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1
21화. Episode. 08 못난이 모리츠 (1)
“젠장.”
가주와의 독대가 끝나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기드, 이 양반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마음고생을 시키는 건지.
당시 용의 심장도 먹고, 기드의 목숨도 구할 방법이 떠오르긴 했다.
문제는 가주가 나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떠올린 방법을 말하기도 전에 선수를 쳤던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되었다. 어차피 난 너를 도와줄 생각이 없으니, 그를 구하려거든 네가 알아서 해 봐라.’
매서운 눈매에 담긴 감정은 나로서도 알진 못했다.
다만 하나 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나 지켜보겠다는 사실이었다.
‘가주가 도와주지 않겠다는 말은 가문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그렇게 되면 계획을 실현하는 데에 큰 애로사항이 꽃피게 된다.
“후우-.”
오늘따라 말이 좀 통한다 싶었더니, 역시나 기사란 족속들은 죄다 꽉 막힌 놈들이다.
유도리가 없어요, 유도리가.
어찌 되었든, 나 혼자서 그곳까지 도달하기엔 큰 무리가 있다.
바텐베르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상,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한동안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벌써 왔나.
문을 열자 아론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거 참, 일단 그를 부르긴 불렀는데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도련님?”
“아, 들어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아론을 방으로 들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 있는 그를 의자에 앉히곤 나 또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쩐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말을 고르고 있던 와중에 그의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상급의 경지에 오르면 내 직속 기사가 되겠다던 아론.
그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 알고 있었냐?”
“무엇을 말입니까?”
“기드랑 제3기사단이 드래곤을 토벌하러 갔다는 거.”
아론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예의 우직함이 묻어나오는 얼굴. 역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저도 기드 경과 같은 전장에 서고 싶었으나, 그분의 부탁으로 이곳에 남았지요.”
덤덤하게 말하는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가주에게 듣기론 기드가 담금질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받은 것이 일주일 전이란다.
즉, 우리가 외출을 나갔을 때 전해진 소식이다.
아론은 아직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기드라면 떠나기 직전에도 손자에게 담금질을 할 것이란 얘기는 꺼내지 않았겠지.
내게 드래곤 하트를 바치기 위해 그 자신이 모든 부담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또한 말이다.
“내가 너를 부른 건 기드의 일 때문이야.”
“아, 무언가 전해 들은 것이 있으십니까? 요즘 소식을 통 못 받았기에 궁금해하고 있던 차입니다.”
역시 말하기 힘들다. 그래도 이건 그에게 꼭 말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입맛이 써, 침을 삼키곤 말을 이었다.
“기드가 담금질을 시작했다.”
방안에 정적이 맴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그런 정적이.
“기드…… 경이 말입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가 제3기사단의 임무에 합류한 이유는……, 드래곤 하트를 내게 바치기 위해서다.”
아론은 내게 어떻게 반응할까.
드래곤 토벌이라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리고 엄청난 리스크가 확정된 담금질을 하는 것.
두 개의 차이점은 생각보다 크다.
전자는 제 할아버지를 믿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 수라도 있지, 후자는 그것조차 무리였다.
운이 좋아봤자 목숨만 부지한 채, 평생 장애를 떠안고 살아야 할테니.
“……그래서 기드 경이 이번 임무에 참가하신 것이군요. 줄곧 의문이기는 했습니다.”
아론은 덤덤하게 말했다. 여느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엔 짙은 슬픔과 걱정이 어려 있었다.
“혹시 도련님께서 죄책감을 느끼신다면,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들었다.
“모든 것은 기드 경, 제 조부님의 선택입니다.”
“…….”
그런데 그게 나에게 하는 말 같지가 않았다.
“마이어 가의 원로이자, 창기사 중에 가장 강한 사내. 기드 마이어 경은 진정한 무인입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긍지를 짓밟는 짓입니다-, 라고 아론이 덧붙였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누가 바텐가에 소속된 기사가 아니랄까 봐, 가주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다.
기사의 선택을 존중해라.
말의 때깔은 참 곱다.
“그런데 나는 납득을 못하겠다.”
“예?”
“선택이고 나발이고, 납득 못한다고.”
기드를 구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건 내 머릿속에 있다. 많은 위험이 따르지만,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
이건 단순히 기드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얻을 수많은 이득 중에 기드의 목숨도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아론, 두 달 준다. 그 안에 오러를 다뤄서 내 직속 기사가 돼라.”
“갑자기 그게 무슨……?”
가주는 내게 가문의 지원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내 기사를 데리고 가면 될 일이다.
아니, 그게 훨씬 더 나았다.
“우리는 두 달 후에 엘프의 숲으로 떠난다.”
엘프의 숲에는 세계수가 존재한다. 세계수의 열매는 불로불사의 영약이라고도 불렸고, 그 나무 자체에도 신령한 힘이 깃들어 있다.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인 만큼, 고작 인간 하나 따위는 원상 복구를 시켜도 차고 넘친다.
“지금 엘프의 숲이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대체 그곳을 왜 가시겠다는 겁니까? 아니, 그전에 엘프의 숲은 그 위치가 밝혀진 적이 없습니다.”
“나는 숲의 위치를 알아. 그리고 그곳엔 담금질의 후유증을 치료할 만한 보물이 있지.”
내 말에 아론의 몸이 움찔했다.
“……그것도 스노우폴에서의 결계 때처럼, 그리고 이전에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까?”
