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1)
00091 나는 백수다 =========================================================================
유지웅은 시골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집안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반면 정효주의 부친은 원래부터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을 했다. 그러다가 정효주의 모친이 출산을 하고, 건강 때문에 요양차 시골에 내려왔다. 정효주의 부친은 사업 때문에 함께 내려오지 못했지만 끔찍이도 가정을 챙겼다.
요양을 위해 자리 잡은 곳이 마침 유지웅 집 바로 옆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유지웅과 정효주는 어렸을 적부터 단짝이 되어 친하게 지냈다. 유지웅 부모도 정효주를 예뻐했다.
그러다가 정효주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모친의 건강이 좋아져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유지웅은 효주와 헤어지기 싫다며 어린 마음에 떼를 썼다. 효주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난처해진 것은 어른들.
“이참에 지웅이도 서울에 올려 보내는 게 어때요? 저희가 잘 돌봐드릴게요.”
“그건 너무 폐를 끼치는 거 같아서…….”
“지웅이도 언제까지 여기 살 순 없잖아요. 아무래도 교육 문제를 생각하면 서울로 가야죠.”
“그렇긴 합니다.”
결국 유지웅은 정효주와 함께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되었다. 부친은 아들을 서울에 사는 친척집에 부탁했다. 살기는 친척집에 살았지만 정효주 집안이 그를 살뜰하게 챙겨줬다. 갓난아기 때부터 봐왔던지라, 정효주 모친이 보기에 친아들 같았던 것이다. 유지웅 부모에게 정효주가 친딸 같았던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고 서울 보내놓은 자식이 대학은 안 가고 레이드를 간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이 태산 같았던가. 딜러는 취업도 잘 안 된다고 하던데, 하면서 가슴을 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이게 다 부모가 가진 게 없어서 해주지 못하니 아들이 일찍 돈벌이에 눈을 돌린 건 아닌지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식이 커다란 과수원 하나를 사주었다. 어디서 돈이 났느냐니까 레이드에서 벌었단다. 그럼 아껴서 장가 갈 생각을 하라고 호통 쳤더니 자기는 더 많이 모아뒀단다.
“효주 그게 복덩이여, 아주.”
“그럼요. 복덩이지요.”
듣자하니 레이드에 먼저 뛰어든 게 정효주고 아들은 몇 년 늦게 뛰어들었다고 한다. 정효주가 앞에서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줘서 아들이 성공한 거라 생각한 부친, 유재석은 입에 침이 마르게 정효주를 칭찬했다.
“근데 야들은 언제 온대…….”
“저기 뭔가요?”
“응? 저거 차 아녀? 웬 장난감이 저리 시끄럽댜?”
람보르기니가 회심을 품고 제작한 컨셉트 카, 전 세계적으로 20대 밖에 생산되지 않는 세스토 엘레멘토가 단번에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렸다. 곧 도착한다는 전화에 이제 오나 저제 오나 고개를 빼고 기다리던 유지웅 부모는 세스토 엘레멘토가 자기들 앞에 멈춰 서자 의아했다.
“으잉?”
“엄마! 아빠! 나 왔어!”
장난감 문이 열리더니 유지웅과 정효주가 내렸다. 부모는 얼떨떨했지만 어쨌든 반갑게 맞았다.
“너는 돈도 많이 번다면서 왜 차를 이런 장난감 같은 것만 타고 다니냐? 그 뭐시냐, 벤또인가 하는 크고 멋있는 차도 많더만 왜 꼭 장난감 같은 걸 타고 다녀? 누가 애 아니랄까 봐.”
“이거 벤츠보다 비싼 차거든?”
“아이고, 내가 아들 헛 키웠네. 이게 어딜 봐서 벤또보다 비싸냐? 서울 보내서 똑똑한 줄 알았더니 속아서 이런 차나 사고. 당신, 애 교육을 어떻게 한 거여?”
“이 양반이 왜 이래? 서울 보내자고 한 건 당신이잖아요.”
졸지에 세스토 엘레멘토가 싸구려 장난감 차로 전락해버렸다. 유지웅은 벤츠보다 좋은 차라며 몇 번이고 설명을 했지만, 부모님은 ‘이런 쬐끄만 게…….’라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구, 효주야. 왜 이렇게 예뻐졌어?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그려.”
“잘 왔다, 잘 왔어. 근데 둘이 어떻게 같이 올 생각을 한 거여? 아이구, 멀 이리 많이 사왔어? 무겁게.”
“저희 둘 다 휴가 기간이라서요. 두 분 생각 나서 왔어요.”
“아주 잘 왔다. 안 그래도 네 덕분에 과수원 생겨서 요새 어깨가 폈는데, 그거 고맙단 말을 못했네.”
“그게 왜 효주 덕분이야? 과수원은 내가 사준 건데?”
