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88)
00488 양지로 쫓겨난 남자 =========================================================================
연구원들이 장난감을 새로 얻은 아이들처럼 로봇 괴수의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뒤늦게 사정을 전해들은 청와대는 다른 분야로 심각한 고민을 논하기 시작했다.
“그 로봇으로 뭘 하려고 했던 겁니까?”
“그 로봇으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죠?”
“그들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사람은 자기 전공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연구원들이 ‘와,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신기해!’라는 반응으로 몰린다면, 청와대는 ‘이걸로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걸까?’라는 쪽으로 근심을 나타냈다.
“일단 대외 수집망을 총동원해서 그간 획득한 사실 중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게 없는지 하나하나 검토 중입니다.”
국정원의 대외 수집망이 얼마나 빈약한지 잘 아는 대통령은 ‘일단 최선을 다할 테니 봐주세요.’라고 비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지난 몇 년 간 유지웅의 존재로 한국은 급격히 존재감을 키워왔지만 정치 제도, 국민들의 인식, 정부기관의 개량 등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유지웅 회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일단 배후 세력 조사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합니다. 일단 미국 처리 문제 때문에 로봇 괴수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는 모양입니다.”
외교부 차관보가 조심스레 말했지만 대통령은 대강 넘겼다. 그 인간이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귀찮거나, 관심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미국은 어떨까요?”
“불가능하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 나라는 시대를 앞선 과학기술을 축적해두는 게 특기였으니까요. 오죽하면 외계인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만약 미국이라 가정한다면, 무엇을 노리고 피즈에게 로봇 괴수를 접근시킨 걸까요?”
칠드그린은 ‘결정 에너지로 유기형 로봇 제작에 성공한 과학자가 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보기관의 수뇌부로서 이건 미국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반면 청와대는 자기들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의심을 했다. 그래도 결정체 관련 기술은 미국이 제일 뛰어나. 이건 이제껏 없던 결정체 기술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어. 그러니 미국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뭐 이런 논법이다.
“레드 타입 괴수 사육의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아닐까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말고는 레드 몹, 아니 괴수 사육에 성공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육소는 군사 기지 못지않게 철저한 감시가 이뤄지고 있죠.”
“호오, 만약 미국이 그 노하우를 탐낸 거라면…….”
“발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로봇 괴수를 투입한 게 분명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미국의 감시는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괴수를 길들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관찰을 해왔다고 가정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대충 몇 가지 시나리오로 좁혀짐에 따라 대통령 및 참모진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미국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초월적인 기술력으로 오래 전부터 브라우니와 피즈를 감시하고 있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던데, 아무래도 미국은 삼백 년은 거뜬할 것 같아 보인다. 특히 크리스탈 시티의 연구 자료를 강탈당하다시피 빼앗기는 등, 유지웅한테 이것적서 많이 뜯겼는데도 숨겨둔 한 수가 저 정도 클래스라니, 그저 놀랍다.
“MD 시스템으로 대비할 수 있겠습니까?”
“실무자들과 그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난색을 표했습니다. 로봇 괴수는 결정 레이더에 그저 옐로 몹 한 마리 수준으로만 표시됩니다. 비안전지대에서 옐로 몹 한 마리까지 돌아다니는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안전지대에는 들어오지 못하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 하나 결국 괴수 아닙니까.”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정책과 유지웅을 대하는 정책은 다르다. 그 둘은 별개로 나눠져 운용되고 있다.
유지웅은 건드릴 수도 없고 건드리는 것도 포기한 한 명의 폭군, 아니 황제지만, 한국은 그 폭군으로부터 승은을 입은 후궁쯤 된다. 황제의 총애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쉽게 건드릴 수 없지만 총애라는 것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법.
미국은 자국을 대하듯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한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은 많은 이권을 획득하는 한편, 지난 과거의 불합리한 조약 및 외교관계를 해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언제까지나 지금의 관계에 만족하며 마냥 마음 편하게 지낼 순 없었다. 지금의 한미 구도는 결국 유지웅의 존재로 빚어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개인은 백 년을 못 넘기고 죽지만, 국가는 개인이 죽어도 계속 존재한다.’
