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17
겨울 숲의 노래 (3)
손가락이 니켈줄 위에서 미끄러진다.
살면서 몇 개나 갈아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던롭 피크가 비스듬히 현을 치고 내려간다.
픽업이 받아들인 현의 진동이, 전기 신호로 바뀌어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온다.
화사한 소리였다.
듣자마자 매료될 수밖에 없는, 화사한 소리였다.
나야 뭐, 다 만들어져 있는 걸 시간 꼬라박아서 카피한 것뿐이지만.
에릭 존슨 본인은 이 소리를 만들기 위해 피똥을 쌌을 것이다.
일렉기타란 게 원래 이렇다.
소리의 가변성이 뛰어나다는 막대한 장점을 품고 있기에, 역으로 연주자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대부분의 클래식 악기는 연주자가 신경 쓸 부분이 그리 많진 않다.
습온도 잘 맞추고, 잘 닦아주고.
못하겠으면 전문가한테 맡기면 끝이다.
근데 일렉기타는 ‘내가 만질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소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넘쳐난다.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마음에 드는 톤을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기타리스트들은 노브를 돌려대고 있을 것이다.
– 디이잉~
분위기가 변했다.
얼어붙어 있었던 공기의 온도가, 살금살금 상승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소리’ 덕이었다.
“이건 …”
“에릭 존슨의 곡이에요. 명반이죠 명반!”
황 프로듀서가 잔뜩 들뜻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
이렇게 좋은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당연하지!
“명반이라 … 그렇게 불릴만하네…”
음반 제작부 부장 또한 가만히 동조했다.
에릭존슨은 미친놈이다.
앨범 하나를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수년의 시간과 수억의 비용을 쏟아부을 정도로,
발매 후 레코드사에서 쫓겨날 정도로 미친놈이다.
공연 한 번 하는데 앰프만 세 개 들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요, 에릭 존슨의 ‘이펙팅 체인’을 보는 순간 그 어떤 기타리스트라도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다만, 그의 완벽주의 성향은,
음악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완벽을 추구하는 만큼, 완벽히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니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
딱딱 끊어지는 느낌 없이 풀 피킹 속주를 하는 걸 듣고 있자면, ‘대체 저걸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에릭 존슨 곡을 카피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뉘앙스를 100%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완벽주의자의 곡.
그리고, 완벽주의자의 곡을 모방하려는 자신.
나는 에릭 존슨과 100% 같은 연주를 할 수는 없다.
다만.
많이 들었기에,
너무 좋은 소리라 필사적으로 따라 했기 때문에.
이 곡을 칠 수 있었다.
– 디리리링~
화사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톤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옷이 되었다.
“….”
“허어 …”
직원들에게는 상황 설명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다들, 뭔가.
개의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이걸 듣는 게 더 중요하니까.
일순간, 모든 신경이 청각에 쏠렸으니까.
“… 이게 일렉기타 소리예요?”
눈을 크게 뜨고 있던 손임혜 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황 프로듀서는 자신만만하다는 표정으로,
“예. 이게 일렉기타 소리예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간결하지만 확실한 답이었다.
“….”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풍경이 그려졌다.
한적한 도심지.
가로수에 무성하게 달린 잎들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날씨.
하늘은 맑고, 구름은 높고, 덥지도, 춥지도 않다.
살면서 한 번쯤은 ‘평생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날씨를 겪어 보지 않는가.
당장 내일 아침 격변할 걸 알고 있어도,
그냥 희망 사항으로 담아두지 않는가.
이 풍경은, 완벽주의자가 그려낸 풍경이었다.
이상하리만치 개운하게 잠에서 깬 날.
이상하리만치 얼굴에 붓기가 없고, 자신감이 차오르는 날.
몸이 가볍고, 모든 것이 산뜻한 날.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 지금도 그대로 들었다.
에릭 존슨 특유의 ‘이상하게 완벽한’ 풍경이었다.
거리를 걷는다.
