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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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모든 것은 속전속결로 처리한다.”
유지웅은 두 소녀를 앞에 놓고 가르치듯이 선언했다. 은발의 소녀는 무릎을 꿇은 정자세를 한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반면 흑발의 소녀는 나름 진지한 표정이긴 하지만 은발의 소녀만큼은 아니었다.
“텍사스 어딘가에 칼리타 못지않게 강력한 블랙 몹이 있다. 우리 미션은 그 블랙 몹을 잡아서 퍼플 결정체를 획득하는 거고. 둘 다 알겠지?”
“Yes, sir!”
“……응.”
“특히 미국과 접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미국이 퍼플 결정체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은 시간문제야.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이익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미국은 결코 양보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출혈을 각오한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어. 휴스턴 전체가 날아가고도 남을지도 모르지. 난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 없길 바래.”
“상상만 해도 안타까운 비극이군요. 그런 비극이 없도록 반드시 막아야겠습니다.”
“…….”
씩씩한 쿤겐과 달리 정효주는 슬쩍 인상을 썼다. 유지웅은 나름대로 각오를 담아서 멋들어지게 말을 했다. 그러나 미국이 저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아니오, 됐어요, 그냥 가져가세요, 가져가시고 제발 우리 좀 편하게 놔주세요.’
아마 이러지 않을까?
부딪치면 충돌이 있다느니, 서로에게 비극이라느니 하고 있지만, 대충돌을 바라는 것은 정작 유지웅 본인 같다?
“미국과의 우호 증진을 위해서! 그리고 보물에 눈 먼 자들이 가져올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깔끔하고 조용히 블랙 몹을 처리해야 한다!”
“Yes, sir!”
“자, 그럼 가자.”
세 사람은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유지웅은 GPS 추적기를 손에 쥐고 방향을 잡았다. 정효주는 옆에서 달리면서 그를 힐끔 살폈다. 행동거지가 가벼운 것과 달리 나름대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다.
“아오! 왜 카드가 안 긁히는 거야!”
“써, 이 카드는 해외 결제가 안 되는 카드입니다.”
“엿 됐네. 어쩌지?”
“…….”
물론 그 생각은 처음으로 보인 주유소 편의점에 들른 순간부터 산산이 깨졌다.
“효주, 너 돈이나 카드 가진 거 좀 있어?”
“없는데? 나 죄다 호텔에 있어.”
“쿤겐은? 아, 아니다.”
애초에 전투로 옷이 걸레짝이 된 쿤겐이 입을 옷을 구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른 것이다. 현금이나 카드 같은 것을 소지하고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쿤겐은 유지웅이 벗어준 상의만 달랑 걸치고 있었다. 속옷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상의가 커서 아슬아슬하게 허벅지를 가려주고 있었다. 본격적인 잠입 활동을 하려면 일단 옷부터 있어야 할 듯 싶다. 저래서야 너무 눈에 띈다.
“저기, 쿤겐이라고 했나요?”
“예. 미스 정.”
“……그냥 효주씨라고 불러요. 근데 안 부끄럽나요?”
“뭐가 말입니까?”
“그, 남자 앞에서 그런 차림으로 있는데 하나도 안 부끄러운 것 같아서…….”
“부끄럽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나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가슴 좀 펴지 않았으면 싶은데. 그 부분만큼은 유지웅도 정효주와 생각을 같이 했다.
‘F컵이라니……. 그게 가능한 수치란 말이야?’
유지웅이 건네준 옷을 입을 때, 정효주는 ‘남자 옷인데도 꽉 조일 수 있겠다.’하고 가볍게 말했다. 조금은 부러움이 섞인 말이었다.(그녀도 D컵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떻게 저런 귀엽고 아리따운 얼굴에 저런 사기적인 스펙이 장착 가능한지, 탱커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다 비치잖아. 으…….’
아무튼 당당한 건 좋은데 저렇게 가슴을 펼 때마다 유두가 비치는 바람에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매우, 몹시 난감했다. 말은 안 하지만 정효주가 ‘다 보이니까 좋지?’하고 토라진 것 같아서 이쪽도 난처하다.
서둘러 옷을 구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옷을 살 돈이나 카드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쯤 호텔도 난리가 났을 텐데 미국 측에 연락을 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미국 몰래 조용히 블랙 몹을 처리한다.’는 계획이 무산되고 말 테니. 퍼플 결정체를 놓고 미국과 갈등이 벌어지면 남는 것은 대전투와 그로 인한 참사뿐이다.(미국이 알면 기겁하겠지)
“할 수 없다. 자고로 모험이 항상 금전적으로 풍족할 수만은 없는 법이지. 내가 가는 곳마다 ATM기계가 설치되어 있을 거라고 대책 없이 믿고 있지는 않았어.”
유지웅이 큰 결심을 한 듯이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어떤 원대한 계획이 나올지, 쿤겐은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잠시 보조 작전을 추가한다. 작전명은 현지 조달!”
“현지 조달이 무엇입니까, 써?”
