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94)
00494 양지로 쫓겨난 남자 =========================================================================
미 연방 해체 작업에 과감하게 한손 거들기로 결심한 최재형 대통령은 요즘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오리건 선거관리소가 화재에 휩싸이는 바람에 투표 결과를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직전까지 집계된 개표수를 보면 99.9% 찬성 확정이긴 했으나, 개표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는 것은 컸다.
본래는 오리건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 그에 맞춰 지지 발언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이 무산 됐다.
‘그래도 흐름은 피할 수 없다.’
오리건 주에 대한 화재는 일단 개표 확정을 막는 것은 성공했으나, 여러 주정부에 더욱 하나 된 연방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들도 바보는 아니다. 수십 개의 주정부로 각각 쪼개지면 득보다 손실이 많다. 그들 서부 지역 10개 주는 자기들끼리 연합해서 새로운 연방을 결성할 계획이었다. 동서 간의 경제적 불균형에서 지금까지 져온, 그리고 앞으로 지게 될 부담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다.
아무튼 대통령이 그렇게 쉴 틈도 없이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최윤 소장님이 살아 있어요. 지금 김포 공항에서 밀입국 혐의로 잡혔다고 하네요.」
“예?”
「빨리 가서 손 좀 써주세요.」
대통령은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유지웅이 장난을 치는 건 줄 알았다. 아니, 뜬금없이 최윤이 김포 공항에 있다니?
하지만 그런 걸로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은 마침 옆에 있던 안보수석에게 비밀리에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최윤 박사가 맞는 거 같습니다!”
잠시 후 안보수석이 헐레벌떡 들어와서 그리 보고를 했다. 대통령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최윤이 살아 있다면 미 연방 해체에 한국이 나설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마저 사라지게 된다. 아쉬워해야 하나? 아니면 최윤이 살아 있는 걸 기뻐해야 하나?
‘아니다. 그는 최고의 결정체 과학자다. 그런 사람을 잃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
대통령은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 * *
안보수석 박대수는 직접 국정원 직원들을 거느리고 김포 공항으로 향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그는 전원 헬기를 탑승하도록 시켰다.
“보안 서약에 서명해주십시오.”
출입국소장은 최윤과 접촉한 직원들을 전부 한 곳에 모아놓고 있었다. 핸드폰 등 외부와 연락할 수단도 압수까지 해두었다. 박대수가 잘한 조치라며 칭찬하자 그는 크게 고무되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직원 전원에게 이 일의 중대함을 설명함과 동시에 발설할 시 받게 될 불이익을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보안 서약을 요구하자 직원들은 순순히 따랐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사님.”
“아, 네.”
안보수석은 당연히 이제 갓 서른이 넘은 최윤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그런 이가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니 최윤은 영 불편했다.
“이 분은……?”
“제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신원은 기밀이라 제가 먼저 말하기는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박사님. 안보수석님, 저는 EIS 소속 요원 그레이브스 닉톤이라고 합니다. 박사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신 당일부터 개인 신변 경호를 맡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일단 최윤이 살아 있는 것은 비밀로 붙인다고 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엄격하게 보안 서약을 요구한 것이다. 일 처리를 마무리한 박대수는 남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뒷수습을 맡기고 발을 돌렸다.
“어서 가시죠. 대통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 회장님께서는……?”
“아, 회장님께서도 지금 청와대에 오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레이브스는 일단 최윤을 따라가면서도 내심 불편했다. 그는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게 편했다. 고위 정부 인사들을 상대하는 것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아무리 타국 정치가라 해도.
무엇보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저, 이거 계속 제가 들고 다녀야 할까요?”
“아, 그거요?”
“네. 490만 달러가 남았는데…….”
“그냥 가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레이브스는 순간 뜨악했다. 490만 달러가 어디 작은 돈인가. 엄밀히 말해 이 돈은 카네기가 최윤의 얼굴을 보고 지급한 여행 자금이다. 근데 저렇게 쿨하게 주다니.
“하지만…….”
“고생 많이 하셨는데 그거라도 드려야지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레이브스는 더 사양 않고 냉큼 돈가방을 챙기기로 했다. 박대수가 돈가방을 곁눈질하며 속으로 부러워했다.
‘490만 달러라니…….’
아무튼 헬기는 금방 청와대에 도착했다. 간단한 검문을 받고 둘은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정말 살아 있었군요.”
복도까지 나온 유지웅이 잔뜩 상기돼서 최윤을 맞이했다. 기뻐하는 마음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최윤은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격했다.
