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66
170화. 정상에 설 기타리스트를 위하여 (3)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길 건너편에서 빼액빼액 소리를 지르는 아재와 내 옆에서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는 외국인 아재.
나는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머리를 굴렸다.
“….”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이 잘 안 잡힌다.
기타를 만들어준다니.
그것도 펜더에서?
이게 말이 되나?
추측이 무럭무럭 떠오르기는 했지만, 내 이성은 망상을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띠리리링-!
신호가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최주임과 건너편 아재가 후다다닥 이리로 튀어왔다.
“수재씨!”
“수재군!”
달리기 속도는 아재 쪽이 훨씬 더 빨랐다.
그렇기에, 내 어깨가 그에게 먼저 잡혔다.
덥썩-!
“깁슨이 메인이죠?”
처절한 목소리.
정체된 차 안에서 급똥이라도 맞닥뜨린 듯한 직장인의 목소리.
목소리가, 뇌를 흔들었다.
“아니… 예!?”
“깁슨이 메인일 거예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 좋은 소리는 깊은 역사에서 나오는 게 당연하잖아요?”
“….”
“아, 난 깁슨 아시아 마케팅 부서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이고. 그 알죠? 이민 간 거야 이민.”
“그렇군요.”
처음 보는 아저씨의 이민 스토리는 별로 궁금하지가 않은데.
“깁슨 쓰죠? 좋죠?”
“깁슨 쓰죠. 좋아요.”
“오오오! 역시 말이 잘 통한다니까.”
“….”
“그 뭐냐. 그러니까 얼굴마담 되면 딱 좋겠네. 그쵸?”
“…네!?”
“지금 엔도서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뭐… 라고?
“….”
사람이 갑자기 당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말이 없어진다.
억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귀를 팠다.
그리고서, 방금 들었던 말을 되짚었다.
엔도서라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과연 나한테 이런 제안이 올 수가 있는 건가?
아니면 설마 외국인 사기단 그런 건가?
“[참 … 한국어를 잘 못 하니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한국인이랑 거래를 하려면 한국어를 배워야지! 빨기좌는 내가 먼저 가져간다 이 배불뚝이 놈아!]”
“I want sew up your mouth.”
“sew up fuckin your asshole!”
아재들끼리 언성이 높아졌다.
동시에, 미국 서부 특유의 그루브 넘치는 욕배틀이 시작됐다.
“….”
“….”
비슷한 업종이니까 대충 서로 접점이 있었나 보다.
마치 갱스터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여기가 미국이었다면, 아마 총을 꺼내 들지 않았을까.
“자, 잠깐만요! 잠깐만요!”
최주임이 꽤액 소리를 지르며 두 아재를 떼어놓는다.
그리고서,
“우선 어디 좀 들어가죠! 그게 좋을 거 같아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우리 뒤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
“….”
험상궂은 아재 두 명.
귀국 후 바로 대형 사건을 맞닥뜨린 최주임.
그리고,
“내가 … 따라가도 되는 거야?”
뭔가 머뭇거리면서도 흥미롭다는 얼굴로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소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괜찮아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 같긴 하다.
나는 카페 한구석에 두 아재들를 사이좋게 앉혀 놓고,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오더시트…? 너도?”
“흐흐흐흐흐흐흐”
“[치사한 새끼.]”
“[서로 전략이 같았군.]”
분위기는 다시금 험악해지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최주임이 중재에 나섰다.
“자, 자. 우선 서로 자기소개나 할까요? 저는 다운 엔터테인먼트의 인재관리부 소속 최민지 주임입니다.”
“깁슨의 아시아 마케팅 총 책임자 데이비드 박입니다. 그냥 박희석이라고 불러주세요.”
“[펜더사의 마스터빌더이자 마케팅 부서도 같이 하는 제임스 브라운이오.]”
“….”
“….”
외국인 사기단은 아닌 것 같았다.
펜더 홈페이지의 ‘마스터 빌더’ 소개란에 가보니까 제임스 브라운 사진이랑 이름이 아주 대문짝만 하게 박혀있었다.
진짜구나.
진짜 깁슨이랑 펜더에서 엔도서 제의가 온 거구나.
이제서야 현실감이 생긴다.