“이놈아, 너는 돈도 잘 벌면서 부모한테 시치미를 뚝 뗐잖아? 니 엄마 소원이 그렇게 과수원 농사 한 번 지어보는 거였는데, 지만 잘 먹고 잘 살면 다냐?”
“……그래서 사줬잖아.”
“효주 아니었으면 아무 것도 모르고 지 혼자 잘 먹고 잘 살았겠지. 이래서 아들놈은 키워봤자 소용없어. 부모가 뭘 원하는지도 몰라.”
맞는 말인지라 유지웅은 할 말이 없었다. 벼농사만 짓던 부모님 평생소원이 과수원 농장 한 번 가져보는 것이었다. 정효주가 재빠르게 눈치 채서 유지웅을 움직여 과수원을 사게끔 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벼농사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뭐 더 필요한 건 없어?”
“없다, 이놈아. 이제부턴 부지런히 모아서 나중에 장가가서 니 색시랑 자식들한테나 줘라. 우린 과수원 하나면 됐다.”
“그래도 필요한 거 없어?”
“없대두 그러네.”
“진짜 없어? 나중에 또 섭섭하다느니 그러지 말고 빨랑 말해.”
보다 못한 정효주가 얼른 나서서 그를 제지했다. 그리고 몰래 그에게 눈을 흘겼다.
“저희 먼 길 와서 피곤해요. 맛있는 거 좀 해주세요.”
“그래라. 안 그래도 내가 삼계탕 삶아 놨어.”
“와, 정말요? 맛있겠다.”
“겨우 삼계탕…….”
유지웅이 가볍게 투덜거리자 정효주가 또 한 번 눈을 흘겼다. 그녀는 재빨리 유재석 부부가 듣지 못하게 속삭였다.
“너 자꾸 이러면 안 해줄 거야?”
“뭐, 뭘 안 해준다고? 섹스? 밥? 어떤 거?”
“둘 다.”
“안 돼!”
“그럼 좀 틱틱대지 말고 얌전히 있어. 오랜만에 고향 내려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니?”
“나 원래 이런데? 엄마 아빠도 뭐라고 안 하는데 왜 그래?”
남자란 정말 슬프다. 정효주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의 허리를 가볍게 꼬집었다. 탱커다 보니 살짝 꼬집었음에도 엄청나게 아팠다.
유재석 부부의 집은 10년 전 신축한 그대로였다. 본래는 한옥이었는데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큰마음 먹고 조립식으로 신축한 것이다. 아마 2,000만 원쯤 들었던가? 시골이라서 건설비용이 저렴한 편이었다.
“배고파! 밥 줘!”
삼계탕이 싫다고 투덜댈 땐 언제고 앉자마자 밥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한다. 정효주는 옷을 갈아입고 얼른 부엌으로 가서 그의 모친, 김남희를 도왔다.
“어머니. 제가 도울게요.”
“아유, 됐어. 먼 길 오느라 힘들 텐데 가서 쉬고 있어.”
“아니에요. 저 탱커잖아요. 몸 하나는 정말 튼튼해서 하나도 안 힘들어요.”
“땅크?”
“탱크가 아니라 탱커요. 몸이 가장 튼튼한 사람이 하는 거예요. 괴수 공격을 대신 맞아주는 거죠.”
“아유, 이렇게 비리비리해서 어떻게 대신 맞아준다니? 지웅이 저건 여자애를 그런 험한 일이나 시키고…….”
김남희가 정효주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안쓰러워했다. 확실히 겉모습은 연약한 처녀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효주는 웃음을 머금고 식사 준비를 도왔다. 닭은 거의 다 삶아놔서 밑반찬과 밥만 준비하면 되었다. 부지런히 식기를 꺼내 닦으며 정효주가 슬쩍 물었다.
“근데요, 어머니. 이 집 10년 넘지 않았어요? 집이 좀 낡은 거 같은데…….”
“아유, 아니야. 대출 갚은 게 얼마나 됐다고. 아직 20년은 끄떡없어, 야.”
참고로 이 집 신축할 때 농협에서 진 장기 대출도 올해 겨우 다 갚았다. 유지웅은 대출이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정효주가 나서서 해결했다. 그래봐야 잔금이 몇 백 만원 수준이었고, 그건 정효주에게도 푼돈이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눈치 빠른 정효주는 알아챘다. 은근히 새 집을 바라시는구나, 하고 말이다. 아들이 얼마를 버는지 잘 모르기에 부담 될까 봐 함부로 말을 못 꺼내는 것뿐이다.
“제가 지웅이한테 말해볼게요. 새로 집 하나 근사하게 지어드릴게요.”
“아니야, 됐어. 무슨 이 나이에 새 집은…….”
“지웅이 그럴 능력 충분히 있어요. 10억 넘게 있는 걸요.”