“그렇게 큰 사업 벌리셔놓고 그대로 가셨으면, 제가 정말 두고두고 원망할 뻔했습니다. 진짜 다행이에요.”
“심려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대통령님, 이분이 최윤 소장님입니다. 혹시 초면이신가요?”
“직접 대면하고 인사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명성은 오래 전부터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박사님, 여기 이 분이 대통령이에요. 인사하세요.”
옆에서 보는 보좌관들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이 나라 최고통수권자한테 인사를 하는데, 무슨 대학 후배 소개시키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있다. 아, 이 나라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유지웅이니까 상관은 없나?
“최윤입니다. 현재 효웅산업 대표이사 겸 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반가워요. 대통령입니다.”
큰사람한테 빨대를 꽂고 있으면, 아니 큰사람 아래에 붙어 있으면 과연 달라지는 것일까. 최윤은 전혀 언 기색이 없이 자연스럽게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그 나이 대 젊은 실업가들이 대통령 앞에서 사신을 만난 것처럼 바짝 얼어붙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태연한 태도였다.
면담을 가지는 네 사람 중에서 혼자 얼어 있는 것은 그레이브스뿐이었다. 표정에서 핏기가 가신 게 안타까울 정도다.
유지웅과 대통령은 최윤으로부터 멩크스 형무소에서부터 어떻게 된 건지 자세한 탈출 과정을 들었다. 폭동이 일어나기 전 멩크스 형무소를 벗어난 것, 파울러 시티에서 구조를 기다린 것, 라디오를 제작해서 방송을 한 것, 그리고 CIA 잔당이 찾아오자 그들로부터 무사히 탈출한 것.
특히 대통령은 그레이브스가 지하 수로로 대피해야 한다고 결정을 한 것에 관심과 감탄을 드러냈다.
“어떻게 그들이 핵을 쓸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나요?”
“트위스트 베이트 밑에서 예전에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요원들 사이에서 그를 부르는 별명이 트롤이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극단적인 강경주의자라는 뜻에서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최윤 박사님을 놓칠 바에는 차라리 파울러 시티 전체를 날려버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판단했기에, 급히 지하 수로로 대피했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이 맞았군요.”
“……무사히 피하긴 했으나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최 박사님을 암살하기 위해서 수십만 피난민이 있는 도시를 날려버리다니…….”
그레이브스는 한 명의 미국인으로서,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임무를 완수하긴 했으나 어찌 보면 자신도 파울러 시티 참사에 간접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차라리 파울러 시티로 피하지 않았더라면.’
엄밀히 말해 그의 책임은 없다. 그럼에도 그런 가책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도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다만 당분간 최윤 박사님의 생환은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CIA 잔당들이 한국에까지 와서 테러를 할지 모르니까요.”
“저, 그건…….”
“적어도 토미 에슨을 포함한 CIA 잔당 주축 인사들을 검거하기 전까지만이라도 비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레이브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 조국은 최윤이 살아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당연히 한국과 협상을 할 때 전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말은 겉으로는 최윤 및 한국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지킨다고 하지만, 실상은 미국에 최윤의 생환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외교적 우위를 지키겠다는 의지다. 그레이브스로는 반대할 수 없는 명분, CIA의 위협도 있으니.
‘그러게 왜 한국에 테러를 해가지고!’
옛날 효웅산업 빌딩에 비행기 테러만 안 했어도! 그 테러 하나 때문에 대통령이 자신 있게 ‘위험하니까 당분간 비밀로.’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거 아닌가?
“당분간 불편하시겠지만 국정원 안가에 머물러 주십시오. 최고의 편의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레이브스로서는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난 할 일은 했어.’
어디까지나 그의 임무는 최윤의 신변 경호였다.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외교적 갈등 해소는 그의 역할이 아니다. 남은 것은 백악관 노인네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문제.
“박사님을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어서기 전에 유지웅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에 그레이브스는 기분이 좋아졌다. 사력을 다해 임무를 완수한 보람이 느껴졌다.
‘응?’
악수를 하는데 뭔가 딱딱하게 손바닥에 잡혔다. 그가 악수하는 척하면서 뭔가를 건넨 것이다. 의아한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말하지 말라는 듯이 가볍게 눈을 찡긋했다.
그레이브스는 안보수석의 직접 안내를 받아 국정원 비밀 안가로 이동했다. 넓은 정원을 가진, 운치 있는 대저택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풍류를 아는 부자가 사는 집이라 여길 만한 곳이었다. 연못과 수영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CIA 잔당을 소탕하기 전까지만 부디 이곳에 머물러 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편의는 제공하겠습니다.”
