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78)
00678 프리시즌 – 친구편 =========================================================================
공진호는 여러 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비운의 2인자.
이벤트의 강자.
그는 그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정규 리그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매번 준우승에만 머물렀을 뿐이다. 그 덕분에 승부 조작 의혹을 받고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조사 결과는 공진호도 울고, 팬들도 울고, 검사도 우는 걸로 끝났다.
또한 그는 이벤트전의 강자다. 정규 리그가 아닌 이벤트 경기에서는 우승자의 아이콘으로 군림한다. 이 덕분에 더욱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본래 시간축에서 유지웅도 공진호의 열렬한 팬이었다. 왕좌를 차지할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언제나 그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비운의 게이머이자, 시대의 아이콘. 그런 인물이 자신이 주최한 대회에 나오다니.
‘가만?’
문득 기억이 났다. 아주 오래 된 기억이었다. 한창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공진호가 토크쇼에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다.
‘어느 고교 축제 게임 대회 상품이 탐나서 참가해서 우승했는데, 아마도 이벤트전의 강자라는 징크스는 그때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어요.’
당시 공진호는 물론이요 토크쇼 시청자와 팬들도 우스갯소리로 알고 넘어갔다. 징크스는 징크스일 뿐이니까.
하지만 유지웅은 섬뜩했다. 그 징크스가 바로 이 대회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타임 패러독스!’
안 돼! 비운의 2인자를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순 없어!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해!
그의 소리 없는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덧 최종 결승전이 시작되고 말았다.
「아앗! 청코너 선수! 과감한 전진 병영, 전진 벙커 러시를 시도합니다!」
「초반부터 승부수를 띄우는군요!」
관중들은 웅성거리며 열광했다. 청코너, 남기철은 초반부터 과감한 시도를 던졌다. 보병 생산 건물인 병영을 상대방 본진에 가까운 곳에 은밀히 짓고, 전진 벙커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한 수가 제대로 먹히면 게임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끝나게 된다. 그러나 이 수가 막히면 남기철은 십중팔구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위험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도박이었다.
「아앗! 들킵니다, 들켰어요!」
「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했습니다! 백코너 선수,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방어했으나 결국 공진호는 벙커 러시를 견디지 못하고 최종 자원 채취 건물이 부서지며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
유지웅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부릅떴다. 왠지 모를 기시감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래, 4강전 주요 경기에서 공진호가 숙명의 라이벌에게 당했던 3연속 벙커 러시, 그리고 패배. 반 년 넘게 그를 슬럼프에 빠뜨렸던 바로 그 경기!
2차 경기가 시작되었다. 두 선수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이윽고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앗! 청코너 선수, 또다시 벙커 러시를 시도합니다!」
「백코너 선수, 전혀 짐작도 못합니다!」
「바로 전 경기에서 리스크 높은 벙커 러시를 시도한 만큼, 또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는 것이겠지요!」
공진호는 뒤늦게 벙커 러시인 걸 깨닫고 흙빛이 되었다. 미처 상상도 못한 듯이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막아내려고 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무너지고 항복을 선언했다.
‘안 돼!’
유지웅은 보는 자신이 다 가슴 아팠다.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는 것인가?
달려가서 말하고 싶었다. 3번째도 벙커 러시가 올 거야! 남기철은 이요한이 아니지만, 3연벙에 당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콩, 아니 공진호의 운명이었으니까.
그러나 주최자로서 그런 사적인 개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유지웅은 가만히 제 자리에서, 남기철이 3차 전진 벙커 러시를 시도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아앗! 청코너 선수, 또다시 전진 벙커 러시 시도!」
「그야말로 허의 허를 찌르는 전술입니다! 백코너 선수는 설마 3번이나 전진 벙커를 시도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관중들은 함성을 질렀다. 모두 흥분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설마 하니 세 번이나 벙커 러시를 시도할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공진호도 마찬가지였다.
