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15)
00315 심해어 =========================================================================
테러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건 남기철이었다. 유지웅은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지금 저한테 농담하는 거죠?”
미국 대통령도 한 수 접어주는 인물이다. 이 나라에서는 그에게 함부로 뭐라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국회의원도 그의 앞에서는 한 명의 약자일 뿐이다. 그런 인물에게 감히 누가 이런 걸로 농담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농담을 왜 하겠습니까. 사실입니다.”
“이게 말이 돼요?”
철저한 경호를 지시했다. 최윤은 그야말로 개미 한 마리도 뚫고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경호망 안에 있었다. 외부에서 그를 암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CIA는 이쪽의 그런 자신감을 보기 좋게 뒤집어버린 것이다. 여객기를 납치해서 빌딩에 갖다 박을 거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건 이미 이쪽의 상식을 벗어난 테러였다.
“하…… 미친 것들.”
어처구니가 없던 유지웅은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분노를 다스리고 물었다.
“최윤 사장님은 무사한가요?”
테러 소식을 알고 나니 제일 염려되는 건 바로 최윤의 안전이었다. 빌딩에 비행기를 갖다 박았는데 과연 무사할까?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습니다만 현재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힐을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까?”
힐 능력은 질병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부상을 완벽하게 치유한다. 죽지만 않았으면 어떤 부상을 입었어도 살려낸다. 레이드에 익숙한 유지웅으로서는 부상이 심해서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외상은 이미 완벽하게 치유했습니다. 그러나 힐이 만능은 아닙니다. 외상에서 아무 문제가 없어도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그럼 언제 깨어날 수 있나요?”
“그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상은 힐로 치유했다. 그러나 혼수상태는 힐이 관여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거기서부터는 힐러가 아닌 현대 의학이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
어쨌든 최윤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유지웅은 한시름 놓았다.
“사망한 사람들은 안타깝습니다만, 그래도 최 사장님이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역시 철희한테 특별 경호를 부탁하길 잘했어. 아, 최 사장님이 무사하다는 것은 당분간 비밀입니다.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마시고, 행방불명으로만 처리하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 그럼 박사님들과 의논할 게 있어서 이만.”
‘박사님들’은 자문단을 뜻했다. 남기철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저택을 나섰다. 그는 여러 차량이 줄을 지어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긴급 호출을 받은 자문단 멤버들이 급히 흑석동 저택으로 달려온 것이다.
“어서 오세요, 박사님들. 기다렸습니다.”
유지웅은 손수 그들을 맞이해서 지하 회의실로 안내했다. 완벽한 방음, 도청방지 기능이 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근래 이런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해서 지하실을 개조해 만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회장님?”
“비행기 테러에 관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건 경위를 설명하자면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저희는 얼마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박사님들이 서명한 보안 서약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박사님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 그래요.”
교수들은 저마다 얼굴을 쳐다봤다. 전에도 유지웅은 같은 이야기를 한 뒤 자기와 아내 몸속에 있는 퍼플 결정체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또 같은 서두를 잡는 것은 그에 맞먹는 중요한 안건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보안 서약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자문단 역할을 하며 알게 된 일은 외부로 발설하지 않습니다.”
교수들이 저마다 서약 내용을 재확인하자 유지웅은 안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서약을 상기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먼저, 오래 전에 사망한 휘버 박사는 사실은 CIA한테 암살을 당한 겁니다. 그 이유는…….”
유지웅은 휘버 박사와 최윤의 만남, 퍼플 결정체와 데머샤의 탄생, 그리고 CIA가 최윤을 노리는 것 등 전반적인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마치 영화 같은 장대한 이야기에 교수들은 숨을 죽인 채 빠져 들었다.
“……그래서 효웅산업 빌딩에 가한 비행기 테러는 CIA가 최윤 사장님을 제거하기 위해 한 짓입니다.”
“…….”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유지웅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래야 교수들이 힘의 흐름을 분석하고, 올바른 진로 방향을 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교수들에게 원하는 것은 결정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조언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군요. 만약 최윤 사장님한테 가한 두 번의 테러가 CIA의 짓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확실한 보복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을 압박해 CIA를 폐지하고 책임자를 한국에 송환해 처벌받게 해야 합니다. 그게 최소한의 보복 조치입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도 CIA가 테러를 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회장님께서 CIA의 범행이라고 확신하시는 것은 EIS 칠드그린 부국장을 포섭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국장 포섭은 영원히 비밀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칠드그린 포섭 작전은 자문단의 조언에서 시작되었다. 자문단은 칠드그린을 포섭해서 비밀리에 키워, 나중에는 백악관에까지 밀어 넣을 원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그 귀중한 패를 이런 일로 공개하는 것은 너무 아깝다.
유지웅이 CIA의 범행이라고 확신한 증거는 전부 EIS에서 나왔다.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EIS 부국장 포섭 사실이 알려질 위험이 있다.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심각하게 귀담아 들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듣고 있던 강대연 교수가 발언을 요청했다. 그는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청와대에서 외교 수석을 지낸 경력을 가진 외교 전문가였다.
“물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심증만으로도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합니다. 회장님이라면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
“EIS에서 받은 보고서나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무 조사 결과 CIA가 의심 간다는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백악관에서는 분명히 반응을 보일 겁니다. 왜냐면 CIA가 정말로 범인이기 때문이죠. 절대 회장님에게 증거를 제시하라고 뻗대지는 못할 겁니다.”
