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40)
00540 Pre-season – 커플편 =========================================================================
“차, 창피하잖아……. 거리에서 이러면…….”
파릇파릇한 고교생인 정효주에게는 남들 다 보는 길거리에서 이러는 게 무척 큰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유지웅도 이해했다. 그런데 이해심보다는 순진한 와이프의 어린 시절을 놀리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아, 슬픈 남자의 본성이여.
“왜? 안고 있으면 안 돼?”
“아, 안 돼. 우리, 옷도 교복이구……. 만약 선생님들이 알기라도 하면…….”
“정효주. 나랑 결혼할래?”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귀자도 아니고 결혼하자라니!
“무, 무슨 소리야!”
“우리 나중에 결혼하자. 하늘의 별은 못 따줘도 서울에 궁전 같은 집은 지어줄게.”
갓 여고생이 된 소녀의 마음으로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직격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귀 밑까지 빨개져서는, 그대로 있는 힘껏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달아났다.
얼얼한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유지웅은 가볍게 투덜거렸다.
“아야, 아프다. 진짜 벌써 탱커로 각성한 거 아냐?”
유부남의 여유, 여유.
* * *
“이제 왔어? 효주는?”
“밥도 같이 먹었는데 급한 일 있다며 먼저 갔어요. 아직 집에 안 왔나요?”
“저런, 밥 먹고 들어왔니?”
“네, 입학식 날이고 해서 제가 맛있는 거 사줬어요.”
“잘했구나.”
그 맛있는 게 한 사람당 60만 원이 넘는 호텔 풀코스 요리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뒤집어지셨을 지도.
유지웅은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엎드리듯이 눕고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반짝이는 광채는 사람의 시선을 흡입하는 무언가가 있다.
집에 오기 직전, 여의도 증권가에 있는 세현결정체은행에 들러서 확인을 해봤다. 카드는 진짜였다. 직원의 설명으로는 은행의 자산을 무제한 인출 가능한, 최고등급 카드라고 했다.
무슨 회사 대주주를 보듯이 지점장이 굽실거렸지만, 그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런 태연한 태도가 더욱 지점장의 허리가 굽혀지도록 했다는 건 안 비밀.
‘이걸로 뭘 하지?’
뭘 해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데, 하나하나 따져보니 사실 이미 다 해본 것들이라 흥이 안 났다. 이번에는 좀 더 효주한테 집중하기로 할까?
그때 효주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서 자기 방으로 가는 기척이 들린다. 문이 삐거덕하며 닫히자 유지웅은 얼른 침대에서 일어났다.
“정효주, 들어 왔어?”
똑똑, 노크를 하며 묻자 안에서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넘어지진 않았나 문득 걱정이 된다.
“들어간다?”
어, 이건 너무 야한 거 아닌가? 아무튼 유지웅은 문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돌렸다.
“왜, 왜 들어와! 옷 갈아입고 있는데!”
“지금 막 들어와 놓고는 무슨. 아직 벗지도 않았네, 뭐.”
“이제 막 갈아입으려고 했단 말이야!”
“너, 대답은 해야지 그렇게 도망가는 게 어딨어.”
“무, 무슨 대답?”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모른 체 연기한다. 아마 뒤로 떠넘기고 싶은 여고생의 본능이리라. 하지만 결혼 경력 5년 차 유부남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또 말해 줘? 나야 몇 번을 말해도 상관이 없는데. 우리 결혼하지 않을래?”
“……!”
“결혼하자, 정효주.”
“…….”
“이야, 엄청 잘 익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빨개질 대로 빨개져서 손가락으로 쿡 찌르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결국 있는 힘껏 외쳤다.
“나, 나가!”
* * *
아침 식사를 하기 전.
“결혼하지 않을래?”
“…….”
등교를 하면서.
“결혼하자.”
“…….”
점심시간에.
“아직 나이가 안 되니까 먼저 약혼이라도.”
“…….”
하교길에.
“이건 어때? 내 애를 낳아줄래?”
“너, 정말 왜 그래!”
대로에서 잘 안 보이는 거리에 들어갔을 때였다. 참지 못하고 정효주가 휙 돌아서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다.
“내가 그렇게 우스워? 나 놀리니까 재밌니?”
“…….”
“어, 어떻게 겨, 결혼 같은 걸 가지고 사람을 놀릴 수 있어……. 너 진짜 나빠.”
유지웅은 깊이 반성했다.
이런 게 나쁘다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어떡해? 울먹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는데! 본래의 효주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잖아!
“왜 내가 널 놀려?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하, 하지만…….”
“정효주. 사랑한다. 결혼하자.”
보듬듯이 안으며 속삭이자 울먹거림이 잦아들었다.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참으로 사랑스럽다. 왜 효주는 한 번도 이런 모습을 안 보여줬지? 너무 치사하잖아?
진지한 고백에 정효주는 머뭇거렸다. 그가 놀리는 것도 아니고, 놀리는 것이라고 회피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린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반지함을 꺼냈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반지함을 열자 유리처럼 투명한 보석이 반짝이는 반지가 나타났다.
“어제 급히 사느라고 이거 밖에 못 골랐어. 받아줄래?”
“……예쁘다.”
