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46)
00646 우린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
“탐색을 마쳤습니다.”
“와, 벌써?”
오리나의 손 위에 떠 있는 구체가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본래는 폐쇄 공간 재현 모듈이라는 긴 이름이 있는 놈이지만, 오리나가 부속품으로 쓰게 된 이후 편의상 구체, 혹은 공이라고 부르고 있는 놈이다.
어떻게 보면 오리나는 결정체를 몸 밖에 두고 사용하는 유일한 괴수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구체, 즉 레드 결정체는 오리나의 생명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리나가 힘의 증폭을 위해 편의상 사용하는, 이른바 외부 장착 도구다.
유지웅은 오리나를 연구단지에서 가져왔다. 최윤, 가렌, 니트로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내놓으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너란 이런 게 좋다.
“다 쓸 데가 있어요.”
“회장님이 오리나를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요!”
“아, 글쎄. 다 쓸 데가 있다니까요.”
유지웅은 오리나에게 자금 흐름 조사를 시켰다. 국내에 있는 자금이 원활하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심심해서였다.
원래는 복지재단을 통해 운용하는 150조 원 이상의 막대한 자산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알아보려고 시켰다. 당연하게도 복지재단에서 새는 금액은 단 1원도 없었다. 보험재단도 마찬가지로 정상 운용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비리 문제 심하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네.”
내친 김에 그는 다른 재단, 기관, 기업의 자금 흐름도 조사하라고 한 마디 했다. 말 그대로 정말 심심해서였다. 오리나를 그런 곳에 갖고 놀려고 가져왔다는 걸 알면 최윤은 아마 단단히 뒷목을 잡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총 2,517건의 문제를 찾았습니다.”
“뭐? 이천 몇 개?”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있던 유지웅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무슨 문제가 그렇게 많아?”
“이 중 확실하게 불법인 건수는 152건, 탈법은 1,205건, 합법의 영역이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관행은 1160건입니다. 가장 많이 연루되어 있는 기업은 일성그룹, LP그룹, SKK그룹입니다. 10억 이상의 고액 건수만 추려낸 기록입니다.”
유지웅은 기가 살짝 질렸다. 아니, 10억 이상만 추려냈는데 그게 수천 건이 넘는다고? 그렇게 돈 가지고 장난하는 놈들이 많다는 거야?
“주로 사용 내역은 로비 자금, 공직자에 대한 선물, 수직적 기업 간의 접대비용 등입니다.”
유지웅은 조금 반성했다.
“물갈이가 됐는데도 여전하구나.”
이 나라를 장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몰랐던 문제가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유지웅은 한숨을 쉬었다. 문득 칠드그린이 생각났다.
“근데 부국장, 아니 부통령님은 왜 하나도 말을 안 해준 거야?”
그는 심통이 나서 당장 워싱턴에 연락을 취했다. 칠드그린은 부스스한 목소리로 통화에 응했다.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잘 지내셨어요? 바쁘신데 연락한 건 아닌가요?”
「아닙니다. 참, 며칠 안으로 한국을 방문할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휴가라서요.」
“네? 또요?”
아니, 왔다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유지웅은 불안했다. 왜냐하면 며칠 전 신분을 숨기고 몰래 스위스 제네바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어!’
800만 달러에 낙찰 받은 바쉐론 콘스탄틴제 시계는 다른 콜렉션과 함께 소중하게 잠들어 있다. 설마 그 존재를 눈치 챈 건 아니겠지? 유지웅은 칠드그린이 선수를 치기 전에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제가 최근 국내 자금 흐름에 비리가 없나 조사를 해봤는데 엄청난 문제가 있더군요. 10억이 넘어가는 자금 비리가 이천 건이 넘게 잡혔어요.”
「그렇습니까?」
“EIS는 설마 전혀 몰랐나요?”
EIS는 겉으로는 동아시아 담당 정보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유지웅을 위해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예전에는 몰래 몰래 했는데, 워싱턴 정가에서 눈치 챈 이들도 있는 듯하지만 그들도 그냥 모른 체 놔두고 있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보고할 필요는 없는 듯한 자잘한 문제라서 따로 진지하게 알리진 않았습니다.」
“자잘한 문제라니요?”
「그 정도면 OCCD 회원국 중에서 국가 청렴도가 제일 높은 겁니다. 그것도 2위와는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요.」
유지웅은 순간 멍해졌다. 칠드그린이 재차 말했다.
「한국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비리 문제가 퇴출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여기에 억지로 메스를 대봤자 사회 부작용만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놔두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숨을 고를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그럴까요?”
「물이 맑은 건 좋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하십시오. 너무 조이는 것만이 꼭 정답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 따지면 50조 원이 넘는 규모인데요? 이 큰 걸 숨 고를 시간을 준다는 핑계로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정 거슬리신다면 본보기를 한 번 더 보이시는 것도 괜찮겠지요.」
“알았어요.”
바다 건너에서 칠드그린은 잠시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재벌들을 동정했다.
미합중국 부통령이나 되는 인물에게 기껏 전화해놓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끝내는 것도 아닌 듯해 유지웅은 화제를 바꿨다.
“요즘 미국은 별 일 없나요?”
「별 일 없습니다. 회장님께서 폐기물 정화를 선뜻 응해주셔서 저의 지지율이 많이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니까 미국 하나 정도는 커버가 되겠더라구요. 다른 나라는 할 수 없지만. 쓰레기를 우리나라로 가져온다면 몰라도.”
잘 사는 나라일수록 쏟아지는 쓰레기양이 엄청나다. 그것을 정화한답시고 한국까지 실어오려고 할까? 비용도 비용이지만 운송 수단이 막막한데? 미국이야 동부 해안에만 실어다 놓으면 노틸러스가 와서 처리해주니 상관없지만, 다른 나라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뭔가가 쿡쿡 찔렀다. 돌아보니 오리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가 쳐다보자 오리나는 허공을 가리켰다. 구체가 빛을 뿜어내며 허공에 글자를 만들어냈다.
