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72)
00672 프리시즌 – 친구편 =========================================================================
정효주 반에서는 단체 댄스 공연을 준비하기로 했다. 총 공연 시간은 1시간으로 잡았다. 3인 댄스, 5인 댄스, 10인 댄스 등 다양한 팀을 구성해서 곡을 선정하고 안무를 짰다.
“친구 중에 댄스 동아리 하는 친구가 있어. 거의 준프로급 녀석인데 안무라면 그 녀석이 봐줄 거야. 삼십 분 정도 걸린대.”
“재즈도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고등학생들이니 최신 유행가가 더 낫지 않을까?”
“같은 재단인데 그런 게 어딨어. 대학 애들도 올 걸?”
“하는 김에 한 곡 정도는 MR 틀고 노래도 직접 하자. 노래 잘하는 애 없어?”
“노래는 효주가 잘해요.”
“정말? 이야, 팔색조라더니 널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정효주는 쑥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40여 명의 고교, 대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매일 같이 빈 실내 체육관에 모여서 공연 준비를 했다. 스무 명의 대학 선배들은 자기 일처럼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같은 재단, 같은 고교 출신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거리감이 없었다. 이 학교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반장인 정효주는 무리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특히 대학 남자 선배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문득 어떤 남자 선배가 물었다.
“근데 그 반지는 뭐야?”
“아, 이거요?”
정효주는 수줍은 듯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덕분에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한층 더 강조 되었다. 세련되게 가공된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광택을 자랑했다.
“커플링이에요.”
“커플링? 남자친구 있어?”
“네. 저기.”
정효주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뚱한 얼굴로 앉아 있는 유지웅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는 회의 도중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한쪽 구석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안무 담당 대학 선배, 최석원은 슬쩍 유지웅을 확인하고는 미묘한 웃음을 픽 머금었다.
“커플끼리 같이 공연 연습도 하고, 보기 좋은데?”
“감사합니다.”
“우리 후배님은 근데 몇 인 조?”
“아, 지웅이는 스탭이에요. 춤에 관심이 없거든요.”
“그래도 같이 연습하면 재밌을 텐데.”
대학 선배들은 정효주가 낀 반지가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냥 팬시점에서 그럴 듯하게 생긴 걸 사서 커플링했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박형준이 말했다.
“근데 안무 짜고 연습하는 자리까지 스탭이 올 필요 있나? 할 것도 없을 텐데, 번거롭지 않아?”
그 말대로 스탭 역할을 하는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일정을 짜고 기자재를 구하는 등 나름대로 뛰어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댄스팀 연습하는 자리에 얼굴을 내밀 이유가 없다.
다른 선배들도 하나둘씩 거들었다.
“그러게. 괜히 시간 낭빈데.”
“여기 오지 말라는 게 아니라, 스탭팀이랑 같이 움직이다가 나중에 자리 만들면 그때 오는 게 낫지 않아?”
“하긴, 시간 낭비이긴 해.”
노골적이지는 않으나 은근한 견제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걸 알아차린 여고생들은 살짝 불편한 얼굴을 했다. 정효주는 그럴수록 일부러 더욱 밝은 웃음을 지으며 부탁했다.
“아이, 제 얼굴 봐서 봐주세요. 저희 아직 백일도 안 됐단 말이에요.”
가볍게 애교를 부리듯이 말하자 남선배들은 저마다 헛기침을 했다. 연예인 뺨치는 미모 여고생의 애교라니, 한창 혈기 왕성한 대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흉기다.
“그, 그래. 뭐, 딱히 지켜본다고 방해되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다 같이 댄스 준비하는 입장인데 댄스팀이면 어떻고 스탭팀이면 어때?”
유지웅 이야기는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갔다.
대강 안무를 짜고 가볍게 연습을 시작했다. 말이 안무를 짜는 거지, 실제 가수 댄스 안무를 따라했다. 안무 담당 최석원이 하는 일은 실제 가수의 정확한 댄스 안무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좋아, 아주 좋아!”
“허리는 거기서 좀 더 왼쪽으로 비틀고.”
“힙을 좀 더 뒤로 내밀고 리드미컬하게, 그래! 그렇게!”
“이야, 잘하는데?”
댄스팀 남자 멤버들의 눈을 가장 강하게 잡아당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9인 여성조 곡이었다. 파릇파릇한 여고생들이 종아리를 드러내는,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필라테스복을 입고 몸을 흔드는 광경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대고, 다리를 꼬고 앉은 유지웅은 팔짱을 낀 채 정효주의 자태를 쫓았다. 땀에 젖은 필라테스복은 육감적인 그녀의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길고 늘씬하게 뻗은 다리, 한 팔로 감길 듯이 얇은 허리, 풍만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탄력을 잃지 않는 가슴……. 갈색빛이 맴도는 흑발이 허공에 휘날릴 때마다 남자들의 한숨과 경탄이 이따금씩 터져 나온다.
“여자친구가 너무 예뻐서 불안하겠다?”
문득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유지웅은 흘끔 돌아봤다. 댄스 연습 때문에 땀에 젖은 여자 선배가 이온 음료를 마시며 옆에 앉았다.
장원희라고 했던가? 댄스 준비에 참가한 대학 선배들 중에서는 가장 예쁘고 스타일이 좋은 여자였다. 물론 정효주한테는 상대가 안 되지만, 대신 대학생 특유의 성숙한 매력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조금은요.”
“왜, 여자친구를 못 믿겠어? 그래서 스탭이랍시고 억지로 참석한 거야?”
장원희는 후배를 놀리는 게 재미있는 듯했다. 유지웅은 픽 웃으며 그녀를 잠시 쳐다봤다. 어려운 기색이 없이, 당당하게 쳐다보는 눈빛에 장원희는 순간 흠칫 했다.
