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16
겨울 숲의 노래 (2)
예술 판이란 게 거의 다 비슷비슷한 거 같다.
밥 사먹을 돈도 못 벌거나, 돈을 싸그리 긁어모으거나.
중간이 없다.
난 딱히 영화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막연히 영화판도 음악 판이랑 비슷하겠지, 라며 추측하기만 할 뿐.
“영화에 대해 얼마나 아냐고요?”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분식집에서 뛰쳐나와 다운 엔터 근방에 도착했다.
다만, 건물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입구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짙은 화장 때문에 연령 추측이 어려운 외견.
질문을 한 사람은, 아까 점심시간 때 만났던 그 여자였다.
“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여깄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영화에 대해 어떻게 알아.
업계 관계자는커녕 업계에 들어갈 생각이 있는 사람조차 아닌데.
“전혀 모르는데요.”
“그렇죠?”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회사원 인상의 여자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메실 주스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저기 서서 잠깐 이야기해요.”
“아 … 네.”
우리는 입구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영화제작사 직원.
영화 OST.
그리고 … 다운 엔터.
머릿속에서 정보들이 맞물려졌다.
이 사람이 평범한 직원은 아니란 건 직감적으로 이해가 갔다.
잠깐 이야기 나눈 것뿐인데, 학교 끝나자마자 영화 ost 제안이 왔으니까.
평범한 회사원이 할수 있는 제안이 아니니까.
“영화란 게 참 심오해요.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많은 걸 보여줘야 하죠. 처음과 끝을 완전히 매듭지어서 말이에요.”
“그렇죠.”
나는 갑작스레 시작된 대화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잘 모를 때는 입만 다물고 있어도 중간은 간다.
“연기도 중요하고, 시나리오도 중요하고, 배경도 중요하고, 다 중요해요. 근데 말이에요, 아주 중요하면서도 촬영 현장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게 있어요. 뭔지 아세요?”
“…네?”
또다시 이어지는 질문.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촬영 현장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 …
“… 글쎄요. CG? 음악?”
“하하하. 첫 번째 대답은 틀렸어요. CG는 이미 감독 머릿속에 들어있거든요.”
“아 네 …”
하나는 맞췄다는 소리였다.
그 의미는 즉,
배경음악인가.
그녀는 손거울을 꺼내어 화장을 확인하면서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전 그게 참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아,네.”
“배우들이 막 애드립 치는 경우가 있잖아요? 애드립이 너무 좋아서 영화에 채택됐다던가 그런 소식이 기사에 나오잖아요? 근데 사실 그건 감독이랑 배우랑 엄청 친하면서 배우 몸값이 높아야 가능한 거예요.”
“….”
대충 알 것 같았다.
세션 일도 똑같다.
작곡가가 갑이다.
세션맨은, 작곡가가 의도한 대로 연주를 해야 한다.
뭔가 색다른 뉘앙스 같은 걸 넣으려 해도, 시키는 대로 해달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근데 막 자리 잡은 … 그러니까 엑스트라에서 막 벗어난 사람이 애드립 같은 걸 친다 … 주의한 번 주고서 다음에 안 불러요.”
“와우.”
그래도 이쪽은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니까 저런 일은 잘 없는데.
물론, 존나 못 치면 다음번엔 안 부른다.
이건 당연한 거지.
“제 말 이해하셨어요?”
“조금은요.”
“그래요? 그러니까 요점은 …”
회사원 인상의 여성은 턱-
접이식 손거울을 접더니, 나에게 묘한 시선을 보냈다.
“영화에 있어서, 감독의 말은 절대적이란 거예요. 감독이 당장 통제할 수 없는 ‘배경음악’이라 할지라도요.”
“….”
이 사람이랑 만난 건 우연이다.
아까 전도, 지금도 말이다.
근데 … 묘하게. 아주 묘하게.
기분이 이상하다.
방금 전의 대화로 느껴졌다.
