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6★ Gacha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305
하피 제국
갑옷을 입은 하피가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피들이 만든 제국이었다. 다른 붉은 하피 원주민들을 싸그리 모아 통합시킨, 하피 여제가 다스리는 하피 제국. 주변의 하피들을 싹 다 복속시켰다 보니 문명 수준도 월등하고
문제가 있다면 딱 하나.
‘…이거 나가리네. 잡아 조지게 생겼다.’
말 그대로 하피 ‘제국’이라서 문제다.
모바일 게임과 각종 씹덕 서브 컬쳐를 즐기며 용어를 알아보던 과거 덕분에 알게 된 지식들. 내가 알기로 제국이라는 건 두 종류가 있다.
동양식 제국은 천자국(天子國), 말 그대로 황제는 하늘이 내렸으며 군주가 곧 나라라는 개념을 지닌 정치 방식이다. 서양식 제국은 엠파이어(Empire), 딱히 황제가 없어도 아무튼 강대국 하나가 여러 왕국을 지배하면 제국이라 부르는 거고.
그런데 이 하피 제국 놈… 아니 년들은 마치 악의 제국을 디자인이라도 한 듯 안 좋은 것만 쏙쏙 빼 와서 모아둔 모양새였다. 무슨 소리냐면 하피 여제가 다스리는 하피 제국은 제국인데 제국주의라는 이야기.
“제국이랑 제국주의랑 한자가 다르지 않나? 근데 얘들은 걍 대놓고 우리 악당입니다~ 하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혹시 그 하피 여제한테 콧수염이 달려있나요?
-제국은 Empire고 제국주의는 Imperialism라서 다르긴 한데 어원이 라틴어라 양키애들이 멋대로 바꾼것같기도 함 그짝은 원래 단어가 근본없이 막 바뀌어서 아무튼 로마의 권력자에서 따온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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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피가 날개를 앞으로 쭉 펼치고 경례하면 이거 서양에서는 50층 못올라간다
-아오 벽돌시치 오천원 내고 설명하…, 라고 할뻔 AI 일 잘하네
-울펜슈머시긴가 낚찌가 적으로 나오는 것도 있으니까 괜찮지 않나?
싸돌아다니며 만만한 모험가는 유혹하거나 납치하고, 강해 보이는 인간은 회유하는 건가.
이야기만 들어도 인간의 못된 짓만 골라서 배웠다는 게 아주 절절히 느껴지는 하피 제국. 돌 난쟁이들은 노예로, 중급 모험가들은 전투 인원 겸 몬스터 포획 조로, 다중 언어를 사용 못 하는 붉은 하피는 이등 시민으로, 검은 네임드 급 하피는 삼등 시민….
약하고 지능이 부족한 하피들은 그래도 동족이랍시고 ‘시민’이라 칭해주고 있긴 하지만, 일단 삼등 이등 일등 시민으로 급을 나눈 것부터 떡잎이 노랗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죽어버린 수준. 거기에 전투력이 부족한 돌 난쟁이는 곧바로 노예로 삼는 것도 그렇고 민주주의의 시대에 사는 플레이어로선 누가 봐도 하피 제국이 나쁜 놈들이다.
“실력에엣― 걸맞으은― 대우르을―!”
그래도 똑똑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지 이쪽의 반응이 미묘한 걸 보고 슬그머니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갑옷 하피.
칼날 발톱을 드러내면 이쪽에게 협공을 당하리라 생각했는지 눈치도 좋게 날갯죽지를 슬금슬금 움직인다. 마치 급식 시간 직전, 엉덩이를 슬금슬금 빼고 복도를 향해 뛰어나가려는 학생들과도 비슷한 모양새.
똑똑한 건 확실한지 위로 치솟아 오르려는 게 아닌, 옆쪽의 절벽을 향해 뛰어내리고 활강을 통해 도주할 생각인지 몸이 슬그머니 기운다.
그러한 낌새를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니지만 다들 딱히 공격할 생각은 없는지 손만 움찔움찔. 갑옷 하피와 모험가가 서로의 눈치를 슬슬 보고 있으니 어색한 침묵 속에서 서로를 살펴보고 있었다.
“……일단, 왕국으로 잡아가자.”
“야만이인―!”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나.
히어로즈 크로니클 빙의 11년 차, 어지간한 사건은 마탑에 던져두면 무슨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뚝딱뚝딱 해결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온 말이었다. 하피 제국주의자의 여제가 콧수염 여제든 아니든 일단 심문하면 추가적인 정보가 나오겠지.
녀석이 떠든 것은 일종의 모병관으로서의 선전이니 진실을 듣고 싶다면 마법사와 마녀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하피의 협조가 아닌 마법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소리. 연금술과 마법이 힘을 모아 만들어진 매지컬-자백제는 히어로즈 크로니클에서 비밀이라는 단어를 희박하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판타지 세상답게 암살자들은 약물 내성을 기른다던데… 징집이라 쓰고 납치라 읽는 행위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모병관이 그런 암살자일 리 없겠지.
“잡아? 잡아!”
“좋아! 잘했어, 한나!”
“이거, 놔라악―!”
마치 서부극의 카우보이가 총을 빼 들기 직전의 순간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험난한 산길. 먼저 귀신같이 스태프를 뻗은 한세아가 거스트 오브 윈드로 무장 하피의 날갯죽지를 찍어 누른다.
