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07)
00207 땅따먹기 =========================================================================
청와대에 들어선 유지웅 커플과 손 교수, 이렇게 셋은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회의실에는 이미 대통령과 장관들을 비롯한 참모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정계에 관심이 없다지만 이런 자리에서 긴장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우리나라 권력의 중추에서 주는 최고 권력자의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온몸의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다.
“어서 오세요.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괜찮았습니다.”
유지웅은 차분하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효주도 별로 긴장해 보이지 않았다. 손 교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대통령님의 생각과 결정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마치 ‘한 번 브리핑해봐.’처럼 들리는 말에 대통령은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저쪽이다. 이제부터 자신은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에 기대 저쪽의 양보를 얻어내야만 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이유를 설명하는 게 편하겠지요?”
“네. 저도 그게 좋아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물론 유지웅 씨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처세는 어디까지나 설득입니다.”
“네.”
“이유를 설명하죠. 먼저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괴수는 다른 괴수와 다르게 빠르게 번식을 합니다. 조기에 진압하지 않으면 자칫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뻗어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지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최근에 알아낸 사실이라 그렇습니다. 루딘 국장이 직접 설명할 겁니다.”
잠시 후 회의실로 루딘 국장이 들어왔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그는 컴퓨터에 메모리를 꽂았다. 곧이어 각종 영상 자료가 벽면 스크린에 떠올랐다.
“식물 군단 괴수는 크게 모개체와 자개체로 이뤄집니다. 모개체는 일종의 여왕벌 같은 존재입니다. 자개체는 모개체로부터 태어나지만 자개체 스스로는 번식이나 분열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개체는 조직 일부를 떼어내서 자기와 똑같은 모개체를 만들어냅니다.”
화면에는 모개체가 줄기 한 조각을 떼어내서 또 다른 모개체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나타났다. 높이 20미터에 달하는 식물형 괴수의 한쪽 줄기가 떨어져 나가고, 분열된 줄기가 꿈틀거리며 성장하는 모습은 영상으로만 봐도 기괴했다.
“현재 5개의 모개체와 셀 수도 없이 많은 자개체가 약 10만 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반 공격대를 투입해서 섬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핵 카드는요?”
유지웅이 대뜸 묻자 장관들은 당황했다. 핵 카드라니! 루딘 국장 앞에서 쉽게 던질 질문은 아니었다.
“이미 작년에 한 번 시도했다시피, 줄기 파편 일부가 열폭풍을 타고 먼 곳까지 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중부 지역에 자리잡은 개체도 그렇게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포자나 씨앗 같은 건 아니다?”
“그건 현재 틀린 가설로 확인되었습니다.”
유지웅은 손 교수를 힐끔 쳐다봤다. 당신 차례라는 듯이. 그는 용기를 내어 질문을 했다.
“작년에 핵으로 처치를 했다면, 다른 지점에도 줄기 조각이 떨어졌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저것을 섬멸하면 끝난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그런 조각이 있었다면 진작 성장해 난리를 부렸을 것입니다. 이는 성장 속도를 보고 세운 가설입니다. 현재로서는 다른 곳에 떨어진 건 없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저 괴수 군단을 섬멸하는데 반드시 제니스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대량 밀집된 괴수떼를 잡으려면 보호막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외는 핵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핵을 쓰면 먼저와 마찬가지로 줄기 조각이 열폭풍을 타고 퍼져 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재수 없게 바다에 떨어지면 해류를 타고 다른 대륙까지 흘러갈 수도 있겠지요.”
“글쎄요. 괴수떼가 아무리 많아도 탱커를 다수 투입해서 하나씩 붙잡으면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미국의 레이더 수는 세계 제일 아닌가요? 또 한국에 방어장비 임대를 요청하면 더 쉬울 테고요. 그런 시도는 해보았습니까?”
루딘의 표정이 구겨졌다. 대통령의 안색도 불편해졌다. 찔리는 게 있는지 장관 한 명이 나섰다.
“그 이야기는 국가 기밀이니 다음에…….”
“아니, 확실하게 해두죠. 방어장비 요청을 한 적이 있나요, 없나요?”
유지웅이 걸고넘어지자 장관은 떫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대통령이 대답했다.
“미국이 그런 요구를 한 적은 없습니다.”
“왜죠?”
그 질문에는 루딘이 대신 대답했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처리를 위해서입니다. 어떤 전술도 보호막 능력자를 대동하는 것 외에는 확실한 섬멸을 보장할 순 없었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주변의 눈치를 보던 손 교수는 유지웅에게 문자를 보냈다.
「숨기는 게 있어. 뒷거래가 있을지도 몰라.」
고개를 끄덕인 유지웅이 얼굴을 들었다.
“대통령님과 독대하고 싶습니다.”
“이봐!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대통령님을 우습게 보는 건가!”
참모진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유지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똑똑한 사람들이 왜 끼어들 데 안 끼어들 데를 구분 못해?
오히려 대통령이 놀라서 만류했다.
“그만하세요! 다들 나가보세요.”
“대, 대통령님?”
“어차피 이야기할 내용이었습니다. 나가보세요.”
단호하게 말을 자르자 참모진은 더 말을 못하고 그곳에서 물러나야 했다. 장관진과 루딘까지 나가고 넷만 남았다. 대통령의 눈이 손 교수를 향했다.
“그 분이 함께 들어도 괜찮습니까? 국가 기밀입니다.”