“귀국의 배려, 잊지 않겠습니다.”
명색이 첩보원인데 그 진의를 모를까. 하지만 이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래도…….
‘카네기가 어떻게든 손을 쓰겠지.’
최윤이 무사히 한국에 온 것을 알게 되면 카타리나가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카네기로서도 미합중국이 쪼개지는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까. 최윤의 생환을 백악관이 알게 되면 자신이 더는 이곳에 머무를 필요도 없다. 그레이브스는 휴가를 왔다 셈 치고 편안하게 머무르기로 했다.
‘근데 뭘 준 거지?’
국정원 직원들 눈치가 보여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유지웅이 건넨 물건을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꺼냈다. 백금 빛으로 반짝이는 플라스틱 재질의 카드였다. 표면에는 ‘세현저축은행’이라는 로고와, ‘PLATINUM CLASS’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오, 수고비로군!’
그레이브스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수고비를 카드에 넣어서 준 모양이었다. 과연 얼마나 들어 있을까?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가는 대로 확인해봐야겠다.’
490만 달러의 현찰 보너스, 제니스 회장이 직접 건넨 액수 불명의 카드, 그간 고생한 대가는 톡톡히 받은 것 같다. 기분이 좋으니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 * *
“어? 행장님. 플래티넘 카드 발급 기록이 있는데요?”
“아, 그거? 회장님께서 직접 요청하셔서 발급한 거야.”
“그래요?”
세현은행에는 세 종류의 VIP 카드가 있다. 먼저 플래티넘 카드로, 이번에 발급된 것까지 합쳐서 딱 7장뿐이다.
다음으로 다이아몬드 카드가 있는데, 이것은 속칭 VVIP 카드라 불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급된 게 딱 3장뿐이며, 그 중 두 장은 각각 장태준 전술지원팀장과 최윤이 갖고 있다. 나머지 한 장의 행방에 대해서는 온갖 억측이 난무했으나 결국 소유주가 누구인지는 유지웅만 알고 있었다.
유지웅은 세현은행에 두 개의 예금 계좌를 갖고 있다. 하나는 ‘개인 계좌’로, 본인 개인 재산을 넣어두는 계좌다. 보유 현금 대부분이 들어 있으며, 그가 아닌 이는 손도 못 댄다. 이 계좌에는 이만 톤의 금괴와 그가 은행에 예치한 블루 결정체들, 그리고 원화 300조, 달러 1,000억, 유로화 3,000억이 들어 있으며, 그가 보유한 개인 금융 및 유동 자산의 전부다.
그리고 다른 계좌는 일명 ‘경비 계좌’라 불리는 것인데, 보통 30조 원에서 50조 원의 돈을 넣어두고 여기서 모든 경비를 지출한다. 쉽게 말해 공격대, 연구단지 등 그가 거느린 일체의 하부 조직을 운용하기 위한 통장으로 쓴다.
7장의 플래티넘 카드와 3장의 다이아몬드 카드는 바로 이 경비 계좌와 연동되어 있다. 플래티넘 카드와 다이아몬드 카드의 차이점은 바로 상한선에 있다.
다이아몬드 카드는 상한선이 무제한이다. 즉 경비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바닥날 때까지 긁을 수 있다. 설령 경비 계좌 잔고가 0이 된다 하더라도 10조 원까지는 추가로 신용 결제가 가능하다.
플래티넘 카드는 한 달에 50억 원까지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다이아몬드 카드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그래도 우습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플래티넘 카드 보유자로 알려진 사람은 유지웅의 친부모, 장인 등 친족뿐이다.
“근데 챌린저 카드라는 것도 있다는데, 그건 뭡니까?”
“아, 그거? 그거 딱 두 장뿐인데 회장님 본인 계좌랑 연동된 카드야. 회장님이랑 사모님만 갖고 있을 걸?”
“와, 그럼 한도가 300조?”
“훨씬 더 되지. 원화, 외화, 결정체에 금까지 섞여 있으니까 그보다 많지. 금값만 1,000조 원이 넘는데…….”
플래티넘 카드는 주로 유지웅이 아끼는 친족에게 생활 경비로 쓰라고 발급하는 카드다. 그런데 플래티넘 카드가 한 장이 새로 발급되었다? 은행장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유흥 술집에 몇 번 드나든다는 소문이 돌긴 했는데……. 설마, 아니겠지.’
괜한 기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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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카드 등급도 몰라보는 첩보원.
돼지 목에 백금 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