그냥 걷는다.
주위를 둘러보며, 관찰하며, 산뜻한 공기를 들이킨다.
한적한 주말의 외출.
특별한 목적은 없지만, 그냥 기분이 좋아서 밖을 나돌아다닐 때.
걷다 보니 목도 마르고, 배도 출출하고.
간단히 점심 먹으려 한적한 식당에 들러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게 피부를 간질이고, 매장의 스피커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 멜로디.
그 멜로디.
– 디이잉~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옅은 하모닉스를 넣었다.
부드러운 배음이 정확히 들어갔다.
이것이 음정 뒤에 따라붙어 있던 화사함의 정체다.
다른 기타리스트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에릭 존슨만의 테크닉이다.
– 후우우우욱-!
나는 풀 피킹 속주를 아주 자연스럽게, 오른손에 힘을 빼고.
피크가 현을 강하게 때리지 않게끔 약간 더 각도를 줘서 튕겼다.
고민의 끝에 터득한, 에릭 존슨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 위한 피킹방법이었다.
부드러웠다.
헤머링으로 얼버무리지 않았음에도, 음이 모두 이어져 들리는 것처럼 아주 매끄러웠다.
동시에,
음반 제작부의 부서원들, 두 명의 부장, 그리고 …
영화 제작사의 대표.
모두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허…”
“와우.”
나는 이 곡을 이용해서 손임혜 대표를 설득할 생각이다.
‘완벽주의자의 곡’을 이용해서, 혼을 빼놓을 생각이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른다.
그냥 하는 거다.
논리가 아닌 감성을 이용하는 거다.
나는, 모든 신경을 뉘앙스를 조절하는 데에 쏟아부었다.
출출해서 들린 음식점에서는,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왔다.
다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건 이상주의자가 그려낸 풍경이니까.
이상적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음식은 잘못 나왔지만, 내 식탁 위를 벗어나진 않았다.
시킨 음식도 마저 나왔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콜라도 마셨다.
이보다 완벽한 식사가 따로 있을까?
허기진 배를 채우고서 식당을 나와 다시금 길거리를 걷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부드럽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아주 약간 느껴지는 식곤증을 참아내며.
걷는다.
별거 아닌 주말의 외출.
특별한 해프닝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산책.
말 그대로, 완벽한 하루였다.
이 곡은, 기분 좋고 소소하면서도
후회 없이 보람 있는,
그런 완벽한 풍경을 가져다주었다.
– 지이이잉~
곡이, 마무리되었다.
베이스라인도, 드럼 비트도 없었다.
그저 기타만 있었다.
그렇기에 직설적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완벽주의자’의 소리가 말이다.
-짝짝짝!
황 프로듀서가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음반 제작부의 부서원들도, 두 명의 부장들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다음,
진지한 표정으로 손임혜 대표를 쳐다보았다.
손임혜 대표는 내 시선을 느끼자마자 입을 열었다.
“… 좋네요. 처음 들어봤는데… 확실히 좋아요. 누구 곡이라 했죠?”
“에릭 존슨입니다. 대표님이랑 같은 완벽주의자 아티스트죠.”
“오호 …”
조금 전보다는 표정이 확 누그러져 있었다.
굳이 이 곡을 선택한 보람이 있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는가?
그녀가 찐 완벽주의자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이 곡의 진가를 말이다.
“… 화사하고, 예뻐요. 어울리는 씬에 넣고 싶을 정도로.”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지적할 부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내 실력에 토를 달지 않았다.
경계심이 서려 있던 얼굴은 이제 없었다.
방어막이 한 단계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나머지는 이제 내 입에 달렸다.
애드립에 달렸다.
나는 손임혜 대표가 주저할 틈도 없이,
‘겨울 숲의 노래’를 연주했다.
디이잉~
톤을 바꾸지는 않았다.
‘컨셉’ 자체가 다른 곡이긴 한데 … 그냥 쳤다.