틀린 말은 아니다. 10억이 넘긴 넘는다. 8,095억도 10억을 넘은 돈이니까 맞는 말이긴 하다.
정효주가 사실대로 고하지 않은 것은, 유재석 부부가 순박한 시골 사람이라서 혹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재석 부부는 돈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 언젠가는 말해야겠지만, 하루아침에 아들이 재벌급 재력가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거액 복권 당첨자가 파산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던가?
차분하게 돈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적당히 때가 됐을 때 알릴 생각이었다.
“그랴?”
10억이라는 말에 김남희의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졌다. 정효주는 순간 아차 싶었다. 대폭 줄여 말한 건데 더 줄일 걸 그랬나? 유재석 부부에게는 10억도 사실 어마어마한 돈이다.
“네. 앞으로 더 많이 벌 거구요. 그러니까 집 하나 신축하는 건 일도 아니에요. 내려온 김에 내일부터 공사 시작하라고 할까요?”
“아니 그래도 어떻게 내일부터…… 공사 하는 사람들도 찾아봐야 할 낀데…….”
“괜찮아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밥 줘! 빨리 밥 줘!”
유지웅이 수저로 식탁을 탕탕 두드리면서 외쳤다. 정효주는 눈을 가볍게 흘기다가 김남희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근디 어쩐 일로 둘이 같이 온 겨?”
식사를 마치고 상을 물렸다. 정효주는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사과를 깎았다. TV를 보던 유재석이 사과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으며 그렇게 물었다. 과도를 놀리던 정효주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
유지웅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왜? 같이 오면 안 돼?”
“안 될 건 없는데…… 그래도 둘이 다 컸는데 같이 내려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효주 부모님도 걱정하실 텐데.”
“효주 독립한 지 2년 넘었어. 지금은 나랑 같…….”
‘같이 살아.’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정효주가 재빨리 그의 옆구리를 찔러 입을 다물게 했다. 둘은 사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온 게 아니다. 사귄다고 인사를 드리러 온 것도 아니다. 정효주는 은근히 인사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지만, 유지웅이 그렇게 배려 많은 ‘어른 남자’가 아니라서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뜸 둘이 동거한다고 말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초밥 코스 요리 처음 작품에 마무리 일품부터 내놓는 꼴이다.
김남희가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유재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유, 이 양반도 참.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왜? 무슨 눈치?”
“둘이 왜 같이 왔겠어요? 저렇게 다 커서.”
정효주는 씨 도둑질은 못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유재석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유지웅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우리 사귀고 있어.”
“뭬야?”
“결혼할 거야. 음……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유재석은 들고 있던 포크를 툭 떨어뜨렸다. 정효주는 느닷없는 결혼 언급에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좀 눈치 없는 말이긴 한데 이 정도는 허용 수준이다.
놀라워하던 유재석은 이윽고 당황함을 추스르고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효주라면 좋지. 지웅이 잘 키워줄 거야. 안심이 되는구나.”
“아빠, 말이 잘못 됐잖아? 누가 누굴 키워?”
“인석아, 넌 아직 한참 더 커야 돼.”
“니 아부지 말이 맞아. 넌 효주 젖 먹고 좀 더 커야 어른 된다.”
“이 여편네가 며느릿감 앞에서 못하는 얘기가 없네.”
정효주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웃기만 했다.
“그럼 어디 절 한 번 해봐라. 며느릿감 절 한 번 받아보자.”
여차저차해서 절까지 하고 아무튼 정식으로 인사를 마쳤다. 얼떨결에 얼굴 도장을 찍은 셈이지만 정효주는 나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넘어가야 하는지라, 자기 전에 밖으로 그를 불러냈다.
“우리 사이 정식으로 말씀드릴 거면 나한테 미리 의논 좀 해주면 좋았잖니? 나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당연히 말할 거 아니었어?”
“네가 말을 해야 알지. 난 몰랐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음의 대비 좀 해두는 건데. 어휴.”
“어쨌든 잘 됐잖아? 나중에 너네 집에도 인사드리러 가자.”
철없이 굴지만 가끔 마음에 쏙 드는 짓을 해서 봐준다. 정효주는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사실 그와 사귀면서 마음고생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경제 능력이 오죽 출중한가? 딴 여자들이 기웃거릴 때마다 속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그 마음고생이 끝난 건 아니지만, 절반은 덜게 된 셈이다.
“어머님이 은근히 새 집 바라시는 눈치더라. 이참에 깨끗하게 한 채 지어드리는 게 어때?”
“그래? 엄마는 왜 나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하지? 맨날 필요 없다 필요 없다 그러면서.”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어떻게 대놓고 달라고 하니? 은근히 눈치를 주시면 그걸 잘 알아채야지.”
유지웅은 이해가 안 된다며 투덜거렸다.
“그냥 스트레이트로 말하면 뭐가 덧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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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동안에도 회사 주가는 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