“아는 게 없는 제가 판단을 내리려면 조언자가 필요하죠. 조언자가 조언을 해주려면 자세한 세부 사정을 알아야 하고요. 보안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가 그렇다는데 대통령이 더 할 말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대통령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일찍이 후보 시절, 제가 내세웠던 공약들은 셀프경제체계라는 공통점을 띠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식량주권은 빼놓을 수 없지요. 최고통치권자는 1, 2년뿐만 아니라 몇 십 년 후의 미래도 함께 내다봐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먹을 게 부족함 없는 풍족한 사회지만, 사실은 대형 곡물 메이저가 전 세계 식량 유통을 쥐고 흔들고 있죠.”
“…….”
“작년 식물형 레드 몹의 출현으로 그레이트 플레인스 지역의 일부가 못 쓰게 되면서, 곡물 메이저들의 조짐이 심상치 않게 변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는 최대의 곡창지대를 잃었죠.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했던 식량 문제가 몇 년, 혹은 내년이라도 터질 수 있는 겁니다.”
손 교수가 놀라움을 담고 반문했다.
“그럼 대통령님, 설마……?”
“그래서 미국과 거래를 했습니다. 괴수 문제를 해결해주면 미국은 대초원의 일부 면적을 양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영토 할양이 아닌, 민간소유권 이전의 형태입니다.”
그건 이미 며칠 전에 들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숨긴 건 그게 아니었다.
“미국과 이미 합의했습니다. 귀하를 설득하는데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죠. 제가 말하지 않은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랑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결정을 하셨군요.”
“미안합니다. 그게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털어놓고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유지웅은 손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생각은 어때요?”
“영토를 할양한 것도 아니고 민간소유권 양도라면 미국이 상황이 불리해지면 특별법으로 얼마든지 소유권 몰수 등 강수를 둘 수 있어. 미국은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표방하지만 자국 무역 보호에는 철저한 국가야.”
“땅을 받아봐야 소용없다는 건가요?”
“갖고 있으면 좋지. 단 어떤 대가를 주고 얻어내느냐에 따라서 장래 손익 문제가 달렸지. 상황이 나빠지면 못 찾는다고 생각해야 하니까.”
그 점은 대통령이 반박했다.
“유지웅 대장이 있는 한 미국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봐야 몇 십 년입니다. 그리고 만약 유지웅 군이 미국으로 정착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 말에는 대통령도 말문이 막혔다. 손 교수는 이때다 싶어 계속 설전을 폈다.
“미국은 이미 전과가 있습니다. 만약 유지웅 군을 억류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핵을 사용하지 않고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시겠지요? 미국은 안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비책이 있습니다.”
“그건 저도 이미 들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못해요. 안일하게 일처리를 했다가는 유지웅 군이 실망해서 미국에 아예 귀화를 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게 유지웅 군 입장에서는 차라리 편할 테니까요.”
손 교수는 상당히 공격적인 논리를 폈다. 이건 뭐 유지웅이 다 미안해질 정도였다.
설전이 이어졌다. 유지웅은 재미있게 두 사람의 언쟁을 구경했다. 언쟁은 거의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어느덧 대통령도, 손 교수도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통령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유지웅이 입을 떼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을 멈추었다.
“저도 최대한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유지웅 대장. 제 말은…….”
“대통령님 입장은 이해했어요.”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더 이상 말할 게 없다는 식이었다.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배웅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부디 그가 수긍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식물 괴수의 번식 생태가 그렇다면 조기에 진압하는 게 나아. 저쪽 말대로 전 세계가 식물 괴수로 뒤덮이면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니까.”
“근데 그게 사실일까요?”
“사실성 여부는 정밀 조사를 하지 않는 한은 판단할 수 없지. 그래도 내 생각엔 거짓말 같진 않았어. 문제는 저들 말이 사실이라면 시간이 없다는 거지.”
“미국에 갔다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대로 한다면 거의 그럴 거야. UN평화유지군과 다국적 감사단이 함께 파견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허튼 짓을 할 수 없어. 그러느니 차라리 자네에게 꼬리를 흔들어서 자국 시민으로 끌어들이는 게 백배는 편하지.”
“대통령의 말에 진정성이 있나요? 대초원 지대를 얻어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요.”
“정치초년병 시절부터 식량 자급 문제를 신경 쓰던 사람이야. 거짓은 아닐 거야. 정책 방향에 계속 일관성이 있어. 그리고 곡물 메이저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고. 아마 가까운 시일 안에 식량 값이 폭등할 거야.”
“식량이라…….”
유지웅은 그 점이 신선했다. 식량이 무기가 된다는 건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돈만 내면 쌀이든 고기든 채소든 쉽게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던 그림자에 그런 힘의 역학관계가 있었을 줄이야.
“제가 어떡하면 될까요?”
“내가 보기에, 자네는 이미 결정을 한 것 같은데? 싱크탱크는 여러 결정에 따른 결과 예측을 해주는 사람이지,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사람이 아니야.”
유지웅은 픽 웃었다. 그는 루딘의 명함을 꺼냈다. 잠시 들여다보다가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이 날 설득하면 얼마만큼 땅을 주기로 했지요?”
「200만 헥타르입니다.」
“그럼 난 2,000만 헥타르쯤 갖고 싶은데요.”
루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꽤 놀란 모양이었다. 유지웅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핵 아니면 못 잡는 괴수를 처치해주는데, 이 정도면 싼 거 아닐까요?”
「……백악관에 전달하겠습니다. 아마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탁해요.”
전화를 끊고 유지웅은 중얼거렸다.
“근데 농사는 누가 짓지? 땅 무지 넓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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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자의 로망은 끝없이 펼쳐진 농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