이 사람에게서는, 남의 위에 선 인간 특유의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감독님이세요?”
“… 아하하하하~ 아니에요~ 참.”
호호호 웃으며 내 팔을 두들기는 회사원 인상의 여성.
“손임혜예요. 회사 대표고요. 회사가 제 게 아니긴 한데, 대표긴 대표예요.”
“….”
그녀는 척,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표였구나.
일개 회사원이 아니었구나.
겉모습은 그냥 퇴근 기다리는 주임 대리급 회사원1 같이 생겼는데.
나는 내밀어진 손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잡기가 찜찜했다.
방금까지의 대화가 찜찜했다.
동시에, 아까 전화로 전달받았던 최주임의 말이 거슬렸다.
이야기가 존나 빙빙 돌긴 했는데,
이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나대지 말라는 거다.
이 사람은 내 연주곡을 쓰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곡을 자신의 통제하에 놓으려고도 했다.
… 뭔 상황이야 이게.
나는 가위를 냈다.
“…”
“…”
한여름에 불어닥치는 냉기.
덜덜 떨리려는 팔에, 필사적으로 힘을 줘 본다.
내가 알기로 이 영화는, 한 해 5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작’이다.
이 사람은, 그런 ‘대박’영화를 만든 영화사의 대표다.
능력이 없는 인간이 아니란 소리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일종의 야바위에 가까웠다.
“하나만 물읍시다.”
“네, 하세요.”
“왜 제 곡을 영화에 넣으려고 하십니까?”
“….”
그녀는 내밀었던 손으로 자신의 턱을 슥슥 긁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냥, 멜로디가 딱 맞아서?”
“… 원래 있던 거는요?”
“얘기가 복잡한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담당자랑 마찰이 생겨서 대충 던지고 나갔어요~ 못 쓸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두려다가… ”
오호호 하면서 웃어넘기는 손임혜 대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 그렇군요. 그러니까, 제 1집 앨범에 들어갈 곡에 대표님 취향을 좀 섞겠다, 이 말이네요.”
“네 그렇죠.”
“영화의 틀에 맞추기 위해서요.”
“네.”
나는 낄 데 빠질 데를 잘 구별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나 아이리즈 곡을 만들 때, 나는 지휘자와 박작곡가의 지시를 따랐다.
‘목표’가 있으니까.
그 목표를 맞춰야 하니까.
다만, 이번에는.
이 곡은.
영화에 넣기 위해 만드는 곡이 아니다.
목표 지점이 다르다.
내가 이 사람 지시에 따른다?
말이 안 되지.
말이 안 되는데 …
좀 아까운데.
아니야.
남자는 배짱이다.
패기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잘 모르겠네요.”
“… 네?”
“제 다른 영상도 보셨나요? 레일라나… 트립티크나, 블루 퍼플 바나.”
“어 …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
“안 들어보신 거네요.”
“네.”
그렇구만.
유명세만 확인하고서 겸사겸사 영상 하나만 띡 보고 나한테 연락을 넣은 건가.
실행력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다.
“….”
나는, 영화에 내 곡을 넣고 싶다.
넣고 싶은데 남한테 참견은 받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할게요. 전 수재씨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고 … 변수가 생기는 것도 엄청 싫어해요. 완벽주의 성격이라서요.”
“… 완벽주의시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터벅터벅, 회사 입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시겠으면, 우선 들어 보시고 판단하세요. 협의는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
배짱 max
패기 max
나는 긴장 때문에 울렁거리는 속을 버티며 목소리를 한껏 깔았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잔머리를 굴려대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4층으로 향했다.
4층 복도에는 익숙한 얼굴의 박부장과 음반 제작부 부장이 오늘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설명은 필요 없다.
입을 더 이상 털 수도 없다.
난 지식이 모자라니까.
팩트와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원래 음악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감성적으로 만들어지는데, 파헤쳐보면 논리적이지 않은가.