「알래스카에 괴수가 출현했습니다.」
유지웅은 놀랐다. 칠드그린은 지금 별 일 없다고 하는데? 그가 ‘뭐?’하고 입모양을 하자 오리나는 허공에 만든 글자를 변화시키며 추가 설명을 했다.
「20초 전에 미국 소속의 북극 탐사 위성이 감지했습니다. 백악관에 정식 보고되기까지 약 3분, 칠드그린 부통령이 보고를 받을 때까지 약 4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최고의 컴퓨터라 하더니, 과연 빈말은 아닌 모양이다. 앉은 자리에서 미국의 군사 정보까지 훤히 내다보고 있으니.
괴수가 습격하는 거야 뭐 요즘 세상에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니까 유지웅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오히려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금 휴가 중이시던가요?”
「예. 일주일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 못 오실 것 같은데요?”
「……무슨 말씀이시죠?」
목소리가 바짝 굳어 있는 게 느껴졌다. 설마 하니 일 년에 원하는 시계 열 개를 준다는 언약을 저버리려고! 라고 화를 삼키는 듯한 어투다.
“아, 조만간 미국에 일 하나가 터질 것 같아서요. 이제 몇 분 안 남았네요.”
「그게 무슨 말씀……. 아,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제가 곧바로 전화를 걸겠습니다.」
“네네, 편히 쉬세요.”
드디어 보고가 올라온 모양이다. 유지웅은 키득거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괴수 습격 사태가 발생했으니 일국의 부통령으로서 휴가 따위를 가진 못하리라. 며칠은 시간을 벌었다.
* * *
「제1공격대, 집결 완료.」
「제2공격대, 집결 완료.」
「돌진 카운트 시작. 전투 개시되면 메인 탱커는 자율적인 판단으로 어그로를 확보하라.」
「알았음.」
알래스카에 주둔 중인 미국 공격대는 즉각 편제를 갖추고 투입 준비에 나섰다. 40명으로 편성된 공격대 4개 팀이었다. 모두가 A급 방어장비로 무장하고 있고, 또 고도의 훈련을 받은 터라 레드 몹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게 조금 흠이긴 했지만, 실전 상황에서 경험이 없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정도는 6,000. 거리 5km, 도착까지 예상 소요 시간 약 15분.’
메인 탱커는 커맨드 센터에서 보내주는 전장 정보를 다시금 확인했다.
결정도 6,000에 이동 속도는 시속 20km, 단순히 스펙만 보면 크게 위협적인 녀석은 아니다. 레드 몹과 실전에서 싸워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있었다.
“들었어? 리처드 공격대가 지금 여기 오고 있대.”
“뭐? 리처드까지?”
리처드 공격대는 미국에서 현재 이름을 날리고 있는 레드 몹 공격대였다. 연방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공격대로서, 레드 몹 사냥 경험도 가장 많았다.
“뭐야? 우리를 못 믿겠다는 거야? 한 개도 아니고 네 개 공격대가 뭉쳐 있는데?”
“안보를 위해서는 확실한 게 좋지.”
메인 탱커는 그리 말을 하면서도 입맛이 씁쓸했다.
‘아, 얼마나 된다고. 다섯 개 공격대가 나누면 대체 얼마야.’
결정도 6,000이면 약 18억 달러. 결정체 원가는 유지하고 유통이익에서 시세 폭등의 이익을 보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결정체 원가를 폭등한 비율 그대로 판다. 대신 유통이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억 달러를 200명이 나누면 대체 얼마지?
‘오랜만에 돈 좀 만지나 했더니!’
옐로 몹 부족 사태로 돈 가뭄을 겪는 건 미국 공격대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다!”
드디어 저 멀리 괴수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하얀색으로 빛나는 털을 가진 거대한 북극곰이었다.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 모습은 마른 침이 넘어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엄청 크다.”
“30미터는 되겠는데?”
대원들은 장비를 움켜쥐며 전투 준비를 갖췄다. 메인 탱커는 앞으로 나서며 칼을 단단히 쥐었다. 그때였다. 북극곰 괴수가 메인 탱커를 발견하고 몸을 바짝 낮췄다.
―크어어엉!
네 발로 땅을 딛고 선 북극곰 괴수는 크게 울부짖으며,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들었다.
* * *
“각하. 전멸……입니다.”
놀라운 비보에 비시는 들고 있던 펜을 그만 떨어뜨렸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전멸이라니?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어도 그렇지, 그렇게 훈련을 한 공격대가 4개 팀이나 되는데? 리처드 공격대까지 후속 지원을 가지 않았나?”
“리처드 공격대는 일단 대기 시켰습니다.”
“대기? 어째서?”
그제야 비시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미국이 레이드 2인자라 해도 결정도 6천짜리 레드 몹한테 이렇게 처참하게 발리는 건 말이 안 된다.
“설마 블랙 몹인가? 평소에는 결정도를 낮추고 있는?”
“그건 아직 확인 못했습니다. 결정도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이것을 보십시오. 전투 영상입니다.”
보좌관이 프로젝터를 틀었다. 비시는 급히 화면에 눈을 돌렸다. 하얀 털을 가진, 북극곰을 닮은 괴수와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블랙박스에 녹음된 대원들의 비명 소리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으악! 힐! 어서 힐을 줘! 힐 안 주고 뭐해!」
「히, 힐 주고 있어! 주고 있다고! 근데! 근데!」
힐러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찢어질 듯이 울렸다.
「힐 주는데 왜 안 낫느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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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거 다 사령관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