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10)
00510 피조물 =========================================================================
회의는 끝이 날 기미가 없었다. 미국에 나타난 오로라층의 원인과 그 영향을 추론하며 밤이 깊도록 토론이 이어졌다.
최윤은 계속 고민했다. 한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자신의 상상이 현실로 일어났다. 그것도 이론으로만 가능할 뿐, 현재 인류가 지닌 기술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일들이.
이를 말해도 되는지 최윤은 거듭해서 번뇌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대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결정 에너지는 일정한 원소와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성질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줄곧 침묵하던 최윤이 드디어 말을 꺼내자 회의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모두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한때 결정체학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최윤은 어느덧 두말할 필요 없는 거장이 되어 있었다. 자연계에 일어나는 결정 에너지 반응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폐쇄 모듈 개발 덕분이다. 그는 휘버의 유지를 계승할 가장 유력한 과학자로 손꼽히고 있었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최 박사님.”
“결정 에너지는 유기 생명체와 결합해서 내부에 고체화된 물질로 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결정체지요. 결정체는 생명체에게 다양한 특성을 부여합니다. 피부에 흐르는 에너지 방어막이 대표적인 거지요.”
“그거야 그렇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언급한 것은, 논리적으로 서두를 풀어나가기 위함이리라. 모두가 쥐 죽은 듯이 경청했다.
“마찬가지로 결정 에너지는 무기체와도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습니다. 결정 에너지와 결합한 무기체, 즉 원소는 기존과 전혀 다른 성질을 띠게 됩니다. 철이 더 이상 철이 아니고 은이 더 이상 은이 아니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실례는 없지만, 이론상 원소 결합 반응 자체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구 환경에서는 그 같은 현상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합을 위한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하던 가렌이 반문했다.
“그럼 최 박사는 저 오로라층이 기체 괴수가 대량으로 뭉쳐서 형성된 박막이라 보는 거요?”
“기체 괴수…….”
가렌 박사가 꺼낸 말에 연구원들이 멍한 듯이 중얼거렸다. 기체 괴수.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 아닌가? 기체 형태로 존재하는 원소와 결정체 에너지가 결합한 것이니.
“일단 결합하는 게 어렵지 한 번 결합한 원소는 웬만한 충격으로는 소멸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기체에 가까우므로 자기 자신을 증식할 수단은 없습니다.”
가렌은 문득 최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추측이나 추론이라 아니라 사실을 단정하는 듯한 어투다.
그러나 지금은 최윤이 정말 알고 있느냐 여부를 가리는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왜 탐지 장비에는 걸리지 않는 거요?”
“특정 원소 중에는 결정 에너지와 결합하면 주변 에너지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는 성질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태양이 흐려 보이는 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 성질 때문에 탐지 장비에도 잡히지 않는 겁니다. 전파를 흡수하는 스텔스 도료처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오로라층이 계속 커져 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최 박사님은 분명 스스로 증식하는 기능은 없을 거라 하지 않으셨나요?”
“스스로 증식하는 기능이 없을 뿐, 최초로 기체 괴수가 창조된 원인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수는 계속 불어나겠지요. 그게 용암인지, 아니면 결정체 이상 반응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
연구원들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이 말을 잊었다. 저마다 표정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가렌은 이걸 물어도 되는지 망설였다. 물어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혹시 최 박사는 오로라층을 동일하게 재현할 수 있소?”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이미 폐쇄 모듈로 시뮬레이션 확인을 마쳤습니다.”
연구원들은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이론적으로는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다니.
하지만 최윤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이론을 재현할 만한 충분한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합니다. 적어도 50년 이상은 관련 공학 기술이 발달을 해야 실험화가 겨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처음 가렌은 최악의 상상을 떠올렸다. 그러나 자신 있는 최윤의 선언에 그 상상은 머릿속에서 힘을 잃었다. 그 점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가렌은 진중하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지구 환경을 벗어난 어떤 이상 현상이 이와 같은 재해를 불러왔을 수도 있겠군요.”
세 번에 걸친 우연의 일치. 하지만 최윤은 그 부분만큼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 * *
미국의 저력은 놀라웠다. 해당 원소의 샘플을 채취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샘플은 항공기를 통해 물 건너 제니스 연구단지에도 운송되었다.
제니스 연구단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샘플 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첨단 전자현미경과 스캔 장비를 통해 원자 단위의 미세 영역까지 관측했다.
“놀랍습니다! 최윤 박사의 예측대로입니다! 이 원소는 이산화탄소와 너무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아니, 이것을 이산화탄소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요.”
