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38)
00638 회장님은 태업 중 =========================================================================
“응급 환자입니다! 복부에 중상을 입었어요!”
“뭐? 망할! 지금 외과의들 죄다 수술 들어가고 없는데!”
“네? 의사가 없다고요?”
“젠장! 하여튼 이리 데려와 봐요!”
구급요원은 의식을 잃은 환자를 인도하고 한숨을 돌렸다. 병원 응급실에 데려온 이상 그들이 할 일은 다 했다. 잠시 숨도 돌릴 겸 담배를 꺼내 문 구급요원은 동료에게 물었다.
“요즘 어느 병원에 가도 외과의 부족하다고 난리던데.”
“다 그렇지 뭐. 원래 예정된 거 아니었어?”
“자네는 뭐 좀 알아?”
“몰랐나? 안 그래도 외과의 자체가 비인기인데, 충전 장비 개발되고 보조 힐러들이 의료 센터에서 죄다 빠져나갔잖아. 그래서 이 모양인 거지.”
“그래? 그거 때문이었어?”
몇 년 사이에 환자의 입원 빈도가 증가했다. 부족한 병실, 혼잡한 응급실, 조금만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과거 보조 힐러들은 일반 힐러에 비해 힐량이 부족하고 회복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다. 보통 대수술을 받은 환자도 보조 힐러의 전담힐을 받으면 하루 만에 수술로 짼 살이 모두 아문다.
개복 수술, 개흉 수술을 받아도 하루면 일상 복귀가 가능하다는 소리다. 외상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병실은 장기적인 내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만 차지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의료계는 격변을 맞이했다. 충전 장비 개발로 보조 힐러들이 대거 레이드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제는 의료 센터에서 일 안 하냐고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레이드보다 훨씬 돈이 안 되는데.”
“의료수가 그거 얼마나 된다고. 의료 센터에서 뼈 빠지게 일 해봤자 일 년에 일억 겨우 벌어요. 레이드 한 방이면 버는 돈이죠.”
“기자님 같으면 일 년 내내 의료 센터에서 힘들게 일하시겠어요? 아니면 하루 레이드 가고 남은 364일 펑펑 노시겠어요? 답은 뻔하잖아요.”
보조 힐러의 레이드 유입은 기존 힐러층의 기득권 갈등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어두운 부분도 존재하고 있었다.
의료 센터에서 보조 힐러들이 텅 비어 버리자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입원을 해야 했다. 자연히 의료비 부담이 늘어났다. 외상을 입은 환자들도 마찬가지. 예전이면 순번을 기다려서 하루만 치료받으면 나았을 부상을, 기브스를 한 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완치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때 이 현상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었으나, 적어도 겉으로는 심각하게 번지지는 않았다. 정부에서 병실 증가를 위해 병원에 예산을 지원하고, 장기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도 의료비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세계는 옐로 몹이 거의 소멸한 대격변 시대를 맞이했다. 이쪽 분야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은 의료계의 힐러 부족 현상이 완화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더러 병원에서 힐이나 하라고? 쥐꼬리만큼도 안 되는 푼돈 받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재테크를 하는 게 낫겠네요. 우리를 뭐로 보시나. 대한민국 최고 부호 계층인데.”
옐로 몹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듦에 따라 레이드를 못 가고 허탕 치는 힐러들의 수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이 남아도는 시간에 의료 센터에서 일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이봐요, 기자 양반. 우리나라에서 젤 현금 자산이 많은 계층이 레이더들이라고, 레이더. 힐러들은 그 중에서도 탑이고. 못해도 다들 백억씩은 넘어가는 사람들인데, 뭐가 아쉬워서 일급 50도 안 되는 의료센터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힘들게 일하려고 들겠어요?”
“보조 힐러? 걔들은 더하지. 의료 센터에서 그 고생을 하다가 이 꿀맛을 겨우 본 애들인데, 다시 그 힘든 지옥으로 돌아가려고 하겠어?”
“레이드 경쟁? 심한 건 맞아. 하지만 의료 센터에서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죽치고 대기하고 있다가 레이드 한 번 가면 1, 2억이 뚝딱 하고 나오는데? 미쳤다고 의료 센터에서 힘들게 개고생 하려고 하겠어?”