“우린 지금 무일푼이야. 경비가 하나도 없지. 따라서 미션 완료에 소모될 비용을 먼저 조달해야 한다. 알겠지?”
“예! 저 이런 모험은 처음이라서 너무 기대됩니다.”
“…….”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정효주가 한숨과 함께 물었다.
“미국 몰래 움직여야 한다며. 그럼 돈은 어떻게 조달할 건데? 너나 나나 영어는 거의 하지도 못하잖아. 그렇다고 쿤겐을 이 꼴로 움직이게 할 거야?”
이런 말까지는 하기 싫은데, 하는 표정으로 정효주는 말을 계속 이었다.
“그냥 적당히 옷 한 벌 훔치자. 하는 김에 현금도 약간만. 나중에 열 배로 갚아주면 되잖아.”
현실적으로 이 계획이 가장 미국에 해가 덜 되지 않을까? 미국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다면 ‘제발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지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안 돼.”
“왜?”
“앞으로 소요 될 경비가 생각보다 많아. 백화점이랑 은행 하나 터는 정도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정효주는 핼쑥해졌다. 설마 백화점과 은행을 생각하고 있었어? 나는 적당히 편의점 같은 거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체 경비를 얼마로 잡고 있길래?
“그럼 대체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그거 말고 여기서 현찰 조달할 방법이 있어?”
“있지. 우리는 레이더잖아.”
“…….”
“레드 몹 네댓 마리 정도만 잡으면 경비는 아슬아슬하게 맞출 수 있을 거야.”
정효주는 유지웅이 생각하고 있는 예상 경비가 어느 정도인지 비로소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은행 금고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겠지.
* * *
“어디 있니? 어디 있을까? 으으응? 어디 있니이.”
유지웅은 노래를 부르듯이 가볍게 흥얼거리며 암석 협곡 사이를 거닐었다. 그는 조그만 가죽 주머니를 손에 쥐고 빙빙 돌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장난감 구슬이라도 든 줄 알 것이다.
“한 마리, 마지막 한 마리가 어디에 있을까아.”
“써! 이쪽에 흔적이 있습니다!”
“옳지! 잘했어, 쿤겐!”
“과찬이십니다.”
쿤겐은 칭찬이 감격스러운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니까 제발 그 짓 좀 하지 말라니까! 가슴골이 다 보이잖아!
아무튼 유지웅은 쿤겐이 발견한 흔적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쿤겐은 연신 놀라워하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대단하십니다! 저렇게 빠를 수가!”
사랑에 빠진 아이돌을 보는 듯이 쿤겐의 눈빛은 뜨거운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저도 빨리 따라가겠습니다!”
“……그래요.”
사냥 장면을 놓칠세라 쿤겐은 서둘러 쫓아갔다. 숨이 턱이 차도록 내달렸다. 그러나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종결된 뒤였다. 쓰러진 레드 몹은 이미 몸 전체가 투명하게 변하고 있었다. 육신을 구성한 물질이 흩어지고 있는 것이다.
쿤겐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비명소리도 전혀 안 들렸는데! 대단하십니다! 녀석이 단말마를 낼 틈도 없이 처리하셨군요!”
“쿤겐, 너도 할 수 있어.”
“정말 그렇겠습니까?”
“물론이지. 아, 당분간은 퍼플 결정체의 힘을 흡수하는 훈련을 해야 할 거야. 아직은 조금 무리지만.”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나중에.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잖아?”
“그렇지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그리고 쿤겐은 뒤늦게 따라온 정효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본래라면 효주님이 취하셔야 할 결정체를 제가 가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어쨌거나 목표로 한 블루 결정체 5개는 전부 모았다. 정효주는 이제 어쩔 거냐는 눈으로 바라봤다. 한 번 들어나 보자.
“그럼, 그건 어떻게 현금으로 바꿀 건데?”
“이 근처에 암시장이 있지. 거기에 내다 팔 거야. 제값은 못 받겠지만 그래도 경비 정도는 건질 수 있겠지.”
아주 그냥 미국한테 ‘나 여기 있소!’하고 광고를 하지 그래?
정효주는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유지웅의 금전 감각은 일반인과 몇 백 광년은 족히 떨어져 있다. 블루 결정체 몇 개쯤이야 그에게는 말 그대로 여행 경비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위기의식이 눈곱만큼도 없다.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탓에 특별히 조심해야겠다는 주의성도 없다. 입으로만 조심해야 해, 조심해야 해, 하고 있을 뿐이다.
“자, 가자!”
* * *
“보스. 암시장에 이상한 물건이 나왔습니다.”
“무슨 물건인데 그러나?”
“순도 높은 블루 결정체입니다. 처음에는 가짜인가 의심했습니다만, 감정 결과 진짜랍니다.”
“호오, 판매자는?”
“대단한 미녀입니다. 발음을 보면 영국계 같습니다. 아무래도 떳떳한 물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텍사스를 주름잡고 있는 마피아 대부, 알드히리에스는 히죽 웃으며 일어났다.
“떳떳하지 못한 물건에 대단한 미녀라.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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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컨셉하니까 역시 일 벌리기가 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