“못 믿어서 감시하려고 참석한 거 같아요? 그래 보여요?”
“뭐, 그렇다기보다는 염려가 돼서 하는 말이지. 여자 입장에서 남자친구가 너무 못 믿고 따라다니면 부담스럽거든. 아직 백일도 안 됐다니까, 너 잘 되라고 조언해주는 거야. 내가 여자다 보니 그런 건 잘 알거든.”
“효주를 못 믿어서 온 게 아니에요.”
“그럼?”
“효주는 믿죠. 근데 남자들은 못 믿겠거든요.”
그리고 유지웅은 킥 웃으며 덧붙였다.
“제가 남자라서 누나보다는 더 잘 알죠. 그런 건.”
“어머.”
장원희는 조금 의외라는 눈으로 유지웅을 쳐다봤다. 고교생같지 않은 당당한 모습, 눈빛, 그리고 자신감에 가득 찬 말투가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특출하게 잘생긴 건 아니지만 깨끗하고 시원스러운 외모, 생기 넘치는 눈동자가 이상하게 마음을 잡아끌었다.
‘주책이지, 참.’
문득 그렇게 자책한 그녀는 살짝 빨개지려는 얼굴을 억누르며 웃었다.
“너, 제법 귀엽다? 효주 같은 퀸카가 왜 너 사귀는지 알겠네.”
“그건 제가 효주한테 잘하는 말인데요?”
“뭐가? 귀엽다는 거?”
“네. 사실이잖아요. 효주 귀여워요.”
열일곱인데, 성년 여자 앞에서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수줍어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 마치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태연하고 당당한 태도는 장원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어느 모로 봐도 평범한 고교생처럼 보이지 않는다.
관심이 생긴 장원희는 연습을 마치고 쉴 때마다 유지웅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힐러 우대 정책은 어쩔 수 없죠. 국가들이 힐러 유치를 놓고 무한 치킨 레이스 한 거 꽤 됐잖아요.”
“하지만 너무 차별적인 대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레이더 평등 정책은 리스크가 너무 커요. 힐러 연합이 없는 게 힐러들 힘이 약해서가 아니에요. 연합을 만들 필요가 없을 만큼 강하니까 없는 거죠. 저라면 힐러 비과세 나라 찾아가서 레이드를 하겠어요. 넘쳐나는 게 그런 나라인데.”
“흠, 하긴 개인 입장에선 그렇기도 하겠다.”
“미국은 힐러가 신청만 하면 바로 시민권 줘요. 강력범이 아니라 단순 탈세범 같은 경우는 망명도 받아주고, 새신분까지 만들어줘요. 빌클런이 상원의원 시절에 그 법안 덕분에 당내 경선에서 이겼잖아요.”
“와, 넌 어린애가 어떻게 그런 걸 잘 알아?”
“그냥 나중에 결정체 업계에서 일하려고 이것저것 좀 알아보는 중이에요.”
장원희는 열일곱 같지 않게 넓은 식견에 감탄했다. 보통 고1이라면 연애, 게임, 혹은 대학 입시에만 관심이 맞춰져 있을 텐데, 대학 졸업생 뺨치는 지식과 열린 마인드에 호감이 끌렸다.
유지웅도 자기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는 것이 싫을 리가 없어 길게 대화를 나눴다.
“…….”
그리고 정효주가 춤 연습에 바쁜 와중에도 남들 모르게 계속해서 흘끔거렸다. 많이 불편한 눈빛으로.
* * *
“너 그냥 연습하는 자리에 안 오면 안 돼?”
저녁을 먹고, 갑자기 정효주가 꺼낸 말에 유지웅은 의아했다.
“왜 갑자기?”
“그냥, 스탭이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있으니까 선배님들이 불편하게 보시는 거 같아서…….”
“그거라면 아까 이야기했잖아?”
“그거야 반장인 내가 그리 말하니까 다른 애들도 있고 해서 부드럽게 넘어간 거지, 나중에 넌지시 귀띔하시더라고. 그래도 우리 학교 출신 선배님들이고 우리 도우려고 오신 분들인데 우리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순 없잖니?”
“흠. 속좁네, 그 사람들.”
“미안해. 반장이라서 나도 난처해.”
유지웅은 어려울 것 없다는 듯이 승낙했다.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남자 선배들하고 함께 있을 때 무조건 너 친구들 세 명 이상이랑 함께 해야 해. 알았지?”
“피. 설마 별 일 있겠어?”
“내가 불안해서 그런다. 그것도 못해줘?”
“알았어. 그럴게.”
정효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안겼다. 품안에서 교태를 부리며 가슴에 뺨을 기댄다. 유지웅은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그녀의 몸을 매만지다가 문득 말했다.
“그래도 축제인데 아무 것도 안 하면 심심한데.”
“재주 있는 애들은 반 댄스랑 별도로 자기들끼리 뭐 따로 준비해서 하더라.”
“나야 춤이나 노래 같은 건 재주 없고…… 유지웅배 게임 대회나 열어볼까? 토너먼트 식으로.”
“……게임 대회?”
“오, 생각해보니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어때?”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정효주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벌떡 일어난 유지웅은 침실 한쪽에 있는 커다란 유리 진열대로 갔다. 유리뚜껑을 열고 시계 서너 개를 꺼내어 보란 듯이 늘어놓았다.
“이 시계들을 상품으로 거는 거야. 그럼 다들 많이 참가하지 않을까?”
……많이 참가하는 걸로 끝날까, 과연?
============================ 작품 후기 ============================
유지웅배 게임 대회!
종목은 전략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