의료 센터 일은 사실 상당한 중노동이다. 거기다가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에 비해 레이드는 한나절이면 끝나고, 레이드 한 번으로 의료 센터에서 일 년 내내 주5일 풀타임으로 일한 것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
충전장비가 개발되기 이전, 괜히 일반 힐러들이 의료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도 안 하던 게 아니었다. 보조 힐러들은 더했다. 아무리 시간이 남아돌아도 의료 센터 아르바이트는 질색했다. 레이드가 의료 센터보다 훨씬 편하고, 시간이 적게 들며, 비교도 안 되는 막대한 돈을 벌기 때문이다.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와 국가가 보조지원해야 하는 의료 예산이 증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들도 장기 입원을 고려해서 병실 수를 늘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장기 내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입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힐 한 방이면 중상이고 대수술 자국이고 다 아무는데, 굳이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힐러들이 환자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고 몰래 힐을 써주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지하 자금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지 집계도 안 됩니다.”
“이미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국무총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관료들이 저마다 열변을 토했다. 번번이 대통령 재가를 받지 못해 국회에 올려보지도 못한 법률안 보완에 모두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각하, 이 정도가 우리 정부가 힐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입니다. 한계입니다.”
“음…….”
대통령은 뭔가 고민을 하는 듯했다. 국무총리는 조마조마해서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서명을 하는 순간, 국무총리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냈다! 이제 국회만 남았다!’
그동안 정부에서 꾸준히 추진해온, 힐러들의 의료 활동 참가에 관한 법이 드디어 제정된다. 그러나 법안이 국회 심사대에 올랐을 때 비극이 일어났다.
“이 법, 대체 뭐죠?”
국회 휴식 시간에 유지웅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의원들은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심기가 불편해 보였으니.
국무총리가 급히 나서서 해명을 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현재 우리나라 의료계는 만성적인 힐러 부족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수술 환자, 외상 환자들이 하루면 퇴원하던 예전과 달리 장기간 병실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로 인해 불필요한 부담이 급증했습니다.”
“그렇다고 힐러들을 강제로 의료 센터에서 일하게 해요?”
“일주일에 이틀일 뿐입니다. 그리고 무보수도 아닙니다.”
“레이드 한 번 가면 일억씩 버는 사람들한테 일당 겨우 백만 원씩 주겠다고요? 참 잘도 좋아하겠다.”
“…….”
어느 겁 없는 국회의원이 용기를 내어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과 의료계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힐러들의 이해와 양보가 필요합니다.”
유지웅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픽 웃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살벌하던지, 국무총리는 보이지 않게 몸을 떨었을 정도였다.
“그럼 물어보죠. 그 이해와 양보를 구하려고 하는 힐러들을 모아놓고 충분한 시간을 거쳐 대화를 나눈 적 있어요?”
“…….”
“없는 거 같은데?”
당연하게도,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랬던 적이 없으니까.
유지웅은 요약본을 휙휙 넘기면서 혀를 찼다. 불손한 태도였지만 아무도 감히 항의하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힐러들에게 겨우 이 정도 의무를 부과하는 것 가지고, 유지웅씩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국회까지 찾아와서 따질 줄은 몰랐다.
“양보? 좋은 말이죠. 근데 이건 양보가 아니라 희생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생각해봐요. 무슨 전쟁 중에 징집하는 것도 아니고 군대가 작업 좀 해야 하는데 인력 모자라니 강제 징병하겠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딨어요? 아, 비유가 너무 쎘나?”
“…….”
“가장 중요한 건 힐러들하고 크게 터놓고 밀도 있게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는 거죠. 대화 한 번 제대로 안 나눠보고 이딴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되겠어요? 정부는 이만하면 한계까지 쥐어짜내서 양보를 했으니, 힐러들도 이해해야 한다? 전형적인 권위주의가 아니고 뭐예요.”
유지웅은 끌끌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게 물갈이 한 번 했는데도 바뀐 게 없냐. 물갈이가 덜 된 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가 새파랗게 얼굴이 질렸다. 모두 하나같이 전대 국회를 떠올렸다. 전대 의원들은 한 명 빼고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그 살아있는 한 명도 유지웅이 자신의 위엄을 노래할 광대가 필요해서 남겨둔 것이라는 통설이 있었다.