나는,
기타를 손에 쥐고,
그들에게 일렀다.
“제가, 비위 맞추면서 연주할 거 같습니까?”
“….”
정적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각됐다.
내가 내뱉어놓고 어이가 없네.
에이 시발 몰라.
이판사판이다.
완벽주의자라고?
다 그렇게 말한다.
자기가 만드는 거 잘 만들고 싶은 게 당연하지.
나는 비어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다음, 멋대로 아이맥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박부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개의치 않고 세팅에 들어갔다.
페달보드에서 나온 신호를 컴퓨터로 재가공하는 작업이었다.
이펙터는 내걸 쓰고,
앰프와 캐비넷은 앰플리튜브 프로그램을 쓴다.
실제 앰프 사운드보다는 못 할 것이다.
아무리 잘 베껴도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이니까.
디이잉~
기타의 톤이 점점 몽환적이면서도 화사하게 변화했다.
이거야.
이거다!
회귀하고 나서 한 열 번 정도 쳐본 거 같은데.
톤 카피하느라 진짜 피눈물 흘려가면서 모니터만 쳐다봤었는데.
완성됐다.
“완벽주의는 나쁜 게 아니죠.”
나는 손임혜 대표를 쳐다보며 말했다.
“맞아요. 전 좋다고 생각해요~”
완벽주의자의 제안.
완고한 고집.
어떻게 꺾을 방법이 없을까.
내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 둘러댈 이야기가 없을까.
아이디어는 이미 떠오른 상태였다.
그러니까,
“혹시, 완벽주의자의 곡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자기 입으로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
“완벽주의자의 … 곡이요?”
찐 완벽주의자의 곡을 들려주면 어떨까?
디이잉~
오버드라이브를 풋풋하게 먹은 리어 픽업의 사운드.
딜레이와 코러스가 섞인 몽롱하고 화사한 사운드.
100% 같지는 않았다.
완벽주의자 기타리스트의 톤을 내가 어떻게 100% 흉내 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하긴 했다.
“어 … 이거 …”
“뭔데?”
“그거잖아요! 와, 수재씨 이걸 칠 줄 아세요? 저도 진짜 좋아하는데!”
황프로듀서의 얼굴이 화악 밝아졌다.
“엄청 많이 들었죠. 톤에 팍 꽂혀가지고…”
“소리 죽이죠! 거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드신 거예요!?”
“옙.”
“그거 그냥 번들킷인데 … 어떻게 만드셨어요 …?”
나는 황 프로듀서에게 척, 엄지를 올렸다.
톤은 원래 90%의 노가다와 10%의 자괴감으로 만들어나가는 법이다.
이 곡의 주인도 그랬을 것이다.
정신 나간 완벽주의자를 아는가?
곡 하나를 녹음하기 위해 몇 개월을, 몇 년을 꼬라박는 미친놈을 아는가?
시그니쳐 만들어 주겠다는 펜더사에 대고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 인간을 아는가?
그런 인간이 있다.
놀랍게도 있다.
“대체 뭘 치려고 … 우선 상황 설명부터…”
“아, 괜찮아요. 바로 들어볼게요. 제가 성급하긴 했죠. 실력 알아보는 건 당연한 건데.”
손임혜 대표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면서도, 얼굴에 떠올라 있는 고집을 지우지 않았다.
과연 저 표정이 변하긴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는 참이다.
나는, 연주에 들어갔다.
완벽주의자 기타리스트의 곡의 도입부에 들어갔다.
에릭 존슨의 cliffs of dover.
모니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화사한 소리가,
그의 ‘완벽함’을 흉내 낸 소리가, 스튜디오를 메운다.
아름답고, 산뜻하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
그런 곡.
나는 진심으로, 오늘 들고온 기타가 ‘펜더’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깁슨을 들고 왔다면, 지금 저 표정을 못 봤을 테니까.
“….”
멜로디를 마주한 손임혜 대표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