“……흠. 그거 마음에 드는데요.”
유지웅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헛기침을 하며 태도를 수습했다. 방금은 너무 가볍게 굴었던 것 같다.
“칠드그린 부국장 보고로는 백악관의 의지가 아닌, CIA의 단독 범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시 대통령이 취임 첫 해에 그런 극단적인 수로 회장님과 척을 질 만큼 무모한 인물 또한 아닙니다. 그러니 CIA의 단독으로 보고, 책임을 분명하게 긋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참에 미국을 한 번 밟아놓는 것도 좋을 텐데……. 아,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회장님이 원하신다면 그런 방향으로 전략 시나리오를 기획할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불필요하게 분쟁의 규모가 커질 뿐입니다.”
“백악관의 의지라면 미국 전체에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CIA의 단독 범행이라면 미국에는 CIA를 관리 못한 것에 대한 배상 책임 정도만 묻는 선에서 그치는 게 좋습니다. 물론 CIA는 폐지하고 관련자는 전원 한국으로 송환해야겠지요.”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대체로 자문단의 의견은 철저하게 책임을 묻되, 전면적인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피하자는 쪽이었다.
힘이 있으니 웅크리고 있을 필요는 없다. 적절한 과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힘의 남용은 오히려 해가 된다. 자문단의 의견은 대체로 그렇게 합치를 보았다.
철저하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다. 그들은 유지웅의 국제적 위신까지 고려해서 적절한 대응 수위를 설정했다.
“여러 박사님들의 귀중한 조언은 잘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시길 바랍니다.”
“멀리 나가지는 않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두 시간에 걸친 회의를 끝내고, 교수들은 전원 귀가했다.
정원으로 나온 유지웅은 주스 한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 연못을 응시했다. 옆에 놓인 먹이 그릇에서 먹이를 집어 던지니 잉어들이 뛰어오르고 난리였다. 정혜주가 키우는 하얀 터키 앙골라 고양이 새끼가 와서 그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목을 껴안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체취만으로도 안다.
“뭘 그리 깊게 생각하니? 너답지 않게.”
“왜 그러셔. 나도 사려 깊고 생각하는 거 좋아한다고.”
“뭐 잘 안 풀리는 거 있니?”
“……아니. 별로. 교수님들 말씀도 다 맞는 말이고…….”
“뭔가가 거슬린다는 얼굴인데? 말해 봐. 우리 사이에 말 못할 게 뭐가 있니?”
머뭇거리던 유지웅은 끝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의 무릎에 앉은 정효주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나한테도 말 못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그래. 왜 이러는지 알아야 너한테 말을 하고 말고 할 텐데 나도 모르니까 답답해.”
빤히 쳐다보던 정효주는 뺨에 입술을 가볍게 맞추고는 위로하듯이 속삭였다.
“그럼 안슐 씨랑 이야기해 봐.”
“안슐이랑? 하지만 교수님들과 이미 충분히 토의를 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안슐 씨는 교수님들이 보지 못하는 걸 짚어낼 수도 있잖니. 한 번 이야기해 봐.”
원래 안슐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인생의 조언자 역할도 겸비했다. 그랬는데 유지웅이 자문단을 구성하면서부터는 의존도가 조금씩 낮아졌다. 그러나 안슐은 서운해 하기는커녕 어린 친구가 성장해가는 중이라며 뿌듯해했다.
“그래, 안슐하고 이야기해봐야지.”
유지웅은 노트북을 가져와 화상 통신을 연결했다. 잠시 후 연결이 이어지며 화면에 안슐이 나타났다.
「오, 친구.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군. 무슨 일인가?」
“안슐. 사실은요…….”
유지웅은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극히 보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야기지만 안슐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유일하게 사심 없는 친구 관계라 칭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다 듣고 난 안슐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래 보수적이지. 그걸 합리적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물론 틀린 건 아니네만, 세상은 때론 상식과 합리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네. 그랬다면 인류 역사상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야 하네.」
“무슨 뜻이에요?”
「자네 자문단의 대응 안건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그 수위가 정해졌네. CIA의 단독 범행이니 CIA에 철저한 책임을, 미국 정부에는 그 관리를 못한 책임을 묻는 선에서 그친다? 상식적으로는 그게 맞는 소리일세. 하지만 애초에 CIA가 자네 사람을 공격한 것부터가 비상식적인 짓이 아닌가? 자네는 그거 때문에 몹시 화가 났고.」
“……아.”
「자네가 취임식 때 이미 공화당 우두머리에 은밀한 경고까지 했음에도 CIA는 이런 일을 벌였어. 자네는 그거 때문에 몹시 화가 나지 않았나?」
“네……. 맞아요.”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목에 걸렸던 뭔가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한 대 맞았다고 한 대만 때리는 경우가 어디 있나? 열 대든, 백 대든, 기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는 걸세. 그게 바로 보복이라네.」
안슐은 미소를 지운 채 덧붙였다.
「자네의 경고를 무시하고 건드리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온다는 걸 뼈에 새길 필요가 있네. 특히 비시 정부라면 말이야.」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자문단은 한 대 맞았으니 한 대 혹은 두 대를 때리는 선에서 그치는 게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내심 속이 거북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교수들이 어리석어서 그런 조언을 한 게 아니다. 그들과 안슐은 보는 관점이, 사는 세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하게. 자네는 이미 그럴 만한 힘을 가졌고, 그래도 되는 지위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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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말하길, 흥정은 말리고 싸움은 붙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