공진호는 필사적으로 막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였다. 모두가 이대로 결승전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앗! 막아냅니다, 막아냈어요!」
「역습! 역습!」
「백코너 선수, 그걸 막아냅니다! 막아냈어요!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백코너 선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전 병력을 동원해서 몰아칩니다! 일꾼까지 모두 동원했어요!」
「그야말로 폭풍 같습니다, 폭풍!」
기적이 벌어졌다. 유지웅은 눈을 부릅뜬 채 대형 스크린을 응시했다. 무시무시한 괴물 군단이 폭풍처럼 인간 군단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두 번이나 벙커 러시에 어이없이 넘어간 응분을 풀어내기라도 하는 듯, 폭풍처럼 거침없는 진격이었다.
파죽지세 같은 진격을 막아내지 못한 남기철은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1승 2패! 백코너 선수, 결국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고 기어 올라옵니다!」
「과연 삼천만 달러를 향한 집념은 대단합니다! 누가 그 상황에서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습니까!」
겨우 한 승을 거머쥔 공진호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마음을 추슬렀다. 유지웅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그만큼 방금 전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승리를 향한 집념은 크고 대단했다.
「백코너, 승!」
「이야, 승부는 이제 원점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경기였어요!」
「이제 최후의 결정전이 시작됩니다! 매우 기대되는군요!」
승리를 향한 집요한 집념을 딛고, 공진호는 기어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수만 명의 관중,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마지막 결전이 펼쳐졌고, 공진호가 그 영예를 안았다.
‘결국, 역사대로……!’
유지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정규 대회에서 공진호는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그가 비운의 2인자, 이벤트의 강자라는 불운한 타이틀을 얻게 된 징크스의 시발점. 역사의 한복판에서 그 씨앗의 개화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떨렸다.
‘안 돼!’
유지웅은 결심했다. 자신의 손으로 그의 징크스를 여기서 끊어 내리라고. 불운의 운명은 지금 그 사슬을 부숴야만 한다. 그래야 공진호가 훗날 프로게이머로서 정상에 우뚝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 *
유지웅은 결승자인 공진호와 단판 승부를 벌였고, 아까운 접전 끝에 지고 말았다. 징크스를 끊어내겠다는 그의 팬심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공진호에게 졌다 해서 아직 대회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만 관중들이 진정으로 기다렸던 빅 매치가 남아 있었다. 삼천만 달러와 삼천만 달러어치 결정체가 걸려 있는, 최후의 경기!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군요.”
“잘 부탁하오.”
안슐이 무대에 오르자 관중석이 대번에 조용해졌다. 왕족의 타고난 위엄과 기품이 모든 이를 압도했다. 유지웅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의 눈은 한없이 맑고 근엄했다.
“SC뱅크 오너 일가라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오?”
유지웅은 픽 웃었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하지만 안슐에게는 충분한 의미 전달이 되었으리라.
“저를 이기면 알려드리지요.”
“좋소. 좋아.”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기면…….”
유지웅은 안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고교생답지 않게 청정한 눈동자에, 안슐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이 소년, 결코 오너 일가 따위가 아니다. SH뱅크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분명하다.
“저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
안슐의 눈이 순간 커졌다. 그는 할 말을 잃은 채 유지웅을 응시했다. 긴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윽고 평정을 되찾은 그가 표정을 다잡았다. 어느덧 입가에는 보일 듯 말듯이 고요한 웃음이 피어나 있었다.
“영광이오.”
두 친구는 각각 게임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최후의 빅 매치가 시작되었다.
* * *
“……진짜 둘 다 더럽게 못한다.”
“언제 끝나? 끝이 나긴 하는 거야?”
“보통 아무리 길어도 50분이면 끝나는데, 이건 무슨 두 시간이 넘게 싸우고 있어…….”
“대체 왜 맵을 무한 자원 모드로 한 거야? 이래서야 자원 고갈도 없잖아!”
“우승자한테 발릴 때부터 알아봤지만, 주최자 진짜 게임 못하네. 역시 파텍필립 시계는 그냥 우승자한테 선물하려고 이벤트 경기 벌인 거네.”
