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14)
00314 심해어 =========================================================================
간단한 찰과상에 지나지 않았기에 최윤은 병원에 며칠 머무르지 않고 퇴원했다. 그는 출근길에 유지웅이 제공한 방탄 리무진을 이용했다. 또한 수십 명의 경호원을 항상 달고 다녔다.
테러 직후 첫 출근을 한 최윤은 반쯤 연소된 연구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망할 자식들.”
눈치를 보고 있던 기술부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데이터는 완벽히 백업이 되어 있어 전혀 손실이 없습니다. 실험 소재들도 지하 실험실에 보존되어 있어 안전하고요. 다만 시뮬레이션용 컴퓨터가 불타버리는 바람에 당분간은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해졌습니다.”
화재로 피해 본 것은 수백억짜리 산업 컴퓨터 한 대뿐이다. 데이터도, 다른 것도 전부 무사하다. 하지만 연구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 시뮬레이션용 컴퓨터가 소실했다는 것은 아까운 시간을 허공에 날린 거나 다름없다.
테러 이후 주변의 경계망이 강화되었다. 정부에서는 경찰력까지 동원해서 회사의 경계에 만전을 기했다. 정부에서도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유지웅이 오너로 있는 기업에 방화가 일어났다는 것에 정부는 알러지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경호부장이 다가와 말했다.
“회사에는 언제까지 머무르실 겁니까?”
“아마 며칠 정도 머무를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께서 구체적인 암살 시도가 있을 거라며 경호에 만전을 기하라 하셨습니다. 며칠 이상 머무르실 거면 경계 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또한 창가에는 절대로 접근하셔서는 안 됩니다.”
“밖을 안 보면 답답한데…….”
“방탄 테이프를 장착하기 전까지는 참으시지요. 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경호팀은 인근 병원 옥상에까지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경계 범위를 넓혀나갔다. 최윤이 보기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경호 수준이었다. 회사 건물 입구는 물론이고 도시 가스 파이프 등 테러에 이용 가능한 모든 설비를 철저히 점검했다.
마무리는 모든 창에 방탄 테이프를 붙이는 것으로 끝냈다.
“끝났습니다. 그래도 창가에 오래 서 계시는 것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수 시뮬레이션 연구실 컴퓨터 설치 작업에 한창이던 최윤은 문득 창가에 비친 그림자를 느꼈다. 그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저, 저게 뭐죠?”
“피하세요!”
최윤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을 보았다. 거대한 비행기 한 기가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건물을 향해서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생각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강하게 그를 잡아당겼다. 곧이어 건물 전체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유리창이 깨져나가는 소리, 가스가 터져 나가는 소리, 단단한 콘크리트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한데 뒤엉켰다. 그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 * *
복도를 뛰는 발걸음에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국장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부하 요원이 보고 준비를 마쳤다. 루딘은 넥타이를 푸를 틈도 없이 다그치듯 물었다.
“이게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CIA 동아시아 지부 요원 몇 몇의 행적이 불분명합니다. 서류상으로는 휴가 중이라 되어 있으나 그 행적을 일절 알 수 없다는 건 한 가지 경우뿐입니다. 암살 지령을 받은 겁니다.”
“멍청한 자식들.”
그동안 EIS도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휘버 박사 생전에 어떤 인연을 맺은 사이라는 것까지는 추론했다. 다만 최윤이 개발한 결정체 융합 촉매제의 존재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판단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니스 회장한테 알려주고 대비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CIA가 암살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하더라도 그 파장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한 번 방화를 저지르고 테러를 했어. 그런데도 제니스 회장은 확신할 수 없는 입장 아닌가?”
미국, 아니 CIA가 그랬다는 물증이 없다. 그러니 유지웅도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게 현재 루딘이 놓지 않으려는 희박한 믿음이었다.
CIA가 암살을 시도할 거라고 통보하면, 효웅산업 연구소에 불을 지르고 최윤에게 부상을 입힌 세력이 CIA라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가능한 수습할 수 있는 데까지는 수습해보고 싶은 게 욕심이었다.
“어차피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백악관에 보고하고 결정을 기다리면 될 일이야. 단, EIS 한국 지부 요원들을 최대한 동원해서 사라진 CIA 요원들을 추적하게. 그들이 또 암살을 시도하려고 하면 무슨 수를 쓰던지 막게.”
“……알겠습니다.”
명령에 수긍하는 부하의 눈빛이 살짝 분함을 띠고 있는 걸, 루딘은 눈치 채지 못했다.
신임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신통한 결과는 얻을 수 없었다. CIA는 공화당과 친하다고 볼 수 있는 부서다. 백악관은 민주당 쪽인 EIS와는 아무래도 서먹했다. 똑같은 정보기관인데 정당 관계가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 있겠으나, 현실이 그랬다.
어쨌든 보고는 마치고 퇴근하려 했다. 그러나 루딘은 퇴근할 수 없었다. CNN에서 긴급 속보를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속보입니다! 대운항공 소속의 여객기 AZ-301이 착륙 직전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방향을 틀어 서울시 한 고층 빌딩에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현재까지는 테러인지 단순한 기기 결함인지 알 수 없으며, 인명 피해 규모 또한…….」
화면에는 고층 빌딩에 기수를 처박고 흔들리는 여객기가 검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는 모습이 비쳤다. 부서진 콘크리트가 쉴 새 없어 떨어졌다. 놀람과 절규에 찬 사람들의 비명이 희미하게 섞였다.