어안이 좀 벙벙하긴 한데, 이 이상 부정해봤자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박희석이지?]”
“뭐?”
“[Fuck he suck이라니, 이름이 참 대담하군.]”
“이새끼가 ….”
푸흡!
최주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나는 허벅지를 필사적으로 꼬집으며,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분위기가 다시 곱창 났네.
“그, 그만 좀 하세요!”
“….”
“….”
“두분 다 수재씨한테 엔도서 제안하러 오신 거잖아요? 그렇죠?”
“맞습니다.”
“….”
“아, 이놈 또 못 알아먹는 거 봐라.”
“통역은 수재씨랑 박희… 푸흡! 석 씨가 해주세요!”
“내가 왜요!?”
박he석 아재는 양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부탁드릴게요. 제임스씨가 내버려 두고 오신 통역사분을 다시 부르려면 30분 이상 걸릴 거예요.”
“… 어쩔 수 없군요.”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수재씨한테 직접 말씀하시겠다는 제안, 여기서 해주세요.”
“….”
두 아재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장인으로서 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서로 준비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선공은 박he석 아재였다.
“…. 수재씨가 사용하시는 건 레스폴 스탠다드죠? 에보니가 들어간 스페셜 모델 같은데….”
텅-!
테이블 위에 ‘깁슨’ 마크가 수없이 박힌 케이스가 올려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잠자고 있던 …
“레스폴 하이 퍼포먼스입니다.”
딱 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기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
나는 그만 탄성을 터뜨려 버렸다.
이걸 들고 나오다니.
뭔가 취향을 저격당한 느낌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게 뭐야?”
소이가 의문을 품었다.
“이 모델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작년에 발매한 새로운 레스폴로서 ….”
현재 시점에서는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물건이다.
“와우 ….”
고급스러웠다.
내가 쓰는 레스폴 스탠다드와는 달리, 탑 자체가 매우매우 선명하다.
마감도 엄청나게 깔끔했다.
깁슨의 마감은 도저히 그 가격대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병신같은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렇지가 않다.
“목재는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수재씨가 평소에 쓰는 픽업은 버스트버커 픽업. 여기에도 개선판 버스트 버커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이프렛 연주가 더욱 편하도록 ….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음대로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좋다.
확실히 좋다.
레스폴의 두툼한 맛은 좀 덜한데, 편하고 울림도 좋다.
“진짜 좋네요.”
“그렇죠? 바로 계약하시죠.”
“[잠깐.]”
“뭐야, 기타도 안 갖고 온 놈이 까불 ….”
제임스 브라운은 쯧쯧쯧, 혀를 찼다.
그리고서, 007가방 같은 걸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이건 ….”
“[말했잖나. 만들어 준다고.]”
가방이 열렸다.
안을 보자마자 나는, 숨을 급하게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헉.”
“…!”
그야말로 ‘나뭇조각’들의 향연이었다.
“[평생 기타를 만들었지. 수많은 목재를 다뤘고. 지판은 역시 메이플이지? 쿼터쏜? 플레임? 로스티드? 말만 하면 돼.]”
나는 상자 안에 들어있던 나뭇조각들을 손에 쥐었다.
각기 다른 촉감, 무게, 그리고 음을 빚어내는 분자구성.
나무를 직접 만지고 있으니 뭔가 가슴속 깊이 내재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 같다.
“… 저희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말만 하십시오!”
“[당신 기타는 내가 만들 거야. 최고의 목재를 선별해서, 손수 픽업을 감아서, 최선의 정성을 들여서.]”
….
황홀했다.
뭐랄까, 개 뜬금없이 엄청난 미모의 연예인이 나에게 애정을 표하고 고백했을 때의
당황스러움, 기쁨의 한 100배 정도 되는 감정이 온몸을 덮친 느낌이다.
전자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분명 지금 느끼는 감정의 1% 정도의 기쁨일 것이다.
나는 가방을 풀어 헤쳐 펜더 기타를 꺼냈다.
깁슨 하이 퍼포먼스 레스폴
펜더 디럭스 스트라토캐스터
두 기타로, 두말 않고 연주를 시작했다.
생소리임에도 소리가 달랐다.