결국 힐러 징집법이라고 조롱을 받던 법은 백지화된 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대통령님, 알고 계시면서 그럼 왜 승인하신 겁니까?”
“여의도가 요즘 너무 풀어졌어요. 한 번쯤 고삐를 조일 필요가 있을 듯해서요.”
“……만약 유 회장이 알면 대통령님께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 정도는 뭐 상관없습니다. 이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유지웅은 어찌 보면 대통령의 상전 아닌 상전이다. 그런 상전을 모시고 대통령 노릇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구나. 국무총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대통령님. 유지웅 회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순간 대통령의 몸이 가볍게 휘청거렸다. 국무총리는 조금 전 속으로 감탄했던 것을 취소했다.
* * *
‘두 분이 힘을 합치면 일이 쉬워질 텐데.’
정혜주는 요즘 매일 그 생각만 한다. 어떡하면 니트로와 최윤이 힘을 합치게 할 수 있을까.
니트로가 고인이자 결정체학의 아버지인 휘버 교수에게 못마땅한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안다.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위인에게 왜 그런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런 사소한 감정 때문에 협력을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니트로는 핵폐기물 정화에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그 영감을 구체화할 도구가 부족했다. 그 도구는 바로 최윤이 갖고 있었다. 문제는 없다. 둘은 어차피 똑같이 형부의 그늘 아래에 있는 동료가 아닌가.
‘핵폐기물 완전 정화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정혜주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았다. 단순히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니트로가 꿈꾸는 결정체 핵융합, 그 완성에 한층 더 바짝 다가가는 바이블이 되어줄 것이다.
“교수님. 그러지 말고요…….”
“안 해.”
“왜요? 제가 물어봤는데 최 박사님은 교수님께 굉장히 좋은 감정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만약에…….”
“설마 폐쇄 모듈을 빌려달라느니 하는 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
니트로는 책을 턱 하고 덮으며 쏘아보았다. 진심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표정이었다. 정혜주는 얼른 변명했다.
“아니, 아직 안 했죠.”
“다행이군. 절대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라. 난 휘버의 후계자한테 도움을 받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제자의 미래를 위해 제자를 팔았다.
다른 제자의 미래를 위해, 많은 이적료를 챙겼다.
무수한 서러움을 남겨준 녀석이었다. 그것도 똑같이 프랭클린 교수 밑에서 수학을 한 동문이었다.
‘까마득한 후배 주제에!’
니트로는 눈을 감은 채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세차게 쥐었다.
‘한참이나 어린 주제에!’
한때는 그도 촉망받는 인재였다. 프랭클린 교수도 결코 휘버에 뒤지지 않는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그 칭찬이, 그 자부심이 그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결정체가 등장하고 모두가 결정체 연구에 매달릴 때 그는 꿋꿋하게 핵물리학에 매달렸으니까. 휘버가 지배하는 학문에 포섭되듯이 발을 들이기 싫다는 자존심 때문에, 그는 수십 년의 시간을 버려야 했다.
휘버? 싫다. 화가 난다. 미워한다. 인생을 낭비한 것 때문에? 아니다. 그런 시시한 이유가 아니다. 그가 진정으로 휘버를 미워하는 이유는…….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보다 먼저 가다니!’
왜 인생을 낭비했는데?
휘버가 생각하지 못한 영역, 핵물리학과 결정체학의 완벽한 통합을 이뤄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대등한 성과를 내어 당당하게 ‘후배’의 앞에 서려고 했다. 애제자를 이적시키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거액의 지원비를 받아가면서 견딘 것은, 전부 선배의 자존심 한 번 멋있게 세워보자는 고집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 해보기도 전에 녀석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낭비한 인생이 정말로 헛낭비가 되어버리고 만 죽음이었다. 그것이 휘버를 원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자존심을 조금만 굽혔어도…….’
아직도 눈에 선하다. 프랭클린 교수가 처음 데려왔을 때 보았던, 호기심에 가득 찬 그 눈동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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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한 번 잡아보려고 수십 년 고진감래했는데 후배 녀석이 으앙 듀금.
미워할 만 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