속보를 보던 루딘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그대로 떨어뜨렸다. 돌이 되어 있던 그는 부하 직원이 조심스럽게 불렀을 때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내가…… 꿈을 꾸는 게 아니겠지?”
“지금 저 사고 때문에 한국이 완전히 난리랍니다.”
“사고? 자네 생각엔 저게 사고 같은가? 저 건물이 어디인지 모르나?”
“예?”
“효웅산업 빌딩이지 않은가! 기기 결함 때문에 항로를 돌린 여객기가, 효웅산업에 충돌한 게 우연한 사고라고? 때마침 퇴원한 최윤이 첫 출근한 날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EIS는 당연히 뒤집어졌다. 그들은 은밀하면서도 철저하게 관련 사건을 조사했다.
“CIA의 지난 움직임을 전부 다 조사해! 테러 단체와 접촉한 적은 없는지, 비밀 자금이 사용된 흔적은 없는지 있는 대로 다 뒤져! 분명히 녀석들이 한 짓이다!”
쉽게 흔적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루딘은 물론이고 EIS 전 요원들이 그렇게 단단히 각오를 했다.
그러나 단서는 생각보다 빨리 발견되었다.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AM-1이 3기 반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출자가 CIA 소속 요원이랍니다.”
현재 미국은 일본의 재건을 돕기 위해 치안 유지 겸 7함대를 파견해둔 상태였다. 함대에는 일반 군사력뿐만 아니라 레이더 공격대도 포함돼 있었다.
루딘은 뒤집어질 듯이 놀랐다.
“왜 AM-1이 3기나 반출되었는데 여태껏 그게 알려지지 않았나? 아니, 그 전에 AM-1이 대체 왜 요코스카 기지에 보급되어 있는 건가? 그 부대가 그 첩보 로봇을 쓸 일이 뭐가 있다고?”
“연방 정부기관의 협조 요청 결정으로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한 달 전입니다. 그런데 협조 요청자가…….”
“로버트 국장인가?”
“그렇습니다.”
정황이 너무 확실하니 오히려 얼이 빠진다. 루딘은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보고서를 정리해서 백악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보고를 듣고 난 뒤 비시 대통령이 한 말은 더욱 그를 수렁에 빠뜨렸다.
“자네 말은 잘 알았네. 그런데 그게 왜 CIA가 효웅산업 빌딩을 테러한 증거가 되나?”
“AM-1은 요코스카 기지에 보급할 필요가 없는 첩보전용 무기입니다. 그런데 CIA의 요청으로 한 달 전 요코스카 기지에 보급되었고, 또 CIA가 전량 빼갔습니다. 게다가 CIA 동아시아 지부 요원 몇 명의 행적이 아직까지 요원합니다. 이 모든 건 CIA가 처음부터 최윤 테러를 염두에 두고 일을 꾸며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그 AM-1이 대체 뭔데 그러나?”
루딘은 다시 한 번 기가 막혔다. 국방에 관심 있는 의회 의원들이라면 AM-1을 모를 수가 없다. 비록 괴수 때문에 전쟁이 사라졌다 하나 인간과의 전쟁의 위험 가능성은 언제나 대비해야 했고, AM-1은 대인간 전투에 막대한 군비를 쏟아 부을 수 없는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탄생된 소형 첩보 무기였다.
“침투를 목적으로 한 소형 로봇입니다. 적 항공기나 전함에 침투해서 스스로 중앙 컴퓨터를 찾아 회로를 점령, 해킹해서 외부 원격 조정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획기적인 무기입니다.”
AM-1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소형 로봇이다. 외부 통제도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탐색을 통해 적 항공기 혹은 군함의 중앙 컴퓨터를 침투한다. 전시보다는 평시에 더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첩보전용 무기였다.
본래는 컴퓨터를 파괴하거나 해킹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로봇이지만, 응용하기에 따라서는 이쪽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객기를 조종해서 빌딩에 충돌시키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국장 말은 CIA가 최윤 사장을 암살하기 위해서 AM-1을 이용, 한국 국적의 여객기를 탈취해서 빌딩에 충돌시켰다는 말인가?”
“정황상 분명합니다.”
“말도 안 되네. 내가 전에 CIA에 분명히 경고했네. 한국에 어떤 공작도 벌이지 말라고. 그런데 명령을 어기고 그들이 그랬을 리가 없어. 아마 범인은 다른 데 있을 거야. 혹은 정말로 단순한 사고던가.”
“각하!”
“나가 보게.”
루딘은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조국이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 * *
「작전 성공입니다.」
「AM-1이 제 역할을 했나 보군.」
「최고입니다. 이 귀염둥이를 이런 식으로 응용이 가능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최윤의 죽음은 확인했나? 그게 가장 중요한데.」
「접근이 불가능해서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죽었을 겁니다. 최윤이 빌딩에 있는 것을 사전에 원격으로 확인했습니다.」
「하긴, 접근이 가능했다면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도 않았겠지. 약간 과격하긴 했지만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으니. 증거는 남기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다만 AM-1 반출 기록이 마음에 걸립니다. 외부에서는 우리가 공작했다는 증거를 잡아낼 수 없겠지만, 내부에서 감사가 들어오면 좀 골치 아플 수 있습니다. 특히 EIS가 우리를 벼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매국 세력은 신경 쓸 것도 없네.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해놓지. GD에 말해서 비밀 생산 물량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야. 반출 기록이야 서류상 오류라고 하면 되고.」
통신을 끊는 로버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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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그저..어둠만이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