미국, 그리고 한국도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이 외교적인 우위를 점하면서 여러 가지 유리한 혜택을 얻어내면서도, 적당히 마지막 선을 지키는 이유다.
유지웅도 언젠가는 늙어 죽을 것이다. 유일한 블랙 몹 대항자, 안전지대 설치자를 잃는 것이다. 그리 되면 한미 구도에는 또 다시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아마 미국은 그때가 오기만을 잠자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잠깐 한국이 유리하다고 너무 지나친 원한을 만들어선 곤란하다. 국력만 놓고 보면 미국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커다란 국가 아닌가.
그러니 유지웅이 살아있을 때, 한국의 국력을 못해도 러시아나 옛 중국만큼은 키워놔야 한다. 그래야 훗날 후손들이 보복이랍시고 미국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는다. 국제 관계는 결국 힘으로 결정되는 법이니.
미 연방 해체에 관해서 ‘대한민국’이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스운 관점이긴 하지만 선진국 정치가들 대부분은 유지웅과 한국을 별개로 떼어놓고 본다.
‘하지만 이건…….’
보고서에 선명하게 찍힌 로봇 괴수의 사진을 보며 대통령은 침음성을 흘렸다.
미국은 언제부터 브라우니와 피즈를 감시하고 있었을까? 유지웅 앞에서는 설설 기면서도 뒤에서는 훗날 그가 죽고 없을 때를 대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철저함이 놀라웠다. 그들이 가진, 숨겨진 과학기술력이 그저 경이롭다.
대통령은 생각했다. 유지웅이 살아 있는 동안 국력을 키워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우호국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이 너무 안일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뭉쳐져 있는 미합중국이 존재하는 한, 과연…….
“비서실장.”
“예, 대통령님.”
“오리건 주 주민 투표가 오늘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곧 투표가 개시될 겁니다.”
“만약 연방 탈퇴로 결정이 나면 어찌 됩니까?”
“개표 완료 즉시 효력이 발동, 오리건 주는 법적으로 미합중국 주에서 탈퇴하여 별개의 나라가 됩니다. 연방 정부가 헌법을 근거로 탈퇴를 불허하면 서로 충돌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국가 대 국가 관계에서는 법이나 조약보다는 힘과 명분이 더 우선하게 되지요.”
“투표 결과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우리 싱크탱크에서는 6:4 정도로 연방 탈퇴가 결정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했다. 참모진도 그가 중대한 국가적 결단을 고려 중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침묵했다.
한참 후 대통령이 눈을 떴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여러 선진국은 유지웅 회장이 한국인임에도 한국과는 별개의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커다란 결정을 내려도, 그것을 우리 정부와는 별개로 떼어놓고 판단하고 있죠. 그 덕분에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외교 관계에서 손해는 없이 이득만 취할 수 있었습니다.”
“…….”
“연방 해체를 유도하는 베링 해역 금지 조치도 그렇습니다. 미국조차도 우리 정부가 그에 관여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그의 주변인들을 상대로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결심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비서실장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꾹 쥐었다.
“우리 정부는 유지웅 회장의 힘에 기대 국력을 키우는 한편, 먼 훗날 그가 죽고 없을 때 되돌아올 국제 사회의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미 연방 해체에 관해서 한 마디 코멘트도 없이 침묵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통령님.”
“오리건 연방 탈퇴가 확정되면 즉시 지지 선언을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최고권자로서 말입니다.”
참모진은 놀라서 자기들끼리 얼굴만 쳐다봤다. 확실하게 진흙탕에 몸을 담그겠다는 의지 아닌가.
“하나로 뭉쳐져 있는 미합중국은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분열시킬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섭시다.”
지금까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던 한국은 결국 더 많은 떡을 먹기 위해 굿판에 직접 뛰어들어 작두칼을 타기로 했다.
대통령의 결심을 굳힌 것은 바로 미국이 선보인 놀라운 결정 기술력의 집약체, 로봇 괴수.
하나로 똘똘 뭉쳐 있으니까 저런 것도 오래 전에 뚝딱 만들어 내놓고 ‘우리 기술력 아직 떨어짐.’이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거 아닌가. 몇 개로 갈라놔야지 후손들이 편할 거 같다.