나는 이걸, 여기서 완벽하게 들려줄 생각이 ‘없다’
밑밥이니까.
“이거 ….”
“오오오! 이거 이미 완성된 건가요!?”
“와우….”
“….”
나는 딱 도입부만 감질나게 연주한 후,
피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음반 제작부 직원들의 시선에는, ‘광채’가 감돌고 있었다.
“아직 구상 중이에요. 거의 다 됐긴 했지만요.”
“…! 그럼 바로 내일이라도 녹음준비를….”
“하지만.”
나는,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휙-! 휙-!
고개를 저었다.
“아직 준비할 게 남았습니다.”
“준비 … 요?”
“네. 장비가 필요해서요. 대표님은 아마 이해해 주실 겁니다. 완벽주의자이시니까요.”
“….”
스튜디오 안에 있는 모든 시선이, 손임혜 대표에게 향했다.
그녀는 갑자기 쏟아진 시선이 머쓱한지, 큼큼. 괜히 목을 풀었다.
“완벽주의 … 그래요, 수재씨도 완벽주의자신가요?”
“아뇨?”
“…?”
손임혜 대표가 그럼 왜 물어봤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난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적응도 잘하고 타협도 잘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장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다시금 ‘배짱’을 부리기로 했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죠. 조금 전에 연주한 에릭 존슨의 곡도 완벽한 카피본이 아니니까요.”
“….”
손임혜 대표가 ‘딱히 깔 게 없다’라고 공인한 연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연주.
근데 이게 나로서는 완벽한 연주도 아니고, 완벽한 소리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래도, 방금 전과 같이 완벽에 가까운 구성과 소리를 만들어 낼 자신은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납득 못 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요. 그러니 저를 한 번 믿어주십시오.”
다행히도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다.
좀 멋지게 당당했다.
말을 빙빙 돌려서 하긴 했는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존나 간단하다.
내 알아서 좋게 잘 만틀 테니까,
신경 끄고 영화에나 좀 넣어주쇼.
라는 의미다.
손임혜 대표는 나를 멀뚱- 히 쳐다보다가,
“흐흐흐흡.”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흐흐~”
회사원 같은 인상이라 그런가.
웃음소리도 되게 평범하다.
회사 대표라면 조금 더 질척하고 권위적인 웃음소리를 낼 거 같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넣어달라고요 …? 씬도 안 보고요? 흐흐흐흐~”
“….”
글쎄, 영화에 끼워 맞춰서 만들기 싫다니까.
아예 그냥 영화 OST로 곡 새로 작업해 주세요~ 라고 부탁하면 얼마나 좋아.
그럼 그냥 만들어주지.
원래 있던 곡을 쓰겠다는 게 문제라니까.
암.
“‘겨울’에 관련된 씬 아닌가요?”
“하하하. 맞아요.”
“그럼 더더욱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확신에 찬 어조를 유지했다.
대략 … 아주 대략.
머릿속에서 영화 내용이 그려졌다.
개봉하자마자 본 건 아닌데,
추석 특선으로 TV 돌리다가 본 건데.
어쨌든 기억난다.
잘 만든 영화니까.
손임혜 대표는 약 10초 동안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살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가능할까요?”
긍정의 사인을 보냈다.
스튜디오 안에 있는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서린다.
시간이 존나 촉박했기 때문이다.
곡 하나를 일주일 만에 완성해 오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근데 뭐, 저쪽 사정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고.
“완성되면 저뿐만 아니라, 동생… 아, 동생이 감독이거든요. 감독한테도 OK사인 받아야 할 거예요. 퀄리티만 나와준다면 사용료는 충분히 지불할 생각이고요.”
“… 수재씨 …?”
“괜찮으시겠어요?”
음반 제작부 직원들이 목소리를 떤다.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7일 6시간.
곡 하나를 완벽하게 완성시키기까지, 대략적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나는 고심하는 척,
고민하는 척하며.
간신히 대답을 짜내었다.
“쌉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