“구성 입자와 결합한 결정 에너지를 확인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원소의 양을 적게 쪼개어 놓을수록 감지되는 결정 에너지양이 증가합니다. 아마 많은 양이 뭉쳐 있으면 있을수록 에너지 흡수율이 시너지 효과를 발하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야 거대한 층을 이룬 박막에서 결정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면밀히 관찰한 결과 제니스 연구단지는 최윤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당 원소는 이산화탄소를 기본으로 하여 결정 에너지와 결합해서 변형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공기보다 가벼워 높이 상승하는 성질을 가졌으며, 마치 시냅스를 일으키듯 끊임없이 주변의 동일 원소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그 모습은 마치 뇌세포가 신경망을 통해 수없이 정보를 주고받는 듯한 현상을 연상케 했다. 단일 원소, 무기체 치고는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현상이었다. 고작 원소 덩어리일 뿐인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자기들끼리 반응을 일으킨다.
또한 주변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많이 뭉쳐 있을수록 흡수율이 증가한다. 연구원들이 특히 놀라워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흡수하는 양은 있는데, 내보내는 양은 없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듯한 현상. 하지만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에너지가 어느 형태로 변화해 보존되는지를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식음을 전폐하고 원인을 규명하게 위해 분석에 매달렸다.
「프레온 괴수.」
마치 프레온 가스처럼 인간에게 해악을 끼친다 하여, 해당 기체에는 프레온 괴수라는 명칭이 붙었다. 사전학적으로 과연 이 녀석, 아니 이 녀석들을 괴수로 불러도 좋은지는 의문이었지만.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게 생겨나는 걸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결정 에너지를 특정한 법칙에 따라 주입하면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자료를 정리해 유지웅 앞에서 보고를 하는 최윤과 가렌 등 연구원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심각했다.
“이대로 오로라층이 계속 커지게 되면 지구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번질 겁니다. 이미 미국은 빠른 속도로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올 겨울은 아마 매우 혹독한 추위가 전미를 뒤덮을 겁니다.”
이상 기온 현상 때문에 미국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지상에서 육안으로 오로라층을 관측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아직 일반 시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다만 태양이 흐릿해지고, 그 여파로 대낮에도 안개가 낀 듯 어두운 날씨에 이상함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최악의 가정인데요, 만약 지구 전체에 저게 덮이면 어찌 되는 거죠?”
“많은 생명체가 멸종할 겁니다. 인간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요?”
“태양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태양이 가려지면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식물이 자라지 못하면 초식 동물도 살 수 없게 되고, 고기를 먹는 육식 동물, 그리고 동식물의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이 먹는 식량도 결국 식물과, 식물을 먹고 자란 동물의 고기입니다.”
유지웅은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호남평야는 어떨까요? 한겨울에도 잘만 자라던데.”
“데이터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지구 전체가 가려진 상태에서 장기화 된다면 호남평야도 생산력을 잃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머지 설명을 자세하게 들은 유지웅은 그 자리에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1초라도 빨리 막아야겠군요.”
이제 아버지다. 세 아이들에게 그런 삭막한 세상을 선물해줄 수는 없다. 남의 일이라고 느긋하게 지켜볼 때가 아니라, 바로 내 일이었다. 내 문제였다.
“대책은 있나요?”
“딜러와 탱커의 공격으로 파괴할 수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확인하진 않았지만 안전지대의 영향을 받으면 파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허공에 안전지대 설치해봤자 다 날아버리고 말죠. 그건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공격대를 투입해야겠어요.”
“하지만 고도 8만 피트에 공격대를 실어 날라 딜을 가하게 할 만한 운송 수단이 없습니다. 일단 헬기는 그 고도까지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고고도 비행 가능한 항공기를 이용한다 해도 한두 팀이라면 모를까, 저리 넓게 퍼져 있는데 대량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제약이 큽니다.”
그때 누군가가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비교적 젊은 남자 연구원이었다.
“저기, 브라우니 가족을 투입하면 어떨까요?”
“브라우니를?”
“브라우니, 트리스티나, 제이라를 이용하면 공격대를 태우고 어렵지 않게 상공에서 광역 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고정대로 단단히 몸을 고정하고, 저마다 낙하산을 장착시키면 인명 피해도 안 날 것 같고요.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고 효율적일 것 같은데.”
“좋은 의견입니다. 최 소장님, 저 분에게 이번 달에 특별 보너스를 지급, 아니다. 그냥 제가 지금 여기서 포상금을 드리죠. 좋은 아이디어를 내주셨으니.”
유지웅은 그 자리에서 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잡히는 대로 수표 한 장을 쥐고 연구원에게 내밀었다. 연구원은 황송한 듯이 받아들다가 몰래 동그라미를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게 동그라미가 대체 몇 개야?
유지웅은 아쉬워했다.
“새끼새들이 아직 덜 자라서 함께 투입 못하는 게 참 아쉽네요. 브라우니 녀석, 제이라 같은 암컷새 좀 많이 데려다가 알도 많이 까고 그랬어야지. 그랬으면 제니스 대원 전원에게 탈것 줘서 투입시켰을 텐데.”
현재 투입 가능한 탈것은 딱 세 개, 아니 세 마리뿐이다. 유지웅은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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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브라우니가 하렘을 안 차린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