반지를 꺼내면서 유지웅은 내심, 아주 많이 미안했다. 점심시간 때 잠깐 짬을 내어 학교를 탈출해서 급히 마련한 반지다 보니 5캐럿 밖에 안 된다.
‘잠깐, 설마?’
뭔가 눈치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정효주는 어디 팬시점에서 산 반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단지 반지를 사줬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반지의 가치를 몰라보자 조금은 허탈해진다.
“손 이리 줘 봐.”
수줍어하긴 하지만, 그가 이끄는 대로 왼손을 내민다. 그는 정성스럽게 반지를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웠다. 그리고 속삭였다.
“나랑 결혼할 거지?”
대답은 없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이었다.
여린 어깨를 잡았다. 평소 장난치는 것과는 달랐다. 남매처럼 자란 소꿉친구의 손이 아닌, 남자의 손길이다. 그렇게 남자의 손에 쥐어진 좁은 어깨가 바르르 떨린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무는 게 보인다. 하지만 얼굴을 피하지는 않았다.
입술이 닿으며, 부드러운 느낌이 짜릿하게 전신을 강타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열일곱 아내의 입술은 달콤하고, 부드러웠으며, 그리고 뜨거웠다. 그녀한테서 이렇게 좋은 맛이 난다는 걸, 그는 처음 알았다.
모든 게 처음인 그녀가 놀라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입술을 얽으며 리드했다. 두 팔로 어깨를 강하게 안아서, 품 안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
달콤한 키스가 끝나고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좀 전과는 확연히 태도가 다르다. 더 이상 그를 밀어내지도, 그에게 안긴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아, 부끄러워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엄마 아빠한테는 뭐라고 해?”
“바로 말씀드리는 건 어때?”
“시, 싫어! 절대 안 돼!”
“그럼 네가 말씀드리고 싶을 때 말씀드려. 우리 결혼하는 건 어차피 안 변하니까.”
“어떻게 그리 장담하니?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이미 모든 엔딩을 다 봤다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서로 연인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그가 놀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고민을 털어버린 그녀의 표정은 밝고 해맑았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투명한 광채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그렇게 부모님은 모르는, 둘의 비밀 연애가 시작되었다.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사이가 재정립되자 그녀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애교를 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같이 쇼핑을 하러 가자며 팔을 끌어안고 부탁을 할 때는 그도 숨이 넘어갈 뻔했다. 고교생 아내의 애교라니, 이건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흉기 아닌가?
“우리, 이거 사자.”
“……니가 좋지만, 그건 좀 봐주라.”
“왜에? 남들은 다 한다는데?”
“난 결혼 5년차가 돼도 절대 커플티 같은 건 안 할 거야.”
단호한 거절에 정효주는 시무룩해서 옷을 내려놓았다. 그녀에게는 진짜 미안한데 그 시무룩한 모습이 귀여워서 괜히 더 단호하게 거절을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너, 3반 정효주 아니니?”
그때였다. 웬 중년 여성의 목소리에 둘은 흠칫 놀랐다. 고개를 돌린 정효주는 순간 창백해졌다. 하필 교감을 백화점에서 마주치다니! 서울이 이렇게 좁았단 말인가!
“너희 설마 사귀고 있니?”
유지웅은 잠깐 생각했다. 모교 교칙에 연애가 금지라는 조항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아, 효주 표정을 보니 생각을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있구나, 그런 조항.
“그 반지는 뭐니? 비싸 보이는데?”
여교감의 눈이 정효주가 손에 낀 약지에 닿았다. 정효주는 뱀과 시선이 마주친 개구리처럼 움츠리며 손을 뒤로 감췄다.
“그, 그냥 팬시점에서 산 거예요…….”
“아닌데? 비싸 보이는데? 한 번 줘 봐.”
“저기, 이건…….”
“지금 학교 갈까? 주말까지 학교 나와서 상담하고 싶니? 이리 내.”
정효주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손을 내밀어 반지를 벗으려고 했다. 그때 유지웅이 팔로 막았다. 여교감이 ‘얘는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학생은 누구지? 부모님이 이러는 거 아셔?”
신입생 선서도 한 정효주는 교사들 사이에서 얼굴이 알려져 있지만, 유지웅은 그렇지 않았다. 해서 여교감은 그가 자기 학교 학생임을 몰라본 것이다.
“이거 지아 감정서도 있는 5캐럿 다이아인데요, 흠집이라도 내시면 곤란하시지 않을까요?”
“뭐, 뭐?”
5캐럿이라는 말에 놀란 여교감은 대번에 움츠러들었다.
============================ 작품 후기 ============================
원래 제가 시즌2 마치고 1주 내지 2주 정도 휴식을 하려구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 너무 기다리실 거 같고 해서 그냥 프리시즌 코너를 마련한 거구요. 저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 가는 대로 막 쓸 수 있어서 휴식도 되고, 연재 감각도 안 떨어뜨리구 해서 좋거든요.
근데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그럴 땐 2주 정도 쉰다고 먼저 공지하고, 하루 이틀 쉰 다음에, 시즌3 구상하는 동안 프리시즌 편을 연재한다고 다시 공지를 하는 거야.”
A ㅏ…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PS : 아무튼 본래는 쉬어야 하는 기간 동안 올리는 프리시즌 편이니 언제 정규 시즌 나오냐고 너무 기다리시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조금은 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