울림이 달랐다.
각자의 특성이 있었다.
“[역시 울림은 깁슨을 못 따라가지.]”
“[결국은 다 펜더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평생 쓰려면 펜더야.]”
“[아니, 평생을 함께하는 기타이기에 아름다운 기타여야 하지 않나? 레스폴, 335보다 아름다운 기타가 세상에 어디 있나?]”
펜더로는 레일라를.
깁슨으로는 stairway to heaven을.
각기 다른 기타로 각기 다른 곡을 쳐본다.
….
평생을 사용할 기타라….
나는 기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 마저 남은 이야기를 들었다.
“헌정 기타와 게런티, 그리고 광고 옵션입니다.”
“[헌정 기타, 게런티, 추가 광고료에 지급에 대한 사항이야.]”
내밀어진 서류에 적힌 조건은 비슷했다.
기타를 받고, 돈을 받고,
나중에 광고할 때 얼굴을 내비치는 조건으로 또 돈을 받고.
그리고 ….
“5… 년.”
“수재씨는 그야말로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상승세가 가파른 기타리스트니까요. 이 정도는 잡아 드려야죠.”
“[미스터 킴. 잘 판단하게.]”
이렇게 되는구나.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구나.
나는 고개를 팍 치켜들었다.
“….”
원래 엔도서 계약이라는 게 그렇다.
밴드맨들에게 있어서 두 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회사 홍보맨이 되는 게 뭐가 그렇게 영광이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미슐랭 가이드도 따지고 보면 타이어 회사한테 요리실력을 인정을 받는 셈이지 않은가.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을 안 하듯이,
메이저 악기 제작사와의 엔도서 계약은 홍보맨이 된다는 의미 이상으로 전 세계에서 ‘뛰어난 연주자’라 인정받는 것과 같았다.
다만,
“엔도서 계약을 하면, 그때부터 다른 회사 기타를 못 쓰겠죠.”
“[당연한 소리.]”
“물론입니다.”
펜더의 엔도서가 되면 펜더 기타만을 사용해야 한다.
깁슨의 엔도서가 되면 깁슨 기타만을 써야 한다.
회사의 얼굴이 되는 거니까.
당연했다.
“[걱정 말게, 내가 레스폴도 똑같이 만들어 줄게.]”
“[펜더에서 레스폴을? 그게 말이야 방구야?]”
“[깁슨에서는 이미 스트랫 만든 적이 있지 않나?]”
“[… 펜더도 마찬가지잖아.]”
펜더도 막 레스폴같이 생긴 이상한 거 만들긴 하던데.
불쾌한 골짜기같이 징그럽게 생겼더라.
두 회사는 경쟁관계이면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내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입에 담았다.
“펜더에서 만든 레스폴? 필요 없습니다.”
“…!”
“깁슨에서 만든 스트랫? 보나 마나 병신같겠죠.”
“…!”
아니 원래 그렇잖아.
차라리 콜트 레스폴이랑 스윙 스트랫 쓰고 말지.
저딴걸 대체 누가 써?
“그러니까 난 ‘둘 다.’”
“… 응?”
“…what?”
“난 둘 다.”
둘 다 쓰고 싶어.
죽을 때까지 두 개 다 쓸래.
이상한 거 쓰기 싫어!
“아, 아니 지금 저희가 기타도 만들어 드리고 돈도 드리겠다고 하는데 …”
“좋네요. 주세요!”
“아니…!”
“[이거 참….]”
사람은 원래 욕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욕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레스폴, 스트랫.
둘 다 포기 못 하겠다.
나는, 두 개를 다 쓰겠다!
– 전화왔숑!
깜찍한 소리가 적막한 카페에 울려 퍼졌다.
소이의 핸드폰이 범인이었다.
“아, 아빠야… 미안.”
아빠는 어쩔 수 없지.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전화 내용을 어쩔 수 없이 같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수재야.”
“응?”
“혹시… 아빠네 회사 엔도서 될래?”
“어… 응!?”
“시그니쳐 모델도 만들어 주시겠대.”
“…!”
“…!”
….
뭐지?
뭔진 모르겠는데.
뭔가 좋은 거 같은데.
“난 셋 다.”