계통상 공격보다는 보조에 가까운 돌풍 소환 마법. 칼바람도 아니고 먼지나 일으키는 돌풍이 투박하지만 든든한 갑옷을 걸친 상급 몬스터에게 유효타를 줄 순 없지만 달리는 소매치기의 다리를 걸듯 하피의 첫 날갯짓을 방해할 수준은 되었다.
갑옷을 걸치고 칼날 부츠를 신은 상태다 보니 비행을 위해서는 첫 날갯짓이 중요하겠지. 그런 상황에 돌풍이 어깨와 날개를 꺾어버렸으니 이어지는 상황은 뻔하다.
바위에서 뛰어내려 절벽 아래로 활강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나선을 그리며 휘어져서는 길바닥에 뒹구는 모양새가 된 갑옷 하피. 그래도 꼴에 모병관 겸 전투 인원이라는 듯 그 튼튼한 다리로 땅바닥을 박차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려 들지만… 그 전에 내가 짓눌러버리는 게 먼저였다.
“야만이인―! 비겁자아―! 변태엣―!”
“변태는, 이 시발!”
-롤랑센세 꼴받은 거 간만인가 처음인가 ㅋㅋㅋㅋㅋ
-살면서 여자에게 매도를 들어본 적 없는 남자의 순수한 반응
-육체적 데미지는 받지 않지만 정신적 데미지는 받아버리는 말랑멘탈 롤랑센세 ㅋㅋㅋ
-하긴 저 얼굴로 살면서 여자한테 변태라고 진지하게 욕먹는 일이 있었겠냐구
-ㅋㅋ 이런 쪽에서는 롤랑도 강릉83대손인 나보다 못하군 학창 시절에 단련된 게 있는데
허공에서 떨어지는 진공석도 뛰어가서 받았는데, 땅바닥을 뒹구는 하피 한 마리를 못 잡을까. 버둥거리는 칼날 부츠가 팅팅- 갑옷을 두들기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얌전해진다.
반사딜 패시브가 이럴 땐 좋네.
알아서 기절하니까.
※
오늘의 리빙 포인트, 반사 데미지 패시브는 누군가를 산 채로 납치할 때 좋다.
“마탑에 넘길 생각이야?”
“정확히는 왕국에 넘긴 다음 마법사들을 불러올 생각이야.”
“마법사들이 하피 왕국까지 올… 겠구나. 무조건 오겠네.”
지난번 말을 할 줄 아는 똑똑한 하피 소녀를 왕국으로 옮겼던 때와 같이 어깨에 갑옷 하피를 둘러업었다.
갑옷과 칼날 부츠도 연구 소재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아 딱히 무장을 해제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이 있었지만… 한세아가 뭐 가슴 덜렁거리는 거 보여주려고 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소수의 변태적인 의견은 무시한 채 되돌아간 43층.
중간중간 깨어난 갑옷 하피가 기습적으로 내 목을 물어뜯거나, 부츠에 달린 칼날 발톱을 휘두르는 등 반항을 하긴 했지만 반사 데미지에 기절을 하다 보니 학습 능력이 생겼는지 얌전해졌다.
“인가안, 후회하게엣, 될거시다앗―!”
“그래, 알겠다.”
버둥대다 반사 데미지에 딸피가 되어 기절하고, 기절한 동안 상급 몬스터답게 체력을 자연 회복하고, 다시 깨어나서 버둥대다 반사 데미지에 또 기절하고. 그게 반복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깩깩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는 녀석.
그렇게 진행되는 일방적인 대화는 뭐라고 해야 할까… 동양인을 인종차별 하는 백인을 보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이거 만들 때 심의 생각을 안 하고 만든 건가? 아니면 그 나치 죽이기 게임처럼 그냥 고민하지 말고 잡으라고 만든 건가?”
-정작 눈나마망잼민이들은 판타지 주민이라 별 생각 없어 뵈는데용?
-게임을 공략하는 플레이어들을 긁는다. 처음부터 긁을 생각 뿐이었다
-롤랑센세도 변태라고 긁힌거 말고 딱히 노예땜시 화난 건 아닌 듯 함 ㅋㅋ
-갑옷 입고 있더라니 일류 탱커였네 말 몇마디로 메인탱이랑 게임 플레이어를 바로 긁어버림 ㄷㄷ
-시민 등급제에 노예에 점령에 검투사면 머 그냥 로마 제국 아님? 하피로마제국 ㅋㅋㅋ
“아, 하렘창설단님 도네 감사합니다! …그른가? 사람 대놓고 긁지만 제국 루트로 가면 몸은 편해지고 마음은 불편한, 뭐 그런 건가?”
덕분에 불편해지는 건 우리 파티원들이 아닌 카메라 바깥에서 보고 있는 시청자들. 특히나 서양 쪽 시청자들은 번역기도 버벅댈 정도로 뭔가 열성적인 채팅을 치다 강제로 조용해지는 등 난리가 났다.
정작 그레이스와 케이티, 아이린은 신분 제도가 있는 세상에서 나고 자란지라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았지만. 조금 인상을 찌푸린다 해도 시끄럽거나 하피라는 종족이 인간을 열등 종족 취급해서 그렇지 노예 제도와 시민 등급제에 대해 비판할 이유는 없다.
……나 또한 미묘한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변태 소리에 상처받은 꽃미남이라는 식으로 시청자들이 오해해줘서 다행이다.
“야! 근데 영상 도네로 저 군가는 그만 틀라고!”
누가 자꾸 하피 얼굴에 콧수염 합성한 다음 나치 군가를 틀어줘서 웃음을 참는 중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