하품이 나오는 지루한 경기였다. 그러나 당사자 둘 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게임에 임했다. 관중들이 연신 지루해하며 언제 끝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에도, 두 친구는 마우스 클릭 하나 하나에 영혼을 담아 컨트롤에 집중했다.
세 시간이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 결국 유지웅이 게임을 일시정지하고 먼저 제안을 했다.
“이러다가 도저히 끝이 나지 않겠습니다. 무승부로 하는 게 어때요?”
“좋소. 그대의 실력에 매우 탄복했소.”
“아닙니다. 저야말로 왕자님의 컨트롤과 뛰어난 전술에 감동받았습니다.”
무승부? 관중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공진호가 삼천만 달러를 얻는지 삼천만 달러어치 결정체를 얻는지 그거 하나 보려고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무승부를 한다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세 시간이 넘도록 한쪽에서 승자가 갈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공진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900만 달러짜리 시계 하나로 끝나는 거야? 삼천만 달러는? 삼백억 원은? 어디로?
“상품은 어쩐다…….”
“그냥 다 줘버리고 시계를 가져오죠. 무승부니까 나중에 우리 둘이서 따로 시계 소유권자를 가리면 되겠어요.”
“그러는 게 좋겠군.”
어어? 관중들은 기겁을 했다. 졸지에 공진호는 삼천만 달러의 현찰과 삼천만 달러어치 결정체 모두를 갖게 되었다. 관중들은 경악해서 입을 떡 벌렸다.
파텍필립 블루세이버를 받아든 유지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이 시계, 선물로 드릴게요.”
예상치 못하게 기습을 당한 안슐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먼저 하다니…….”
“한 번쯤은 당신을 이겨보고 싶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린가?”
“있어요. 그런 게.”
그러나 안슐은 끝끝내 거부했다. 무승부를 인정하고 시계 소유권자를 가리기로 하지 않았나. 그래서 두 사람이 각각 준비한 상품을 공진호에게 전부 준 것이다. 헌데 일방적으로 선물을 받을 순 없다. 이건 자존심 문제다.
“하지만 플래닛 크래프트로 더 이상 우리 사이의 우위를 가리는 건 무의미해요. 언제까지 이 시계의 소유권자 없이 어정쩡하게 놔둘 수도 없고요.”
“그럼 차라리 그 시계는 준우승자에게 줘버리는 건 어떤가, 친구?”
“여전히 그 배포로 절 놀라게 하시는군요. 그래요. 이까짓 시계, 우리 둘의 우정에 방해만 될 뿐이죠.”
이런 전래동화가 있다.
사이좋은 형제는 길에서 주운 두 덩이의 금덩이를 각각 나눠가졌다. 그러나 금덩이 전부를 가지지 못한 아쉬움이 동생에 대한 불만으로 커지자, 형은 그 금덩이를 물에 던져 버렸다. 이에 탄복한 동생도 따라서 금덩이를 던지고 둘은 다시 사이좋은 형제로 돌아갔다.
마찬가지로 둘은 서로의 우정에 방해가 되는 시계마저 남기철에게 던져버리고, 굳건한 우정을 쌓아나가기로 손을 잡았다. 1승 차이로 육천만 달러가 눈앞에서 허망하게 날아가는 걸 보고 혼이 빠져나갔던 남기철은 구백만 달러짜리 시계로 위안을 얻었다.
============================ 작품 후기 ============================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ps : 프리시즌 친구편은 끝이구요, 담편부터 정규 시즌 시작합니다.
북극곰 괴수를 물리치고 그 이후 초토화가 된 미국 수습하는 과정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또 다른 프리시즌 이야기는… 음 따로 분리해서 심심할 때마다 연재하는 방향으로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만, 너무 큰 기대는 말아주세여.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제가 요즘 글쓰기가 넘 힘들어여. 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체력과 지구력이 짱짱 약하고 더위도 엄청 타서여.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