비시가 알면 좀, 아니 많이 억울할 청와대 뒷사정.
* * *
그레이브스 요원은 도시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녀서 결국 송신기 제조에 필요한 중고 부품들을 찾아냈다. 그는 보물을 안듯이 거처로 돌아와서 열심히 납땜에 열을 올렸다.
최윤이 관심을 보였다.
“뭘 만드시는 거죠?”
“라디오 방송용 송신기입니다. 박사님과 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방송으로 내보낼 겁니다. 그럼 더 빨리 우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최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시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 혼잡한 것뿐 아니었나? 시간이 지나고 행정력이 안정되면 해결될 문제다. 근데 갑자기 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강아지처럼 되도 않는 라디오 송신기를 만든다고 난리를 피우는 걸까?
‘최윤 박사한테는 말할 수 없다.’
최윤이 죽었다고 알려지는 바람에 연방의 결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하다. 최윤은 ‘회장님의 뜻이 그렇다면야.’라는 식으로 일이 종료될 때까지 은신하려고 할 것이다.
최윤과 자신이 여기에 살아 있다. 이 사실만 어떻게 EIS나 연방 정부에 전달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은 해결된다. 유지웅은 미국을 핍박할 명분을 잃는다. 그가 물러서면 러시아나 다른 나라들도 더 이상 압박을 가하지 못한다.
‘멍청한 새끼들!’
그레이브스는 열심히 납땜을 하며, 한편으로는 정부청사 경비병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멍청하기 그지없는 녀석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정부 각료 한 명만 만나서 신원을 입증할 수 있다면 다 해결되는 문제인데, 들여보내주기는커녕 안에 말도 전달해주지 않으니.
“이리 줘보세요.”
“예?”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답답해 죽을 거 같이 안절부절 못하던 최윤은 결국 그레이브스를 밀어내고 자신이 대신 납땜기를 쥐었다. 마이크는 그레이브스가 소유하고 있던 위성전화에서 떼어냈다. 그 밖의 몇 가지 부품들을 떼어내서 복잡한 선을 연결하고 나니 뚝딱 하고 라디오 송신기가 완성되었다.
“대단하십니다.”
“학생 시절에 친구와 취미로 많이 이러고 놀았죠. 야지에서 원자로까지는 무리지만 발전기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레이브스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결정체 과학자라서 라디오 송신기는 손을 못 델 줄 알았는데, 역시 진리는 결국 한 길로 통한다는 걸까?
“여기는 EIS 소속 그레이브스 요원, 신원코드는 E-1035K, 현재 파울러 시티 32번가 지역에서 최윤 소장님을 모시고 있다. 반복한다. 여기는 EIS 소속…….”
그레이브스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방송을 했다. 출력이 낮다 보니 먼 지역까지는 방송 거리가 닿지 않았다. 부디 방송 거리 안에서 누군가가 이 방송을 청취해서 신고를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그게 무슨 소린가? 토미 국장이 행방불명이라니.」
「비밀 안가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현장에 남은 흔적을 보니 MP-3 무인장갑차량이 동원되었습니다.」
「설마 미군이 직접? FBI도 아니고?」
「최선을 다해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 체포작전에 관련된 정보를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시는 토미 국장의 탈옥 이후는 전혀 모르는 눈치입니다. 정부 인사 중 누군가가 고의로 상부에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음…….」
「그리고 아이오와 주 파울러 시티 근처에서 이상한 라디오 방송을 잡았습니다. 자기가 EIS 소속 요원이라며, 현재 최윤 박사와 함께 있으니 구조나 연방 정부에 신고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마 그 요원 이름이 그레이브스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방송자는 자기 이름이 그레이브스이며 신원코드가 E-1035K라고…….」
「틀림없네! 방송 장난이 아니라 최윤이 분명해! 서둘러 행동 요원들을 보내 그 자의 신병을 확보하게! 그레이브스 요원은 제거하고 증거를 없애게! 아니, 내가 직접 지휘할 테니 출동 준비가 되는 대로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옛 CIA 잔당과 EIS. 누가 누가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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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더 이상 적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선물 투자에 올인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