“그래. 너도 할 수만 있다면 기드를 구하고 싶잖아.”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인간을 도울 리가 없습니다.”
그건 내가 믿는 구석이 있다.
아론이 해야 할 일은 하루 일찍 상급의 격에 도달하고, 내 직속 기사가 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포기하겠다고? 선택을 존중한다는 소리만 반복하면서, 정작 너는 가만히 있겠다는 거야?”
“…….”
애써 덤덤한 척하던 아론. 그의 얼굴에 조금씩 감정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갈등과 혼란.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연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할 수 있다면, 제 조부님을 구하고 싶습니다.”
꽈악 말아 쥔 손이 그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진작에 이렇게 나올 것이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떨어져도 한참 전에 떨어진 듯, 창문 너머는 어두컴컴했다.
“내일부터 빡세게 수련한다. 두 달 만에 오러 다루기, 가능하겠어?”
내 말에 그가 제 손을 내려다보곤 입을 열었다.
“마나 루트가 변한 뒤로, 마나를 운용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할 수 있다는 거지?”
“반드시 해 보이겠습니다.”
좋다.
나도 두 달 동안 놀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스노우폴을 습격했던 데스나이트.
놈에게 속절없이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괴물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결국은 힘이 필요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곤, 아론에게 입을 열었다.
“아론, 그래서 말인데…….”
“예.”
“신을 믿을 생각 없냐?”
“…….”
◈ ◈ ◈
“흠흠.”
모리츠는 거울 앞에 선 채로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가주와의 아침 식사는 늘 긴장되고 부담스러웠다.
한참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던 그는 이내, 호위기사인 헨드릭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모리츠 도련님,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그래.”
헨드릭의 인사를 대충 받아넘긴 그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곤 식당의 문을 열었다.
“모리츠 바텐베르크가 가주를 뵙습니다.”
한껏 예를 갖춘 인사.
애써 평온을 가장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앉거라.”
숙인 고개 너머로 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허리를 펴는 모리츠의 눈에 의외의 인물이 보였다.
‘리하르트?’
제 동생이라고 하기에도 창피한 쓸모없는 놈.
그 못난 놈이 가주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외출을 끝내고 돌아왔다더니, 간만에 가주께서 부르신 건가? 근데 저 자식이…….’
모리츠는 식당의 의자를 빼 앉으며, 리하르트를 노려보았다.
저보다 먼저 와 있는 꼴도 탐탁지 않은데, 아예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감히 형한테 인사도 하지 않다니.
속에서부터 열불이 끓어올랐지만, 애써 참아 냈다.
가주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 소란을 피우기엔 너무나 좋지 못한 자리였다.
“식사하지.”
가주가 입을 열고 나서야 식사가 시작되었다. 음식에 눈을 고정하고 있던 리하르트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곤, 고기를 썰어 댔다.
모리츠의 눈엔 그 모습도 아니꼽게 느껴졌다. 걸신들린 듯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리하르트가 퍽 우스웠다.
‘외출 나가서 쫄쫄 굶기라도 했나 보군.’
하여간, 한심한 녀석.
속으로 리하르트를 한껏 비웃을 때였다.
“아버지.”
리하르트가 말을 꺼냈다.
단 한 단어. 그런데 그 한 단어의 뜻이 파격적이었다.
“아, 아버지이?”
모리츠가 저도 모르게 나섰다.
아버지라니. 저놈이 정녕 미친 게 아닌가. 감히 바텐베르크의 가주를 격식 없이 칭하다니. 모리츠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가주를 아버지라 불러선 안 된다. 루드비히의 피를 이은 자식들에겐 불문율과도 같았다.
“리하르트. 이 건방진……!”
“왜 그러느냐.”
모리츠의 말을 끊은 것은 루드비히였다.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평온한 말투. 그에 되려 당황한 것은 화를 내려던 모리츠였다.
“소검궁의 개인 연무장 사용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리하르트는 덤덤히 제 용건을 꺼냈다.
오래전, 사용 금지 처분을 받았던 개인 연무장.
그가 그곳을 입에 담았다. 마치 당연히 허락해 줄 것이라는 듯한 태도로.
“흠…….”
가주의 시선이 리하르트를 향했다.
‘하, 정말 요즘 기가 살았나 보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리츠는 실소를 머금었다. 몇 달 수련을 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이지.
그는 가주가 당연히 호통을 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허가하마.”
귀에 들려온 의외의 대답에 모리츠는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뚝 멈췄다.
가주의 말투가 아주 조금이지만 부드러운 것 같다는 느낌은 그의 착각일까.
분명 큰 차이는 없는데, 리하르트를 향한 평소 말투가 아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래, 네가 생각한 방법은 잘 될 것 같더냐.”
가주가 리하르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호기심과 흥미가 묻어나오는 눈빛. 모리츠가 기억하기에는 가주가 저런 표정을 지은 적은 정말 드물었다.
‘뭔데? 대체 뭔데?’
가주와 리하르트의 대화에 모리츠는 멍하니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원이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만.”
어쩐지 리하르트의 말 속에 뼈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알던 모지리가 맞기는 한 건지.
형제 중에서도 유난히 가주를 무서워하던 놈이라기엔 너무 큰 변화였다.
“네 재주껏 해결해 보도록 해라.”
대화는 그게 끝.
모리츠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도, 식사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