도마에 오르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효주야.”
“……응.”
“넌 용서할 수 있어? 너한테 키스하려고 한 거.”
정효주는 살짝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조용한 눈빛이 서로의 감정을 교환했다. 이윽고 그녀는 가볍게 끄덕였다.
“너한테 다 맡길게.”
“그래도 돼?”
“응. 너한테 미안하니까. 네가 잘할 거라 믿어.”
“알았어.”
유지웅은 결정을 내렸다. 수백 명의 신입생들이 이미 다 보고 있다.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그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희재의 앞날 따위는 관심 없었다.
“따라와요.”
유지웅은 그렇게 말하고 어두운 숲으로 들어갔다. 남희재는 결심을 굳히고 따라갔다. 앞장 서던 유지웅이 돌연 멈췄다.
“나랑 동갑이랬지? 말 깐다. 이 악물어라.”
유지웅은 팔을 뒤로 빼고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하고 주먹이 그의 뺨을 가격했다. 보호막을 두르고 친 주먹이라 제대로 힘이 실렸을 것이다. 남희재는 대번에 나가떨어졌다.
남희재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진 채 끙끙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유지웅은 쪼그리고 앉아서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위협하는 듯한 태도였다.
“남들이 물어보면 이걸로 끝낸 거야. 내가 남자답게 한 대 치고 화해했다 그렇게 말해. 알았어?”
화해했다 그렇게 말하라고? 그럼 화해가 아니라는 건가?
“요, 용서해주는 거야?”
“미쳤냐? 너 같음 니 와이프한테 키스하려고 한 새끼 용서하고 화기애애하게 지낼 수 있겠냐?”
“…….”
“난 지금 당장이라도 너 패죽이고 싶거든? 아예 이 바닥에서 매장시켜버리고 싶고. 내가 그럴 힘 없을 것 같아?”
충분히 있고도 남는다. 남희재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유지웅이 저승사자보다 무서워 보였다.
“너도 결정체학 3학년이니 프라임 알지? 나 프라임 만들면서부터 한 번도 참아본 적 없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하면 직성이 안 풀려. 귀찮게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쓸 마음도 없고.”
“…….”
============================ 작품 후기 ============================
저도 연참이 정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물, 아니 체력이 모자라서요.ㅠㅠ
여기서 부부인 걸 밝혀야 하는지 아닌지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저 상황에서 안 밝히는 건 주인공 캐릭터상 맞지 않더군요. 부부인 거 숨긴 채 대학생활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겠지만 ‘왜 말을 안 하지?’하는 반문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어서요.
인생 뭐 있나요? 그래서 그냥 화끈하게 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